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섬기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6,1-9
1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2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3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4 그리고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5 종 여러분,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두려워하고 떨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현세의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6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
7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기쁘게 섬기십시오.
8 종이든 자유인이든 저마다 좋은 일을 하면
주님께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9 그리고 주인 여러분,
여러분도 종들을 이와 같이 대해 주십시오.
겁주는 일은 그만두십시오.
그들의 주님이시며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시고
또 그분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운지법’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손가락 사용법을 정확하게 배워야 좋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나중에 어려운 곡을 연주할 때도 틀리지 않고 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급한 성격인 데다가, 배우지 않고 연습했더니 어려운 부분에서는 자꾸만 틀리곤 합니다. 가전제품을 사면 사용법이 들어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용법을 꼼꼼하게 읽어봅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겼어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성격이 급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사용법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사용법을 찾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도 많았습니다. 운동을 배울 때도 기초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스키도 남이 타는 걸 따라서 배웠고, 중급 코스까지는 내려올 수 있지만 어려운 코스는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제대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스쿠버 다이빙’입니다. 이론 교육을 받았고, 시험을 보았습니다. 장비 착용법을 배웠고, 직접 바다에서 실습했습니다. 그렇게 배웠기에 깊은 바다에서도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신앙인이 지켜야 할 삶의 태도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제는 부부의 관계를 알려주었습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순명했던 것처럼 남편에게 순명하라고 했습니다. 2,000년 전에 남자와 여자는 신분이 달랐습니다. 우리의 문화 역시 ‘남존여비, 남녀칠세부동석’과 같은 문화가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런 문화가 당연했음에도 부부는 동등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남자도, 여자도, 어린아이도, 나이 든 사람도, 유다인도, 이방인도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인과 종의 관계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종이든 자유인이든 저마다 좋은 일을 하면 주님께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현세의 직책과 신분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나라,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지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순명한 것처럼 순명하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하는 겁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좁은 문’을 이야기하십니다. 화려하고 멋진 건축물이지만 하느님을 찬미하고, 친교를 나눌 수 없다면 좁은 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진리를 독점하고, 권위를 내세우면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좁은 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어 놓으면 이익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좁은 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양 냄새 나는 목자가 없다면,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한다면, 빈부의 격차로 가난한 이들이 소외된다면 역시 좁은 문은 아닐 것입니다. 현실의 삶이 우선인 사람에게는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너무 좁게 느껴질 것입니다. 성공, 돈, 명예, 출세가 우선인 사람에게는 하느님 나라는 먼 훗날 가도 되고, 안 가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잠시의 쾌락과 경쟁에서의 승리 때문에 기도와 미사는 나중에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 나라는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 일 것입니다. 예전에 맹인가수 이용복씨가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제목은 어린 시절입니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아름다운 시절은 꽃잎처럼 흩어져 다시 올 수 없지만 잊을 수는 없어라.”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추억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에게는 결코 좁은 문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하늘나라는 사법고시 보듯이 공부를 해서 가는 곳은 아닐 것입니다. 손흥민 선수처럼 월등한 체력과 실력이 있어야 가는 곳은 아닐 것입니다. 삼성이나 현대처럼 엄청난 재력이 있어야 가는 곳도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뛰어나고, 능력이 있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 좁게만 보이는 곳이 하늘나라일지 모릅니다. 하늘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사람, 가족을 사랑하고 돌보며,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내는 사람에게 하늘나라는 결코 좁은 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구원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희생과 나눔입니다. 십자가와 사랑입니다. 믿음과 희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사랑으로 천국 문을 여셨습니다. 믿음과 희망으로 천국 문을 여셨습니다. 희생과 나눔으로 천국 문을 여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길은 편하고 좋은 길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길은 비록 좁고 험하지만, 누구나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