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에서 16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프라토(PRATO)는 1000년 역사를 지닌 중세도시다. 그런데 요즘 이곳에서는 ‘부온 조르노’와 함께 ‘니 하오’라는 인사말이 통용된다.
인구 19만 명 중에 중국인은 3만 5000명 정도다. 유럽 전체를 통틀어 중국인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중국어 간판으로 가득한 올로나 타볼라 공단 지역에는 6000여개 중국인 의류 공장이 몰려 있다. 여기서는 연간 100만 벌 이상의 의류를 생산한다.
대부분 중저가 제품을 만들지만 아르마니 구찌 프라다 등 명품도 생산한다. 주문자상표부착 방식도 있지만 짝퉁 브랜드로 유통시키는 물량도 상당수다.
가장 큰 경쟁력은 원가다. 현지 기준으로 50% 이상 저렴하기로 소문나 있다. 미터 당 10달러하는 원단을 이곳에서는 10분의 1가격에 조달한다. 중국서 원단을 수입해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로 만들어 판다는 이야기다.
이탈리아 의류 업계에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통상 3개월에서 6개월 간 500벌에서 1000벌을 기준으로 한다. 이게 중국 공장에서는 2주 정도면 가능하고 만약 당장 100벌이 필요하면 바로 프라토로 가면 된다고 할 정도다.
중국인 공장에서는 바지 한 벌 만드는 데 8유로면 충분하다. 다른 현지 공장에 비해 5분의 1 수준이다.
프라토 공장에서 생산된 의류는 몇 시간 후면 독일이나 스웨덴 폴란드 심지어는 브라질에서도 팔릴 정도다. 속도의 경영을 하는 주체는 바로 저장(浙江)성 원저우(温州) 사람들이다.
프라토 중국인의 80%를 차지하는 이들은 1980년대 중반 이탈리아로 건너온다. 선발대는 고작 200명 정도였으나 10년 후 3만 명으로 늘어나더니 2000년에는 5만에 달한다.
가족 친지를 다 데려다 정책하는 바람에 2008년에는 15만 명을 넘기며 이탈리아 외국인의 50%를 차지한다. 프라토의 경우 초기 중국인 거주 지역 이름을 ‘산타 베이징’으로 붙여주며 환영했지만 요즘은 반대다.
프라토 의류업 뿐 만 아니라 마테라 지역의 소파 업종을 비롯해서 밀라노의 피혁 공방까지 중국 상인들이 장악하자 중국자본 경계론도 확산되는 추세다. 중국 저장성 시골에서 종이 상자 하나 메고 온 사람들이 30년 동안 엄청난 현금을 벌어서 빌딩을 사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는 반응들이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갔다 온지 700여년 만에 이탈리아의 자랑이던 방직 공업은 중국인 손으로 넘어간다. 프라토 지역의 경우 2010년부터 실업률이 4%에서 10%로 치솟으면서 황폐화되자 중국인들이 빈자리를 채워나간 케이스다.
하루도 쉬지 않고 16시간 이상을 일하며 번 돈 가운데 연간 5억 유로 정도를 중국으로 송금한다. 15만 위안을 주고 프라토로 이민 온 한 중국인은 2년 만 일하면 충분히 원가를 뽑는다고 말한다.
월급으로 쌀 20킬로그램을 사고 커피도 자제하며 버티면 월 1800유로를 번다. 근면 하나로 프라토 지역경제의 11%를 담당하는 셈이다.
그런데 현지에 동화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신년에 왁자지껄 치르는 행사를 제외하면 현지 이웃과 교류도 거의 안 하고 심지어 자녀의 성적표를 받으러 학교에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돈만 벌 뿐 지역사회와는 담을 쌓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돈을 많이 벌지만 세금을 낸 실적이 없자 수년 전에는 경찰에서 헬기 두 대와 100여명의 세무조사 인원을 투입해 불법 체류와 세금 포탈 조사를 벌인 적도 있다. 개인 소득세율이 50%를 넘는 현지 규정을 피하고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탈리아 사망률이 9%인 데 반해 중국인 사망률이 0.6%로 나오자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그 명의로 불법체류 한다는 의심도 받는다. 4만 명 중 12개월간 사망한 사람은 3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라 레퍼블리카라는 신문은 중국인 이민자 중에 150세 된 명단도 있다며 영생불사하는 사람들이라며 제하의 기사를 써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당연히 중국자본의 상권 잠식에 경계심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기사다.
프라토 뿐만 아니다. 밀라노의 경우 AC밀란 등 축구구단 두 개가 모두 중국 자본에 팔린다. 베네치아의 경우 중국자본이 식당과 기념품 가게 숙박업체 등을 사들이면서 현지 상인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중국 자본이 이탈리아 기업사들이기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 위기 이후 기업 인수가 쉬워지자 이탈리아에서 상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내다팔려는 전략을 세웠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세계 적인 건물 인터리어 업체인 페르마스틸리사를 중국기업이 4억6700만 유로에 사들인다. 150년 전통에 건축계의 교과서로 불리는 이 회사는 타이완 101금융센터 빌딩이나 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 인테리어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의 무명 업체인 광텐(广田)지주 예위안시(叶远西)회장은 이 화사를 2016년말 인수하자마자 일약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400대 부자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건축 장식 분야에서 중국내 3대기업으로 부상하며 74억 위안(약 1조2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확보한 결과다.
매출이 50%나 늘고 순익도 30%이상 늘어나자 예 회장은 “중국내에서도 별 볼일 없던 광톈 이 이제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둑 설 수 있게 됐다”며 흥분한다. 매출부진에 시달리는 유명 기업을 비싸게 인수해도 단숨에 중국 시장과 세계 시장에서 본전을 찾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중국서 해외기업 인수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화공그룹((CHEMCHINA)의 경우도 70억 유로를 들여 이탈리아 타이어 제조업체인 페라리그룹의 지분 60%를 사들인다. 중국 자본으로서는 가장 사기 쉬은 기업이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이탈리아 기업들이다.
인근 프랑스와 독일 기업까지 합치면 2016년 한 해 동안 쓴 중국자본 인수합병 금액은 1000억 달러를 상회한다. 전제의 절반 이상이 유럽에 집중된 결과다.
중국 자본의 무서운 질주가 계속되자 유럽에서도 미국처럼 외자에 대한 심사기구를 만들며 견제를 시작한다. 미국의 외국 투자위원회(CFIUS)와 비슷한 유럽 경쟁위원회도 출범한다.
여기서는 최근 중국 가전업체인 메이디(Midea)에서 45억 유로를 들여 독일 로봇 제조업체인 쿠카(Kuka)를 인수하려는 시도를 무산시킨데 이어 중국화공그룹이 스위스 신젠타(Syngenta)를 430억달러에 인수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고 있다.
통상 압박과 견제를 가하는 미국기업 대신 유럽기업의 기술과 브랜드를 사들이고 있는 중국 자본에 대한 경계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인이 체질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이탈리아에서 중국자본의 유입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