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 법률과 만나다
인공지능의 법적 지위
- 인공지능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
공대상상 예비 서울공대생을 위한 서울대 공대 이야기 Vol. 28
2018년 3월 18일,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자전거를 끌고 가던 사람이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이 사고는 전세계적으로 주목 받았는데요,
그 이유는 처음으로 자율주행 자동차가 일으킨 보행자 사망 사고였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보행자 교통사고의 경우, 운전자가 책임을 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경우에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이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공지능이 지도록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코너에서는 인공지능을 법적으로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인공지능의 권리와 의무를 어디까지 인정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글: 김건우, 원자핵공학과
3 / 편집: 이다원, 조선해양공학과
3
인공지능이 권리와 의무를 가질 수 있을까?
법적으로 권리와 의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인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법에서는 법인격을 가질 수 있는 존재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자연인, 다른 하나는 법인입니다. 법에서는 자연인을 ‘시기(출생)와 종기(사망)를 전제로 그 사이에 존재하는 유기적인 생물학적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정의합니다. 즉, 자연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또 다른 법인격인 법인은 ‘일정한 목적을 위해 결합된 사람들의 단체나 일정한 목적으로 각출된 재산의 집합’으로 정의됩니다. 다시 말해 현행법상 인공지능이 법적 책임을 지거나, 법적으로 권리를 가지려면 자연인 혹은 법인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죽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을까요? 만약 원본 데이터가 어딘가에 남아 있다면 육체가 유실되어도 인공지능이 죽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자연인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에 불과한 인공지능을 법인이라고 인정하는 것 또한 부자연스럽습니다. 인공지능을 사람의 단체나 재산의 집합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우선 인공지능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해요!
주해
● 유선봉, “동물권 논쟁: 철학적,
법학적 논의를 중심으로”, 『중앙법학』 제10집 제2호,
2008.
●● 계승균, “법규범에서 인공지능의 주체성 여부”,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017.
인공지능의 특성
인공지능은 인간의 조력 없이 스스로 주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강 인공지능’과, 그렇지 못한 ‘약 인공지능’으로 구분됩니다. 둘 중 더 발전된 형태인 ‘강 인공지능’의 특징은 크게 학습능력과 자기판단 능력, 그리고 창작 능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인공지능의 학습 방법에는 대표적으로 딥러닝이 있습니다. 딥러닝은 입력값을 바탕으로 특정 연산을 통해 출력값을 얻으면, 이 값을 평가해 연산을 수정해 가는 방법입니다. 자기판단 능력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수년 전 화제가 되었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있습니다. 알파고처럼 상황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기판단 능력입니다. 창작 능력의 예시는 예술 인공지능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개발한 CAN(Creative
Adversarial Network)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화풍의 그림을 창작했다고 평가 받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개발된 인공지능 화가 ‘오비어스’가 그린 초상화는 경매에서 43만 2500달러에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CAN이 생성한 이미지
오비어스가 그린 초상화
인공지능의 지위
인공지능의 학습 능력, 자기판단 능력, 그리고 창작 능력은 사람과 매우 유사합니다. 법에서 사람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이유는 사람은 법인격을 가지고 있고, 본인의 행동에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자율성을 가진 행위자라는 3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앞서 인공지능이 법인격을 가지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또 인공지능이 책임 의식을 가지는지 여부는 ‘강 인공지능’이 아직 개발되지 않아서 쉽게 판단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는 인공지능의 책임 의식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인공지능의 특성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자율성을 가진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자기판단 능력은 인공지능이 어떤 학습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한 인공지능의 학습은 학습할 데이터를 제시해 주는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결국 어떤 입력값을 받았는지에 따라 인공지능의 판단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이 가진 자율성은 법인격을 가진 사람과는 다른 제한적인 자율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인공지능은 법인격을 가지지 않으며, 현행법상으로 책임의식을 가지지 않지만, 제한적인 자율성을 지닙니다. 이러한 주체를 ‘비인격적 행동주체’라고 합니다. 현행법에서 정의하는 대표적인 비인격적 행동주체는 바로 동물입니다. 동물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고, 그 동물의 보호자 또는 관리자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됩니다. 또 동물은 재산권이나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또 다른 비인격적 행동주체인 인공지능 역시 현행법상으로는 교통사고 등의 범법행위를 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창작하더라도 그에 대한 소유권 및 저작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미래의 인공지능의 지위
아직 인공지능은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사람의 소유물 내지는 재산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완벽한 자율성과 책임의식을 갖추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더 이상 인공지능을 동물과 같은 비인격적 행동주체로 볼 수 없게 될 것에 대비해서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의 지위를 정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1988년 저작권법의 컴퓨터조작물 조항을 개정하면서 처음으로 인공지능이 생성한 저작물(computer-generated
work)을 정의했습니다.●●● 비록 창작물에 대한 인공지능의 소유권 및 저작권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인공지능이 스스로 만든 작품과, 사람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만든 작품을 구분함으로써 인공지능의 창작 능력을 법적으로 인정했습니다.
2016년 유럽연합의회 법사위원회에서는 인공지능의 지위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더 큰 자율성을 가질 것이고, 그에 따라 인공지능의 권리문제와, 인공지능이 일으킨 범법 행위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 로봇에게 전자적 인격(electronic
personhood)을 부여하고, 법적 권리와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직 ‘강 인공지능’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법적 지위를 고민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가까운 미래에 ‘강 인공지능’이 상용화되고 실생활에도 도입될 것이기에, 그때의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인공지능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의를 이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인공지능이 동물처럼 사람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사람과는 다른 또 다른 인격체라고 생각하시나요?
주해
●● 계승균, “법규범에서 인공지능의 주체성 여부”,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017.
●●● William
Cornish/David
Llewelyn,
Intellectual
Property,
Sweet & Maxwell, 2003.
●●●● <http://www.europarl.europa.eu/sides/getDoc.do?pubRef=-//EP//NONSGML+
COMPARL+PE-582.443+01+DOC+PDF+V0//EN&language=EN>, DRAFT
REPORT,
with
recommendations
to the Commission on Civil Law Rules on Robotics,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