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차오른다 가자.…”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가 떠오른다.
지난 1월 31일 밤, 음력 섣달 보름의 슈퍼문, 블루문, 블러드문이 한꺼번에 나오는 35년 만의 개기월식을 보았다.
사실 며칠 전부터 가슴 설레며 기다렸는데, 막상 먹구름이 너무 심하게 몰려와 애를 태워야만 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구름이 없는 지역으로 잽싸게 달려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이마저 마땅치 않아 기상청 위성사진을 실시간 판독하기 시작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방에 들어와 위성사진을 확인하고는 다시 또 몇 번이나 마당에 나가보았다.
일단 카메라 삼각대를 받쳐놓고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목이 빠져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쪽에서부터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지만 부분월식이 시작되는 오후 8시48분까지 계속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비가 올 때까지 계속 제를 올린다는 인디언의 기우제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개기월식이 시작되는 9시52분쯤에 달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 달에 두 번 뜨는 블루문이 불쑥 얼굴을 내미는 것이었다.
아마 포기했다면 35년 만의 우주 쇼, 그 진풍경을 놓칠 뻔했다.
19년 뒤에나 다시 볼 수 있다는데 인생지사 어찌 그 세월이 내게 보장될 것인가.
3시간 동안 정신없이 개기월식의 진행상황을 수동으로 조작하며 사진을 찍었다.
구름 때문에 부분월식의 시작부분을 제대로 다 담지는 못했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이나마 천만다행이 아닌가.
부분월식과 개기월식은 3시간 23분 동안 이어졌다.
고속버스를 타고 지리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시간과 비슷했다.
그리고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져 달이 붉게 보이는 블러드문의 개기월식은 76분 동안, 그러니까 1시간 16분 동안 진행됐다.
덜덜 떨며 붉은 달을 품고 또 품다 보니 ‘블러드문’이라는 짧은 신작시 한 편이 떠올랐다.
섣달 보름밤
내 인생의 개기월식
35년 만에 당신을 만났다
지구의 슬픈 그림자를 저 혼자 다 덮어쓴 여인!
블러드문의 붉은 기운처럼 너무 황홀해서 아프고 슬픈 밤이었다.
월식이 끝난 뒤 부리나케 컴퓨터에 사진들을 저장했다.
밤을 새워가며 개기월식의 시작부터 끝까지 3시간 23분 동안의 우주 쇼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모았다.
37개의 달이 서로 다른 얼굴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사진들을 모아 1분8초짜리 짧은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 동영상 속에는 무려 1,184개의 달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사실 4년 전인 2014년 10월 8일에도 개기월식이 있었다. 그날도 슈퍼문에 블러드문이 떠올랐다.
물론 한 달에 두 번 뜨는 블루문은 없었다.
그 당시에는 4년 뒤에 다시 개기월식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새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내장 깊숙이 입력하고 저장해 놓은 바로 그날’이 순식간에 찾아와 지난 1월 31일 섣달 보름밤의 개기월식을 보게 된 것이다.
4년 전의 그날은 지리산 여가수 고명숙과 함께하는 ‘달빛 콘서트’ 에 참가했다.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온천랜드 앞에서 콘서트를 막 시작하려는데 붉은 달이 떠올랐다.
찬조출연 시 낭송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다급해졌다.
마음은 자꾸 관객들이 아니라 붉은 달에게 가 있었다.
급하게 삼각대를 세우고 사진을 찍다 말고 무대로 뛰어가 졸시 ‘달빛을 깨물다’를 낭송했다.
그날 밤 처음으로 개기월식을 찍었다.
시간대별로 찍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는 인증 샷 수준이었다.
지구에 가려진 보름달이 붉게 타오르니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했다.
달보다 큰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렸지만 달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붉게 빛나는 것이었다.
지구가 더 크다고 완전히 달을 캄캄하게 다 가릴 수야 있겠는가.
오히려 작은 달이 태양을 가리는 개기일식 때가 더 캄캄하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거리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겠지만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때로 낮고 작은 산이 더 큰 산을 가리기도 하고, 손톱의 티눈이 더 큰 병보다 아플 수도 있고, 아주 작은 슬픔과 절망과 아픔이 그 어떤 것들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붉은 달의 기운이 만만찮았다. 그날도 붉은 달인 블러드문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카메라 속에 RAW(CR2) 파일을 지우지 않고 때를 기다린 적이 있다.
며칠 뒤에 그 붉은 달을 불러내 국근섭씨의 감성무를 다중촬영으로 찍었다.
며칠 전의 달을 불러내 그날 밤의 공연 장면과 만나게 한 것이니, 다중촬영 기법은 참으로 진일보한 디지털카메라 시대의 한 정점이 아닐 수 없다.
일종의 합성사진인 셈이지만 이는 포토샵이 아니라 카메라로 현장에서 바로 찍는 것이다.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사진을 찍은 뒤 필름을 거꾸로 돌렸다가 다시 한 번 더 찍어야 했다.
한 프레임에 두 장의 사진이 합쳐져 찍히는 것이다.
물론 인화하기 전에는 미리 확인해 볼 수 없으니 실패 확률이 그만큼 더 높았다.
오래 달을 보다 보니 첫 앨범 ‘내 가슴에 달이 있다’를 낸 바 있는 광주의 싱어송라이터 인디언 수니가 생각났다.
그렇다.
누구나 저마다의 가슴속에 달이 하나씩 있지 않겠는가.
이렇듯이 이승에서 서로 알아보고 달을 품듯이 만나다 보면 결혼식이라는 통과의례를 하게 된다.
나의 어여쁜 처조카 류빈의 결혼도 마찬가지다.
축시를 해주기로 했다가 얼떨결에 내가 성혼선언문까지 읽는 등 주례 역할을 했다.
류빈은 신랑 최종민 군과 순천대 건축과 동문으로 이미 오랫동안 사귀어 왔다.
우리 집에도 두 번 놀러 온 적이 있다.
요즘 보기 드문 풍경으로 캠퍼스 커플이 결혼까지 한 것이다.
어여쁜 조카를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랴마는, 가난한 이모부가 별로 해줄 것이 없으니 축시로 쓴 ‘한마음 한몸의 연리목으로’를 읽어 주었다.
처조카의 결혼식 덕분에 나의 아내 ‘고알피엠 여사’ 신희지와 새 옷을 입고 신랑신부처럼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산중에 사느라 결혼식을 하지 못해 사실 변변한 결혼 사진 한 장 없었다.
섬진강 첫 매화 작년보다 20일 늦어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삼한사온의 날들은 간 데 없고 수시로 한파경보 혹은 주의보가 내렸다.
그리하여 섬진강 첫 매화도 많이 늦었다.
지난해보다 20일 늦게 소학정 매화가 피었지만 나무 꼭대기에 겨우 세 송이를 피웠으니 사진으로 담기에 너무 어려웠다.
그마저 다시 한파가 밀려와 입을 꼭 다물었으니, 밀린 숙제나 마저 하라는 뜻으로 알고 좀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이맘때는 설중 복수초를 만났는데, 올해는 너무 추워 몇 송이가 피었다 얼더니 다시 피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햇빛을 잠시 품으니 말 그대로 ‘자체발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깊이 마음을 주면 우리는 모두 자체발광의 꽃이 아닌가.
폼 나게 말하자면 나는 꽃들의 저격수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숲속에서 야생의 꽃들과 별들에게 마구 총을 쏘았다.
그러나 나의 총알은 발사되지 않는다.
그 모습 그 빛을 빨아들이며 다만 기록할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여 나의 빈 총에 놀란 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인들 할 말이야 많겠지만 옛말에 ‘입은 재앙이 나오는 문이고,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라 했으니 마구 날리고 쏜 말의 칼날과 총알에 대해 먼저 자숙하고 반성하는 겨울밤이 깊고도 깊다.
조만간 섬진강 첫 매화가 하나 둘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보름 전에 세 송이 정도 피다가 얼고 말았으니 눈밭의 복수초처럼 저 또한 함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돌이켜보니 지난 4년 동안 별이 뜨는 날이면 쉬이 잠들지 못해 밤손님처럼 쏘다녔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우리의 토종나무들, 그 위로 별들이 찾아오는 ‘별나무’ 사진 시리즈가 어느새 제 1막을 내릴 때가 됐다. 오동나무, 산벚꽃, 능수버들, 산목련도 좋지만 홍시를 매단 겨울 감나무에 자꾸 마음이 갔다.
아주 어릴 적에 감나무 위에 타잔의 집 같은 것을 만들어놓고 올라가 라디오를 듣고 책도 읽다가 깜빡 조는 바람에 떨어진 적이 있다.
나뭇가지에 척척 걸리며 떨어지는 바람에 잠시 기절했을 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심어놓은 참깨 밭둑의 그 감나무는 지금도 고향의 구랑리 도로변 어느 식당 옆에 서 있다.
인공위성 사진으로 보아도 희미하게나마 잘 보인다.
그런데 지난해 풍년이었던 감도 매실도 배도 사과도 모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농사가 잘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 오죽하면 보험금이라도 받을까 하는 심정으로 농부들이 차라리 태풍을 기다렸을까.
인건비도 안 나오는 저 자식 같은 목숨들이 한겨울 눈보라를 맞고 있었다.
덕분에 눈을 맞는 겨울 감나무를 사진으로 저장했지만 날은 춥고 마음은 아팠다.
20년 전 지리산에 내려와 처음 살던 집, 구례군 용두리의 먹감나무가 생각났다.
봄이면 밤마다 찾아오는 소쩍새에게 말을 걸던 뒷집할머니의 전라도말이 참으로 살가웠다.
“내 다 알지, 훤하게 알고말고잉. 저눔의 소쩍이가 워디 워디로 밤마실 댕기는지.” 뒷집할머니의 말씀을 이제야 받아 적었다.
막바지 겨울한파가 만만치 않았다.
남도의 한파에 섬진강도 얼어붙었으니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닐 터, 결국 보일러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냉수꼭지는 잘 채비해 놓고 설마 온수는 괜찮겠지 방심한 탓이었다.
뒤안 보일러 근처 온수라인을 헤어드라이기로 녹이려 애를 썼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찬물이라도 나오니 얼마나 다행인가.
까짓것 며칠 동안 찬물로 대충 씻으며 날이 풀려 저절로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겠다는 잔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세수 정도는 할 만한데 설거지는 택도 없는 일이었다.
손가락이 다 얼어터지는 줄 알았다.
결국 찻물 끓이는 전기온수기를 동원하고 가스레인지로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손을 녹이며 한동안 내려놓았던 카메라를 꺼냈다.
작은 양념종지의 단풍잎 무늬 위에 퐁퐁 거품이 몰려 있었다.
설거지를 하다말고 접사 사진으로 담아봤다.
요즘 접사 사진을 넘어 초접사 사진을 홀로 공부하는데 이게 또 만만치 않았다.
초점을 수동으로 맞춰야 하고, 조리개와 감도, 그리고 셔터 속도도 기존 카메라의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매화 다 피기 전에 마지막 한파를 이렇게라도 달래보는 것이었다.
우주 블랙홀 같은 물고기 눈동자 속의 블루문
그러는 동안 평창올림픽이 시작됐다.
모처럼 훈훈한 뉴스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선수들이 북한 주장 진옥의 생일을 맞아 깜짝 파티를 열었다는 것이다.
별의별 가짜 뉴스가 판을 쳐도 이 혹한의 겨울에 봄날 같은 훈풍이 아닐 수 없다.
그 여파인지 마침내 얼었던 온수도 뚫렸다.
다시 영하의 밤은 길겠지만 나도 자축의 의미로 맥주 한 잔 따르다말고 카메라를 들고 다시 초접사 사진 공부를 했다.
그동안 너무 오래 광각 렌즈로만 세상을 보았다.
명산에 도인 없다는 옛말처럼 너무 높은 곳에서, 너무 넓게 바라보면 교만해진다.
진짜 도인은 이름 없는 낮은 산이나 도시 변두리의 반지하방에 있을지도 모른다.
거시의 세계에서 잠시 미시로 돌아와 나를, 내 삶의 결을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평창 평화올림픽은 전쟁의 먹구름을 잠시 밀어내고 공멸 아닌 공존의 봄기운을 불러왔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높고도 많겠지만 그래도 축제는 축제가 아닌가.
때를 맞춰 막 피어난 한 송이 홍매화를 초접사 사진으로 담아봤다.
홍매화의 꽃잎과 수술에 맺힌 물방울들이 저마다 다르면서도 같은 세상을 품고 있었다.
그 물방울 속에 나도, 우리도 다 보이는 것 같았다.
초접사 공부를 하다 내친김에 감성돔의 눈을 찍어봤다.
하동군 노량앞바다의 이철수 선장이 낚시로 겨울 감성돔을 잡아온 것이다.
사실 나는 내륙 촌놈 출신이라 스무 살 넘어서야 회를 처음 먹어본 데다 아직도 회맛을 잘 모른다.
그런데도 이따금 회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육고기는 있으면 먹고 아니면 말고 정도인데 내 몸이 가끔 바닷물고기를 부르는 것이다.
그냥 먹기에는 너무 고맙고, 아깝고, 미안해서 감성돔 눈동자를 초접사로 찍어봤다.
문득 ‘사람만 달을 보는 게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월 31일 개기월식 때 찍어놓은 블루문, 지우지 않고 카메라에 저장해 둔 보름달을 눈동자 속에 넣고 다중노출기법으로 촬영했다.
감도와 조리개, 셔터속도 등을 수동으로 조절해 가며 수십 번을 시도해 겨우 한 장 성공했다. 우주 블랙홀 같은 물고기 눈동자 속에 블루문이 떠올랐다.
사실 자연생물은 태양이나 양력이 아니라 달이나 음력과 더 깊은 관계를 맺는다.
어쩌면 바닷물 속의 감성돔도 가끔은 달을 쳐다보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여자와 바다와 물고기는 달과 아주 가까운 일가친척이 아닐 수 없다.
문득 윤슬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떠올랐다. 윤슬은 ‘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다. 출렁이면서도 유난히 반짝이는 윤슬처럼 이 세상에 빛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문제는 그 배후가 몹시 어둡고, 몹시 아프고, 몹시 슬프고, 몹시 힘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몹시’라는 말이 자주 가슴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