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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무엇인가
1. 들어가는 말
하루하루의 삶을 아름답고 기쁘게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하면서 의미 있게 살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제대로 알았을 때 우리는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큰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 교회로부터 받은 신앙
누가 나에게 신앙을 전해 주었는가? 누가 나에게 신앙을 불어넣어 주었는가? 그 당사자는 누구인가? 한마디로 교회이다 교회가 먼저 신앙을 가지고 나에게 신앙을 전해 주었고 신앙을 키워주고 있고 신앙을 지탱해 주고 있다 내가 있기 전에 먼저 부모님이 있었던 것처럼 내가 신앙을 가지기 이전에 먼저 교회가 신앙을 가지고 나에게 신앙을 전해주었고 키워주고 있고 지탱해 주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누구인가? 교회는 나에게 신앙 생명을 전해준 나의 어머니이다. 교회가 나의 어머니라고 하는 신앙 감각을 지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교회를 어머니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로 생각할 수 있다. 교회를 생각하는 경우에, 그 명동성당이나 상현동 성당 같은 건물로 생각하는 경우에 교회에 대한 나의 반응은 아주 유치할 수 있고 어릴 수 있다.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는 경우에 그 건물이 깨끗하면 그 교회에 오래 머물지만 그 건물이 더러우면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가 버린다. 그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사랑이 넘치고, 교양이 있고, 예의 바르고, 인정미가 있으면 오래 머물지만 그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예의 없고, 서로 험담하고, 인정미가 없으면 곧바로 그 건물을 나와 버린다.
그러나 교회를 건물이 아니라 나의 어머니라 생각할 경우에는 나의 태도, 나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교회인 어머니의 얼굴이 더러우면 내가 나의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그 더러운 어머니의 얼굴을 닦아드리게 된다.
그 어머니가 허약하면 내가 그 어머니의 아들딸로서 그 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그 어머니를 떠받쳐 드린다. 그 어머니가 죄를 지으면 그 어머니인 교회를 손가락 질 하고, 비판하고 뒤에서 쑥덕거리며 소문을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어머니의 아들, 딸로서 그 어머니의 죄를 대신해서 보속할 마음의 자세를 갖는다.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느냐, 어머니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태도가 180도로 달라진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서 생각하는 성숙한 신앙감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는 경우에는 열심 한 연령회 회원과 열심 한 레지오 단원들만 연도에 가는 줄 안다. 열심 한 신자들만 성당청소를 하는 사람인 줄 안다. 그리고 본당 행사가 있으면 그런 사람들만 봉사하는 줄 안다.
그러나 연도와 성당청소는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본당행사가 있으면 그 일은 열심 한 신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눈 이 오는 날 내 집만 눈을 쓸 것이 아니라 성당 마당도 비를 들고 눈을 쓸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태도이고 이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어머니라고 하는 성숙한 신앙 감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교회가 먼저 신앙을 가지고 그로써 나에게 그 신앙을 전해주고, 키워주고, 지탱해 준다. 어디에서나 먼저 주님을 고백하는 것은 교회이며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서 우리는 "나는 믿나이다", 우리는 믿나이다."라고 고백하도록 인도된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과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8항)
구원은 오로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의 생명을 교회를 통하여 받게 되므로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이다."우리는 교회를 새로운 생명의 어머니로 믿는 것이지 교회를 우리 구원의 창시자로 믿는 것은 아니다"
3. 여러분이 교회에 첫 번째로 청한 것은 무엇인가?
세례식 때 주례 사제는 세례 받는 예비 신자들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교회에 무었을 청합니까?" 이때에 세례받 예비신자는 이렇게 대답한다."신앙을 청합니다." 교회에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청하는 것이 아니고 "신앙을 청합니다." 라고 말한다.
영혼을 지닌 인간으로서 가장 좋은 것, 가장 최고의 것, 가장 귀한 것을 청하는 것이다. 이어 주례 사제가 묻는다. "신앙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줍니까?" 이때에 세례 받는 예비신자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돈과 부귀도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오로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은 신앙이다. 신앙만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인간을 참 진리와 참 행복으로 이끌어 준다. 따라서 신앙만큼 좋은 것이 없다.
신앙을 통해 인간은 구원을 받는다. 신앙이 없으면 인간은 구원될 수 없다.
4.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핵심중의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핵심중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200년경 리웅의 주교 이레네오의 말) 라는 말속에서 찾을 수 있다. 왜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이 되기 위해서이다 바로 신화(神化)되기 위해서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서방교회 역사 안에서 이 신화라는 말을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잘 쓰지 않고 이대신 성화(聖化)라는 말을 즐겨 썼다. 우리가 하느님 같이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이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이유이다. 동물적인 차원에서, 단순히 인간의 정을 느끼는 정도에서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존재인 하느님이 되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이다. 결국 인간의 궁극적 의미는 인간이 하느님이(신)이 되도록 부름 받았다는데 있다.
우리는 신앙을 가짐으로써 신화의(神化)의 문으로 들어간다.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굳게 믿음으로써 점점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존재가 된다. 자비와 사랑이 충만한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인간을 하느님과 닮은 거룩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신앙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며 가장 소중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신앙생활을 10년 20년
혹은 30년 40년하고 난 뒤 반성 할 것이 있다면 바로 내가 사랑과 자비가 충만한 흔들리지 않는 거룩한 존재가 되어 있는가? 안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마음의 평화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사랑과 자비가 충만한 거룩한 존재가 되어 있느냐 안되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차원이다. 그럼 신앙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먼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어떻게 다른 가부터 설명해 보자.
5.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아는 것은 이성이며 행위이며 믿는 것은 신앙의 행위이다. 우리 인간이 무엇인가를 안다고 했을 때 그것을 보이는 것을(감각 할 수 있는 것) 아는 것이며 증명될 수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 증명될 수 없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고 이렇게 믿음으로써 더 큰 앎(최고의 지혜, 하느님)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철학 자 이다""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라는 것은 자명(自明)하며 증명 될 수 있기에 믿는 다는 것을 쓴 것이 아니라 안다는 말을 쓴다. 그러나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강생 혹은 육화의 신비), "하느님은 세분이시되 한 분이다"(삼위일체의 신비)."예수님은 부활 하셨다." "인간은 부활할 것이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등은 자명하지 않고 증명될 수 없기에 안다는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는 말을 사용한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으며 자명하게 증명될 수 없기에 아는 것이 아니고 믿는 것이다. 결국 보이고 파악될 수 있는 것은 아는 것이고 보이지 않고 파악될 수 없는 것은 믿는 것이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다르다는 토대로 그러면 신앙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신앙이란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6. 하느님을 믿는 것이 신앙(信仰)이다.
인간 보다 아래에 있는 것을 믿는 것을 신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때 이것을 미신(迷信)이라고 한다. 돌이나 나무를 믿는다는 것을 신앙이라고 하지 않는다. 더 나가서 돈이나 주먹이나 권력을 믿는 것을 신앙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보다 아래인 이러한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신앙이다.
인간을 믿거나 인간과 비슷한 것을 믿는 것을 신앙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 때 이것을 신뢰(信賴)라고 한다. 토정비결을 믿는다든지, 자연의 이치를 믿는다든지, 과학의 이론을 믿는 것을 신앙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 때 이것을 신념(信念)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철학자를 믿는다든지, 공자를 믿는다든지, 부처를 믿는 것을 일컬어 신앙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믿을 때 바로 그것을 신앙이라고 한다.
우리는 인간 보다 아래에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나 인간과 비슷한 것 더 나아가서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을 믿는 것이 아니고 인간보다 위에 계신 어떤 분, 과학의 이론 보다 위에 계시고 자연의 이치보다 위에 계신 분,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신앙이다. 인간보다 위에 계신, 자연의 이치와 과학의 이론보다 위에 계신 어떤 분 즉 하느님을 믿을 때 우리는 구원된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닌 돈을 믿을 때 경제 제일주의를 믿을 때, 토정비결을 믿을 때 우리는 구원될 수 없다. 하느님이 아닌 공산주의를 믿거나 인간의 사상을 믿을 때 구원될 수 없다. 오로지 하느님을 믿을 때 우리는 구원된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하느님을 믿을 때 구원된다는 것이다.
신약의 사도들이 한결 같이 말하는 것은 하느님이신 예수를 믿을 때 구원된다는 것이다.
인류가 이 하느님을 믿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시간들이 흘렀으며 수많은 예언자들과 성인들이 피땀을 흘렸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 안에서 하느님을 믿는 다고 하지만 그것은 말 차원일 뿐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가? 실직을 하였거나 얼굴에 심한 화상이 있을 경우에 여러분의 마음 심정은 어떠한가? 그러나 기도를 하지 않고 주일 미사를 빠졌거나 죄를 지었을 때 여러분의 심정은 어떠한가? 하느님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둘 때에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것이고 이렇게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다.
7.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란 사랑의 무한하신 하느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비어 있는 무한이다." 그렇다 오로지 인간은 사랑이신 하느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무한이다. 인간이 비어 있는 무한이기 때문에 오로지 무한이신 하느님만이 인간을 채울 수 있다. 사물도 돈도 명예도 비어 있는 무한인 인간을 채울 수 없다. 왜 채울 수 없는가? 유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도, 어머니도, 자식도, 비어 있는 무한인 인간을 채울 수 없다. 왜 채울 수 없는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어머니도, 남편도 아내도 빛과 그림자를 지니고 결국 그들도 불안전하고 사라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비어 있는 무한인 인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사랑이신 무한이신 하느님만이 채울 수 있다. 온전히 채울 수 있다. 넘치도록 채울 수 있다. 맹목적인 무한이나 넓은 우주도 인간을 채울 수 없다. 크기만 할 뿐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사랑의 무한이신 하느님만이 인간을 온전히 넘치도록 채울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으로 구성된 존재인가? 인간이란 육체와 마음과 영혼으로 구성된 존재이다. 육체가 지치고 피곤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잠을 자는 것이다. 육체가 지치고 피곤 할 때, 잠을 자고 나면 육체는 새로운 힘과 생기를 얻는다. 따라서 육체가 지치고 피곤할 때는 잠을 잘 일이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가장 좋은 것은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때, 내가 사랑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인간의 마음은 저절로 힘과 생기를 되찾게 된다.
사업에 실패했어도 감옥에 갔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때 인간의 마음은 생기를 되찾고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어도 사랑 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낄 때, 인간은 절망하게 되고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다. 인간의 마음이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사랑을 받게 되면 마음은 저절로 살아나고 힘을 되찾게 된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일이다.
인간의 영혼이 지치고 힘들 때, 인간의 영혼이 무지의 구름 속에 있을 때, 인간의 영혼이 악과 어둠의 심연에서 절망 할 때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다. 초월적 존재이며 가장 거룩한 존재인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다. 빛 중의 빛이요, 사랑 중에 사랑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만날 때, 인간의 물음도, 인간의 방황도 끝이 나고 밝은 빛 속에서 인생을 살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인간은 육체와 마음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체는 빵을 통해서 채워지고, 마음은 사랑을 통해서 채워지고, 영혼은 하느님에 의해서 채워진다.
영혼이란 인간만이 지닌 것이다.
식물들은 육체만 있고 마음이 없다. 따라서 식물들은 웃고 쓰다듬어도 반응이 없다.
동물들은 육체와 마음을 지니고 있다. 강아지를 보라. 내가 웃고 쓰다듬으면 꼬리를 치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내가 꾸짖거나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면 내 마음을 알아보고 고개를 숙이거나 잘못했다는 시늉을 한다. 강아지는 단순히 육체로만 고깃덩어리로만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을 지닌 존재이다. 그러나 강아지는 영혼이 없다. 영혼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닌 것이다.
강아지는 무덤이 없고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가?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천하 만물 중에 영혼을 지닌 존재는 오로지 인간뿐이다.
그렇다면 영혼이란 무엇인가? 영혼이란 인간이 하느님과 만나는 접촉점이다. 나무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동물들은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왜냐하면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영혼을 지닌 인간만이 오로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영혼은 하느님에 의해서 채워진다. 인간이 빵과 사랑에 의해 채워졌다 하더라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은 고독을 느끼고 무의미를 느끼고 권태를 느끼는 존재이다.
사랑의 무한이신 하느님에 의해 채워지지 않는 한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고 방황하는 존재이다. 영혼을 지닌 인간은 하느님을 만날 일이다 하느님을 만날 때 인간의 물음도 끝이 나고, 인간의 방황도 끝이 나고, 인간의 갈망도 끝이 난다. 깊은 고독과 우울속에 있는 영혼은 하느님을 만날 일이다.
인생 안에서 깊은 우울과 슬픔을 느낄 때, 그 우울과 슬픔은 하느님이 나를 부르시는 소리라는 것을 듣기를 바란다. 인생 안에서 깊은 고독을 느낄 때, 그 고독은 하느님이 나를 부르시라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인간은 빵이 채워지고 사랑이 채워졌다 하더라도 하느님에의 채워지지 않으면 깊은 고독과 우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인간은 영혼을 지닌 존재이기에 하느님을 만날 때, 모든 물음과 방황이 끝이 나고,
인간 존재가 새롭게 변형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가 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좋은 물, 좋은 먹을거리도 주어야 하지만, 나의 미소, 나의 친절, 나의 사랑을 주어야 하지만 하느님을 알게 해 주는 것, 하느님을 믿게 해 주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일이다. 인간이 하느님을 믿게 될 때 모든 것이 새롭게 되고 죽음마저도 두렵지 않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강요가 아니라 깊은 믿음과 깊은 사랑 안에서 하느님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해 춘 아오스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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