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내년 건강보험료율 7% 넘나…“국고 지원부터 강화해야
연합뉴스
내년도 건강보험료율이 올해보다 1.49% 오른 7.09%로 결정됐다. 건강보험료율이 7%를 넘어선 건 2000년 단일보험 통합 이후 처음이다. 고령화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부과체계 개편 등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하면서 보험료율 인상은 예견됐던 일이다. 다만 앞으로 보험료율이 더 가파르게 상승할 경우, 가입자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9일 오후 7시부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내년도 건강보험료율을 1.49% 인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보험료율은 현행 6.99%에서 내년 7.09%로,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과점수당 금액은 205.3원에서 208.4원으로 각각 오르게 된다.
직장가입자 월평균 보험료는 올해 14만4643원에서 내년에는 14만6712원으로 2069원 인상된다. 다만 소득세법 개정으로 식대 비과세 한도가 확대됨에 따라 비과세 식대 수당이 인상되는 직장가입자의 경우에는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이 감소해 인상폭은 줄어들게 된다. 지역가입자의 월평균 보험료는 올해 10만5843원에서 내년에는 10만7441원으로 1598원 인상된다. 9월부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이 시행되기 때문에 보험료율이 1.49% 인상되더라도 평균보험료 부담은 8만4986원으로 올해 7월 대비 2만857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료율은 통상 가입자·공급자·공익 대표자 위원 간 의견이 갈려 의견 조율 후 투표로 결정돼왔으나, 이날 건정심에선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건강보험료율은 2000년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지역·직군별 의료보험이 단일보험으로 통합된 후 계속 증가했다. 2009년 처음 5%를 넘어섰고, 2015년 6%대로 올랐다.
복지부는 “2023년에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 영향이 본격 반영되고, 소득세법 개정으로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이 줄어들어는 등 건강보험 수입 기반이 감소했으며 필수의료체계 강화, 취약계층 의료비 지원 확대 등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지출 소요가 있어 예년 수준의 인상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물가 등으로 인한 국민의 보험료 부담 여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1.49% 인상하기로 하고 강도 높은 재정개혁을 추진하여 재정누수를 막겠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고령화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의료이용이 늘면서 건강보험 재정 지출은 증가세이다. 반면 부과체계 개편으로 건보 수입은 연간 2조원 가량 감소한다. 부과체계 개편은 지역가입자 월 평균 보험료를 내리고, 피부양자 조건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지만, 피부양자의 지역가입자 전환비율은 1.5% 정도다. 장기적으로 저출생 기조 속에 건강보험 재정이 취약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감사원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2018년 이후 3년(2018~2020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인 2026년쯤 건강보험료율이 법적 상한선인 8%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법을 고쳐 보험료율을 8% 이상으로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가계지출에서 건강보험료 부담이 크다는 여론이 적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으로 ‘과잉 의료’가 늘어나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취약해졌다는 평가에 따라 정부는 오는 10월까지 지출구조 개혁 방안 등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반면 시민사회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필수적 조치라고 보고, 건보 재정에 국고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오후 6시 서울 국제전자센터 앞에서 건강보험료 인상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물가 폭등과 금리 인상으로 생계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건강보험료율까지 오르면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질 것”이라며 ‘수원 세 모녀’와 같은 저소득층에게 커다란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 회원들이 29일 서울 서초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2023년도 건강보험료율 결정 앞둔 시민사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현재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해당 연도의 보험료 예상 수입의 20%를 국고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건강보험노조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국고 지원율은 16.0%, 박근혜 정부 15.0%, 문재인 정부 13.9%다. 국고 지원을 명시한 법 조항은 올해 12월31일 일몰 대상이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법으로 명시된 건강보험 재정 국고 부담 20%를 매년 어겨놓고 보험료 인상을 제시했다”면서 “일몰제를 폐지하고 불명확한 규정을 명확히 해 건보 재정의 30% 이상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항구적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격리 의무가 발생하는 1급 감염병인 코로나19 본인부담금은 국고 지원해야 하지만, 건보 재정에서 지출하게 했다며 국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건보료만 인상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병원비백만원연대는 이날 성명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환자의 병원비 부담을 줄여나갈 수 있다. 건강보험료를 적정하게 올릴 필요가 있다”면서 “서구에서는 사회보험료 분담에서 기업의 몫이 더 큰 경우도 많다. 기업도 사회적 역할을, 정부도 (국고 지원 등) 재정 책임을 온전히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