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옛날 김장 풍경
이번주 들어 갑자기 찬 바람이 불어 앙상한 가지에 남아있던 단풍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비에 우박까지 겹치면서 본격적인 겨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김장김치가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오늘은 사진 몇 장을 통해 사찰의 김장 풍경 변화를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사찰에서는 스님들이 직접 겨우내 먹을 김장을 담그는 것이 전통이지요. 사찰의 김치는 일반 가정의 김치와 달리 이른바 오신채(五辛菜)라는 달래, 마늘, 부추, 파, 흥거와 젓갈을 넣지 않지만 시원한 맛이 일품입니다. 사찰에 따라 맛도 조금씩 다르고요. 사찰의 김장 전통도 세월의 흐름따라 바뀌어 간다고 합니다.
지난 2004년 해인사의 김장 풍경. /조선일보DB
첫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4년 해인사의 김장 풍경입니다. 그런데 사진으로만 봐서는 해인사라는 느낌이 없지요? 대적광전, 장경판전 등 전각도 보이지 않고요. 사연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해인사 김장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배추 수 천 포기를 소금물에 재우고 양념을 하는 장면이 장관일 것 같아서요. 천년 고찰의 전각을 배경으로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승복 입은 스님들이 정성을 다해 김장을 담그는 ‘정갈한 풍경’을 기대했지요. 드디어 그해 12월 1일에 김장을 담근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사진부 선배와 함께 달려갔지요. 그런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해인사 뒤뜰엔 푸른색 포장 비닐을 덮은 거대한 ‘수조(水槽)’가 있더군요. 마치 여름철 일회용으로 만든 풀장처럼 벽을 세운 수조였습니다. 수조 옆에는 역시 푸른 비닐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나중에 들으니 8000포기였다고 합니다) 배추를 스님들이 칼로 다듬고 있었습니다. 수조 안에는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은 스님들이 들어가 있고요. 수조 안에는 소금을 푼 물이 가득했지요. 다듬은 배추를 던지면 소금물에 넣어서 재우는 것이죠. 한마디로 그냥 ‘김치 공장’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8000포기 김장을 하려면 컨베이어벨트처럼 일사불란하게 분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됐던 것이지요.
게다가 넓은 공간을 택하다 보니 사진부 선배가 아무리 앵글을 바꿔보아도 대적광전이나 8만대장경을 모신 장경판전은 한 화면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찰의 김장 풍경’이라기 보다는 ‘김치 공장’ 같은 느낌이었지요. 결국 그날 해인사 김장은 ‘그림이 되지’ 못했습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묘장 스님은 지난 2017년 불교신문에 ‘해인사 김장’이란 칼럼을 실었습니다. 스님은 “김장철이 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며 해인사에 살던 시절 김장 풍경을 적었습니다. 스님은 “해인사 김장 김치는 예부터 짜기로 유명했다”고 했습니다. 많은 인원이 겨우내 먹어야할 기본 반찬이기 때문에 짜게 담갔던 것이죠. 묘장 스님 당시에는 대중 스님들이 “김장김치를 짜지 않고 맛있게 담그자”고 뜻을 모았다고 합니다. 배추를 절일 때 소금물에 담그는 시간도 줄이고 양념에도 소금을 적게 넣었다고 하지요. 김장 직후 먹은 김치는 혀끝에 군침이 돌 정도로 감칠맛이 났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상에 올라온 김장김치는 그 김치가 아니었답니다. ‘전통의 해인사 김장 김치’ 그대로 무지하게 짠 맛이었다지요. 내막은 이랬답니다. 김장을 담가 독에 넣은 날 밤 노스님 한 분이 김치 맛을 보고는 독마다 소금을 한 바가지씩 넣었답니다. 문제는 다른 노스님들도 소금을 한 바가지씩 부었다는 것이죠. 시주를 아껴 사는 것이 몸에 밴 노스님들의 생활 습관이었던 것지요. 덕분(?)에 해인사 스님들은 그해에도 짠 김장 김치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 송광사 김장 풍경. /법보신문-황정일 동국대 대우교수 제공
또다른 풍경은 송광사입니다. 송광사 김장 풍경을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 명상면 ‘마음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인터뷰한 김재성 능인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체험담입니다. 당시 기사에 소개한 것처럼 고교 시절 우등생이었던 김 교수는 1980년 ‘학력고사’를 한 달 앞두고 송광사로 출가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그해 10월말 송광사로 출가한 그에게 스님들은 1주일 동안 아무 일도 안 시키고 심지어 밥도 방에 갖다주었답니다. 완전히 손님 취급한 것이죠. 화장실도 갈 겸 경내를 돌아다니면 ‘방에 들어가라’고 했답니다.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고 뭔가 묘하게 불편한 상태였다네요. 아마도 스님들은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마음도 있었겠지요. 출가하겠다고 왔다가 2~3일만에 마음이 바뀌어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그렇게 1주일이 지나니 비로소 행자복을 주고 일을 시켰답니다. 김장 준비가 시작이었답니다. 당시 송광사는 배추 3000포기를 담갔다고 합니다. 김장에 1주일이 걸렸고요. 밭에 심은 배추를 뽑아서 자르고 닦아서 목욕탕에서 소금물에 절였다고 합니다. 당시 스무명쯤 되던 행자들이 모두 열심히 김장을 담갔다고 하지요. 김 교수는 당시 신심이 나서 열심히 일하다가 허리를 다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얼마 전 법보신문엔 1960년대 송광사 김장 풍경 사진이 실렸습니다. 황정일 동국대 대우교수가 제공한 사진입니다. 사진 왼쪽에선 스님들이 절인 배추를 손수레에 실어와 쇠스랑으로 건져 올리고 있고, 오른쪽에선 배추를 자르고 다듬는 모습입니다. 황 교수는 2002년 경향신문에 실린 영진 스님(현 송광사 회주)의 인터뷰를 인용했는데요, 여기서도 ‘짠 김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진 스님이 처음 절에 왔을 땐 큰스님들이 “소금을 많이 치라”고 했다지요. 그런데 2002년 당시에는 이미 소금을 많이 못 치게 한다고 했답니다. 몸에 좋지도 않고 스님들도 짠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이지요.
2023년 12월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당시 방장 현봉 스님과 70여명의 스님들이 밭에서 김장을 위한 배추뽑기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일함)을 하는 모습. /뉴스1
작년에는 가을에는 송광사 배추 뽑는 장면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방장 현봉 스님 등 송광사 스님 70여명이 밭에서 배추를 뽑아 나르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당시 기사에선 1500포기를 뽑았는데 전년도 2000포기에 비해 500포기가 줄었다고 했습니다. 또 5년 전까지는 개울물을 막아 배추를 씻고 소금에 절였는데, 송광사 주변의 배추 절이는 공장에 일감이 줄어서 배추 절이는 일은 공장에 맡긴다고 했습니다.
사찰의 김장 풍경도 세월에 따라 변하고 있습니다. 이젠 사찰에서도 짠 김치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김장하는 배추의 양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출가자가 줄어들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사찰의 김장 풍경이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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