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고백(10회)-국민그룹 god·손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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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980년 3월 26일 미국 뉴저지의 외갓집 서재에서 태어났다.아마도 울지 않고 웃으면서 세상나들이를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에서의 기억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그저 외갓집과 우리 집이 마주 보 고 있었다는 사실과 항상 왔다갔다하면서 뛰어다니거나 장난감 놀이를 유별 나게 좋아했다는 사실 정도다.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외갓집에는 장식용으로 된 작은 자동차가 많았는데 내가 한 달을 졸라서 기어코 얻어냈다고 한다.그 땐 몰랐는데 꽤 비싼 물건들이었다고 한다.그밖에는 기억이 거의 없다.
한국에는 세살 때 왔다.그전까지는 잘 웃고 떠들고 장난도 곧잘 쳤지만 한 국에 온 뒤로는 매우 엄하신 아버지에게 한글을 배우면서 많이 혼도 나고 매 도 맞으면서 자랐다.그다지 말도 많지 않고 소심한 축에 드는 성격은 그때의 영향으로 형성된 듯하다.
어렸을 때는 참 이사를 많이 다녔다.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까닭에 한곳에 오래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사귀어온 친 구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동부이촌동으로 이사온 뒤로는 쭉 여기 살고 있다.참 ! 언제냐 하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아주 평범한 어린이로,그렇게 튀지도 않고 동네 안에서 지내고 공부도 웬 만큼 하는 그런 아이였다.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친하게 같이 다니는 친 구가 몇명 생겼다.그때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가장 친하게 지내는 벗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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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방황기를 맞았다.
참!내가 유치원 때 엄마가 미국으로 떠나셨다.그후로 엄마는 미국에,아버 지는 한국에.지금까지 부모님은 이렇게 따로 지내고 계신다.
방황기가 생긴 것은 이런 환경 때문인 듯하다.아직까지 아버지 말씀을 단 한차례도 거역해본 적이 없는데 한창 놀고 싶을 나이에 놀지도 못하고 언제 나 무서운 아버지의 그늘에 있었기에 무척 힘들었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야하고 일요일에도 아버지에게 공부 검사를 받고 통과돼야만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조마조마한 마음으로 TV를 보다 가도 귀가하시는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서는 태 연한 척….그래서 그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집에서 자본 적도,늦게까 지 놀아본 적도 없다.
그래서 몇차례 가출을 했다.그 때는 밤 늦도록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어 뿌듯했다.집에서 허락받지 않고도 친구 집에서 잘 수 있었고 공부도 안해도 되고….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부질없는 짓들이었던 것같다.
조금만 더 남자답게 내 일에 자신감을 갖고 할 일을 다했더라면 아버지도 그리 엄격하게는 안하셨을지 모른다.
고등학교 때 한번은 꽤 오랫동안 가출했었다.집에 돌아왔을 때 이미 나는 god의 멤버 손호영이었다.god 멤버들을 만난 게 그 때였다.밖에서 날도 새고 옥상에 쭈그려 앉아 잠을 자고 굉장히 많은 고생을 했다.그래도 그 때는 그 게 좋았고 홀가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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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에 합류하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순식간에 진행됐다.맨 먼저 친구 소개 로 데니(안) 형을 만났다.한창 가수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중이라 함께 연습 할 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였다.
처음 형을 만났을 때 ‘우와!진짜 잘 생겼네’라는 느낌이 들었다.그런데 그 형이 먼저 “너 나랑 가수 안 해볼래”라고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그 때 부터 늘 데니 형과 함께 다니면서 연습도 하고 오디션도 보면서 친형제처럼 지냈다.
사무실에서 오디션을 보면서 두번째로 ‘쭌이 형’(박준형)을 만났다.처음 쭌이 형을 만난 곳은 데니 형 집이었는데 왠 흑인 한명이 들어오는 것이었 다.데니 형에게 “누구냐”고 묻자 “사촌형”이라는 것이었다.얼마나 놀랐 던지 그 때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어떻게 그리도 다르게 생길 수 있는지….
아무튼 그 후 오디션을 보게 됐고 합격했다.가출한 터라 마땅히 갈 곳이 없던 나는 사무실에서 지내게 됐다.얼마 뒤 (윤)계상 형이 들어왔고 계속해 서 사람들이 늘어났다.그 때부터 쭉 모여살며 함께 연습하고 지내다 IMF 사 태를 맞았다.우리는 일산으로 숙소를 옮겼고 그 곳에서 오로지 쭌이 형만 바 라보며 온갖 고생을 다했다.
군기반장이던 쭌이 형의 압제(?) 아래서 이런저런 고생을 다 이겨냈다.그 러다 (김)태우와 (박)진영이 형을 만났다.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마침내 god 라는 그룹이 완성됐고 첫 음반을 만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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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god의 첫 앨범이 완성됐다.그 때까지 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버티 고 있었다.집 소식이 무척 궁금하기도 했지만 다시 집에 들어가기도 싫은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그러나 첫 앨범을 내고 마음을 바꿔먹었다.한장의 앨범을 만들기 위해 얼 마나 어렵고 힘든 일들을 이겨냈는가.그런 내가 아버지께 용기를 내서 내 의 지를 말하지 못하겠는가.힘을 내서 집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실로 오랜만에 집에 들어갔다.그 곳에는 예전의 그 강하던 아버지,멋쟁이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을 잃은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아버지가 계셨다.난 너무 죄송스럽고 슬픈 마음에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아버지는 내게 화 를 내지 않으셨다.아버지에게는 2년 반이라는 세월이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너무도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신 것같았다.
이제 난 행복하다.사랑하는 god 멤버들,늘 고마운 팬들,그리고 아버지가 늘 등 뒤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아버지께 “꼭 호강시켜 드리겠 다”는 약속을 드린다.지금까지 날 엄하게 길러주셔서 감사드리고 사랑한다 고….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곁에 계셔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내 삶이다.아름답게 읽어주셨기를 스포츠서울 독자 여 러분께 바란다.언제나 호영이를 사랑해주시고 도와주신 여러분들과 내가 사 랑하는 모든 분들을 끝까지 지킬 것이다.호영아!힘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