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둥지 외 1편
사공경현
아침마다
연초록 잎사귀를 물고
좌심실 우심방을 드나들던
둥지를 틀고
장밋빛 미래를 기르던
파랑새 한 마리
포르르 날아간 자리
빈 둥지 하나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실핏줄 휘감던 지저귐 들리지 않고
쿵쿵 빈 벽을 두드리는 소리만
귓전을 울리다 메아리로 사라집니다
끊임없이 물고 나르던
파아란 날갯짓 그리운
적막한 계절은 바뀌어
얼어붙은 둥지 위에
남기고 간 이야기인 양
소복이 눈이 쌓였습니다
저 시린 눈이 눈물 되어
둥지를 녹여 내리기까지 나의 봄은
기다리는 사람처럼 더디 올 테지요
압력
사공경현
세상은 압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순한 양처럼 보이는 공기도 압력 자체이고 사람의 심장도 마음도 압력 덩어리다 압력의 작용에 따라 인생사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자연의 고기압은 화창한 날씨를 제공하고 사람의 저기압은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한다 압력은 고정되지 않고 살아 움직인다
사전적으로 ‘압력’은 “두 물체가 접촉면을 경계로 하여 서로 그 면에 수직으로 누르는 단위 면적당의 힘”으로 정의 된다 따라서 무엇 홀로서는 성립할 수 없는 상대적 개념이다 또 다른 전제는 두 물체 간의 접촉면이 있어야 하며 그 접촉은 수직으로 상관해야 한다
개인은 수많은 압력에 노출되어 있다 국가를 지탱하는 힘인 권력에 접촉면을 잇댄 피지배자는 국가가 수직으로 누르는 힘에 늘 시달려왔다 세금을 내야하고 병역을 감당해야 하고 법규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등 피치 못할 압력 속에 살아가고 있다
직장이라고 별수 없다 조직의 힘을 등에 업은 상사의 누르는 힘은 가히 살인적이라 수직 각도를 피해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느라 늘 피곤하다 이를 견디다 못해 사직서를 내던지면 비로소 그 중압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또 다른 압력에 당면하게 될 것을 뻔히 아는지라 이래저래 진퇴양난이다
내던질 용기를 던져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압력이 발생하지 않는 수평 관계의 평화로운 상태가 된다 밤이 되어 수직 접촉면으로 전환되면 알량한 자존심과 체면을 위해 단위 면적당 힘의 크기를 최대한 키우려고 용을 써보지만, 스트레스 앞에 장사 없다고 수직성은 물론이고 압력 또한 이내 포물선을 그리게 된다
압력을 행사하지 못해 압력에 직면한 상황에서 폭풍아 해일아 휘몰아쳐다오 주문을 걸어보지만, 허공에 빈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다 날카로운 수직의 힘이 난무하는 세상일진대 가정에서만이라도 압력 없는 평안을 기원하며 소주 한잔에 허전한 밤을 자위나 해보는 것이다
사공경현: 약력(저서명, 대학, 문학상 경력)
수필집 {무임하차}(2017), 시집 {마지막 행에는}(2022)
배재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 애지 신인문학상(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