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2월 30일 서강대교 개통
1980년 6월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몇 차례 중단된 뒤 재개 되었고
1996년부터 단계적으로 개통
되다가 1999년 최종 완공되었다.
1996년 양화대교 구교 1차 철거
에 따라 최초 개통될 당시 서강대교
북단은 강변북로를 통해서만 진출
입이 가능했으며, 1997년양화
대교 구교 완전 철거에 따라 2차
개통되면서 서강대교 북단과 신촌
로터리를 연결하는 가교가 설치되었다.
1999년에 서강대교
북단 램프가 완공되면서
지금의 서강대교가 완성되었다.
▶2011년 김근태 민주당 고문 별세
▶2009년 금호그룹, 워크아웃 발표
2009년 12월 30일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며
오남수 금호아시아나 경영전략본부 사장
(사진 오른쪽)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2008년 LG디스플레이 세계최초 480㎐ LCD 패널 개발
G디스플레이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480㎐ 액정표시장치(LCD) TV용 패널.
▶2006년 사담 후세인 사형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세인의 일생
이라크 두자일 마을의 시아파 주민들을 학살한 혐의로 기소돼 30일 사형이 집행된 사담 후세인(69) 전 이라크 대통령은 아랍권의 패권을 손에 쥘 야망을 가졌던 독재 통치자였다.
그는 서방의 시각에선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언제라도 무력을 동원하는 `전쟁광'이었지만 한때 중동지역 민중에게 아랍의 자존심을 세웠던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한 두 얼굴의 인물이다. 세대를 이어 미국의 대통령이 된 `부시 부자'와 충돌했던 그는 2003년 아들 부시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됐고 같은 해 12월 고향 티크리트의 한 농가 토굴에서 수염이 더부룩한 초라한 모습으로 체포됐다.
1937년 4월 28일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50㎞ 떨어진 티크리트시 외곽의 알-오자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후세인은 생후 8개월 만에 고아가 돼 군 장교였던 반 영국 투쟁가인 외삼촌에게 맡겨졌다. 18세 때 바그다드로 상경, 학생운동에 참여하다 1956년 반정부 봉기를 계기로 이듬해 범-아랍 사회주의 부흥당인 바트당에 입당한다. 이 때부터 후세인은 본격적으로 정치수업을 받으며 바트당의 핵심분자로 성장한다.
그의 정치투쟁 경력은 1956년 이라크 국왕 파이살2세 제거를 노린 불발 쿠데타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1959년 왕정붕괴 후 집권한 압델-카림 카셈 대통령 암살모의에 개입, 국외로 도피해 시리아와 이집트를 전전하다 1963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한 뒤 바그다드로 돌아왔으나 불과 9개월 뒤 다시 정권이 뒤바뀌자 체포돼 1966년까지 수감생활을 했다. 카셈 대통령의 암살모의시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가까스로 도망쳤는데 그는 자서전에서 이 일에 대해 "옥도에 칼날을 적셔 스스로 총탄을 빼냈으며 유목민으로 변장, 티그리스 강을 헤엄쳐 당나귀를 타고 시리아로 도주했다"고 썼다.
후세인을 이집트로 불러들인 인물은 다름 아닌 아랍 민족주의 주창자인 가말 압둘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다. 나세르는 당시 이라크 정권과 범 아랍 공화국 창설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다. 1968년 바트당의 재집권 계기가 된 쿠데타에서 핵심역할을 한 뒤 혁명평의회 부의장으로 권력의 최정점을 향해 급속히 부상하던 후세인은 마침내 1979년 아메드 하산 알-바크르 대통령의 뒤를 이어 이라크 지도자의 자리에 섰다.
후세인은 십자군 전쟁에서 기독교 연합세력을 물리치고 예수살렘을 탈환한 이슬람의 영웅 살라후딘의 이름을 따 자신도 살라후딘과 같은 추앙을 받자는 뜻에서 자신이 태어난 티그리트주의 이름을 살라후딘주로 개명하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야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랍 세계의 지도자로 부상할 기회를 노리던 후세인은 1980년 9월 이란-이라크전을 일으켰고 1988년 참혹한 대가만을 남긴 채 이란과 휴전협정을 맺었다. 전쟁으로 인한 외채 부담에서 벗어날 기회를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모색했던 후세인은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했지만 전 세계적인 비난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라는 위기에 처했다. 이어 1991년 1월 미군 주도의 걸프전에서 패퇴한 후세인은 그해 2월 쿠웨이트에서 완전히 철수해야 했다.
잇따른 실정에도 후세인은 1995년 10월과 2002년 10월 두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100%에 가까운 압도적은 찬성률로 대통령직을 이어간다. 그가 이라크를 100만명의 군사력을 가진 중동의 군사 강국으로 변모시켰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어깨를 견주는 산유국으로 키운 공로도 분명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걸프전 이후 후세인은 아랍권에서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해방할 유일한 중동 지도자이자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이후 유엔의 경제제재 등 국제적 고립, 미국 및 영국의 끊임없는 군사적 압박 속에서도 탄탄한 국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했던 후세인은 결국 9.11 테러 이후 강경파가 득세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사상 유례없는 `예방전쟁' 속에 두 아들을 잃은 채 권좌에서 쫓겨나 도망자 신세가 돼야 했다. 지난 2004년 미군에서 이라크 임시정부로 인계된 후세인은 지난해 두자일 마을 학살사건 주도 혐의로 이라크 특별재판부에 의해 기소되며 법정에 서야 했다. 지난해 10월19일 시작된 후세인 재판은 피고측 변호사의 피살과 후세인의 옥중 단식 등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결국 법원은 "총살형을 받겠다"고 말했던 후세인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마침내 후세인은 26일 최고 항소법원에서 교수형이 확정되면서 24년에 걸친 그의 철권통치의 흔적과 서방 세계에 맞서 중동의 패권을 쥐려는 야심도 교수대에 함께 매달려 그 명운을 다하고 말았다.
30일 오전6시쯤(한국시각 낮12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1998년 국회 교육위, `교원정년 62세` 법안 통과
▶1997년 남아공, 중국과 외교관계 수립위한 협정에 서명
▶1996년 서강대교 개통
▶1996년 지하철 5호선 완전 개통
1996년 12월 28일, 개통을 이틀 앞두고
지하철 5호선의 시험운행이 시행됐다.
사진은 신금호역에서 역무원이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 초연
대형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여우사냥’ 이 1995년 12월 30일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됐다. 당초 폐막일은 1996년 1월 10일이었으나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4일 더 연장해 14일 폐막했다. 공연기간동안 몰려든 관람객은 모두 4만여명, 72% 이상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처럼 관객이 많이 몰린 이유는 오랜만에 우리 역사를 우리 정서에 맞게 대형 뮤지컬로 창작해 낸 ‘볼만한 작품‘ 이 나왔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흔히 사극이라면 목적극을 연상시킨 데 비해 ‘명성황후’ 는 비장미와 함께 재미와 감동을 함께 준다는 찬사를 받았다. 전문가들로부터도 역사속에 담긴 교훈을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장중한 무대미술과 화려한 의상, 노래로만 이어지는 형식의 독특함 등으로 잘 살려내 세계무대를 향한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을 얻었다.
이문열의 희곡, 양인자의 가사, 김희갑의 음악, 박동우의 미술, 윤호진의 연출, 윤석화의 열연 등이 하나의 무대에 앙상블을 이룬 점이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는게 중론이었다.
대형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의 한 장면.
▶1994년 미국 킹센터,
김영삼 대통령을 마틴루터킹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1993년 이스라엘·로마교황청 수교로 갈등 청산
▶1992년 브라질 하원, 콜로르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결
▶1990년 전두환 전 대통령,
백담사 은둔에서 자택으로 귀환
연희동 사택에 도착한 전두환 전대통령
내외가 찬불가를 부르며 맞는 조계사
합창단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하고 있다.
▶1981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 폴란드
사태와 관련 7개항의 대(對)소련경제
제재조치 발표
▶1980년 입법회의, 국가보안법 개정안,
5개 노동관계법안 등 의결
▶1980년 22개 낙도 자동전화 개통
▶1980년 터키, 북한과의 무역의정서 폐기
▶1978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완간
▶1978년 장거리자동공중전화(DDD) 등장
▶1978년 김상현 WBC 수퍼라이트급 세계챔피언 획득
▶1977년 프랑스, 크루즈 미사일 개발
▶1972년 개정 국회의원선거법, 정당법 공포
▶1970년 호남고속도로 대전-전주 구간 개통
▶1961년 부정축재처리위, 부정축재액 최종통고
▶1960년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
청와대를 거쳐간 전직 대통령들.
왼쪽부터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컴퓨터 합성)
▶1952년 제1군 사령부 창설
▶1945년 고하 송진우 피살
1997년 1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됐던 고하 송진우 선생.
▶1944년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 사망
▶1927년 동경 지하철 개통(일본 최초)
▶1922년 영국, 라디오방송 개시
▶1917년 시인 윤동 주 출생
1945년 2월 16일 사망.
대표 작품 《별 헤는 밤》,
《서시》, 《또 다른 고향》등.
원래 의과로 진학을 하라는
부친의 영향 때문에 문학인이
되지 못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할아버지 윤하현
장로가 겨우 찬성을 하여
문학인이 될 수 있었다.
시인이 된 이후 주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내용을 표현한
서정적인 시를 썼으며, 민족적
저항시인, 강인한 의지와
부드러운 서정을 지닌 명품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1916년 러시아 괴승 라스푸틴 피살
러시아의 요승 라스푸틴은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총애를 얻음으로써 궁정에 세력을 갖기에 이르렀으며, 점차 종교는 물론 내치와 외교에도 참견하였다. 그러자 그 생활은 한없이 방종으로 흘렀다. 1905, 1917년 혁명 사이에 황제 일가는 라스푸틴의 충고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라스푸틴은 혈우병을 앓고 있는 황태자 알렉세이를 왕위에 오르도록 도와줄 수 있어 황실에서 세력을 얻었다.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의 능력에 감동을 받아, 그를 황실에 있게 하였고,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니콜라이는 그의 아내를 열렬히 사랑하여 그녀의 충고를 신뢰하면서 라스푸틴의 영향도 받았다. 결국 그는 러시아 귀족들에 의해 암살당하게 된다.
▶1905년 전(前)참판 송병준 음독자살
▶1894년 전봉준 체포1891년민세 안재홍 출생
▶1884년 청-일 대한제국에 출병
▶1872년 일본군, 징병제도 실시
▶1870년 인도, 봄베이-캘커타간 철도 개통
▶1865년 영국 작가 루드야드 키플링 출생
▶1691년 영국 물리학자 로버트 보일 사망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솦트리종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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