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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1월은 문(door)을 의미하는 라틴어 어원 'Janua'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그 이유가 1월이 새해를 여는 문이기 때문이라네요.
2월은 로마인들이 매년 2월이 되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의식을 가졌었는데 '정화, 깨끗함'이라는 뜻의 'februs'에서 유래되었다네요.
3월은 로마인들이 전쟁을 많이 해서 전쟁신 'Mars'에서 유래되었고요.
4월은 꽃이 피는 계절이어서 그런지 '열리다(open)'라는 의미의 'aperire'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어요.
5월은 '위대하다'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maior'에서 유래되었고, 6월은 여성을 보호하는 로마의 여신 'Juno'에서 유래되었습니다.
7월과 8월은 아시겠지만, 7월은 줄리어스 시저의 이름에서 유래되었고, 8월은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9월은 숫자 7을 의미하는 라틴어 'septem'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로마에서는 March가 첫달이었기 때문에 9월은 일곱번째 달이었던 것이었습니다.
10월은 숫자 8을 의미하는 라틴어 'oct'가10월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바로 위에 써져있고요.
11월은 숫자 9를 뜻하는 라틴어 'novem'에서 유래되었고요,
12월은 로마의 달력에서는 열번째 달이기 때문에 숫자 10을 의미하는 'decem'에서 유래되어 december 가 되었다.
주로 영어의 각 달의 이름은 로마와 라틴어에 연관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다음은 달력의 변천과정, 완성과정입니다.
★ 달력의 기원 ★
우리의 달력은 누가 만들었을까?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태양력의 기원은 이집트까지 거슬러 갈수 있지만 태양력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이다. 고대 서양에서는 한 해가 시작하는 날을 춘분 날로 정했다. 때문에 춘분이 들어있는 달을 1월로 정했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동지 날을 기준으로 해동지가 들어있는 달을 한 해의 시작으로 했다.
고대 로마 시대 초기의 로물루스 시대에는 춘분을 일년의 시작으로 하고 일년을 10개월로 했다. 또한 일년의 길이는 3백 4일로 하는 기이한 달력을 사용했다. 그 뒤를 이어 로마 황제가 된 누마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710년 경에 2개월을 추가해 1년을 12개월로 하고, 길이를 355일로 하는 누마(Numa)력으로 개력했다. 그러나 이 달력은 여전히 1태양년의 실제길이와 11일 정도 차이가 나 사용하는데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 뒤 율리우스 시저의 집권 시대인 기원전 46년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인 소시게네스의 조언으로 1년을 365일로 하는 새 달력을 만들었다. 이 달력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한 달의 길이를 31일과 30일을 번갈아 넣었다. 달의 크기는 원칙적으로 홀수인 달을 31일로 하고, 짝수인 달은 30일로 정했다. 그런데 평년을 365일로 하기 위해 2월에서 하루를 떼어 내 29일로 했다. 윤년인 경우는 2월을 30일로 했다. 춘분날은 누마 왕 때와 마찬가지로 3월 23일로 정했다. 태양력의 1년 길이는 365.25일로 매 4년마다 윤년을 두었다. 이것을 율리우스력이라 한다.
율리우스가 개력을 할 때 계절과 달력의 날짜가 이미 3개월이나 차이가 나 있었다. 그래서 율리우스는 23일 짜리 윤달과 67일 짜라 윤달을 끼워넣어 계절을 맞추었다. 때문에 기원전 46년은 실제로 445일이나 되는 긴 해였다. 율리우스는 개력 이후부터 달력을 계절에 맞추기 위해 기존의 1월을 3월로 하고 그 앞에 새로 두 달을 넣었다. 이에 따라 모든 달이 두 달씩 미뤄져 당시에 5월을 의미하는 퀸틸리스(Quintilis)가 7월이 됐다. 율리우스는 생일이 7월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7월달의 본래 명칭인 퀸틸리스를 자신의 생일 달의 의미를 지닌 율리(July)로 개칭했다. 따라서 7월(July)의 영어 명칭은 율리우스의 생일 달이라는 의미인 셈이다.
역사에서 잊혀진 네로의 달 율리우스가 브루투스에게 시해된 후 로마 황제로 등극한 이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이다. 그도 율리우스를 본받아 달력에 이름을 남기려고 했다. 그는 트라키아와 아크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해 8월달의 본래 명칭을 바꾸었다. 그의 생일은 8월이었는데, 아우구스투수가 8월의 명칭을 바꾼 것은 자신의 생일달을 기념하려는 의미도 있었다. 그는 이 달의 본래 명칭인 섹스틸리스(Sextilis, 제6번째 달이라는 의미)를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고 바꾸었다. 더욱이 황제인 자신의 달이 다른 달보다 작으면 황제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면서 2월에서 하루를 떼어와 31일의 큰 달로 변경했다. 그러자 1월에서 7월까지는 홀수인 달이 큰 달이 되고, 7월과 8월이 연속해서 큰 달이 됐다. 그리고 8월부터 12월까지는 짝수 달이 큰 달이 됐다. 이 때문에 2월달이 다른 달에 비해 유난히 작아져 버렸다.
양력은 태양의 운행에 따라 1년의 길이를 정했지만, 달의 길이는 임의대로 정해졌던 것이다. 그 후, 악명이 높던 네로 황제는 이들을 본 따 4월을 자신의 달인 네로네우스(Neroneus)로 고쳤지만, 네로 황제의 사후에 다시 본래의 명칭으로 되돌아왔다.
1년에 11분, 1천년에 10일 차이 1년의 길이는 실제의 1년 길이인 365.2422일에 비해 0.0078일이 길다. 이는 약 11분 14초에 해당한다. 따라서 1백 28년이 지날 때 마다 태양년의 길이가 하루씩 더 길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춘분날이 1백 28년마다 하루씩 앞당겨지게 돼 로마 교황 그레고리 13세 때는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1582년에 춘분날은 3월 11일로 본래의 위치에서 이미 10일이나 크게 앞당겨져 있었고 이는 종교적으로 큰 문제였다.
당시 유럽의 모든 국가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행사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날은 부활절이었다. 부활절은 춘분날 후 첫번째 오는 보름을 지나 첫번째 일요일 날로 정해졌다. 만일 첫번째 오는 보름날과 일요일날이 겹쳐지면 다음 주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킨다. 때문에 달력의 오차로 춘분날이 앞당겨지면 부활절도 앞당겨지게 됐던 것이다.
그레고리 13세는 이를 본래 지키던 부활절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 개력을 단행했다. 새로운 달력에서는 우선 태양년의 길이가 실제와 거의 같도록 윤년의 횟수를 조정했다. 서기 연도가 4로 나누어지는 해를 윤년으로 정하고, 동시에 100으로 나누어지는 해는 평년으로, 다시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했다.
예를 들어 서기 1900년을 평년이고, 서기 2000년은 윤년이 되는 셈이다. 이런 원리로 400년간 윤년을 1백회 두던 규칙을 97회 두는 것으로 고쳤다. 이렇게 하면 1태양년의 길이가 365.2425일이 돼 실제의 길이인 365.2422일과 거의 유사한 값이 된다. 부활절을 맞추려고 10일 빼먹어 다시 춘분날의 위치를 부활절 제정 당시의 날짜인 3월 21일로 되돌려 놓기 위해 1582년10월 4일 (목요일)의 다음날을 1582년 10월 15일 (금요일)로 변경했다. 따라서 1583년부터는 춘분날이 3월 21일로 밀려나게 됐다. 하지만 1582년 10월 5일부터 14일까지의 날짜는 존재하지 않는 날이 됐다. 이 때 날짜는 건너뛰었지만 요일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를 그레고리력이라 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이 이 것이다.
※주 7일제도의 기원
문헌상의 기록으로 볼 때 한 주를 7일로 나눈 것은 성서가 최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쉬었더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주를 구성하는 7일에 대해 ‘∼요일’이라는 말 대신에 ‘첫째 날, 둘째 날, … 일곱째 날’로 불렀고, 십계명을 따라 ‘안식일’인 일곱째 날을 신성하게 여겨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쉬었다. 칠일을 주기로 하여 제칠일에 쉬는 것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지켜져 내려왔다.
요일 이름이 구체적으로 붙은 것은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A.D. 321년 매주의 첫째 날을 휴일로 정하는 법령을 내리면서부터다. 일곱 요일의 명칭은 고대인들이 관찰할 수 있었던 태양과 달을 포함한 일곱 행성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유래한 점성술에서는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었는데 이들 일곱 행성이 돌아가며 매 시간을 지배하며, 매일의 첫째 시를 지배하는 행성이 그 날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점성가들이 생각한 별들의 운행은 오늘날과 순서가 좀 달랐다. 그들의 우주관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같았는데, 토성이 지구에서 가장 멀다고 생각했으며, 그 다음이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의 순서였다. 그러나 거리와 상관없이 일곱 행성 가운데서도 가장 계급이 높은 신은 태양신이었다.
※“한 주의 첫째 날은 ‘태양의 날’이므로 휴업하라”
이러한 내용은 로마에까지 전파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의 달력에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쓰고 있던 일주일을 도입했지만 바벨론의 점성술에 근간을 두고 요일의 이름을 붙였다. 황제는 첫째 날을 ‘태양의 날’로 선포하고 이 날을 예배일이자 공휴일로 정하는 칙령을 내렸다(A.D. 321년 3월 7일). 따라서 둘째 날은 월요일, 셋째 날은 화요일, … 일곱째 날은 토요일로 명명되었다
달력의 기원과 날의 의미
1. 달력의 기원
현재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는 달력은 그레고리우스(Gregorius) 교황(敎皇)이 제정한 것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즉 1582년에 로마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제정한 태양력이 보편적으로 상용(常用)되고 있습니다. 이 달력의 연평균 길이는 365.2425일이며, 태양년과의 차는 불과 3000년에 하루 정도입니다. 종래의 율리우스(Julius) 달력을 고쳐 태양의 위치와 책력(冊曆)을 잘 맞게 하였습니다.
기존의 달력을 거부하고, 이를 제정한 목적은 그리스도교의 부활절(復活節)을 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 춘분(春分, 3월 21일)을 맞추기 위해 공포(公布)한 것이었습니다. 연수가 100의 배수(倍數)일 때에는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 100의 배수가 아닐 때에는 4로 나누어지는 해를 윤년(閏年), 그 외를 평년(平年)으로 하였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볼로냐 출생으로서 본명(本名)은 우고 부온콤파니(Ugo Buoncompagni)였습니다. 그는 볼로냐대학 법률학 교수를 역임하였고, 에스파냐 주재 교황 특사를 역임하였고, 1565년 추기경을 거쳐 1572-85년 기간에 교황으로 근무하면서 반(反)종교개혁운동 및 교회 내부의 개혁운동을 추진했습니다. 그의 많은 업적 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1582년 율리우스력을 그레고리오력으로 개정(改正)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2. 일주일 명칭
기독교를 믿든 안 믿든, 인류는 일주일 단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성도(聖徒)들이 제정한 시간 단위를 채택하여 널리 공용(共用)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단위는 ‘일요일-월요일-화요일-수요일-목요일-금요일-토요일’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의 변천(變遷)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에 유대교인들은 음력(陰曆)을 기준하여서 일주일 단위 개념을 갖고 있었고, 금요일 오후 6시(해질녁)를 시작으로 하여 그 다음날(토) 오후 6시까지를 안식일(安息日)로 정하였습니다. 그날은 24시간 동안 노동을 하지 않아야 하고, 불도 피우지 말아야 하고, 우물에서 물도 퍼 올릴 수 없었고, 이웃집 사이의 왕래도 금지되었고, 환자를 낫게 하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원래 말 그대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쉬는 날인데, 역사가 흐르고 사회 환경이 바뀌면서 안식일 개념도 달라졌습니다. 인간 해방의 날이 차츰 교리화되고(출애굽 사건 기념) 의무화되면서(금지 조항 준수)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는 안식일이 서민들에게는 기분 좋은 날이기보다는 불편하고 고발당할까를 염려하는 두려운 날이었습니다. 바리새파(Pharisees)인들은 지도자 행세를 하면서 금지 사항을 어기는 서민들을 고발하는데 보람을 느끼면서 행복한 하루를 보냈겠지만, 절대 다수의 서민들은 그와 반대였습니다.
혁명가(革命家)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던 기독교 성도들은 로마(Rome)의 박해(迫害)를 받으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금요일 오후, 해가 지는 시간에 제사장(祭司長)이 부는 나팔 소리에 맞추어서 양을 잡고 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 후, 다시 성도들은 모여서 제2부 예배를 드렸습니다. 밤늦게 모여서 뭔가를 노래도 하고 중얼거리면서 집단행동을 하는 유대인들을 로마 관원(官員)들이 지켜보면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모인 저항 운동 집단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리고 박해를 가하였습니다. 불륜(不倫) 집단이나 자식(子息)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을 내면서 성도들을 불건전한 집단으로 몰아부쳤습니다.
유대교 예배와 로마의 박해라는 이중(二重) 고통 속에서 지내던 기독교인들은 마침내 주후 65-70년 사이에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성을 파괴시키고, 유대인들이 타향(他鄕)으로 쫓겨나는 디아스포라(Diaspora) 신세가 되면서, 기독교 성도들은 용기를 내어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더 이상 유대교의 울타리에 갇힐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 성도들은 로마의 달력을 이용하였습니다. 즉 로마인들이 태양신을 섬기는 일요일(日曜日) 아침에 모여서 예수그리스도를 섬기는 예배를 갖게 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태양신을 주(主)로 섬기면서 일요일을 태양신 숭배의 날(주의 날, Lord's day)로 갖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겉으로는 로마인들처럼 주일을 섬기기 위하여 모였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예수그리스도를 섬겼습니다. 주일(主日)이라는 단어는 동일(同一)하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써 태양신이 예수그리스도로 전환된 것이었습니다. 자연히 유대교에서의 안식일이 사라지고 맨 앞에 주일로써 일요일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이 가졌던 일주일 단위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일요일(日曜日)은 Sunday로써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입니다. 시간의 주기적인 흐름인 일주일의 시작을 태양신 숭배로부터 출발하여 복된 날들을 맞이하자는 의미였습니다.
월요일(月曜日)은 Monday로써 달신을 숭배하는 날입니다. 우주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가 태양에 이어서 달이 두 번째가 되므로 자연스럽게 달신을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나 만물에게 있어서 빛은 아주 중요합니다. 빛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특히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 태양과 달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빛이 늘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양과 달을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화요일(火曜日)은 부신(父神)인 Tiw 또는 Tiwaz를 숭배하는 날입니다. 이 신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군신(軍神)으로서 게르만(German) 민족에게는 최고신이었으나 역사시대에 들어와 또 다른 최고신 오딘(Odin)에게 지위를 빼앗기고 전쟁과 계약과 법을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 그리고 이 티바즈 신은 신들의 나라 아스가르드를 위협하는 괴물인 이리 펜리르를 바위에 묶기 위해 우선 펜리르를 안심시키려고 오른팔을 펜리르 입에 넣었다가 눈치챈 펜리르에게 팔을 먹혀 외팔을 가진 신이 되었습니다. 그 후 세계 종말 때 지옥문을 지키는 괴견(怪犬) 가름과 싸우다 함께 죽었습니다. 이 신을 기리는 날이 바로 화요일입니다.
수요일(水曜日)은 오딘(Odin) 신을 섬기는 날입니다. 즉 수요일을 나타내는 영어 Wednesday는 ‘오딘의 날’이라는 뜻이다. 오딘은 거인 이미르의 몸으로 전 세계를 만들고, 또 형제인 빌리, 베와 함께 2개의 떠내려가는 나무로 최초의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오딘은 천상(天上)의 발할라궁전에 살고, 외눈박이이며, 긴 수염이 난 노인이었습니다. 오딘은 북유럽에서 바이킹(Viking)시대의 시인들이 왕과 제후들을 찬미하면서 지배층의 신으로 신격을 부여하여 주신이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오딘은 인도나 유럽 등 여러 민족의 신화 속에 나오는 주권, 제사, 마술 따위를 주관하는 제1기능을 담당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사자(死者)의 신, 땅 속의 풍요의 신인 바니르(Vanir)를 주관하는 신, 교활하고 약삭빠른 신 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목요일(木曜日)은 토르(Thorr) 신을 섬기는 날입니다. 토르는 오딘의 아들이었고, 아내는 시브입니다. 그는 술즈헤임(또는 아스가르드)에 살며, 던지면 반드시 적을 죽이는 묘르닐이라는 망치를 갖고 있었고, 힘을 배로 전해주는 역대(力帶)를 갖고 있었고, 그 망치자루를 잡기 위한 철장갑을 무기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괴력(怪力)의 소유자로서 에다신화에서는 거인 스림의 거처에서 망치를 되찾는 이야기, 거인 히밀과의 큰 뱀 낚기, 거인 게일로즈 퇴치, 거인 우트갈자로키 나라로의 원정(遠征) 이야기 등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세계 종말(終末)에는 미드가드의 큰 뱀을 죽이지만, 그 독으로 인해 자신도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뇌신(雷神), 농민의 신인 토르가 목축과 농사를 주로 하던 게르만(German) 전 지역에서 널리 숭배된 사실은 지명이나 사람이름 등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금요일(金曜日)은 Frigga(Fri(ja), Freya) 여신을 섬기는 날입니다. 그녀는 여신들 중에서 최고의 여신으로서 친절하고 온화하고 고상한 신입니다.
토요일(土曜日)은 Saturn 신을 섬기는 날입니다. 이 신은 농업을 주관하는 신이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Cronus(Kronos)에 해당합니다. 크로노스는 아들 제우스에 의하여 왕위를 찬탈(簒奪)당하였습니다. 즉 토요일은 이 최고신을 섬기는 날입니다.
이상과 같이 우리가 일주일 단위로 갖고 있는 명칭은 로마의 신화로부터 또는 게르만족들이 살던 북유럽의 신화로부터 유입(流入)되었습니다. 21세기의 시간 좌표(座標)에서 살면서도, 인류는 여전히 수천년 전의 신화적 사고(思考)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동안 참된 신(True God), 참된 스승인 메시아를 찾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참된 하나님과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참부모님의 공로로 인하여 혼란스럽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는 신들의 세계에 빠져서 더 이상 헤맬 필요는 없게 되었습니다.
3. 달력의 기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로마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ius Caesar, 기원전100~서기44)의 명령으로 만들어 졌던 율리우스력(Julian Calender)이라고 부리우는 달력을 1,000년 이상 사용해 왔다.
그 달력은 1년의 평균길이를 365. 1/4일을 기준으로 만들어 졌다.
그러나 1/4일은 하루로 칠 수 없었기 때문에 4년 중 3년은 1년의 길이를 365일로 하고 네 번째 해는 윤년으로 366일로 정하여 이것을 되풀이하여 사용했다.
카이사르가 달력을 만들게 하였을 때 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1년의 길이가 미소하나마 잘못 계산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계산에 의하면 1일의 정확한 길이는 자신들이 정한 길이보다 11분이 더 긴 길이였던 것이다.
11분이라는 시간은 1년의 세월에 비교하면 별 것이 아니지만, 몇 백년이 흐른 후에는 몇 일의 오차가 생기게 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서기 325년에 이르러서는 4일의 오차가 나게 되었다.
이 오차는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의 날짜로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율리우수력에 의하면 3월 25일이 춘분이어야 하는데도 4일이 앞서는 3월 21일에 춘분을 맞게 되었다.
해가 거듭됨에 따라 날짜는 점점 실제의 춘분보다 뒤져서 16세기 중엽에는 서기 325년에 정한 날짜보다 10일의 오차가 생기게 되었다.
이를 정정하기 위해서 로마 법왕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an 13, 1502~1585)는 그레고리우스력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달력을 1582년에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리우스력은 4년마다 윤년을 두는 것은 전과 다름이 없으나 400년에 3일씩 달력의 날짜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고친 달력은 1만년에 3일밖에 틀리지 않게 됨으로써 실용상 큰 지장을 주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달력의 기준이 되었다.
달력의 종류
누마력
기원전 7세기 로마의 황제 누마 폼페이우스는 1년의 길이를 304일(10개월)로 하는 로물루스력을 폐기하여 생긴 달력이 누마력이다.
누마력은 1년이 355일로 한달 31일의 달을 4번, 29일의 달을 7번,그리고 남은 28일을 마지막 달로 하여 지금의 2월이 28일까지 되는 원조이기도 하다.
그런데 누마력은 태양년의 길이와 11일이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이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율리우스 시저 황제는 기원전 46년에 1년을 365일로 하는 새로운 달력을 정했다.
율리우스력
로마황제 율리우스시저(Julius Caesar)가 이집트원정에서 역법을 도입, BC46년에 태양력의 시초인 율리우스력을 만들었다.
평년을 36일, 4년에 1회씩 윤년으로 366일로 하였다.
또한 1,3,5,7, 9,11월은 31일로 나머지 짝수달은 30일로 하되 2월은 평년 29일, 윤년 30일로 하였다.
한편 율리우스 시저의 생일달인 7월달의 명칭을 당초 퀸틸리스(Quintilis : 5를 뜻함)에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율리(July)로 개칭하였다.
그 후 율리우스 시저를 이어 황제가 된 아우그스시저(Augustus Caesar)는 8월달에 자신의 생일과 대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8월달의 명칭을 당초 섹스틸리스(Sextilis : 6을 뜻함)에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고 바꾸었다.
그러나 같은 황제였던 율리우스의 달인 7월이 31일인 것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2월에서 1일을 떼어와 8월을 31일로 하고 7, 8, 9월이 연속해서 31일이 되므로 8월에서 12월까지는 짝수 달을 31일로 하였다.
이와같이 역사적 변천과정과 로마황제들의 오만으로 달 명칭과 30일, 31일의 교차, 2월달의 길이 등 비과학적인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율리우스력은 1년을 365.25일로 하여 실제 태양력인 365.24219일과는 128년에 1일의 차이가 난다.
그레고리력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는 세계공통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기원은 로마력이지만,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불합리한 점이 남아 있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력을 사용하자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제창되었으나, 주로 종교를 배경으로 하는 뿌리깊은 전통과, 현재 거의 모든 나라에 보급된 점으로 보아, 이 역법을 근본적으로 고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초기시대에는 율리우스력(曆)을 쓰고 있었는데, 율리우스력에서는 오랫동안 누적된 역법상의 오차로 원래는 3월 21일이어야 할 춘분이 달력에서는 3월 11일로 옮겨져 있었다.
그런데 춘분은 기독교에서 부활절을 정할 때 기준이 되는 날이었으므로, 이 10일간의 오차는 매우 골치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교황은 각 교회와 의논한 끝에 1582년 10월 5일부터 14일까지를 건너뛰고, 즉 10월 4일 다음날을 10월 15일로 한다는 새 역법을 공포하였다.
이것이 현재까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이다.
그레고리력에서는 윤년은 원칙적으로 4년에 한 번을 두되, 연수가 100의 배수인 때에는 평년으로, 다시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하고 있다.
이 개력(改曆)에 의해서 1년은 약 365.2425일이 되고, 태양년(회귀년)과의 차는 불과 3000년에 하루 정도가 된다.
그러나 이 역법은, ① 1개월의 길이에 불합리한 차이가 있으며, ② 주(週)와 역일(曆日)을 맺는 법칙이 없고, ③ 연초의 위치가 무의미하며, ④ 윤년을 두는 방법이 번잡하다는 등의 결점이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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