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의 자살폭탄 테러는 어떻게 시작됐는가?
팔레스타인이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테러가 최근에야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데 반해 스리랑카에서는 1980년대부터 참혹한 자살폭탄 테러가 여러 번 있었다.
(딜세)와 (말리)와 같은 인도 영화에 서도 스리랑카 관련 자살폭탄 테러를 주제로 다룰 정도였다.
1991년 5월에 인도 남부의 카밀나두주 첸나이 근교에서 스리랑카의 반정부 조직 타밀일람해방호랑이(LTTE-Tamil Eelam Liberation Tigers)의 자살폭탄 테러로 당시 총리 라지브 간디가 암살되었다.
이 사건은 전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두 영화도 이것에 발상을 얻어 제작됐다.
스리랑카에서는 자살폭탄 테러뿐만 아니라 1980년대부터 유력 정치가에 대한 암살이 꼬리를 물었다. 1993년 5월의 프레마다사 대통령을 시작으로 다사나야케 대통령 후보(1994년), 니란 티르체르밤
전 의원 1999년 등 많은 유력정치가들이 자살폭탄 테러로 암살됐다. 또한 찬드리카 쿠마라 퉁가 대통령도 2000년에 자살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이런 테러 사건의 시초는 1959년에 일어난 반다라나이케 총리의 암살이었다. 반다라나이케는 당시 다수파였던 친영파인 통일국민당을 떠나 스리랑카 자유당을 결성하고 1956년 연립 정권을 수립했다.
그는 통일국민당의 친영 정책에 반대하여 당시의 세계정세를 등에 업고 민족주의 성향의 정책을 펼쳤다.
특히 반다라나케는 다민족 국가인 스리랑카에서 다수파인 불교도 신할리족의 권익을 보호하는
온리 신할리정책을 내세워 소수파인 타밀족의 반발을 샀다. 그는 의회에서 다수파를 유지하기 위해 타밀족과 타협하고 신할리 위주의 정책을 포기했다. 이 타협에 대해 신할리 불교도들은 불만을 품었고 불교승려가 현직 총리를 암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스리랑카의 자살폭탄 테러는 LTTE의 과격한 전술로 처음 시작은 1984년의 경찰서 난입사건이었다. LTTE의 지도자인 프라바카란은 주로 10대 초반의 아이들을 훈련시켜 전사로 키웠으며 청산가리를 가슴에 품게 하고 전쟁터에 내보냈다고 한다. 1974년에 어린 병사가 포로가 될 뻔하자 독을 깨물어 자살하면서 이 일이 세계에 알려졌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죽음 또는 승리’가 아니라 ‘죽음이 곧 승리’라는 사상을 주입한 결과였다. LTTE 자살폭탄 테러부대는 검은 호랑이라고 불리며 여성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라지브 간디 암살사건의 범인은 평범해 보이는 여성이었고 영화 말리의 주인공도 어린 소녀였다.
이런 자살폭탄 테러는 일본의 가미카제를 모방한 것이며 타밀 게릴라의 군사훈련은 이스라엘을 비롯한 해외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워싱턴푸스트는 LTTE는 콜롬비아 마약조직연합 메델린과 관계가 있으며 카리브해의 안티과에서
이스라엘 퇴역군인에게 훈련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사실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이 보도는 스리랑카의 기둥을 뒤흔드는 분쟁과 테러가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 놓여 국내 문제로만 취급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여 이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세계의 분쟁 바로보기에서 발췌***
내가 발원하는것은 오직 이 세상에 평화가 하루라도 빨리 고착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서로 기원해요. 모두 같이 평화스럽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