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리(水賜伊) 어원 몽고군은 가히 세계적 군대였다. 고려 또한 몽고군의 말발굽 아래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몽고의 침입으로 인해 인구의 감소, 극도로 황폐화한 국토, 황룡사 9층탑과 초조대장경 등의 소실은 물론 왕궁 생활에도 몽고의 법과 문화가 강요 및 유입되었다.
갑골문의 왕국이자 子씨 성의 은나라에는 동성의 왕후가 있었다. 무정(武丁) 임금의 왕후 부호(婦好)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는 동성 혼인을 금지시켰고, 그 이후 중화권은 문화가 바뀌었다. 그러나 은나라의 유민들이 세운 기자조선의 유풍 때문인지 고려의 왕실에는 여전히 동성의 왕비들이 있었다.
하지만 몽고 元나라 황실은 주례(周禮)만이 천자국의 법도인양 고려왕실의 동성혼 반대에 적극 개입했다. 충렬왕의 부인이 된 元나라 공주 홀도르게리미실은 조강지처 정화왕후 왕씨를 핍박했고, 원왕실은 세자 시절 충선왕이 정비 왕씨와 혼인하려는 것을 동성혼이라 하여 적극 반대했다.
정략결혼으로 인해 元의 공주들이 고려 왕궁에 들어오면서 몽고어 또한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는데 '무수리'는 그 대표적 예이다. 본래 무수리는 몽고어로 '소녀'를 뜻했다. 왕궁 궁녀들은 자신을 수발해줄 계집종들이 필요했다. 고려 때는 지금처럼 상수도가 없었다. 왕의 여인들인 궁녀들은 늘 몸을 깨끗하게 씻고 단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궁녀의 수발녀인 소녀=계집종=무수리의 주된 임무는 세숫물 따위의 물을 떠다주는 일이었다.
고려 왕실은 조선왕조처럼 한문을 국문으로 썼는데, 무수리 또한 한자기록을 요했다. 중국인들이 코카콜라를 可口可樂(중국음 '커코우커러')라고 번역하듯, 고려인들은 무수리를 水賜伊(수사이) 또는 水賜里(수사리)로 옮겼다. 중요한 것은 쓰기는 水賜里라 쓰되, 읽기는 이두향찰의 전통에 따라 '므스리' 또는 '무수리'라 읽었다는 점이다. 水는 물(고어로 '믈')인데, 그것을 줄여 '무'라 발음했고, 賜(줄 사)자는 중국음 '스'를 고려한 것이었다.
이처럼 한자로는 '물을 떠다주는 이'를 뜻하는 무수리는 조선왕조에 들어와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로 인해 후세에 그 자리매김이 더욱 공고화되었다.
무수리는 고려 및 조선시대 궁중에서 청소 등 허드렛일을 맡은 여자 종을 말하며, 수사(水賜)라고도 한다. 고려 말 원나라 의 간접 지배를 받던 시절에 원나라의 몽골 풍습이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절 원나라에서 고려로 시집온 원나라의 공주를 따라 시중드는 사람들이 많이 함께 고려로 들어왔는데, 이중 잔심부름을 하는 계집종을 일컫는 수사이(水賜伊, 소녀라는 뜻) 라는 말이 무수리로 굳혀져 이후 조선에서는 왕실 용어로 자리잡았다. <무수리> 몽골어로 [소녀]를 뜻하는 이 말은 궁중에서 청소 등 잡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조선 시대의 궁녀 궁녀는 정 5품 상궁직을 최고로 종9품 주변궁까지 10등급이고, 7개소의 각기 소속된 처소에 따라, 각이(各異)한 명칭이 있다. 이들 궁녀는 왕의 사생활이 영위되는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서 의·식·주에 사역되는 여인 집단이다
궁녀의 선출 궁녀의 선출은 매우 신중했다. 궁녀는 너무 천하지 않으면서 조상 중에 반역자가 없는 가문에서 선출되었다. 특히 궁녀의 격이 가장 높고 궁녀중의 양반이라는 지밀 소속 궁녀는 아무리 똑똑하고 인물이 헌칠하더라도 배경이 없으면 절대 안 된다.
국왕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지밀의 궁녀! 국왕의 손길이 닿게 된다면 더 이상 궁녀가 아니라 내명부로 승격되고 품계가 내려진다. 왕과 왕비, 대비는 100명 정도의 궁녀를 거느릴 수 있었고 세자가 60명, 세자빈이 40명, 세손이 50명, 세손빈이 30명을 거느릴 수 있었으니, 그 밖의 별궁까지 합치면 적을 때는 300여명에서 많을 때는 8백 명까지 있었다고 한다.
소속과 의무
1. 지밀(至密) : 대궐에서 가장 지엄하고 중요하며 말 한마디 새어 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밀의 수석 상궁은 궁녀 전체의 장인 것은 물론 ,조정 대신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위세가 지엄하며, 왕과 왕비의 신변 보호 및 기거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시중을 책임지고 있었다. 2.침방(針房) : 왕과 왕비의 각종 의복을 제조한다. 3.수방(繡房) : 궁중에서 소요되는 장식물에 수를 놓는 부서 4.세수간(洗水間) : 왕과 왕비의 세숫물과 목욕물을 대령하고 ,지(요강)·타구·매화틀(변기) 등의 시중을 담당하는 부서 5.생과방(生果房) : 왕의 수라 및 음료와 과자를 만드는 부서 6.소주방(燒廚房) : 안 소주방은 조석 수라를 관장하는 곳이며, 밖 소주방은 잔치 음식을 만 드는 곳 7.세답방(洗踏房) : 세탁, 다듬이질, 다리미질, 염색까지 담당하던 부서
직위 및 신분별 명칭
1.제조상궁 : 일명 큰방상궁이라 하며 수백 궁녀의 장이다. 물론 한 사람뿐이며 대전 어명을 받들고 내전의 대소치산을 주관하며 학식이 많고 영도력이 있어야하며 인물도 훤출하여야 한다.
2.부제조상궁 : 차석이며 일명 아랫고(내전 금고)상궁이라고 한다. 내전 금고를 관리한다.
3.시령상궁 : 잠시도 왕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어명을 받들 자세로 대기한다고 지밀 상궁 이라고도 한다. 4.보모상궁 : 왕자녀의 양육을 맡은 내인 중의 총 책임자. 5.시녀상궁 : 시녀 상궁의 임무는 궁중 지밀에 여러 가지 봉사하는 것이다. 이밖에 일반 상궁이 많았는데, 상궁이 되려면 원칙적으로는 30년 내지 35년이 걸렸다.
궁중여인 중에 궁녀가 아닌 하녀와 기생들
1.무수리 : 각 처소에 물긷기, 불 때기 등의 잡역을 맡는 여인들로 이들은 선출의 여부도 없 이 민간의 아낙네들 중에서 내인들의 소개로 통근하는 대개 기혼자들이었다.
2.비자(婢子) : 무수리는 통근을 하는데 반해, 비자는 붙박이로 각 처소 혹은 상궁의 살림집 에 소속된 하녀를 일컫는다. 3.의녀(醫女) : 일명 여의사이며, 내인들을 잡아가는 여순경의 역할도하며, 원래 신분이 기생이라 궁중 안에 대소 잔치가 열리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춤을 추는 무희로 변한다. [출처] 무수리(水賜伊) 어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