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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 오면서 지녀왔던 5월의 하늘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치유되지 않을 가슴저림과 아물지 않는 모진 상처자국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짙어가는 연한 녹음위로 꽃향기 더해 가는 5월의 어느날, 삶이 버거운, 지천명을 넘었어도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듯한 스무살 청년의 맑은 얼굴을 지닌 친구들과의 만남은 서럽던 기억들과 무겁던 외침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서서히 나를 자유롭게한다.
작년 5월 이맘 때, 원주 명성이집 푸른 마당에서 건져 올린 붉은 노을은 불임의 세월에 주저 앉아 있던 나를 운명처럼 다시 설 수 있게하였다. '메마르고 건조한 사막이 아름답다 할 수 있는건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듯, 이 나이의 피곤하고 무거운 일상이 '행복하다' 자위할수 있는건 그 때 함께 웃었던 미소들이 이미 내 마음속에 샘물로 들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 나의 샘물은 조금씩 깊이를 더해가며 심심 계곡의 시리도록 차가운 옹달샘이 되어 나의 습한 갈증과 얼어붙은 상처로 얼룩진 5월 하늘을 적셔 주고 녹여 주었다. 신록이 나날이 번져가는 5월이 계절의 여왕답게 푸르게 다가왔고 침엽수의 따갑던 바늘잎도 연한 아이 살결처럼 보드럽게 만져졌다. 푸쉬킨의 시처럼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으리라'란 싯구를 매일 처럼 되뇌이게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은 찾아왔다. 집 들어가기 전, 싱그런 5월 향기 베어있는 저녁 바람은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호수공원 산책길로 발길을 돌리게한다. 영산홍, 철쭉등 작은 꽃나무의 사열을 받으며 가지런히 뻗어있는 산책로를 따라 호수가에 뉘엇이 몸을 담그는 저녁놀을 바라볼 때면 작년의 그 흥분됐던 기억들이 내 추억의 서랍장을 갈망처럼 두드린다.
갈망의 두드림은 이심전심 저 멀리 강원도 하고도 원주시 무실동 830-28, '김명성, 김경희의 보금자리'에도 전해져 지난 토요일(5.19) 원주 명성이네 집에서 묵직한 우리들 54번째 봄날을 화려하진 않지만 이 나이의 소박한 기쁨과 질박한 추억으로 간직코져 하였다. 남아있는 내 인생의 고단한 여행길을 함께 걸을 친구들 이기에 아내와의 동행에 주저함이 없었다. - 아들놈 수발이 맘에 걸렸지만...
나와 같은 뜻일것 같은 준수도 은색의 멋진 세단에 마나님 동행하고 약속 시간인 15시에 맞춰 집 앞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이미 정오를 넘어선 햇빛은 야마돌면 탄력 좋은 미제 쫄티를 단번에 뚫고 나오는 헐크의 근육처럼 울퉁불퉁 하였으나 서둘러 일을 마추고 왔다는 준수의 건강한 미소와 차 안의 시원한 에어컨 냉기가 따가운 봄 햇살의 우람한 근육을 바짝 꼬리 내리게 했다.
내성적인 아내도 처음 만난 준수 마나님의 푸근한 인사말과 아들놈 위로말에 편하게 마음을 내밀며 오랜 지기를 다시 만난것 처럼 넉넉한 표정으로 아줌마들 본연의 대화에 흠뻑 빠져 들었다. 토요일 오후면 늘 그렇듯 '막히라라' 생각됐던 고속도로는 기분 쫗게도 예상을 빗나가 도로위를 미끄러지는 상쾌감을 더해 주었다.
성능 좋은 카오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7080의 애절한 노랫말을 걸쳐 입은 차창 밖 아카시아 흰 꽃이 이젠 시들어 버린 하얀 목련이 되어 오랫동안 잊었던 애잔한 그리움과 설레임 한 사발 떠올리게 했으나 받아 마시기엔 세월이 너무 흘렀고 돌아가기 벅찰 정도로 너무 많이 지나 왔기에 빠르게 스쳐가는 덧없음을 그져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이라 했던가? 젊은 날 산 꼭대기 바위돌 처럼 주저 앉아 있을줄 알았던 세월은 달팽이 걸음 처럼 표나지 않게 꼼지락 대며 강돌의 모난 각을 둥글게 뭉뚝일 정도로 지나왔다. 그 시절의 만용과 오만의 미련은 이미 오래 전에 접었지만 가슴 저민 슬픈기억 한 조각 만큼은 차마 내려 놓지 못하는 미숙한 중년이 가끔씩 나를 갈등하게 한다.
푸르고 시린 비취빛 하늘을 이고 있는 연녹색 오월 봄빛의 신록에 밝고 순결한 오월의 태양이 정열을 퍼붓고 있었다. 태양을 머금은 연녹잎은 짙은 녹음을 살랑대며 원숙한 여인의 옷고름을 조심스레 잡아 당겼다. 숨죽이던 바람도 팔랑대며 여인의 가늘고 하얀 손가락에 잠겨있는 옥 가락지에 입을 맞춘다. 여린 바람의 입김과 마주친 비로도 치마 자락이 흔들거린다.
인생의 봄 날은 지나 갔어도 채울것 없는 비워진 마음에 지금 처럼 파릇한 봄 날을 주워 담을수 있음이 내 고단한 삶에 그나마 몇 안되는 위안이라 생각 들었고 종점을 향하는 봄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차 바퀴가 구를수록 점점 가까와 지는 설레임이 '살아 있는 동안 봄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라는 작지만 큰 목소리를 전하며 쿨하게 봄을 보내라 하였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찬란한 봄과 인사할 수 있을까? 다시 만나는 봄날들도 오늘 같은 봄날일 수 있을까? 하얀목련의 추억이 사라진 봄날을 걸어갈 수 있을까?..." 생각의 조각들이 가을숲 낙엽처럼 가슴 속을 뒹구르며 깜빡 잠이 들었다...창문에 반사된 늦은 오후의 봄 햇살이 달콤한 토끼잠을 깨웠다. 손목위 시계판은 무표정한 얼굴로 또깍대며 17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서둘러 오느라 점심을 건너 뛰었는지 준수는 휴게소에서 잠시 갈 길을 멈췄다. 먹음직한 우동 한 그릇을 단숨에 비워 버리는 준수의 땀 흘리는 얼굴에서 소박한 삶의 향기가 진하게 피어 올랐다. 기억하기 어려운 요상스런 이름의 커피 잔을 말아쥔 채 준수 마난님과 소근스런 정담으로 서로의 거리를 좁혀가는 아내의 미소는 오래 전 아내를 처음 만나던 날의 그 웃음과 똑 같이 닳아 있었다.
부족한 나와의 건조한 삶 속에서도 나를 반하게 했던 그 미소를 아직도 지니고 있는 아내에게 측은한 연민의 미안함이 잠시 스쳐갔다. '아내와 내가 닳았다'는 준수 마난님의 얘기가 나를 어리둥절케 했으나 '그만큼 내가 아내애게 나쁜 놈은 아니었구나'하는 '내밭에 물주기'식으로 받아 들였고 오히려 우리 보다 더욱 닮아 있는 준수부부의 푸근함이 그리도 돋보일수 없었다.
모임시간인 17시를 많이 지났기에 마음은 분주 했지만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에 아내가 건네준 에스프레소 잔을 받아 들었다. 코코아 향이 베어있는 달콤한 커피우유 맛의 도시스럽고 비싼 에스프레소 보다 내 입엔 아무래도 '시골스럽고 훨씬 저렴한 믹스커피가 잘 어울린다'란 생각이 들었을 때 드디어 남원주IC에 들어섰다.
쭉 뻗은 가로수의 생기 넘친 푸른 잎들, 띄엄띄엄 한적한 도로 위를 여유롭게 달리는 차량들, 수줍은 듯 내려 앉은 야트막한 산 허리, 파는것 이라면 많은 돈을 주고 라도 사고 싶은 겸손한 공기... 이 모든 것들이 일년 만에 다시 만난 나를 그 때보다 더욱 정 넘치게 반기는 것 같았다. 더욱이 명성이가 매일 같이 이 길을 지나쳤을 생각을 하니 더욱 더 애정의 눈길이 머물렀다.
참외 노점상의 '성주참외' 입간판을 본 준수가 "아니, 도대체 성주에서는 얼마나 참외가 많이 나기에 전국 어디나 하나같이 성주참외야..." 하는 소리가 그럴듯하게 다가 왔을 때 "목적지 인근에 도착했습니다"라는 네비게이션의 차가운 기계소리가 '웰컴 투 김명성, 김경희의 보금자리' 란 따뜻한 사람음성으로 전환 되면서 17시 40분경 마침내 설레임의 문 앞에 첫 발을 내려 놓았다.
나의 들뜬 마음과 모임시간에 늦은 결례가 긴 시간 운전해 온 준수에게 "수고했다"란 인사말도 잊은 체, 트렁크 짐을 챙겨 내려야 할 책임감도 망각한 체, 낯 설어 하는 아내의 손을 잡아 줘야 하는 배려도 생략한 체 서둘러 차 밖으로 빠져 나가게 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는 명성이의 반기는 말이 양념치킨을 따라 다니는 카스 맛 처럼 짜릿하게 목줄기를 적셔 주었다.
먼저 와 있던 준식이, 현우, 시운이 부부, 성인이, 태연이, 승철이 뒤 이어 도착한 재훈이 부부와의 주고 받은 정 넘치는 안부 인사로 인생 삼락(三樂)중 하나로 '오래된 친구 만나는 기쁨'을 꼽았던 공자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아직도 진행형 이겠지만 모두들 한결 같이 지난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지난 날들이 있었기에 저리도 맑고 편안한 얼굴을 지닐수 있게되지 않았을까? 생각 들었다.
잠시의 흥분을 누르고 찬찬히 정원을 둘러 보았다. 명성이 오랜 군생활의 호방한 기질이 반영된 집 입구에 단단히 터 잡은 '김명성, 김경희의 보금자리'라 세겨진 문패암(岩)이 보아온 여느 전원주택 입구 보다 눈길을 잡아 끌었다. 작년에 첫 인사를 했을 때는 문패암 주위가 수수한 잔디만으로 심플했는데 연분홍, 흰색의 아기자기한 초화류로 장식되어 보는 즐거움을 더하였다.
입구 한 가운데로 자갈돌과 잡석으로 덮인 20여미터 정도의 넉넉한 주차장 부지를 지나면 직사각형의 반듯한 보도블럭이 현관의 데크계단까지 이어져 있다. 양 옆으로 명성이 가족의 수호신처럼 위엄있게 든든히 버티고 서 있는 장군석과 병졸석(?) 매우 인상적 이었고 한 편으론 부러웠다. 우람한 장군석에 비하여 작고 왜소한 앙증 맞은 정원등은 어둠이 내리면 동화 속 환상의 정원을 연출해 줄 것 같았다.
정원 한 켠에 자리한 중학생 아들 정훈이의 이름을 딴 아담한 '정훈동산'엔 아들을 향한 애비의 무한한 부정(父情)이 묻어 나왔다. 명성이가 아들 정훈이를 위한 동산을 조성 하면서 흘린 땀과 염원이 고스란히 베어 있는 이 동산이 지금은 비록 작은 동산에 불과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정훈이가 힘들고 지칠 때 마다 포근히 감싸 주고 바로 설 수 있게 해 줄 큰 산으로 거기에 있어 주길 바랬다.
집 안의 소소한 가족사를 장농 속에 묻어 두지 않고 프릇한 잔디 위로 끄집어낸- '건강한 심신...'으로 시작 하는 명성이 가족의 가훈석, 명성이의 육사 입교 30주년 기념석, 고은이의 대학교 입학 기념석, 정훈이의 초등학교 전학 기념석 등-정원석들은 가족들을 늘 옆에 두고 마주 하며 잊지 않고저 하는 명성이 만의 삶의 지혜인 것 같았다.
아울러 '김명성, 김경희 결혼 60주년 기념', '정훈이 육사 입교 기념', '고은이 영문학 교수 기념', '김명성, 김경희 득손(得孫) 기념', '정훈이 육사 임관 기념', '김명성 친구들 원주의 5월 축제 20주년 기념' 등...의 글들이 세겨진 정원석들과 예술가 재철이의 작품들도 추가로 들어 앉았으면 하는 기원을 담은 작은 돌멩이 하나를 소나무 아래 묵묵히 서 있는 돌탑 위에 살그머니 얹어 놓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유럽풍의 하얀 목조주택 안으로 들어서니 수수한 갤러리의 분위기가 먼저 시신경을 불러 모은다. 거실 벽면을 거의 다 장식한 다양한 그림들은 문외한의 눈에도 상당히 격조있고 품위 있어 보였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라는 한 쌍의 '누드화가 눈길을 끌었는데 완전히 알몸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젊은 여인이 전혀 외설 스럽지 않고 순수미(純粹美) 그 자체로 느껴졌다.
명성이의 서재는 말 그대로 치열했던 그의 삶의 흔적들로 채워져 있다. 무인(武人) 냄새가 물씬한 서재의 한 가운데 오랜 세월 그의 고뇌와 생각, 판단 그리고 결정들을 기억하는 손 때 묻은 목재 책상이 바위 처럼 당당히 자리 하고 있다. 책상의 앞 면은 세계 40여개국을 다니며 수집한 군(軍)관련의 다양한 유물들-로마검투사, 중세기사, 1차대전시 이탈리아군 철모, 군용다리미, 물병, 현역시절 지휘봉 등..,-로 작은 군사박물관을 방불케한다.
책상의 뒷 면은 명성이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대변하 듯 러시아어와 영어 관련 서적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독학으로 러시아어와 영어를 익혀서 고시보다 어렵다는 해외공관 무관 파견 시험에 선발되고, 육사에서 특등사수로 표창 받고, 미 육군 교환학생 프로그램에서 단연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흔들림 없이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기록된 그의 지나온 흔적들엔 삶의 '숙연함' 같은 것이 깊게 베어 있었다.
창 틈으로 파고 드는 싱그런 5월 저녁 바람에 끌려 정원으로 나왔다. 솜사탕 처럼 보드라운 살랑 바람이 태양을 밀어냈다. 집을 나설 때 보다 한 풀 꺽인 태양은 입김을 오무리며 오늘 만큼은 길게 머물고 싶은 듯 제 자리를 서성대며 성인이가 야무지게 코팅까지 해서 제작해온 '제2회 원주 5월의 축제 겸 정기모임"이라 적힌 알림지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 보는것 같았다.
야외 탁자를 길게 붙여 만들어진 식탁 위에 준비된 여러 종류의 알콜(?)과 입맛을 유혹하는 화려한 요리들 만큼이나 주위에 함께 둘러 앉은 모두의 가슴에선 더 할수 없는 풍요와 행복의 두드림이 서로에게 전달 되어 지는것 같았다. 이리 좋은 자리에서 더 없이 정겨운 30여년 전 친구들과 마주 앉아 술 한잔을 부딪치며 서로를 염려함이 얼마나 흐믓 했던지 마음이 촉촉해 지는 듯 했다.
서서히 익어가는 축제의 열기에 맞춰 성인이가 오늘의 의미를 설명하고 이리도 흐믓하고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명성이에게 우리 동기들의 작은 정성과 감사를 담은 독수리상을 건네 주었다. 친구들 모임과 친목을 위해 아무런 사심없이 언제나 열정적인 명성이의 노고에 비하면 약소 하지만 "자랑스런 大韓男兒, 獻身忠誠의 奬忠人, 豫備役 陸軍 大領 金明星"이란 글귀로 그 약소함을 대신 하였다.
아울러 독수리상을 수줍게 건네 받는 명성이와 가족들에게 힘차게 하늘로 차 오르는 독수리 처럼 항상 힘 넘치는 기운과 용기, 험한 세상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판단력과 예지력이 함께 실려 가길 기원했다. 그에 대한 나의 고마움 표시로 령(領)자를 장(將)자로 바꾸고 싶었지만 그냥 마음 속 으로만 담아 두기로 했다. 어차피 내 마음 속의 명성이는 언제나 육군대장으로 남아 있을 것이기에...
자주 보지 못했던 승철이와 재훈이에게 잔을 건네고 넘겨 받으면서 나는 "정말 정말 반갑고 고맙다, 이젠 자주 자주 보자"라는 말 만을 마법의 성 주문처럼 되풀이 했다. 흔쾌히 "그래, 자주 봐야지..."하는 재훈이의 하얀 치아와 승철이의 조용한 미소를 잊지 않고저 내 기억 메모리 서랍을 활짝 열어 제꼈고 메모리 용량이 다할 때 까지 넘치는 잔을 주고 받았다.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광식이는 멀리 창원에서 우리들 모두가 먹고도 남을 귀한 자연산 장어를 정성스레 포장해서 보내 주었고 두현이는 준수를 통하여 인절미 보다 훨씬 맛있는 두텁떡을 충분히 먹고도 싸갈 양 만큼 보내 주었다. 명성이는 지난 2월 속초모임에서 현우가 싸준 황태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가 오늘에야 맛깔스런 황태찜으로 친구들 앞에 내놓았다.
말로써 글로써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내기엔 내 빈약한 어휘력으로는 역부족 이었다. 살아온 경험상 '말과 글이 부족하다' 느껴질 때는 그저 가슴을 여는 것이 최선 일 듯 하였다. 나는 명성이가 땀 뻘뻘 흘리며 구워준 장어를 집어 들며 광식이의 멋진 목소리를 떠올렸고 소주를 마신 후 두현이의 손길이 닿아 있는 튼튼해진 어금니로 꼬멩이 주먹 만한 두텁떡을 한 입에 베어물며 가슴을 열었다.
배복산 어깨 마루로 태양이 서서히 몸을 뉘였다. 하늘은 봉숭아 꽃물 처럼 붉그레한 저녁 노을로 옷을 갈아 입기 시작했다. 꺼지기 전의 촛불이 가장 강렬히 몸부림 치 듯 이제 하루의 고단했던 일과를 내려 놓으려는 태양은 선홍의 입김으로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시들어 가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태양은 찬란한 황금빛 광선을 발하며 마루턱 뒤 편으로 사라져 갔다.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1년 전의 감동과 환희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황금빛 지는 석양과 노을빛 붉은 하늘 아래서 늙었다고 힘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젊다고 까불 수도 없는, 하지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 지는 같은 나이의 친구들과 마주 앉아 서로의 마른가슴을 도라지 위스키로 적셔줄 수 있음은 잔잔한 감동으로 느껴졌다.
사방은 이미 별 빛도 삼켜 버린 검은 커튼이 드리워 졌다. 철 만난 개구리들도 토요일 밤의 열기를 화끈하게 즐기듯 짝없는 놈은 제 짝을 찾으려고, 짝있는 놈은 사랑타령 하려고 성대가 늘어 지도록 개~골골골 댔으나 성인이의 굵직한 소리울림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정원등 연한 불빛이 은은하게 주위를 감싸 앉으며 분위기를 더욱 들뜨게 했다, 그 분위기에 맞춰 경선이와 호영이가 때 마침 도착했다.
경선이는 졸업 후 처음으로 지난 겨울 성인이 모친상에서 잠깐 스치고 오늘 처음 이었다. 장고시절 처럼 조용한 미소에 말이 없기는 여전한 것 같았다. 야속한 세월은 그의 머리에 두피 보호용 모자를 올려놓고 귓 가에 중년의 돋보기를 걸어 놓았어도 안경안에 비춰진 선한 눈매와 편한 미소 만큼은 세월도 어쩌지 못하고 비켜간 듯 하였다.
빈 병들이 줄을 잇고 빈 접시가 쌓일수록 머릿 속 CPU는 전두엽의 도파민을 전 보다 빠른 속도로 분비 시켰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각 자의 사연들이 연민 이기도 했고 살아갈 날의 이유 이기도 했다. 좋은회사의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뒤늦게 자신의 꿈을 이룬 불굴의 한의사 호영이는 '모든 것이 아내의 헌신 덕 이었다'고 소회를 밝히고 '빈대떡 신사'를 멋들어지게 불러주었다.
태연이 역시 힘들었던 대학시절과 자신의 사업이 거의 주저 앉게 되었을 때도 굳건히 옆에서 지켜 주었던 아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수 있게 되었고 자신이 이루고 지닌 모든 것 들을 아내에게 돌려 주는 것으로 작게 나마 보답하려 한다며 눈가를 적셨다. 희망은 늘 괴로운 언덕길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 처럼 힘 부친 언덕을 묵묵히 함께 넘어준 아내님들께 무한히 감사하고 싶었다.
이제 막 한글을 깨치는 유치원 꼬맹이들은 '사랑도 팔고 사는 속이고 속는 세상'이란 유행가 가사를 '뽀뽀뽀' 가사 보다 먼저 외우고 스물이 안된 고삐리들 조차도 행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라고 답하고 '돈이면 처녀 불알도 살 수 있다'며 모든 게 돈으로 휘둘리는 천박한 탐욕의 정글 이지만 친구들의 순하고 고운 향기 만큼은 수 만금, 수 억금을 주어도 결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순하디 고운 향기들을 지닐 수 있는 나는 누구 보다도 부자가 된 느낌 이었다. 살아 오면서 이뤄 놓은 것 없는 노후를 생각할 때 마다, 가야 할 먼 길을 이정표 없는 거리에서 서성일 때 마다, 인적 끊긴 바닷가 외딴 섬의 고독이 밀물처럼 머리를 어지럽혔었다. 어둠이 짙어가는 봄 밤의 향기를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마시며 그 무겁던 현기증과 울렁임의 외딴 섬을 비로소 벗어 나는 것 같았다.
마음을 흔들었던 설레임은 예외없이 시간을 재촉 하였다. 알딸딸한 정신 이었지만 어깨를 움추리는 싸늘한 공기가 밤이 많이 깊었음을 일깨웠다. 이제 다시 각 자의 자리로 돌아 가야 하지만 '선은 문을 두드리는 것이고 사랑은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라는 타고르의 말처럼 그들의 마음이 이미 활짝 열려 있음을 볼 수 있어 돌아서는 발길에 미련이 없었다.
화석처럼 굳어져 있던 오래 전 사진첩의 얼굴들은 더 이상 무뎌진 세월에 돌아 앉은 멈춰진 강물이 아니다. '사랑과 우정'이란 움직거림으로 되살려내 행복의 바다로 더불어 흘러야 할 강물일 것이다. 내 단어사전의 '우정'은 더 이상 멈춰 있는 명사가 아니라 움직거리는 동사다. 가슴이 하는 말을 귀 기울이고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가슴의 문을 계속 열고 있어야 할 진행형 동사이다.
집으로 향하는 거뭇한 하늘 위로 승철이, 재훈이, 현우, 준식이, 태연이, 준수, 시운이, 성인이, 경선이, 호영이, 광식이, 두현이, 명성이의 환한 얼굴이 별처럼 반짝이며 가는 길을 밝혀 주었다.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흘러야 할 인생길 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이지러뜨리지 않으려,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그들과 함께 먼 길을 동행할 수 있음이, 내 인생의 54번째 봄날, 나를 흥분 시키고 들뜨게 했던 찬란한 그 5월의 축제에서 길어 올린 흐믓한 마음의 소리였던 것이다.
EPILOGUE...
5월의 노래
-괴테-
오오 눈부시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기막힌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넘친다. 한가로운 땅에.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 나는 너를 사랑한다.
- '2011 친구들과 함께한 5월의 축제여!! ----> http://bit.ly/KICMrk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좋은 우정 영원하시길,,
인수 후배님 뜻있고, 거운 시간을 보냈군요 그런데 최병긍 후배님은 안 보입니다 요즘 바쁜가 보죠
좋은 친구가 있어 행복한 모습 보기 좋네요 늘 함께하면서 즐거운시간 많이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