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윤현수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바람에 실려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나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새는 베란다 난간에서 집안을 기웃거린다. 방충망을 가운데 두고 나가고 싶은 사람과 들어오고 싶어하는 새와 눈이 마주친다. 안에서는 밖을, 밖에서는 안쪽이 궁금한가 보다.
약간의 미열에 혹시 코로나인가 의심스러워 보건소에 들렀다. 12시에서 13시가 점심시간인 줄 알았는데 그곳은 13~14시가 점심시간이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 간 곳에는 벌써 줄이 길다. 카톡으로 검진 신청을 하라고 한다. 톡을 열고 바코드를 두 번 누른다. 화면이 열리질 않는다. 길어 보이던 줄은 벌써 내 차례다. 폰을 열고 바코드는 보여달라던 직원에게 “어떡하지요 열리지 않아요” 라고 말하자 그 말에는 대꾸 없이 “폰 번호 말씀하세요” 하는 소리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문명과는 거리가 먼 문맹인이 되었다. 미리 알아보고 올걸 후회가 된다
검사를 마치고 나자, 내일 연락이 있을 때까지 집안에서 대기하란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느껴졌다. 내일이라는 말만 듣고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오전 8시 27분 드디어 문자가 떴다. 귀하는 코로나 19 검사 결과 확진 양성반응으로 격리 대상입니다. 실거주지 자택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7일차 밤24시에 종료된단다. 격리 명령 위반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음이 담긴 문자가 왔다.
이틀 동안 일상을 접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하루를 채웠다. 모든 생각은 과거로 돌아갔다. 현재와 미래의 생각은 없이 과거에서만 헤맨다. 지인들에게 쏘아 부치듯 나온 말들이 가시가 되어 나의 마음에 꽂힌다. 지나고 보니 별것도 아닌 일들이 그땐 왜 그리 크게 여겨졌는지, 좋은 말씨로 대하지 못한 것에, 때 늦은 반성을 한다. 세상사를 맞고 틀리다는 틀에 가두었던 자신이 부끄럽다. 상대와 입장을 바꾸면 이해가 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생각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인데,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남은 삶은 다른 사람을 많이 배려하고 존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삼 일 차부터는 모든 것에 의욕이 없고 먹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동반되었다. 그즈음 문자가 왔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위해 심리지원을 시행한다는 안내 문자였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감염병 예방팀에 고마웠다.
사일차 되는 날부터는 우울했다. 평소에 우울이란 단어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증상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구렁 속에서 헤매는 자신을 보았다. 착잡한 생각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즐겁고 기뻤던 일들을 회상하며 마음을 추수렸다.
오일차 되는 날은, 바깥 사물들이 낯설어 보인다. 마치 지구의 굴레를 벗어나 어느 외계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생각과 나가서 걸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만 눕게 된다. 갑갑함과 궁금증으로 자가 진단을 해보았다. 긴장된 마음으로 키트의 반응을 본다. 한 줄이 나왔다. 잠시 나가도 되겠지 하다가, 음성이지만 ‘일주일 격리’라는 주의사항이 떠올라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해제 기간이 이틀이 남아있다. 감염병예방법이 발목을 잡는다. 폰을 집에 두고 나가면 모르겠지 하는 유혹을 뿌리치르라 힘들었다.
연신 폰이 울린다. 먼저 겪은 지인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코로나를 걸리고 나면 백신 효과의 11배 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한 지인은 봄에 걸리고 나서 여름 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고 생활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는 말이 나에게는 가장 감사한 말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격리된 일주일은 나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살고 자유롭게 왕래하고 만나는 일상을 평소에는 행복이라 깨닫지 못했다. 마치 공기와 물의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 것처럼 너무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마음의 키가 한 뼘쯤 커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