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도(離於島) 이야기" ☜※◆
섬을 뜻하는 한자를 보면, 섬도(島)는 바다에서 새(鳥)가 앉아있는 산(山)이고, 섬서(嶼)는 도(島)에 더불어(與) 있는 산(山)이다.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람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큰 섬은 도(島)이고, 살 수 없는 작은 섬은 서(嶼)이다. 그래서 도서(島嶼)는 ‘크고 작은 온갖 섬’을 뜻한다.
물에 잠겨 섬이 되지 못하는 바위를 초(礁)라 한다. 잠길 듯 말 듯 아슬아슬 애를 태우는 (焦) 바위(石)라는 의미다.
드러난 바위가 노초(露礁)이고, 잠긴 바위가 암초(暗礁)다. 배가 다니다가 초(礁)에 올라 앉으면 좌초(坐礁)다.
그러면 밀물에 잠기고 썰물에 드러나는 바위를 뭐라고 할까?
간출암(干出巖)이다.
초(礁)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여’다.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다.
썰물에 드러나는 바위가 ‘잠길여’, 드러나지 않는 바위가 ‘속여’다.
물때에 따라 잠기느냐 드러나느냐를 놓고 이름을 다르게 붙인 것이다.
같은 뜻인 '여'와 초(礁)와 rock을 비교해 보면 우리 민족이 바다를 얼마나 유심히 관찰했고, 우리말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라도 서남쪽 149km 지점에 매우 큰 '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서로 1.4km, 남북으로 1.8km의 크기(수심 50m 기준)에 가장 높은 곳이 수심 4.6m 정도라, 파도가 매우 사나워지면 가끔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들은 이 '여'를 ‘여섬’이라 불렀다. '여섬'은 용궁으로 떠나는 ‘나루터’였다.
그물질 나간 어부나 물질 나선 해녀가 돌아오지 않으면 '여섬'에 들러 용궁으로 갔다고 믿었다. '여섬'은 바닷속에 있는 ‘저쪽 언덕’, 곧 피안(彼岸)이었던 것이다.
소설가 이청준의 작품에는 '여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라고 표현돼 있다.
가수 정태춘은 ‘떠나가는 배’에서 '여섬'을 ‘평화의 땅’, ‘무욕의 땅’이라 불렀다.
민담 속의 '여섬'이 역사의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100년쯤 전이다.
영국 해군이 소코트라 록(Socotra Rock)이라 부른 데 이어 난데없이 일본이 파랑도(波浪島) 라는 딱지를 붙였다.
제주대와 KBS는 1984년 공동 탐사를 통해 소코트라 록 (Socotra Rock)과 파랑도(波浪島)가 '여섬'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3년 뒤 해운항만청이 부표를 설치하고 2001년 국립지리원이 지명을 확정하면서 '여섬'은 공식 명칭을 갖게 됐다. 바로 ‘이어도’다.
장모음 ‘여’를 ‘이어(離於)’로 쓰고, ‘섬’을 도(島)로 붙인 것이다.
1993년 김시중 과학기술처 장관은 해양연구소 이동영 박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10년 만에 '이어도(離於島)' 해양 과학 기지를 건설했다.
20년 뒤인 지금 벌어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해양 분쟁을 내다 본 선견지명(先見之明)이다.
해양 과학 기지 건설을 주도한 한국해양과학 기술원의 심재설 박사는 말한다.
“분쟁이라고요? 세계적으로 알만한 해양학자들은 '이어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해양과학기지가 생긴 뒤 '이어도'에 관한 논문이 매년 30편 정도 국제학술지에 실리고 있고, NASA(미국항공우주국)에도 '이어도'에서 관측한 해양 기상 정보가 시시각각 업데이트 되고 있다.
이 논문과 자료에 ‘이어도 코리아(Ieodo Korea)’라는 출처가 따라 붙는다.
민담에서 ‘저쪽 언덕 (저승)’이었던 '여섬'인 '이어도(離於島)'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만든 것은 우리 과학자들이다! ◆◆◆
출처 : 知人이 보내온 글
👉👉👉👉👉 사랑의 힘! 👍👍👍👍👍
라이프(Life) 잡지의 어느 기자가 영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지하철 대합실 식당에 앉아 느지막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바로 앞자리에 연로한 부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정답게 앉아 남편은 빵을 주문하고 아내는 차를 주문했습니다.
옷차림으로 보아 노부부는 퍽 가난한 듯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마주보면서 손을 잡고 조용히 주문한 것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주문한 빵과 차가 나왔습니다. 남편은 천천히 빵을 먹기 시작했고 아내는 뜨거운 차를 몇 모금 마시면서 남편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빵을 먹던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동자에는 한없이 고요한 평화가 맴돌았습니다. 그때 남편은 먹던 빵의 반을 아내의 테이블 앞으로 밀어 놓더니 자신의 입에서 틀니를 뽑아 옆에 놓인 냅킨으로 깨끗이 닦아서 아내에게 건냈습니다.
아내는 그 틀니를 받아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에 넣고는 천천히 빵을 먹기 시작했고, 남편은 아내가 마시던 차를 마시며 맛있게 먹는 아내의 모습을 다정스레 바라보았습니다.
코끝이 찡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 그 기자는,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고 합니다.
이들 노부부는 비록 각자의 틀니를 가질만큼 너넉하지는 못했으나, 이것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랑은 힘이 있습니다.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가난도 수치도, 창피함도, 수모도 그 사랑의 용광로에 들어가면 다 녹아 버립니다!
소포클레스는 “참다운 사랑의 힘은 태산(太山)보다도 강하다. 그러므로 그 힘은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 황금일지라도 무너뜨리지 못한다.”라고 말했고,
체홉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토마스 만은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삼포능자의 <사랑하며 용서하라>는 책에 1954년 가을 연락선인 토오야 호가 태풍을 만나서 전복될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승객 몇 천 명 중에서 이 날 밤의 조난으로 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도오야 호에는 2명의 외국인 선교사가 승선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구명대가 없는 젊은 남녀에게 자기들의 구명대를 주고는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선교사 사진을 자기 방에 걸어 놓고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사랑은 자기 목숨까지도 희생하는 힘이 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네 사람의 군목을 위한 기념 예배당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서 입니다.
1943년 1월 22일 폭스, 구스, 폴링, 웨싱턴 군목이 ‘도체스터 호’에 승선하였다고 합니다. 그 해 2월 3일 55분 경 독일 잠수함 u-233이 쏜 어뢰를 맞고 도체스터 호는 점점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네 명의 군목은 잠기어 가는 함정 속에서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마지막 남은 구명정까지 모두 꺼내어 주고 그들은 갑판에서 어깨를 맞잡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배는 점점 가라않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배에 타고 있던 병사 904명 중 605명이 전사하였습니다. 물론 전사자 명단에는 장렬하게 죽어간 4명의 군목도 끼어 있었습니다.
1951년 미국 국민은 네 명 목사의 기념 예배당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1961년 1월 18일 의회 표결로 “그들의 영웅적 행위에 대한 특별훈장”을 수여하였고 그들이 천국에 간 2월 3일을 네 명 군목을 위한 기념일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 수모도 참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무엇이 최대의 이단이냐? 최대의 이단은 교리상의 이단이 아니라,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 최대의 이단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내가 아프리카 흑인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있으리요.”라고 말하며 “내 사랑의 행위가 남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사랑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며, 존경하고, 이해하며, 책임을 지고,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며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증오하지 않는 것이며,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그의 상처와 어둠과 가난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출처 : 知人이 보내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