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는 길어가고 조같은 잠시로다”
글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교무부
『전경』에는 상제님께서 동학(東學)을 창도했던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의 글을 인용해서 말씀하신 구절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수운은 경신년(庚申年: 1860년) 4월에 상제님으로부터 제세대도(濟世大道)의 계시를 받고 1년 정도의 수련을 거친 뒤 자신의 가르침을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에 담았다. 1861년부터 1863년에 걸쳐 완성된 이들 경전 중 한문으로 된 『동경대전』은 학식이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에 반해 『용담유사』는 3ㆍ4조, 4ㆍ4조의 한글 가사(歌辭)로 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읽고 외울 수 있는 내용이었다.
상제님께서 “동학 가사에 ‘운수는 길어가고 조같은 잠시로다.’ 하였으니 잘 기억하여 두라.”(교법 1장 35절)고 말씀하셨는데, 이때 ‘동학가사’란 바로 『용담유사』를 가리키는 것이다. 『용담유사』는 초기에 유사팔편(遺詞八篇) 또는 가사팔편(歌辭八篇)이라고 불렸으나 동학의 2대 교조인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1827~1898)에 이르러 용담유사(龍潭遺詞)01란 제목의 단행본으로 간행되기에 이르렀다. 『용담유사』는 모두 8편의 가사02와 1편의 부록03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제님께서 잘 기억해 두라고 하신 구절은 『용담유사』 「흥비가」에 있는 내용이다.
여덟 편의 가사 중 가장 나중에 저술된 「흥비가(興比歌)」는 1863년에 수운이 자신의 도통(道統)을 제자인 최시형에게 전수하기 바로 직전에 만든 것이다. 「흥비가」의 ‘흥비(興比)’는 『시경(詩經)』의 표현법인 흥(興: 먼저 다른 물건을 인용한 다음 본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 방법)과 비(比: 비유)에서 따온 말이다. 그 주된 내용은 당시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염려되는 교인들의 행실을 비유로써 경계하고 가르침을 주는 것이었다. 「흥비가」 중 상제님께서 언급하신 구절이 있는 단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홉길 조산(造山)할때04 그마음 오작할까
당초에 먹은생각 과불급(過不及) 될까해서
먹고먹고 다시먹고 오인육인(五六: 다섯 길 여섯 길) 모을때는
보고나니 자미되고[맛이 있고] 하고나니 성공이라
어서하자 바삐하자 그러그러 다해갈때
이번이나 저번이나 차차차차 풀린마음
조조(懆懆)05해서 자주보고 지질06해서 그쳤더니
다른날 다시보니 한소쿠리 더했으면
여한없이 이룰공을 어찌이리 불급(不及)한고
이런일을 본다해도 운수는 길어지고
조가튼 잠시로다 생각고 생각하소
위의 글은 수운이 공부하는 것을 아홉 길 산을 쌓는 일에 비유해 당시 동학을 공부하던 제자들의 마음이 흐트러져 중도에 그만두는 것을 한탄하며 훈계의 말을 전한 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아홉 길이나 되는 높은 산을 쌓기 시작했을 때는 그 마음을 얼마나 단단히 먹었겠는가? 처음에는 가졌던 마음에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있을까 해서 마음가짐을 잘 살피며 아홉 길 산을 반드시 쌓겠노라고 수차례 다짐하였다. 그러다가 다섯 길 여섯 길까지 산을 쌓을 때는 그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쌓고 나니 공이 되는 것 같아서 어서 하자, 바쁘게 하자며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그럭저럭 다 되어갈 때쯤이다. 이번이나 될까? 지난번이나 될까? 하며 하루 속히 산이 다 쌓이기만 바라다가 마음이 조금씩 해이해지고 초조해서 자주 보게 되었는데, 쌓아 놓은 산을 보니 변변치 못하고 보잘 것 없는 것 같아서 산 쌓기를 그만두었다. 그런데 다른 날 다시 와서 쌓아 놓은 산을 보니 만약 한 소쿠리의 흙만 더 보탰더라면 여한 없이 이룰 수 있는 공이었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미치지 못했을까? 이런 일을 보아도 ‘운수는 길어지고 조가튼 잠시로다’이니 공부하는 사람들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반드시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그 내용을 파악해 보았을 때 상제님께서 『용담유사』에서 인용하신 구절은 수운이 이 단락에서 말하고자 했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함에 있어 걸림돌이 되어 온 부분은 ‘조가튼 잠시로다’에서 ‘조가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이 단어의 뜻에 대해서는 현전하는 판본에 따라 두 가지의 해석이 존재한다.07 하나는 조가튼을 ‘조가른’의 오기(誤記)로 보아 조갈(燥渴: 목이 타는 듯이 마름)로 해석하는 것이다.08 이에 따르면 ‘조가튼 잠시로다’란 ‘목이 타는 듯이 마름(수도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통, 초조함)은 잠시일 뿐이다’가 된다. 다른 하나는 조가튼을 ‘조같은’ 혹은 ‘조갗은09’으로 보아 조급함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그 단어의 의미를 어원을 통해 밝힐 수 없는 관계로 어디까지나 문맥의 흐름상 그렇게 파악한 것이다. 이 경우 ‘조가튼 잠시로다’란 ‘조급한 심정은 잠시일 뿐이다’가 된다.
이제 ‘운수는 길어지고 / 조가튼 잠시로다’에서 뒷부분의 뜻을 각각 대입해 보면 이 구절의 의미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조갈(燥渴)의 경우, ‘수도를 통해 받게 될 후천 오만 년의 운수는 자신이 닦은 바만큼 길어지는 것인데 반해, 수도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통은 잠시일 뿐이다’가 된다. 다음으로 조급함의 경우, ‘초조한 마음에 운수는 멀게만 느껴지고 하루 속이 공이 이루어지기 바라는 조급한 심정은 잠시일 뿐이니 중도에 그만두지 말고 끝까지 따라가라’는 것이다. 결국 수운이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훈계는, 자신의 가르침에 따라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도해 나가면 크나 큰 운수를 받아 누릴 수 있으니 잠깐에 불과한 현재의 어려움과 고통, 조급함으로 인해 중도에 그만두지 말고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상제님께서 『용담유사』「흥비가」에 있는 구절을 인용하시며 잘 기억해 두라고 하셨으니, 그 구절의 의미가 비단 당시 수운을 따르던 동학도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현재 대순진리를 숭신(崇信)하고 있는 모든 수도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다. 도문(道門)에 들어온 수도인들이 상제님과 도(道)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때는 수도의 목적인 도통과 후천 오만 년의 운수를 기대하며 큰 뜻을 세우고 도에서 반드시 성공하리라 다짐하기 마련이다. 그 후 열심히 수도와 사업을 해서 수반들이 생기고 직위가 높아져 도를 닦는 즐거움도 느끼고 조만간 다가올 대운대통(大運大通)을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가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처음에 지녔던 뜻과 마음자세가 조금씩 느슨해지고, 금년이냐 내년이냐 하며 초조하게 운수(運數)를 손꼽아 기다린다. 이런 상태에서 수도와 사업마저 지지부진하게 될 경우 정성에 정성을 더하지 못하고 해태한 마음을 가져 수도를 게을리 하거나 심지어는 중도에 그만두는 사례도 있다. 그 결과 운수마당에 가지 못하거나, 가더라도 기대한 바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탄식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10 상제님께서는 아마도 이런 일을 우려하시어 수도인들이 수도와 사업을 통해 얻게 될 크나큰 운수를 망각하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거나, 해태한 마음과 조바심으로 인해 수도를 게을리 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셨던 것이라 여겨진다.
들어가세 들어가세 용화도장 들어가세
많고많은 그사람에 몇몇이나 참례턴가
시들부들 하던사람 후회한들 무엇하며
한탄한들 무엇하리 탄식줄이 절로난다
-『채지가』「뱃노래」 중-
01 이때 ‘용담(龍潭)’은 수운이 머물던 용담정(龍潭亭: 득도 후 포교의 문을 연 곳이다)의 이름을 본뜬 것으로 곧 수운을 지칭하고, ‘유사(遺詞)’란 그가 남긴 말이란 뜻이다.
02 용담가(龍潭歌), 안심가(安心歌), 교훈가(敎訓歌), 도수사(道修詞), 권학가(勸學歌), 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 도덕가(道德歌), 흥비가(興比歌).
03 부록에는 역시 가사체로 된 검결(劍訣)이 실려 있다. 검결은 동학의 종교의식에서 부르던 노래로서 검무(劍舞)와 함께 행해졌는데 수운이 관에 체포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04 『시경(詩經)』「주서(周書)」<여오편(旅獒篇)>에 나오는 ‘위산구인 공휴일궤’(爲山九 功虧一: 아홉 길이나 되는 산을 만들다가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일을 망침)를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길’은 길이의 단위로서, 한 길은 사람의 키 정도에 해당한다.
05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고 조마조마함.
06 보잘것 없고 변변하지 못함.
07 이처럼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하는 이유는, 현전하는 『용담유사』의 판본인 계미본(癸未本: 1883년)과 계사본(癸巳本: 1893년)에 각각 ‘조가튼’과 ‘조갈은’으로 다르게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08 김기선, 『東經大全ㆍ용담유사』, 정민사, 1985, p.518. / 김익환, 『동학의 이해』, 고려대학교출판부, 1994, pp.168~169.
09 『용담유사』가 간행될 당시인 19세기 말에는 아직 우리글에 통일된 표기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거나 받침으로 쓰여야 할 자음이 다음에 이어지는 모음과 결합해 표기되는 경우도 많았다. 구개음화(ㄷ, ㅌ 받침 뒤에 ‘이’나 ‘히’가 올 때 ㅈ, ㅊ으로 발음되더라도 ㄷ, ㅌ으로 표기함) 현상에 대해서도 이것이 지켜지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서영석, 「용담유사의 국어학적 고찰」, 신라문화 제22집 참고)
10 너희들이 이제는 이렇듯 나에게 친숙하게 추종하나 후일에는 눈을 떠서 바로 보지 못하리니 마음을 바로하고 덕을 닦기를 힘쓰라. 동학가사에 “많고 많은 저 사람에 어떤 사람 저러하고 어떤사람 그러한가”와 같이 탄식 줄이 저절로 나오리라. (교법 2장 9절)
출처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대순회보 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