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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책장을 덮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야기
끝나지 않는 오월, 피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한 간절한 노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한강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그려낸다.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열다섯 어린 소년은 '어린 새' 한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은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고, ‘시취를 뿜어내는 것으로 또다른 시위를 하는 것 같은’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정대는 동호와 함께 시위대의 행진 도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져 죽게 되고, 중학교를 마치기 전에 공장에 들어와 자신의 꿈을 미루고 동생을 뒷바라지하던 정대의 누나 정미 역시 그 봄에 행방불명되면서 남매는 비극을 맞는다.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이 한순간에 무너뜨린 순박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무고하게 죽은 어린 생명들에 대한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정대의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로 대변된다.
5·18 당시, 인구 40만의 광주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은 80만발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도 국가의 부조리에 맞서도록 어린 그들까지 시위현장으로 이끌었던 강렬한 힘은 다만 ‘깨끗하고도 무서운 양심’ 하나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느끼며 수십만 시민들이 모여 만든 위대한 ‘양심의 혈관’을 함께 이루었던 것이다. 소설은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이 겪은 5·18 전후의 삶의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단면들을 드러내 보인다. 살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치욕스러운 고통이 되거나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모습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수피아여고 3학년 시절에 5·18을 겪은 ‘김은숙’은 '전두환 타도'를 외치는 데모로 점철된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담당 원고의 검열 문제로 서대문경찰서에 끌려가 ‘일곱대의 뺨’을 맞기도 한다.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고귀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조활동을 하다 쫓겨난 ‘임선주’는 이후 양장점에서 일을 하다가 상무관에 합류하게 되고, 경찰에 연행된 후 하혈이 멈추지 않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상무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대학생 ‘김진수’ 역시 연행된 이후 ‘모나미 볼펜’ 고문, 성기 고문 등을 받으며 끔찍한 수감생활을 했고, 출소 후 트라우마로 고통받다 결국 자살하고 만다.
소설은 이러한 국가의 무자비함을 핍진하게 그려내면서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과거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인간의 잔혹함과 악행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열다섯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힘겹게 펼쳐 보이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 시대를 증언하는 숙명과도 같은 소명을 다한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오히려 치욕이 되는 사람들이 혼자서 힘겹게 견뎌내야 하는 매일을 되새기며, 그들의 아물지 않는 기억들을 함께 나눈다. 한강 작가는 “무덥고 습했던 여름 끝에 가로수 아래를 걷다가, 잘 마른 깨끗한 홑청 같은 바람이 얼굴과 팔에 감기는 감각에 놀라며 동호를 생각”한다. 따뜻했던 봄날의 오월을 지나 ‘그 여름을 건너가지 못한 동호, 이런 아침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동호’를 떠올리며 작가는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되새기고,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이들에게 어떠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를 간절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리하여 이제는 더이상 억울한 영혼들이 없기를, 상처 입은 영혼들이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나아가 평온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5·18 희생자들의 ‘눈 덮인 무덤들’ 사이에서 못다 핀 소년 동호를 추모하기 위해 작가 한강이 마음을 다해 밝힌 작은 촛불들이 안타까운 세상에 온기를 더해줄 것이다.
15분만에 읽는 명저한 권! 한강의 [ 소년이 온다]
https://youtu.be/rYT1EAiy1tg?si=GlJfN_OrgZE8TAJ6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네(제우스)가 누리고 있는 것은
개인적인 것을 위한 사적인 힘이고 폭력이지 정의가 아니다."
누가 진정한 국가인가
광주 시민에게 총을 쓴 군인은 국가가 아니고 광주 시민이야말로 국가다.
신군부는 공적인 힘을 사적인 폭력으로 사용했다. 국가와 권력을 장악한 자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신군부는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공권력을 행사한 세력이다. 광주 시민들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힘으로서의
국가와 신군부를 구별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폭력은 국가가 아니다.
신군부의 광주학살은 권력을 찬탈하려는 자들이
자의적으로 행사한 폭력이다.그러므로 신군부의 국가는 거짓 국가이다. 광주시민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야말로
국가가 추구해야할 가치이다.광주시민(사적인 사람들)의 항쟁(공적활동)은 공동체(국가)의 시작이다. 마지막 저항지인 광주도청은 공동체적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공공의 장소였다.
광주민주화 운동의 과제는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것
https://naver.me/xKE0mzem
https://naver.me/IgJSUtct
극한의 상황에서 그려지는 인간의 본성을 그린 소설, 소년이 온다
*출판사 : 창비
*저자 : 한강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 있었던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작가 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했고, 그녀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 들로 이 책을 완성해낸다.
<소년이 온다>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6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진다. 작가가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자료를 찾아 읽고 정리하고,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글로 쓴 광주 이야기이다. 살인마의 이야기이다. 왜 죽어야 했는지도 모르게 죽은 혼들의 이야기. 중학교 3학년이었던 소년 동호와 정대, 두 영혼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5.18 당시 중학생이었던 동호와 정대, 도청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여고 3학년 은숙과 양장점 미싱사 선주, 시위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 석방된 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대학 1학년 진수, 그리고 동호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한 맺힌 절규다.
독자는 동호의 시선과, 정대의 영혼의 시선을 통해 그날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은숙과 선주, 진수의 이야기를 통해 살인마 정권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학살로 죽어간 사람들의 시체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체포한 사람들에 대한 고문이 어떻게 자행되었는지, 그것이 여성일 경우에 더욱 잔인한 아픔이 읽기를 멈추게 한다. 또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본다.
정대는 동호네 집 문간채에 누나와 함께 세 들어 사는 동호와 동갑내기 친구이다. 동호와 정대는 그날 정대 누나를 찾으러 다녔다. 그러다가 정대가 총에 맞았다. 도청 민원 봉사실, 시체가 널려 있는 곳에서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시신을 정리하는 은숙, 선주 누나를 만났고, 그 누나들을 도와 동호는 시신을 정리하고 가족을 찾는 사람들을 도왔다.
매일 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열다섯 어린 소년은 '어린 새' 한 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은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고, '시취를 뿜어내는 것으로 또다른 시위를 하는 것 같은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 올리며 괴로워한다. 정대는 동호와 함께 시위대 의 행진 도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져 죽게 되고, 중학교를 마치기 전에 공장에 들어와 자신의 꿈을 미루고 동생을 뒷바라지하던 정대 의 누나 정미 역시 그 봄에 행방불명되면서 남매는 비극을 맞는다.
동호는 여러 병원을 다니며 친구 정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정대와 정대 누나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동호는 친구를 찾기 위해 들른 병원에서 일손을 보태게 된다.
너무나도 많은 사상자와 부상자가 몰려오는 바람에 시신 구분을 하는 일조차도 버거운 상황이다.
동호는 길 한복판에서 정대가 군인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았다.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나 차마 도우러 나설 수 없었기에 정대에 대한 미안함과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 놓은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에게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동호가 정대를 찾아 헤맬 동안 정대는 시신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정대는 시신이 되어 다른 시신들과 함께 쌓여 있다.
정대는 혼이 되었다. 자신의 몸이 썩어 가는 것을 보고 있다. 군인들이 시체 더미 위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다. 몸이, 몸을 감싼 옷이, 머리카락이, 살갗이, 근육이, 내장이 타들어 가는 것을 본다. 비로소 육체와 분리된 영혼은 누나에게로 가려다가 어딜지 몰라 동호에게로 간다. 동호가 있는 곳에서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린다. 동호가 죽은 것을 느낀다.
"육체만이 그곳에 있을 뿐 영혼은 자신의 몸을, 그리고 자신이 죽을 때의 상황을 기억하며 이 상황을 똑바로 지켜다 보고 있죠.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리고 정대는 직감적으로 자신의 누나, 그리고 동호마저 죽음을 당했음을 느끼게 된다.
<망자들의 장례를치르지못해 산자들의 삶 역시 장례식이 됐다.>
■ 3장 일곱개의 뺨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 5장 밤의 눈동자
그곳에서 당신은 이름 대신 빨갱이년으로 불렸다. 과거 여공이었고 노조 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년 동안 지방 도시의 양장점에서 숨어지내며 간첩 지령을 받아왔다는 각본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은 날마다 조사실 탁자에 눕혔다. 더러운 빨갱이년. 아무리 소리 질러봐라, 누가 달려오나. 조사실의 조명은 가늘게 떨리는 형광등이었다. 일상적인 그 환한 조명 아래, 당신이 하혈 끝에 의식을 잃을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죽은 자들의 이야기도 비통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현실은 지옥보다 더하다. 고문의 후유증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술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밤으로 이어지고, 사회에서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20대 청년인데도 정상적인 직업을 갖기 어렵다.
감옥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영재는 사람을 죽일 뻔한 일로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진수는 술로 연명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중에서 미싱사 선주의 이야기는 이중의 고통으로 가슴아프다. 하루 15시간 잠들지 않게 하는 '타이밍'을 먹어가며 일을 하고도 남자의 절반밖에 안되는 월급을 받는 17세의 여공. 한달에 이틀을 쉬므로 10대의 몸이지만 건강을 지키기 어렵다. 이렇게 부당한 점을 개선시켜 달라고 청계피복노동운동을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탄압과 블 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이 불가한 상황이다. 게다가 광주에서 정미의 죽음을 사진으로보고 총을 들고 싸 우려했던 선주는 결국 체포되어 고문으로 하혈을 지속해야했다. 간신히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트라우마는 그녀와 평생 함께 간다.
마지막 장 동호 엄마의 이야기와 작가의 에필로그는 눈물로 읽는다. 자식이 죽어도 밥을 먹는 자신을 나무라고, 슬픔과 한을 속으로 삭이는 삶이 끝까지 간다
동호가 떠난 뒤 동호의 가족은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했다.
동호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큰 형과 작은 형은 다툼을 벌이고, 부모님은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싫어했던, 밝은 데 꽃 핀 쪽을 좋아하던 동호를 잊지 못해 한으로 남았다.
"그날 해 질 녘에 느이 아부지 어깨를 짚고 절름절름 옥상에 올라갔다이.
난간에 기대서서 현수막을 길게 내리고 소리 질렀다이.
내 아들을 살려내라아.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아.
정수리까지 피가 뜨거워지게 소리 질렀다이"
<잔혹한 폭력에 맞서는 순수한 양심과 인간의 고귀함>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인간의 잔혹함에 맞서는 또 다른 인간의 고귀한 능력과 뜨거운 공존욕구'를 그리고자 하였다.
그리고, 결국, 작가는 5·18 민주화운동 가운데서 '인간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낸다. '인간은 구원해주는 존재가 없어도 스스로 고귀함을 찾을 수 있는 뜨거운 존재'라는 것을.
<기억에 남는 구절>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눈도 뺨도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를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만들었어.
51P
그때 너는 죽었어.
그게 어디인지 모르면서, 네가 죽은 순간만을 나는 느꼈어.
64P
계엄군이 도청 쪽으로 몰려왔을 때, 동호를 데리고 나오지 못해 괴로워하는 여자. 도청에서 동호와 같이 시신 정리를 하던 은숙의 이야기다. 대학을 그만두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은숙은 경찰의 검열을 피해 다녀야 하는 문제적 인물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경찰에게 뺨을 일곱 대나 맞은 뒤 그날의 일을 기억한다. 도청에서 동호를 데리고 오지 못했던 그날. 그래서 동호가 죽은 그날.
일곱 번째 따귀를 올려붙인 사내가 탁자 맞은편의 접이 의자에 기대앉았을 때에야, 다섯에서 끊겼던 숫자에 둘을 더해 셈을 완성했다. 일곱 대. 사내의 얼굴은 평범했다. <중략> 만일 우연히 거리에서 만났다면 평범한 회사의 주임이나 과장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우둔한 사람이었을 뿐 악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생기지 말았어야 할 법을 따른 것이 잘못이며 악은 평범 가운데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어디에나 있다. 그녀의 뺨을 일곱 번이나 때린 그 사내의 얼굴은 평범했다. 평범한 회사의 주임이나 과정처럼 평범한 얼굴을 한 그 사람도 권력자의 명령에 따랐다. 권력자의 명령이 법이었다.
은숙은 치욕스럽다. 살아서 배고픔을 느끼며 밥을 먹는 것이.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중략> 지난 오 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85P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89P
도청을 나오기 전 너를 봤을 때 이미 부서졌다. 하늘색 체육복 위에 교련 점퍼를 걸친, 아직 어린애 같은 좁은 어깨에 총을 메고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너를 발견하고 그녀는 놀라며 불렀다. 동호야, 왜 집에 안 갔어? 장전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던 청년 앞으로 그녀는 끼어들었다. 이 애는 중학생이에요.
89~90P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95P
인간은 근원적으로 선하면서 악하다. 상황에 따라 선이 나타나기도 하고, 악이 나타나기도 한다. 선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악은 사람을 죽인다.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 평범함 속에서 어떻게 그런 잔인함이 나올 수 있는가. 인간의 목숨이 그렇게 허망할 수 있는가. 신은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을 사후적인 심판으로만 다룰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야만에 의해 신이 부여한 생을 채 살아보지도 못한 채 죽어간 그 영혼들은 신이 거두어 주는 것인가.
그곳의 한 끼 식사는 식판에 담긴 밥 한 줌과 국 반 그릇, 김치가 전부였습니다. 그것을 우리들은 2인 1조로 나눠 먹었습니다. <중략>그가 콩나물을 다 먹어버릴까 봐 긴장하고 있던 나를, 우물거리는 그의 입술을 혐오하며 쏘아보고 있던 나를 묵묵히 마주 바라보던, 나와 똑같은 짐승이었던 그의 차갑고 공허한 두 눈.
107P
물리적 폭력만이 야만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음으로써, 인간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스스로 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방법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야만적일 수 있다. 하나의 식판에 담은 밥 한 줌으로 서로가 서로를 경멸하며 목숨을 연명해야 했던 그 비참함, 그 상처, 트라우마는 영영 치료되지 못하겠지. 조그만 실수 하나도 평생을 기억하며 부끄러움을 갖고 사는 게 인간인데. 그 모욕과 치욕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114P
감옥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영재는 사람을 죽일 뻔한 일로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진수는 술로 연명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양심, 내면에 있던 깨끗한 그 무엇, 두려움을 없애고 죽을 각오를 다지게 하던 그 무엇으로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군인들의 총칼에 맞섰던 그들은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것보다 더 못하게 살다가 죽어갔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중략>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아리들이 너희들이라는걸, 우리가 증명해 주겠다.
119P
도덕적 열등감에 휩싸인 그들은 어떻게든 시위대를 비참하게 만들어 동물적 본능을 스스로 드러내게 만들었다. "너희들이 아무리 그래도 우린 같은 짐승이다."라는 사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헐떡이는 일초와 일초 사이, 손톱과 발톱 속으로 그들이 송곳을 꽂아 넣을 때, 숨, 들이쉬고, 뱉고,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신음, 일초와 일초 사이, 다시 비명, 몸이 사라져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
121P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134P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의 본성은 무엇으로 정리될 수 있는가. 성선? 성악? 우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던 맹자의 말씀은 보편화될 수 있는 것인가.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166~167P
엄연히 존재했던 악의 역사를 부인하고 모독하는 자들은 본디 선하게 태어난 인간들이던가, 우물에 빠진 아이를 구할 수 있는 본성을 가진 인간인가.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 이. <중략>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동호야.<중략> 코스모스가 색색깔로 피어 있는 길, 동그랗게 똬리를 틀고 죽은 지렁이들이 쇠파리가 괴는 길을 싸묵싸묵 걷는다이.
192P
작가가 열 살 때 있었던 일, 어렴풋이 들었던 그 일을 작가는 외면하지 않고 훗날 이토록 처절한 서사로 담아냈다. 내가 그날 거기에 있었던 것 같이 문장마다 가슴에 박힌다. 동호와 대화하다가 정대의 혼과 대화하고, 은숙과 선주와, 진수, 동호의 어머니와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날의 일을 들은 것 같다.
내가 그날의 이야기를 영상을 통해 처음 본 건 동호, 정대처럼 중학생 때였다. 대학생들이 틀어준 비디오를 통해 그 장면을 봤다. 시민들이 군인들이 휘두르는 곤봉으로 머리를 맞고, 총에 맞아 쓰러지던 모습, 태극기로 덮어 둔 시신들을 그때 봤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걸 안 건 대학생이 되고 나서다. 아직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때 스무 살이던 사람들이 지금 60대, 아직도 많은 은숙과, 선주, 진수가 살고 있다. 동호의 어머니가 어린 자식의 사진을 밤마다 꺼내보며 살고 있다.
그날 그 이야기와, 끝까지 사죄하지 않고 지 마음대로 죽어버린 살인마와, 인간의 악과 야만, 그것이 반복되는 역사. 문명이 나아졌다고 야만이 없어지는가. 지금도 먼 나라 어딘가에선 여전히 총알이 사람의 가슴을 뚫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