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준경 전도사 순교 기념관 다녀 왔습니다♡
전라남도 신안군에 90% 이상 거의
전 주민이 예수를 믿는 섬이 있습니다.
천사의 섬이라고 불리는 증도(曾島)입니다.
2천 2백명의 주민이 사는데 90% 이상이 예수 믿는
사람이고, 작은 섬에 11개의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 섬에는 미신도, 주정판도 놀음판도 없고,
사찰도, 굿당도 없습니다. 주일이면 모든 식당이 문을 닫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섬 주민이 모두
다 예수 믿는 섬이 될 수 있습니까?
한 여인의 목숨을 바치는 전도로
복음의 섬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그녀는 바로 '문준경 전도사'입니다.
1891년 신안에서 태어난 문준경은
나이 17세에 증도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러나 신랑 얼굴 한번 못보고
혼례를 치른 첫날밤부터 소박을 맞았습니다.
이후 20년간 남편에게 버림받은 생과부가 되어
모진 시집살이를 하던 그녀는 우연히 자기 집을 찾아온
전도부인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후, 유명한 이성봉 목사님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 나라에 헌신합니다.
그녀는 경성(서울)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전도부인이 된 후, 다시 고향 신안에 내려와
나룻배를 타고 섬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섬 주민들의 부탁으로 짐꾼, 우체부, 약사,
의사 노릇을 하며, 1년에 아홉켤레나 고무신을 바꾸어 신고,
이 섬 저 섬의 돌짝밭 길을 다니며, 아이, 병자,
어른을 막론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에게
찬양을 불러주고, 기도를 해주며,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섬마다 개척교회들이 세워지고,
이분의 영향을 받은 청소년들 가운데 20세기 한국교회를
이끌었던 김준곤목사, 이만신목사, 정태기목사,
신복윤목사 등 30여명의 목회자들이 생겨납니다.
그녀의 나이 59세 되던 해 6,25전쟁 중 공산당원이
문준경 전도사를 체포하자마자 “새끼를 많이 깐
이 씨암닭아, 죽어라”고 소리치며 몽둥이를 내리쳤다고 합니다.
그 후 문준경 전도사는 사형장에서 “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하며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공산당원의 증언처럼 그녀는 수많은 영혼의 생명을
낳은 거룩한 씨암탉으로 주님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당시 가장 큰 장례식이었던
김구선생의 장례식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모였다고 합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문준경 전도사에게
전도를 받은 사람들, 성경을 배운 사람들, 기도 받은 사람들,
사랑을 받은 사람들, 도움을 받은 사람들,
그녀의 손으로 눈물을 씻김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이 섬은 민족의 성지가 될 만큼,
현재 90%이상이 예수를 믿는 천국의 섬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장충단교회 16명의 교우들은 문전도사님께서
사역 하신 중동리교회가서 예배 드리고 그분이 기도하시던
기도바위를 찾아 기도하면서 눈물 흘리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어느 여행보다 의미 있는 여행을 다녀옴을 보고 합니다.
시간 되시면 한번 다녀 오시면 좋을것 같아 정리해서 올립니다.
함께 여행 다녀온 교우들~감사 하고 사랑합니다^^.
첫댓글 보는 내내 눈물 바다를 이루웠습니다.
강한 은혜가 흐릅니다.
순교까지 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어떤 여행보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결심도 하면서 그분의 순교 정신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다시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말로만 들었던 문준경 전도사님의 행적을 뵙게 되어 감사합니다...전채옥 권사님 항상 강건하십시오...샬롬~!!!
한번 다녀 오세요 참 의미 있는 시간이면 도전 받는 날이 였습니다
반가워요 우리 교회도 다녀 왔습니다. 새롭네요 빨리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그래요 잘 다녀 오셔네요 건강 하시죠?
어려운곳 다녀 오셨네요
별빛님 까꿍~잘 있죠?
틀에 박혀 살던 게으른 생활에 큰 도전 받고 갑니다...직접 가보아야겠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