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14편)
*모네타*
청계천파가 회식연을 하는 ‘고향’’돼지갈비집에서
20m쯤 떨어져있는 옆 건물로 들어간 춘규와 청렬이, 호방이
춘규는 미리 준비한 망원경으로 유심히 살핀다
당장 처들어가자는 청렬이의 말을 손으로 저지하고
10여분 동안 살피다가 망원경을 눈에서 떼며
좀 더 기다려보자고 말한다
뭘 또 기달려야 하느냐고 호방이가 물었을 때
춘규는 ‘픽’ 웃으며 설명한다
지금은 환영식이 끝나지 않아 적들이 모두 한 군데
모여 있어 소리없이 접근하여 각개격파가 어렵다
적들은 숫자가 훨씬 많고 우리는 단 3명뿐이니
적들이 환영식을 끝내고 흩어져 술 마실 때를 기달려야
한다고 말하며 사부님이 훈련시 강조한 말을
다시 한번 되뇌인다
적과 싸울 때에는 자만심은 금물이다
늘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해야한다
가능하면 속전속결로 끝내고 무리진 곳에 둘러쌓이면 위험하다
둘러쌓이기 전에 빠져나와야 한다
불가피하게 포위되면 감각에 의존해야한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자신에게 덤벼드는 적들은
기껏해야 3-4명 정도이다
칼 든 상대를 만나면 칼보다는 적의 눈을 보아야한다
눈길의 흐름이 상대의 공격의도를 나타낸다
반드시 꺽어야 할 상대이면 사정을 두지마라
일격에 쓰러뜨러 의지를 꺽어놔야 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말씀이 떠오른다
1시간여쯤 지나서 다시 망원경으로 적들의 동태를 살피니
상석에 앉아있던 우두머리들은 내실로 들어갔는지
안 보이고 여기저기 흩어져 술을 마시는
6-7집단의 무리들이 보인다
입구를 보니 여전히 2명이 야구 방맹이를 들고 서 있고
바로 뒤 10m뒤에는 다시 4명이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시며
보초를 뒷받침하고 있다
춘규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3명은 슬며시 정문을 지키는 2명에게 접근한다
담배를 피우며 딴전을 피우던 보초들은 춘규일행이 가까이
다가와서야 존재를 인식한다
그만큼 3명이 움직이는 속도 및 기민함은 빨랐다
‘어’ 하고 놀라는 놈들을 청렬이는 양손으로 명치를 가격하고
허리를 굽히는 놈들의 등을 사정없이 봉으로 짓갈긴다
두 놈은 죽 뻗으며 ‘끽’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버린다
청렬이가 두 놈을 제압하는 순간에 춘규는 허공을 가볍게 날아
네놈의 뒤로 내려서며 술잔을 들어 막 마실려는 놈의
등을 가격하고 놈은 탁자위에 뻗어버린다
다른 세 놈이 일어나 뒤로 피하며 대열을 갖추기도 전에
달려든 청렬이와 호방이가 제압한다
그러자 적들은 그제서야 침입한 3명을 확인하고 앞을 막아서고
피튀기는 싸움이 벌어진다
적들은 손에 야구방맹이며 흉기가 되는 철봉을 들고 덤볐으며
춘규 청렬이 호방이는 준비한 목봉을 들고
대결한다
어차피 퇴로도 없는 싸움이다
이기지 못하면 자연 깨지는 싸움이다
3명의 눈에는 살기가 흐르고 심장은 싸늘해져간다
목봉으로 덤벼드는 적을 가격하고 가격당하는 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져 일어나지 못한다
춘규와 청렬이 호방이의 얼굴에도 피가 흐른다
상대방을 제압할수록 맞은 횟수도 늘어나고
처음보단 행동이 느려진다
그러나 시작한 일이라 정신을 놓을 수는 없다
아직 상대방 번개를 비롯한 수뇌들은 상대도 못했다
청계천파 무리들 20명 가까이 제압했을 때 번개를 호위한
일행들이 싸움장에 나타난다
춘규와 청렬이가 마지막 1명을 제압하자 번개를 둘러싼
일행 중에 4명이 덤벼든다
호방이는 계획대로 화장실옆 쪽문으로 가서 방어를 하고
춘규와 청렬이는 1:2의 싸움이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졸짜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눈매나 싸움기술이 훨씬 뛰어나다
춘규와 청렬이는 목봉을 내려놓고 주먹으로 맞선다
한 놈이 주먹을 내지르면 다른 한 놈은 다리로 공격해온다
방심한 춘규가 등을 가격당해 휘청거리자 다른 한 놈이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해온다
춘규는 뒤로 누으며 옆으로 몸을 굴린다
간신히 두 놈의 연합 공격권을 피해 나온다
맞은 등쪽으로 충격이 상당하다
한번만 더 가격당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머지 놈들도 아직 많은데 시간만 끌면 불리하다
다시 마음과 몸을 다스려잡고 두 놈과 대적을 한다
두 놈이 완전히 춘규를 포위하여 유리한 자리를 잡기 전
허공으로 몸을 날린 춘규의 두 다리가 놈의 목을 감아 틀자
놈을 허공에 떴다가 땅에 팽개치고
다시 도약한 춘규의 팔이 다른 한 놈 턱을 때리자
놈의 턱이 깨지며 피가 튄다
쓰러진 두 놈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청렬이는 덤벼드는 한 놈의 손을 자기 손으로 막으며
뒷발질로 등 뒤의 놈의 가슴을 찍고
맞은 놈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뒤로 날아
시멘트벽에 부딪치며 쭉 뻗어버린다
그리고 돌려차기로 부랄을 맞은 놈도 뻗어버린다
초반에 우세를 차지한 부하들의 싸움에 기세등등 하던
번개는 상대편이 무서운 상대라는 생각이 든다
4명은 자기 부하들 중에 내노라하는 싸움꾼들이었다
위기를 느낀 번개와 부하들은 손에 칼을 들고 뒷걸음질 친다
춘규와 청렬이가 다가가자
3명이 덤벼들고 번개를 포함한 3명은 옆건물을 넘어 달아난다
덤벼든 3명은 두려운지 칼만 휘두르고 적극적이지 않다
그런데 신고가 되었는지
밖에는 경찰 사이렌소리가 요란하다
그리고 호르락 소리와 밀려오는 발자국소리가 요란하다
춘규와 청렬이 호방이는 부두목 한 놈을 잡아
심문을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옆 담을 넘어
피해버린다
서너집을 넘어 거리로 나서자 근처 파출소에서 현장으로
오는 순찰차들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고
곧 이어 시커먼 경찰차를 탄 특공대들이 완전무장을
한 채로 현장에 접근한다
춘규일행은 입었던 피와 흙이 묻은 옷들은 근처 골목에서
준비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입었던 옷은 둘러멘 배낭 속에 넣는다
택시도 위험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 장충동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보름 동안 바깥출입을 않는다
누구한테도 연락을 하지않고 조용히 지내면서 흔적을 없애고
자신의 그림자조차도 모르게 은둔한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춘규는 규언이에게 연락을 하고
저녁에 장충동 족발집에서 만난다
규언이는 족발집에서 들어서기 전에 여러 번 다른 곳으로
가고 또 가고 여기저기 다니다
시간 맞춰 찾아온다
혹시나 청계천파의 미행이 있지나 않을까 걱정에서다
청계천파가 습격을 당해 치도곤이 되었을 때
물론 고통을 받던 영세업주들은 고소하고 좋았지만
더욱 더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습격당한 일이 자신과 연결되면 무사하지 못했다
혹시 뜬소문이라도 날까봐 전전긍긍 이었다
그 일 이후
영세업자들간에는 모임도 왕래도 전혀 없었다
청계천파 건달들은 골목과 음식점 및 공장들을 찾아다니며
탐문을 하고 심지어 의심스럽다고 판단되면
납치하여 피떡을 만들어버렸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가족들에게는 위로금을 받고 풀어줬다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하는 건지
그런 일을 당해도 누구 하나 신고를 하지 못했다
신고를 한다해도 건달들과 부패한 경찰들이 검은 커넥션으로
연결되어 신고자의 신분은 금방 드러났다
그 다음에는 본인 및 가족들에게는 무자비한 보복이 이어졌다
그러니 모두가 쉬쉬 하면서 숨을 죽였다
규언이형도 여러번 탐문을 당하고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모른다며 시치미를 뗐고
지금은 건달들의 감시대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웠다
완전한 자유로움이 아니라 세세한 접촉에서 벗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 탐문대상 안이었지만 탐문은 받지 않았다
‘그동안 잘 지냈어?
연락을 좀 더 있다가 하지?‘
핼쑥한 표정의 규언이가 말한다
‘형, 얼굴이 많이 안 좋아보이네
그 놈들에게 많이 당했어?‘
성질 급한 청렬이가 족발 한 점을 상추에 싸 입에 털어넣으며
걱정된 표정으로 묻는다
‘걱정 안해도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개네들 활동영역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적어도 한 두 번은 당했을거야
탐문 아니면 끌려가 고문‘
‘형도 여러 번 끌려가 당했겠네’
춘규가 소주잔을 건네며 술을 따르면서 묻는다
‘자식들 겉보기에는 신사처럼 굴더니만 한 번 당해보니
정신을 바짝 차리더구나
자기 숫자와 주먹만 믿고 까불더니
너희들한테 당한 후에는 눈이 씨벌겋게 변해 악귀나찰처럼
무조건 붙잡아 놓고 누명을 씌우는거야
전에는 돈만 뺐아가더니 이제는 고문하고 겁도주고
마지막에는 위로금이라는 명목으로 풀어주는 돈을 받는거야‘
자식들 치사하기는‘
규언이는 자기가 당한 일이 끔찍했는지
술을 입에 털어넣고 물 한 컵을 벌컥 마신다
‘어디 아픈 데는 없어?’
호방이가 묻자
‘아니 괜찮아 내가 이 정도로 무릎 꿇을가봐?’
술이 서너 순배 돌고 안주가 절반 정도 없어졌을 때
춘규는 공장주변과 청계천파 동향을 묻는다
‘그날 너희들에게 맞은 애들 중 15명 정도는 회복 못하고
자기집으로 갔을거야
다친 부위가 많이 심하다고 그래
그러니 번개란 놈은 더욱 발광했고
동대문파에 도움을 요청해 거기에서 날랜 주먹
20여명이 다시 보강됐다고 그래
개네들은 조금 정예라 할까?
그리고 애들을 풀어 놓아 계속 탐문을 하고 있고
또 만일의 습격에 대비해서 서너 명이 항상 같이 몰려
다니고 연장을 휴대하고 있다고 해
개네들이 운영하는 나이트클럽들은 보안이 상당하다고 그래
거기에 갔다온 애들이 그러더라
나이트클럽내에서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그날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고 하더라‘
‘그래 앞으로는 더 은밀하게 행동해야 겠다
형, 힘들지만 조금만 기다려줘
곧 이어 진석이와 영수와 영석이까지 오면 정면승부를 걸거야
지금은 숨어서 번개처럼 행동할 수 밖에 없어‘
춘규가 말한다
‘내가 왜 너네들 사정을 모르겠어
알고 있으니 이렇게 참고있는 거지
너희들도 앞으로는 더욱 더 은밀하게 행동해야 해
꼬투리가 잡히면 너희들 안전도 문제지만 우리 공장식구들도
많이 위험해지니‘
‘그런데 형
개네들 죽치는 곳 알어?‘
‘글세, 요새는 일 외에는 밖에 나가기도 힘들어
괜히 나갔다가는 그 새끼들한테 당하기 십상이니
며칠 전 저녁에 근처 슈퍼에 물건을 사러갔는데 술집근처에
여러 놈들이 이바구를 까고 있더라
처다보지도 못했어
처다보면 또 시비를 걸고 트집을 잡으니‘
‘흠 그러면 호방이가 수고를 해줘야 겠다
전에 우리가 습격할 때는 변장을 했으니 모를거야
너는 좀 어리니까 일 찾으러 온 애처럼 여기저기 공장을
찾아다녀봐
이력서를 들고 옷도 허름하게 입고 다니면
아마 너를 의심하지는 않을거야
그런데 한번 간 곳은 다시 가면 안 된다‘
춘규가 호방이에게 강한 어조로 명심시킨다
‘참 사장님은 어때?’
‘지금은 괜찮지만 퇴원은 안 되고 일년은 재활치료까지
걸려야 한다나봐‘
‘형이 잘 돌봐줘
우리 얘기는 진석이 일행이 오기 전까지는 말하지말고‘
춘규가 말한다
호방이는 허름한 군복 잠바를 입고 골목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장을 찾아다니며 구직을 한다
그러나 소규모 공장이라 인원충원은 힘들고
인원을 충원한다 해도 호방이보다는
숙련된 공원을 원하기에 취직이 힘들고
그 덕분에 호방이는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놈들의 위치와
숫자를 파악하고 놈들은 어린 호방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또 한 달이 지나가고 모두들 기억 속에 그 사건이
묻혀질 즈음 3명은 또다시 일을 벌릴 계획을 짜고 있다
호방이가 물어온 소식을 토대로 공장에서부터 멀리 있는
곳을 치기로 한다
공장근처부터 시작했다가는 공장식구들이 위험해지고
쓸데없는 의심을 받을까봐서이다
우선 을지로쪽이 결정되었다
밤 10시쯤이면 취객들의 정신도 희미해지고 경찰순시도
11시가 넘어야하니 적절한 시간이다
항상 중요한 일은 속전속결이고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한다
그리고 피할 곳은 미리 계획해 두어야한다
어떤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할런지는 모른다
습격할 날짜와 시간, 장소가 정해지자 3명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만히 숙소를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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