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범과 어멈
류 구 상
요즈음 실생활에서나 방송극 같은데서 부모가 자식을 부를 때 ‘아범아!’란 호칭(呼稱)을
사용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며느리를 부를 때에는 ‘어멈아!’란 호칭을 사용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 어떤 부모들은 자식을 ‘애비야!’라고 부른다. 반대로 며느리를
‘에미야!’라고 부른다. 물론 이때 부르는 ‘애비’는 ‘아비’의, ‘에미’는 ‘어미’의 ‘l 모음역행동화’
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표준어로는 ‘어미’라 써야 하고 발음을 해야 된다.
부모가 아들과 며느리를 호칭하는 데에는 이 밖에도 아들 이름을 직접 ‘철수야’하고 부르는
경우, ‘철수아범아’, ‘철수애비야’, ‘얘야’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있고, 며느리를 호칭할
때에는 ‘철수에미야’, ‘철수어멈아’, ‘악아’, ‘새악아’, ‘얘야’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아범’은 원래 나이든 하인을 대접해서 부르는 호칭이었고, ‘어멈’은 결혼한 부인이 남의
집에 매여 일을 돌봐주면서 살 때 대접해서 부르는 호칭이었다. 이런 말이 의미가 변하여
아들과 며느리를 이르는 말이 된 것이다. 요즈음은 표준어에서도 인정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쩐지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아비’는 결혼한 아들을 부르는 호칭이다. 결혼 전에야 이름을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게 되면 그 아이의 이름을 앞에 붙여 ‘철수아비야’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어미야’란 말도 결혼 후에 부르는 호칭이다. 물론 아이가 생기면 ‘철수어미야’와 같이 부르게
된다. 이 경우에 발음은 ‘애비야’와 ‘에미야’로 나지만 표준발음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정확하게 ‘아비야’와 ‘어미야’로 발음 해주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결혼해서 갓 시집 온 며느리를 부를 때는 ‘새악아’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옳은
호칭이라 하겠다. 이 경우 ‘새악아’는 흔히 ‘새아가’로 알고 사용할는지 모르겠지만, ‘아가’는
어린아이를 부르는 호칭이다. 여기에서 ‘악아’는 ‘아기야’가 줄어서 된 말이다. 때문에 결혼한
며느리를 부를 때에는 ‘새악아’ 또는 축약되지 않은 원말인 ‘새아기야’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이런 이유로 아이가 생겼을 때에 흔히 부르는 ‘악아’도 ‘아가’라고 쓰면 안 되고, ‘악아’ 또는
‘아기야’로 표기하고 발음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아들과 며느리를 부를 때 어떤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더 흡족한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말의 역사를 알면 더 아름답고 정서적인 말을 사용하게 되어 우리 마음을 한결 정화
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가리켜 일컫는 지칭(指稱)일 경우에는 호칭과는 다르다. 부모가 아들을 가리킬 경우 남에게는
가까이 있으면, ‘얘’ 또는 이름을 말한다. 며느리는 ‘얘’, 갓 결혼했으면 ‘새아기’, ‘새 아이’라
하고, 결혼한 지 오래 되었으면, 아들 이름을 앞에 붙여 ‘철수 어미’라고 가리키지만 이름을
부르지는 않는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쟤’ 또는 ‘저 아이’라고 아들이나 며느리를 가리킨다.
며느리에게 아들을 가리킬 때에는 ‘네 남편’이라 하고, ‘아범’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때
‘아범’이란 뜻에는 앞에서 말한 것을 염두에 둔다면 자연히 사용을 꺼리게 될 것이다. 아들에게
며느리를 가리켜 말할 때는 ‘네 처’, ‘어멈’, ‘철수 어미’라고 지칭하는 것은 좋으나, 이때에도
어멈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네 댁’, ‘새악아’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옛날 같으면 아들이 벼슬을 하면 이름이나 지시어인 ‘얘’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조판서
(吏曹判書) 직에 근무하고 있으면 아무리 아들이라 해도 높여 ‘이조판서!’ 혹은 줄여서
‘이판(吏判)’이라 부르고 가리켰다. 요즈음은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태에
맞는 적당한 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말에서 호칭이나 지칭 문제는 까다로워서 자칫하면 실수하기 쉽고 욕을 먹기가 쉽다.
그러니 늘 신경 써서 그때그때 알맞은 말을 선택해야 될 것이며, 가급적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지천 류구상: 현 한남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