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리스(2)-브레임(10)
글쓴이 그라테우스
그를 오두막 앞에 내려놨다. 이미 수련을 마치고 쉬고 있던 브레임은 그의 시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입니다.”
“네가 첫 사냥 때 만났고 반년간 널 괴롭힌 다이어 울프?”
그 말엔 답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을 하던지 말던지 그리 중요치 않다고 생각 했는지 브레임은 상관치 않고 재차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
“먹을 겁니다.”
“그를 네게서 지우겠다고?”
역시 답하지 않았다. 그를. 거대한 늑대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내 적. 반년간이나 지겨울 정도로 나를 괴롭힌 적.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는 왜 나를 죽이지 않았을까?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나에게 죽었을까? 그도 알았을까? 내가 그를 죽여야 하고, 그는 나를 죽이거나 내게 죽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반년간이나 보이지 않다가 내게 나타났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날 죽이지 않았을까? 나를 괴롭힌 반년동안 나를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왜 나를 죽이지 않았지?”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죽은 시체에 대고 이게 뭐하는 건가. 숏소드를 들었다. 이미 많이 찢어진 그의 가죽에 검을 대어 분리해냈다. 시간이 지나 그의 가죽은 모두 벗겨졌고, 난 그의 살코기를 브레임이 가져온 그릇에 담고 있었다. 그의 거대한 신체는 사라져갔으며 결국 뼈와 내장. 내손에 쥐어진 죽어버린 심장만이 남았다. 난 그 주먹만한 붉은 것을 바라보며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 작은 것이 생명의 원동력이라고…….
“네 적대자이자 첫 번째 재물인 그의 심장을 취해라. 그를. 반년이라는 시간을 네게서 차지하고 있는 그를 지워버려. 네 심장의 각인을 지워라.”
그 말에 난 심장을 씹었다. 찢고, 으깨고, 삼켰다. 그리고 그의 심장이 사라진 순간 나의 심장을 누르고 있던 어떤 힘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난 이것이 브레임이 말한 집단의 의식이며, 내가 이것에 큰 거부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이미 이 집단에 속한 자들만이 쓸 수 있다는 능력을 직접 경험한 상태여서 그랬는지도. 하지만 내가 거부하던 것을 앞으로 계속 행해야 하는 상태가 된 것이 달갑지는 않았다.
“제기랄.”
“심장을 먹은 것을, 적대자를 죽인 것을, 내 제안을 수락한 것을, 검을 받아들인 것을, 끝으로 미친놈이 된 것을 축하한다.”
브레임은 웃는 것 같으면서도 떨떠름한, 기묘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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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몸은 훈제되어 따로 보관되었다. 심장을 먹는 것만으로도 그 의식은 충분했지만 브레임은 그 살도 다 먹을 것을 권했고, 난 거부하지 못했다. 젠장. 사실 브레임이 이 전통에 대해 말해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늑대에게서 복수를 받기 시작한지 한달이 되던 때, 그는 내게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 설명하곤 그 출신 집단의 의식 방법에 대해서 말했다. 더불어 내가 예전에 들었던 그림자가 일렁이는 검이 그 집단에서 쓰여지는 것이며, 그 집단의 구성원은 자신 혼자 밖에 남지 않았다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이름도 잃어버린 이 집단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의를 했고 난 거부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제의를 승낙해 버렸다. 대략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최면처럼 행한 것이긴 했지만 분명 행한 것은 행한 것이다. 그리고 처음 그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난 어느 정도 승낙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고서야 그를 죽일 때, ‘집중’을 쓸 수 있었을 리가 없으니까.
그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살아가며 생기는 자신을 방해할 존재들을 자신과 적대적이라는 의미로 ‘적대자’라고 한다. 그 적대자의 기준은 자신이 느끼고 심장에 각인하는 것이며, 그렇게 상대를 적대자라 느낀 순간 상대도 자신이 눈에 보이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고 했다.
자신과 적대자는 서로를 견제하게 되고 결국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된다. 보통 먼저 싸움을 거는 것은 자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적대자를 죽인다면 심장을 먹어 자신에게 각인된 적대자를 지워버린다고 한다.
그리하는 이유는 그 각인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져서 나중에는 심장이 터질 정도가 되어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라 했다. 심장이 터지는 시기 역시 자신이 적대자를 각인하는 순간 알 수 있게 된다.
그 이상한. 죽일 수밖에 없는 관계를 만들게 되는 대가로 그들은 일정시간동안 마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집중’을 할 수 있게 되고, 그 이상한 그림자가 씐 검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이미 예전에 예상하긴 했지만 그림자검의 기능은 검을 든 자를 주변에서 인지하지 못하도록 해주는 것과 그 상태로 적을 공격할 경우 상대의 몸을 그림자가 제압한다고 했다. 거기에 사용자의 그림자에 대한 지배력이 높을수록 자신을 숨기는 능력이 높아지고, 그림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림자를 사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매력적이긴 했지만 동시에 바보 같은 일이라 생각한 난 마법 같은 그런 일이 혈연도 아니고 맹세나 의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대신 브레임이 미쳤다는데(그것도 곱게) 손을 들었고, 무시했다. 결국은 이렇게 되고야 말았지만 말이다.
“거기 미친놈.”
“알았으니까 그만 하시죠.”
브레임의 말에 으르렁거리며 답해주었고 그는 미소로 답했다.
“미친놈끼리인데 뭐 어떤가.”
그냥 대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쨌건 두 번째 적대자를 죽인 것 축하한다. 그리고 첫 번째 적대자에 대한 너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주마.”
그의 말에 툭 던지듯 내뱉었다.
“삼년에서 사년 정도.”
“그냥 그림자로 죽여 버리고 심장을 먹어버리는 건 어떤가.”
“그전에 내가 그림자로 빨려들 겁니다만.”
“그럼 대놓고 죽여야겠군.”
그럼 당신이 내 대신 그림자로 그를 죽여 버리라고 말할 뻔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브레임 역시 그림자를 다루지 못하고 있었고, 설령 다룰 수 있어서 대상을 죽인다면 반드시 그의 심장을 꺼내 먹어야 한다. 그림자로 죽인 대상은 심장에 각인이 되어버리기에 그 즉시 심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그림자를 써서 살해한 사용자의 심장이 터져버리니까.
그렇다면 브레임은 내 적대자의 심장을 먹는 것이 되고 나의 적대자는 적대자를 죽이고 심장을 취한 브레임에게 이전된다. 그리고 난 브레임이라는 그림자 씐 검을 든 ‘적대자’를 죽일 자신이 없다. 백이면 백 내 심장이 그에 의해 씹힐 것은 뻔한 일이다.
“그것도 힘들겠습니다만?”
“그럼 남은 기간동안 힘을 기르거나 그림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야겠는데?”
“힘을 기르는 것이 좋겠군요.”
내가 몸서리치며 말하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도 그럴 거다.”
브레임 역시 나만큼이나 그림자에 거부감이 많았다. 사실 그림자를 사용할 경우 사용자의 지배력이 떨어질 경우 그림자는 사용자를 자신들에게 강제로 편입시켜버린다고 했다. 한마디로 흡수해 버린다. 실제로 흡수된 자들도 있었고, 나 역시 예전에 그런 경험을 해봤기에 다시 시도하고픈 마음은 절대 없었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경험은. 몸이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경험은 한번으로 족하다.
“강해지려면 단련도 좋지만 경험은 더 좋지. 동료라는 것은 더더욱.”
“나가는 겁니까?”
눈을 크게 뜨며 급히 물었다. 브레임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조금 나아졌다곤 하지만 한참 멀었다.”
그리곤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다이어 울프는 원래 집단생활을 하지. 자기들끼리.”
‘자기들’이라는 그 말에 경악했다. ‘자기들’이라고?! 자기들?!
“그럼 늑대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군집생활을 한다고요?!”
“그렇지.”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난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나 잡는데도 그만한 출혈을 감수해야하는 괴물이 무리를 이룬다니. 말도 안돼!
“물론 다섯에서 아홉 마리 사이이긴 하지만 말이야. 이상하게도 두 자리 수를 넘어가는 무리는 없더군. 다행한 일이지.”
“…….”
다행은 개뿔이. 그런 괴물 다섯 마리면 자경단만 있는 작은 마을은 그냥 초토화 될 텐데 퍽이나 다행이다. 속으로 ‘그 숫자도 충분히 재앙이야’라고 중얼거리는 내게 그가 말했다.
“이제 다이어 울프도 잡았으니 늑대는 무섭지 않겠지?”
그의 입가에 그려지는 곡선을 보며 불길함을 느꼈다. 또 무슨 짓을 시키려고…….
“짐승은 됐으니 이젠 몬스터들도 잡아야겠지. 안 그런가?”
순간 수십 마리의 벌레가 날 기어오르는 불쾌한 감각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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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힘내세요.; 이제는 몬스터 사냥에 나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