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출마한 김기현 후보가 나경원 전 의원을 세 번 만났다. 이 만남에서 나경원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겠다고 했지만, 김기현에 대한 흔쾌한 지지 선언은 끝내 하지 않았다. 나경원의 표정이 매우 굳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아직도 자신의 공격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는 사이 김기현과 안철수의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지고 있다. 서로 물고 뜯으며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해 가는 광경들이 곳곳에서 목격되어 본선이 다가올수록 더욱더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광경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유방의 삼불여(三不如)라는 고사(古事)다. 삼불여(三不如)라는 말은 리더가 측근 세 사람보다 못하다는 뜻으로서 초한쟁패(楚漢爭霸)에 등장하는 말이다. 즉 뛰어난 참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초한쟁패란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천하 패권을 두고 5년에 걸쳐 싸운 것을 말한다. 엄청난 병력과 세력을 가진 초나라 항우는 마지막 전투였던 해하(垓下) 전투에서 결국 유방에게 패배한다. 유방이 승리한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걸출한 참모(책사)들에 대한 용인술에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전해 내려온바에 따르면 유방은 원래 배움이 모자란 리더였다고 한다. 하지만 측근에는 걸출한 세 사람의 핵심 책사가 있었다. 소하, 장량, 한신이 그들이었다. 초한 쟁패에서 승리하여 천하를 거머쥔 자리에서 유방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행정을 다루는 능력이 소하보다 못하고, 지략에서는 장량보다 못하며, 전쟁에서는 한신보다 못하다고 고백하며 이 세 사람의 출중한 능력으로 천하를 가질 수 있다고 담담하게 자신의 능력 부족을 인정했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한고조본기’는 삼불여(三不如)의 뜻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리더가 성공하기 위해선 인사가 만사라는 뜻과 함께 리더는 측근에 포진한 인재를 잘 가려 등용하여 활용을 잘해야 리더가 성공한다는 사례로서 유방의 삼불여(三不如)는 역사가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항우에게도 범증이라는 탁월한 책사가 있었지만, 항우는 자신의 능력만 믿고 참모를 활용하지 못하고 홀대하여 패배를 자초했다. 국민의힘은 3월 8일 실시되는 전당대회에서 윤석열 정부 집권 2년 차의 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을 선출한다. 내년에는 총선에 대한 공천 영향권이 있으니 당 대표 쟁탈전이 가열될 수밖에 없고. 경쟁이 박빙 승부로 흐를수록 진흙탕 싸움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당대회 초반, 김기현의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나경원이었다. 이 당시 안철수의 존재는 미미했다. 김기현 측에선 나경원만 주저앉힌다면 당 대표는 손쉽게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보았듯 나경원은 당원투표에서 이준석을 제쳤을 정도로 당내 지지세력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특히 나경원이 원내대표 시절, 국회 대표 연설에서 문재인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불렀던 그 당시 연설은 아직도 보수 일각에서는 명연설로 남아 있을 만큼 나경원의 존재감은 그때부터 깊게 각인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 이후, 수도권의 나경원 지지세는 견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배경으로 나경원은 한때 당 대표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무시 못 할 존재였다. 원인과 이유가 어찌 되었건 나경원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했다. 문제는 나경원이 불출마를 하게 만든 일련의 과정이 매우 세련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장제원의 인신공격성 선제 도발을 필두로 친윤계 초선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나경원을 주저앉히는 방법은 매우 거칠었고 비열하다는 비판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나경원 지지자들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경원 사퇴 후에 나타난 큰 변화는 안철수 후보가 김기현 후보를 이기는 여론조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경선 초반, 김기현에 한참 뒤지던 안철수가 우위로 돌아선 것은 나경원 지지자들의 반작용에 의한 현상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요인이 없다. 나경원은 그의 이념적 정체성과 정치 행적을 보더라도 이질적인 보수 변종 유승민과 정체성이 모호한 안철수와는 확연히 달라 비교하는 자체가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윤석열과 나경원 부부와 얽힌 과거의 사적 인연으로 봐도 결코 반윤이 될 수 없는 정치인이다.
이런 사람을 장제원이 반윤 우두머리로 몰고자 했고, 초선들이 떼를 지어 비난 성명을 발표했으니 나경원 지지자들이 받았을 심적 충격은 상상만으로도 짐작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만약 장제원을 비롯하여 김기현 선거 운동을 돕는 참모들 중에서 몇 수 내다보는 책사가 있어 나경원의 체면과 명예를 살려주는 정치력을 발휘하여 불출마를 유도해 냈다면 지금쯤 김기현은 휘파람을 불고 있을지 모른다. 김기현은 십고초려(十顧草廬)도 감수하겠다고 했으니 계속해서 나경원에게 구애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김기현의 삼불여(三不如)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김기현의 곁에 과연 삼불여(三不如)가 있기나 한지, 있다면 누구인지 궁금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나경원 지지선언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김기현 진영의 전략적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댓글 김기현이나 안철수나 참으로 걱정입니다. 이란 자들이 여당의 대표가 되면 배가 산으로 갈 것 같은 걱정입니다. 개인의 명예를 깡그리 무시할 때는 입닫고 있다고 상황이 불리하니까 삼고초려를 넘어 십고초려도 하겠다는 김기현의 언행부터 마음에 들지않네요.
누구든 원하지 않은 일이지만 관전자의 입장에선 뭐라고 할 말이 많은 것이 이번 전당대회 진행 모습입니다. 아무리 네가티브가 난무하는 정치판이라고 해도 불협 화음이 지나친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 은 일이지요. 당 대표 출마자들이 이런 현실을 직시하기 바랄 뿐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