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부근 가을풍경
10월 아주 청명한 날, 가을이라 하지만 아직 여름의 열기가 그대로 있는 아침에 문화 기행을 떠났다. 모처럼 강원도란 어감이 정겨운 행선지(行先地)로 다가왔다.
그곳은 우리가 한계를 느꼈을 때 문득 찾는 무의식의 세계와도 같은 곳이다. 언제나 숲과 나무와 계곡과 물이 준비되어 있는 쉼터였다. 그런데 강과 계곡에 흐르는 물은 바닥을 드러내고 실개천이 되어 버렸다. 마치 흐르지 않은 사막의 강 ‘와디’를 연상시켰다. 그만큼 이 땅에 가뭄이 찾아온 것이다.
기후변화가 무섭게 우리 곁에 다가오는 느낌이다. 나뭇잎들도 목말라서인지 너무 빨리 붉게 노랗게 물들어있다. 어느새 한계령에 다 달았다. 그러나 ‘오색령’이란 낯선 이름이 시야에 들어왔다. 선조실록에 있던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 이름도 좋지만, 한계령으로 붙여진 양희은의 노래와 문정희의 시는 옛 이름 그대로가 더 어울린다.
오색령 휴게소에서 바라본 산은 절경이었다. 깎아지르듯 한 암벽 병풍과 오색으로 물든 산봉우리들은 소청봉과 대청봉으로 이어져 있다. 굽이치는 계곡이 펼쳐있고, 흘림골에서 주전 골을 거쳐 오색약수까지의 등산로는 가을로 가는 순례의 길이었다. 다행히 계곡엔 맑은 물이 흘러 살아있는 자연을 보는 듯했다.
점심 식사 후 양양의 ‘선사시대박물관’에서 우리 조상들의 생활 모습을 보았다. 수렵 채취로 일용할 양식을 얻는 노동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도 오색의 단풍 구경을 했을까.
마지막으로 휴휴암에 들렀다. 그곳은 지난여름에 가보았던 곳이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바닷가 가장자리를 가득 메운 물고기 떼들이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으로 몰려있었다. 이따금 관광객이 던져 주는 모이를 먹으려고 물 위로 고개를 내밀어 요동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들의 정체는 황어라고 한다. 뱃살 쪽에 황색으로 된 선이 그려져 있어서 그렇게 불린다. 재미있는 것은 아침이면 어미가 새끼들을 몸으로 밀어 바닷가 가장자리 얕은 곳으로 보낸다.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 바닷가 바위 부근 안전지대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이를 먹고 놀다가 밤이 되면 잠을 자러 깊은 바다로 이동한다. 갈매기 떼가 이들을 공격하려고 바위에서 기다리지만 너무 물이 얕아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새끼 황어들은 6월에 이곳 동해로 와서 몸집을 키운 후 11월에 먼바다로 떠난다. 이 황어는 잉어과(科) 물고기 중에서는 유일한 2차 담수어로 일생을 대부분 바다에서 지낸다. 산란기에만 하천에 올라와 4~6월에 수심 20~70cm의 모래나 자갈 바닥에 알을 낳은 후 죽는다. 하천으로 올라오는 봄 동안 낚시꾼들의 좋은 사냥감이 되기도 한다. 마치 연어의 일생을 보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해와 남해로 유입하는 하천에 분포하며 국외에서는 일본과 사할린 등에 출현한다. 전남해양수산과학원에서는 지리산, 섬진강 봄꽃 구경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체험, 볼거리를 제공하고, 섬진강 생태의 신비함을 전하기 위해 5월까지 섬진강 ‘황어’를 주제로 특별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그 맛은 어떠한가. 황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즐겨 먹었던 물고기로, 문헌에 의하면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의 여러 지방과 전라도 토산으로 올라있다. 휴휴암 부근주민에 의하면 황어 맛은 봄나물과 함께 하면 일품이라고 한다.
좋은 풍광의 입지를 흔히들 배산임수라고 한다. 오늘 그 산과 바다의 풍광을 모두 만끽했다. 그래서 강원도는 늘 가보고 싶은 곳인가 보다. 더욱이 한계령 바위에 느리게 앉아 붉게 물들어 지는 해를 바라보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우리가 멀지 않아 가야 할 그곳이 생각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