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식당에서의 점심
남은 시간이 사십여 분
포스터 한 장에 눈 이끌려 아트홀로 향했오
헤르만 헤세 특별전이 있다 길래
유아에서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헤세의 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걸개그림 같이 높이 걸고 그 아래론 헤세가 그린 그림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걸려있었오
공간 가운데엔 헤세의 손때 묻어있는 타이프라이트
여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엽서
몇 점의 육필
그리고 많은 초판본의 책들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전시회는 분명 아닌 것 같아 보였고
그를 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라는 것 같았오
많은 편지를 읽을 수 없어 안타깝기도 하였지만
그 편지를 번역하여 찾는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는
전시자의 도량이 더 안타까웠오
헤르만 헤세
난 그를 얼마나 아는가를 물어 보았오 만
사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오 그 이름 한 줄 밖에는
그의 문학세계도
그의 사상이거나 철학이거나 그 삶의 단편들도
오늘 그와 첫 인사를 나누고 조금은 친숙해졌오
화가의 눈을 지닌 시인으로
그가 평화주의자인 것을 알고
그는 우리네 동양사상을 많이 알고있어 사람들은
그를 파란 눈의 동양인이라 부르는 것도
그는 영원한 은둔자요 방랑자였으며
그는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히틀러는 헤세의 많은 것들을 불태운 것도
그는 현실과 이상, 신과 자연과 인간을 깊은 통찰력으로
꿰뚫어 본 문학가란 것까지 알았기에
그의 수채화에서 평온함을 얻고
그의 그림 빼곡한 圖錄 한 권 사들고 나오면서 느꼈오
오늘 점심시간은 참 즐거웠다고 헤세를 만나 즐거웠다고
이제 좀더 그를 알아보고 싶소 천천히 말이요
내 자리로 되돌아와 그의 시 한 편을 읽으며
노년의 그를 연상해보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