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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원시부족을 통해서 본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인류학자의 눈으로 쫓다!
『고결한 야만인』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원시 부족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자 한 인류학자의 삶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나폴리언 섀그넌은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이 그래왔듯 1년 정도 현지 조사를 목표로 야노마뫼 지역에 들어갔다. 그런데 야노마뫼 족이 인류학계에서 통념적으로 이해하던 원시 부족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35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사회적 행동, 습성, 인구변화, 이주 과정, 전쟁 등을 연구 했다.
그동안 인류학자들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주장한 것처럼 자연 상태의 인간은 더없이 행복하고 비폭력적이며 이타적이고 경쟁하지 않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저자가 관찰한 야노마뫼 족은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묘사한 자연상태처럼 만성적인 폭력과 전쟁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집단 간의 주된 갈등 목적은 생식가능한 연령대의 여성을 추가로 획득하는 것에 있었고, 야노마뫼 족 또한 한 마을이 적대적인 여러 마을로 분열 될 때마다 그 이유는 바로 ‘여자’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에 생물학과 번식 경쟁, 진화론의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섀그넌의 연구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섀그넌이 인간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부딪혔던 지적 야만인들로부터의 비난과 공격은 역설적으로 야노마뫼 족을 통해 관찰한 인간의 본성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마존 야노마뫼 족, 석기시대에 살고 있던 인류 최후의 원시부족
야노마뫼 족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국경 양편의, 아마존에서도 외부인이 접근하기 힘든곳에 살고 있었다. 외부 세계와 거의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유입된 질병으로떼죽음을 당한 적도 없었다. 이들이 사용하던 도구나 화전 농법은, 이들이 석기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도 모습을 비추었던 야노마뫼 족은이렇게 섀그넌이 현지 조사를 시작한 1964년 당시 지구 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야생의 원시 부족이었다.
루소의 ‘고결한 야만인’ vs. 홉스적 인간
루소는 『사회계약론』(1762)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은 더없이 행복하고 비폭력적이며 이타적이고 경쟁하지 않고 서로에게 친절하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섀그넌이 관찰한 야노마뫼 족은 만성적인 폭력과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섀그넌은 야노마뫼 족의 전쟁과 그 사회를 분석하면서 루소의 ‘고결한야만인’은 몽상이며, 먼 과거의 인간은 오히려 홉스적 자연 상태에서 살고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사회생물학의 도전, 문화인류학계의 반발
섀그넌의 작업은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1975)과 맞물려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에 생물학과 번식, 진화론의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없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저널리스트인 마이크 티어니는 『엘도라도의 어둠: 어떻게 과학자와 언론인이 아마존을 파괴했는가』를 통해 섀그넌이 인종 이론 실험을 위해 홍역을 퍼뜨려 야노마뫼 족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고, 아마존에서 금을 채굴하기 위해 범죄자들과 관계를 맺었다고 비판했고, 언론은 “과학자들이 인종 이론을 실험하기 위해 아마존 원주민들을 죽였다.”라는 선정적인 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국제전염병학회, 미국 국립과학원 등의 조사 결과 이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우리시대 가장 위대한 인류학자의 기록
사회적 논란에 휘말리면서 섀그넌은 더 이상 현지 조사를 수행할 수 없게 되어 연구 일선에서 은퇴했다. 섀그넌은 이렇게 터무니 없는 거짓 혐의가 떠들썩한 스캔들로 확대된 것은 이 조작된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속성도 생물학적으로 진화한다는 이론이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티어니의 책은 사회생물학의 신빙성을 깍아내리며 그 이론을 지지한 이단적인 인류학자를 마녀사냥하기에 적절한 기회였던 셈이다.
이 책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원시 부족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현대의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한 단면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인류학자의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인간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부딪혔던 지적 야만인들로부터의 비난과 공격은 역설적으로 야노마뫼 족을 통해 관찰한 인간의 본성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사회가 평화로웠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그것이 몽상임을 보여 주려고 한다. 게다가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런 상상은 더욱 유지되기 힘들다. 먼 과거, 예컨대 석기시대 사회의 삶은 무척 불확실해서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할 때 느닷없이 공격하는 이웃은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14쪽
습격자들은 일반적으로 새벽에 공격하고 환한 낮시간을 이용해 퇴각한다. 따라서 이런 불안스런 조건에 있는 마에서는 밭일을 나가거나 식량을 채집하려고 나설 때도 활과 화살로 무장한 남자들을 일부 샤보노에 남겨두곤한다. 사냥을 떠나는 남자들도 위험하기는마찬가지이다. 소수만이 사냥에 나서므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면 다수의 습격자들에게 쉽게 제압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92쪽
처음에 나는 혈통과 가계가 야노마뫼 족 같은 부족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지만, 광범위한 족보 자료를 면밀하게 조사한 후에는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친족 관계, 특히 유전적 근접성이 혈통보다 더 중요한 듯했고, 내가 수집한 족보 자료를 근거로 한 개인이 친척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 12가지에 가깝다는 것도 입증해낼 수 있었다. 265쪽
한 마을이 적대적인 여러 마을로 분열될 때마다 다툼의 이유가 무엇이었느냐고 나는 반복해서 물었다. 이런 식의 인터뷰가 며칠 동안 계속되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그만해요! 여자! 여자! 여자! 여자 때문이었소! 여자는 항상 문젯거리였소. 여자! 278쪽
한층 흥미로운 결과는 우노카이와 비우노카이의 번식률과 관계가 있다. 우노카이가 더 많은 부인을 얻기 때문에 자식도 당연히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우노카이는 평균 4.91명의 자식을 둔 반면, 비우노카이의 자식수는 평균 1.59명에 불과하다. 즉 우노카이가 비우노카이보다 약 3배나 많은 자식을 낳는다. 353쪽
해리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극적인 효과를 노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인류학자, 아마존 원주민을 오랫동안 연구해서 유명해진 인류학자로, 그 부족에게는 전쟁을 선호하는 유전자뿐 아니라 유아살해를 선호하는 유전자까지있다고 주장하는 인류학자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나는 윌슨을 쳐다보았다. 윌슨은 해리스의 못된 비난을 듣자마자 의자에 푹 주저앉았다. 그때서야 윌슨은 문화인류학계의 사회생물학 전쟁이 생물학자에게는 낯선 전술과책략, 요컨대 합리적인 학술 토론장에서는 있을 수없는 책략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498쪽
저자는 인류의 태동을 엿보고자 아마존 오지에서 35년 동안 25번 남짓 야노마뫼족과
생활합니다.
한 번에 가장 오래 머문 것은 첫 현지 조사를 했을 때로 1964년 11월부터 1966년
3월까지 17개월이었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습득하고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편견을 배제하고 학문적 양심에 따라
과학적 사고를 기초로 야노마뫼족이라는 초기 인류의 모습이 간직된 연구 대상을
탐구합니다.
저자의 편견을 배제한 과학적 사고는 당대의 주류 인류학에 거북한 존재가 되며 필요
이상으로 비난받습니다.
거기에 더해 선교라고 하는 종교적 목적이 명확했던 가톨릭 단체의 민낯을 목격한
관계로 그들로부터도 공격받습니다.
그런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진실과 연구의 업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는 선하지만도 악하지만도 않은 뒤엉커진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는 생존과 번식이라고 하는 DNA의 제일 과제에서 벗어나,
이성과 지성, 그리고 과학의 힘으로 지금의 진보를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시적인 생존과 번식 본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진실에 눈을 감아서도 안될 것입니다.
앞을 바라보고 나아가되 언제나 우리의 뒤를 돌아보아야 '반면교사'라고 교훈을
잊어서도 안됩니다.
고결할 수도 있지만, 야만적이기도 있는 우리의 본성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야노마뫼족과 함께 살면서 그들 부족 사회에서 전개되던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며 군사적인 투쟁을 지켜본 마지막 목격자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원시적' 단계에서 '복잡한 단계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거의 인지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본래의 순박함을 상실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장 자크 루소와 그의
추종자들이 상상했던 것처럼 인간이 '고결한 야만인'이었던 순박한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훨씬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사회가 평화로웠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그것이 몽상임을 보여 주려고 한다.
1. 문화적 충격
내 현지 조사를 시작한 첫날부터 경험했고, 그 이후 35년 동안의 현지 조사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겪었던 두 가지 일이 있다.
하나는 '원주민 전쟁'이었다.
야노마뫼족의 세계에서 전쟁은 우발적이고 단발적인 위험을 넘어 만성적인 것이었다.
전쟁과 전쟁의 위협은 야노마뫼 족의 사회적 삶의 거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다.
마을 내의 정치, 마을들의 왕래, 부족민들의 갈등, 잔치와 교역, 일상생활, 마을의
규모는 물론이고, 내가 마을의 분열이라고 칭한 과정으로 큰 마을이 쪼개지면서 새로운 마을이 조성되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른 하나는 야노마뫼족의 세계에서 대부분의 다툼과 전쟁이 여자 때문에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 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소수 인류학자에 속했다.
2. 이름에 담긴 의미를 찾아서
대부분의 남자가 한꺼번에 여러 명의 부인을 두었고, 부인과 이혼하면 다른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들이기도 했다.
또 여러 남자가 각자 자기만의 부인을 찾아낼 때까지 한 여자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의 성공 여부는 윗세대에 부계 남성 친척을 얼마나 많이 두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같은 혈통의 웃어른들이 젊은이의 혼인을 지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야노마뫼족에게는 인류학자들이 '이름 금기'라고 일컫는 관습이 있다.
야노마뫼족에게 이방인은 일반적으로 의심과 불신의 대상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이름을 알면 그 사람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야노마뫼족은 이방인에게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다.
이방인이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가 그들의 이름을 알게 되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되면 이방인은 예의를 지키고 상대를 존중하는 뜻에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상대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친족 호칭'을 사용한다.
예컨대 어떤 야노마뫼족이 나를 '형제'라는 뜻의 호칭으로 부르기로 결정하면,
나도 그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이 원칙이고 그의 형제 모두를 같은 친족 호칭으로
불러야 한다.
그렇다고 야노마뫼족이 이방인을 좋아한다거나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다.
친족 호칭을 이용해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방인을 대우하는 것에 불과하다.
야노마뫼족 마을은 대체로 소수의 대가족으로 이루어진다.
거의 모든 마을 구성원이 서로 혈연관계에 있다.
현지 조사에서 밝혀낸 결과에 따르면, 물적 자원의 유무가 아니라, 야노마뫼족의 모든
마을에서 정치 지도자는 거의 언제나 집단 내에서 최대 다수의 유전적 친척을 보유한
사람이었다.
야노마뫼 사회에서 정치적 신분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친척,
즉 유전적 친척의 수에 따라 결정되었다.
야노마뫼족의 '이름 금기'는 그들의 신분체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지 이해하기
힘든 기피 풍습이 아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 때는 이름을 크게 부르는 것이 허용되지만, 성장해서 사춘기,
그들이 '위이웨'로 분류하는 연령대에 이르면 그에 걸맞게 존중받기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름이 큰소리로 불린다는 것은 그가 여전히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므로 이름이 크게 불린 사람은 공공연히 화를 내는 것이다.
야노마뫼족은 남성 우월주의자들이다.
따라서 어린 소년에 비해서 어린 소녀의 이름이 훨씬 자주 사용된다.
3. 습격과 복수
내가 그들의 전쟁을 옆에서 지켜보며 얻은 교훈은, 하나의 전쟁을 통해 갈등 관계에
있는 여러 마을의 과거 역사와 사회정치적인 역학관계 및 지지학적 관계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4. 선교사들과 나의 가족
1960년대 초, 살레지오회는 오카모의 야노마뫼 족에게 산탄총을 나눠 주었다.
산탄총은 야노마뫼 족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유혹물이었다.
하기야 사냥감을 죽이고 힘없는 이웃을 협박하기에는 총이 화살보다 휠씬 효과적이지 않은가!
헤아웨와 아시아웨는 산탄총으로 많은 사람을 죽었다.
5. 미지의 야노마뫼 마을을 찾아서
6. 야노마뫼 땅의 지리
그들의 방향감각은 한마디로 경이 자체였다.
미지의 정글에서도 방향을 읽어내는 능력은 탁월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정확한 지도에 집착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노마뫼족 개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역사가 주로 그들이 특정한 시기에 이디에서
살았느냐를 중심으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시간보다 지리적 공간이 달력인 듯했다.
야노마뫼 족은 개인으로서 또 무리의 일원으로서 자신에게 일어난 중요한 사건을
지리적 위치로 기억한다.
7. 현지 조사에서 과학으로
처음에 나는 혈통과 가계가 야노마뫼족 같은 부족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지만, 광범위한 족보 자료를 면밀하게 조사한 후에는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친족 관계, 특히 유전적 근접성이 혈통보다 더 중요한 듯했다.
8. 여자로 인한 갈등
인류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일부다처를 유지하는 데는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많은 부인과 첩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물질을 확보하는 능력은 부의 축적보다 다른
남성과 동맹을 맺는 능력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적잖은 야노마뫼족 남자가 부인을 학대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또 어떤 사회에서나 남자는 자신의 부인을 성적으로 시샘해 왔다.
따라서 야노마뫼족의 관습이 크게 놀랍지는 않다.
전쟁, 몽둥이를 휘두르는 싸움, 부인에게 가하는 폭력 등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한 자원, 다시 말하면 진화론적 관점에서 도움이 되는 유용한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다.
자연선택론은 생존만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번식과 생존을 위한 이론이다.
야노마뫼족은 여자 때문에 자주 다투지만,
그들이 여자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야노마뫼족의 전쟁은 이런저런 이유로 누적된 불만의 결과이다.
특정한 사람들이 서로 상대에게 원한을 품고 불만이 쌓여가면 급기야 심각한 대립
관계로 발전한다.
내가 인터뷰한 야노마뫼족 여성들은 남편의 구타와 잔혹한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기만을 바랐다.
남편은 그저 부인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부인을 학대하기 때문이었다.
가상의 고결한 야만인은 종교적인 믿음에 근거해 만들어진 인공물이다.
이런 점에서 인류학은 중요한 진실마저 사실이 아니라 믿음으로 결정되는 종교와
비슷하다.
우리는 흔히 사회적 규범을 위반한다.
야노마뫼족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도 규칙을 만드는 동시에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이다.
9. 다툼과 폭력
일반적으로 야노마뫼족은 다툼을 야기하는 사건의 상대적 중요성에 따라 다툼의
성격을 '평가'하며. 분쟁을 곧바로 치병적인 다툼으로 악화시키지 않으려 한다.
야노마뫼족의 싸움은 97퍼센트가 남자들의 싸움이다.
가슴 때리기 결투와 옆구리 때리기 결투, 몽둥이를 휘두르는 싸움들에서 간혹 사망자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런 싸움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살인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싸움들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반살인적'인 대안들로 여겨질 수
있다.
야노마뫼족이 치명적인 습격을 감행하는 이유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복수와 관계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생존한 성인 남성의 약 45퍼센트가 '우노카이', 즉 누군가를 죽인 경험이 있는 전사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을 죽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평균적으로 우노카이가 비우노카이보다 많은 부인을 거느린다.
전체적으로 계산하면, 우노카이의 부인은 평균 1.63명인 반면에 비우노카이의 부인은 평균 0.63명이다.
10. 이와히코로바테리와의 첫 접촉
11. 야노마뫼족의 기원과 그들의 비옥한 초승달
문화의 양상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의 관점에 따르면, 화전은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취 문화에서 벗어나 농업과 가축에 완전히 의존하는 문화로 전환하는 단계를 가리키는
경제 생산 방식이다.
그들은 과거의 밭에서 상당한 거리를 이주해서 새 터전을 마련했기 때문에, 또 적대적인
마을에게 쫓겨났기 때문에 같은 지역을 다시 밭으로 개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정치적 안정은 모든 야노마뫼족 지역에서 상당히 오래전부터 주된 관심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과도기'의 사회에서는 소량의 식량 생산으로도 군사적인 이점을 누릴 수 있다.
경작을 통해 식량을 조금이라도 생산하면 인구가 증가해서 적대적인 이웃의 침략과
습격에 한층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12. 야노마뫼족의 사회조직
부계제도가 모계를 통해 가까워진 남성들에게 부여하는 중요한 이점은,
갈등이 벌어질 때 그들이 효과적이고 믿을 만하게 협력하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가까운 친척이기 매문에 누구보다 강력하게 지원하는 전사가 된다.
민족지학적 기록에서 부계를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가 훨씬 많다는 사실은,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에 무척 흔했던 이웃과의 갈등 위협에서 비롯된 결과로 여겨진다.
한 명의 부인을 가진 남자는 열 명의 남편을 가진 여자보다 휠씬 많은 자식을 둘 수 있다.
따라서 부계 혈통이 모계 혈통보다 인구 규모를 신속하게 확대할 수 있다.
일부다처, 남성 번식 성공률의 큰 격차, 부계 혈통, 족외혼으로 형성된 족보 구조는 결국 일부 마을에서, 남자들이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적절한 신붓감을 납치해 오지 않으면
양측 교차 사촌이 아닌 잠재적 배우자를 찾아내기 힘든 상황을 낳는다.
무리의 규모가 커지면 지역 자원(예: 여성)을 두고 무리 내의 갈등이 증가하기 때문에
규모를 꾸준히 확장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런 갈등을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무리의 분열이다.
내 생각에는 번식 수단, 즉 여성을 두고 빚어진 갈등이 인류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남성의 정치적 책략에 큰 영향을 주었고 남성의 심리를 형성한 듯하다.
농업 혁명이 있은 후로는 재산의 축적과 그에 수반되는 권력이 많은 부인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었다.
13. 세 명의 촌장
야노마뫼족의 세계에서 정치 지도자의 지위는 실질적으로 세습된다.
야노마뫼족은 상대적으로 작은 마을에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작은 마을에서는 친족의 위계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제재로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타리 너머에 사는 이웃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큰 규모를 유지하며 작은 단위로 분열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따라서 마을이 커질 때 분열되는 경향은 안전을 위해 큰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
당위성과 대립된다.
촌장이 휘두르는 권위와 권력의 크기는 마을 규도에 따라 크게 다르다.
작은 마을에서 구성원들을 통합하는 촌장의 역할은 주로 우호적인 친족 관계와 결혼에 내재한 질서와 결속력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대게 '족장'의 말이 떨어지면 모두가 족장의 뜻대로 행동한다.
큰 마을의 족장은 상당한 권력과 권위를 행사하며, 때로는 전제군주적인 모습도 보인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국가 이전의 사회, 예컨대 야노마뫼족과 같은 부족사회를
'평등사회'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야노마뫼족 사회에서, 부족민들은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친족의 수,
또 '우노카이'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이
다르다.
우리 사회와 달리 촌장의 지배력 차이는 부족한 물적자원에의 차별적인 접근권에
좌우되지 않고, 촌장을 따르는 친족의 규모 차이에서 비롯된다.
14. 쇠락하는 문화인류학: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인류학자들은 친족에 근거한 제도가 무너지고 친족과 무관한 사회적 제도로
대체된 후에야 정치 국가와 문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회과학의 연구 과제는 자연과학의 연구 과제처럼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
'사회과학'이란 표현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평론가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류학자는 현장에서 자료를 수집해서 발표할 때 엄격한 규정을
따르며, 일반적으로 과학에 버금가는 절차와 방법을 최대한 따른다.
나는 과학적 전통하에서 문화인류학 교육을 받았다.
그리나 과학과 과학적 방법에 대한 존중이 1960년대 말부터 많은 대학에서 약화되기
시작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받아들인 학자들은 과학적 관점이 가난하고 권리를 박탈당한
소수민족과 여성을 사회적으로 종속적인 위치에 놓으려고 고안된 착취적인 수단으로 여겼다.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스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을 발표하는 관찰자를 좋지 않게
생각하며 인종차별자, 성차별주의자, 생물학적 결정론자, 심지어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한마디로, 객관적인 관찰자가 정치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자료를 조작해 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화인류학은 모든 문화에서 인간이 행하는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물학으로부터 얻으려는 경향을 전통적으로 반대해 왔다.
15. 살레지오회와의 대립
16. 문화인류학에 드리운 어둠
아마존의 원주민들에게 가해지는 위해가 주로 '문명화된'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방식,
특히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정부의 공식적이고 비공식적인 원주민 정책에서
비롯된다는 우르타도의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는 하나의 답은 없다는 것입니다.
보는 사람의 관점과 해석에 따라서 같은 상황을 보고도 각기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읽은 인류학 책들에서도 마치 성선설과 성악설의 대립과 같이 상반되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원초적인 본능에는 배려와 공감 그리고
측은지심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생존과 번식과 관련된 야만적 요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시 뇌의 지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존재입니다.
야노마뫼족의 모습에서 우리와 비슷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함이 아닙니다.
과거를 사실 그대로 볼 수 있어야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 제대로 보인다고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