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연결로 현재의 실버세대들이 당면하는 노후문제를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결론은 어쩔수없이 감내해야할 문제라는 점이다. 사실 목회자든 공무원이든 은퇴후 연금으로 70%의 수입을 보장받는 세대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소속된 노회만해도 30%가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그중에 원로목사 예우를 보장받은 목회자는 극소수이다. 설사 교회가 그를 원로목사로 대우한다 하여도 과연 약정된 생활비를 지급할 여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보장이 없다.
담임목사라해도 20년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물며 부목사들의 경우는 더이상 말할나위도 없다. 왜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걱정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빈곤한 노년층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한다. 부부가정의 경우 합산하여 57만원. 개인의 경우 32만원 정도가 지급된다. 만일 과거의 세대들처럼 자식이 부모를 공양하는 구조라면 전혀 문제가 없다.
나도 자식이라곤 아들 하나이지만 이 아들이 우리와 동거를 한다면 당연히 생활비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드러면 부모세대는 다른 보장이 없어도 기초연금만으로도 얼마든지 용돈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가 동거하는 경우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 한정하는데, 자녀가 직업이 없는 경우 부모에게 얹혀살게 된다. 모든 자녀들은 자신이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된다고 판단하면 앞다투어 독립을 하게 된다. 그리고 부모에게는 인사치레로 약간의 용돈정도만 보내줄 뿐이다.
어느 가정이든 아파트관리비와 식생활에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려면 최소한도 150만원은 필요하다. 그런데 부모에게 월 150만원을 드리는 자녀가 이나라에 몇이나 되겠나? 그러니 목회자이든 직장은퇴자이든 대다수의 실버세대는 힘닫는대로 경제활동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베이비부머 세대와 밀레니엄 세대의 어쩔수 없는 문화현상을 겪으며 발생하는 갈등일 뿐이다. 이제 자녀들 세대는 절대로 노후문제로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많던 적던 그들은 자신의 능력에 의해 살아갈 뿐이지 결코 지금의 부모세대들처럼 누구를 의지할 필요가 없어진다.
진정으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에서 내 한몸 의탁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지 않는 삶은 모두 주님께 맡겨야할 과제일 것이다. 그런 믿음이야말로 진정으로 주님께 칭찬받은 거지 나사로의 삶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