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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주일]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참고말씀: 출33:17; 왕상19:19,20; 왕하3:11; 마4:18,19; 8:21,22; 9:9; 13:43; 16:24; 19:21; 눅6:12-16; 요13:14,15; 행19:15; 고전16:18; 고후1:14; 빌4:1; 살전2:7,19,20; 딤전1:2
읽을말씀: 단12:3; 왕상19:19,20; 약3:1; 고전4:15
주제말씀: 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
첫째, 스승과 제자로 만난 것도 귀한 복입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왕상19:19,20)
만남의 복들 가운데 어떤 복이 참으로 귀합니까? 스승과 제자(弟子)로 만나는 복일 것입니다. 성경 속 대표적인 사제지간(師弟之間)들은 무엇입니까? 구약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그의 수종자 여호수아,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隨從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수1:1 하)
선지자 엘리야와 그의 제자 엘리사입니다.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왕하3:11 하) /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왕상19:19,20)
신약의 경우는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눅6:12-16) 사도 바울과 그의 제자 디모데 등이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딤전1:2 상)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믿음을 따라 어떤 스승을 만났으며, 또 같은 믿음 안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까? 원컨대 이 같은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깊으신 경륜과 섭리로 된 것임을 깨닫고 소중하게 유지, 발전시켜나가길 바랍니다.
참고로, 만일 이 같은 사제지간을 우연(偶然)으로 여기면 어찌 됩니까? 형식적인 관계나 사무적인 태도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만남의 복으로 여기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관계를 소중히 여길 뿐만 아니라, 매순간 주어진 여건 내에서 최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선생의 자리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따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3:1)
그러나 선생의 자리에는 응당 무엇이 뒤따릅니까? 무거운 책임감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선생의 자리는 너무도 소중한 직분이므로,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도 따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약3:1 상)
따라서 주의 형제 야고보는 무엇이라고 권면합니까? 선생이 많이 되지 말 것입니다.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3:1 하) 무슨 말입니까? 함부로 선생이 되지 말 것입니다. 즉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너무도 성급하게 교사로 지원하거나 추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에서 정식적으로 ‘교사의 직분’을 맡지도 않은 사람을 함부로 ‘선생님’으로 호칭하거나, 또한 학생들을 지도하는 자리에 경솔하게 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선생의 자리는 무엇이 밑바탕 되어야 합니까? 솔선수범(率先垂範)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참된 스승은 언제나 ‘진격! 앞으로’라는 말 대신에 ‘나를 따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언제나 이런 표현을 즐겨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4:18,19) /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8:21,22) /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9:9)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마19:21)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라고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실제로 주와 선생으로써 언제나 몸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4,15)
혹 지금 학생입니까? 그렇다면 선생의 자리에는 항상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다는 점을 깨닫고, 지금부터 교사의 꿈을 신중하게 잘 키워나가기를 바랍니다. 혹 지금 교사입니까? 그렇다면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처럼, 지금의 무거운 책임감을 잘 견뎌내면서 솔선수범함으로써 우리의 큰 선생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묵묵히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셋째, 영적 부모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一萬) 스승은 있어도 무엇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습니까? 영적 아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고전4:15 상) 어째서입니까? 지식적으로 가르치려 할 뿐, 진짜 아비와 어미처럼 신앙적으로 양육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사된 자는 어찌 해야 합니까? 바울이 그리 했던 것처럼,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가르치지 말고 복음으로써 그들을 낳고 기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하)
물론 제자들 중에는 신앙적으로 아직 유아기 상태에 있는 이들도 있는데, 이런 이들은 어떻게 신앙적으로 지도해야 합니까? 유모(친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기름 같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살전2:7)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아직까지 교사의 자리에만 머물고 있습니까? 이제는 한걸음씩 더 나아가 영적 아비와 어미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즉 주의 복음으로 그를 낳고 또 복음으로 양육해가기를 원합니다. 바울처럼, 당당하게 내가 너를 복음으로써 낳았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하)
넷째, 교사는 하늘나라의 스타들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단12:3)
이처럼 선생의 자리에는 언제나 무거운 책임감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 자리를 계속 떠나지 말고 지켜야 합니까? 교회학교 교사는 모두 하늘나라의 스타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지혜들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한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해주시리라는 말씀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단12:3)
흔히 사람들은 유명 연기자들이나 가수들을 ‘스타’(star)라고 부르고, 또한 그런 지위나 신분에 오르는 것을 별을 뜻하는 ‘star’에 ‘…의 상태’, ‘…의 관념’ 등의 뜻을 지닌 ‘-dom’을 붙여서 ‘스타덤(stardom)에 오른다’고 표현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진정한 스타일까요? 언제까지 그 인기가 유지되고 또 그런 유명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모두 한 때일 뿐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이 땅 위에는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스타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빛나게 하시는 사람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43) 즉 교회학교 교사야말로 하나님 나라에서의 진정한 인기 스타들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단12:3 하)
참된 교사들은 누가 알아주십니까? 하나님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출33:17) 심지어 누구도 안다고 했습니까? 귀신들입니다.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행19:15)
그러므로 참된 교사들의 기쁨이자 면류관은 누구입니까? 그의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4:1) /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고후1:14 중)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2:19,20)
혹 지금 교사입니까? 제자들이야말로 자신의 기쁨이자 자랑의 면류관임을 깨닫고 옳은 데로 돌이키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혹 지금 학생입니까? 교회학교 선생님들 같은 분들을 알아주기를 원하고,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고전16:18) 우리도 언젠가 교사의 자리에 서게 될 그 날을 소망하면서 부지런히 영성과 실력을 기를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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