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을 지켜내는 '독고'씨에게 이런 아픔이 있었을 줄이야.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과 따듯한 소통을 해 온 '독고'씨도 한 때에는 불통의 화신이었다니.
편의점이 편의를 봐주는 곳이 아니라 불편한 곳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 입은 이들이 상처를 치유받는 곳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배가 고픈 것보다 관계가 고픈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상처다. 불편한 편의점에서 상처 깊은 자로 살았던 독고씨를 통해 말 못 했던 상처를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게 된다. 모두 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세상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불편한 편의점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하나같은 특징은 관계의 상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곁에 없다는 점이다. 모두 다 자기 얘기하기 바쁘다. 상대방이 무얼 원하는지, 가족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제각각 바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오히려 위로받아야 할 노숙자가 멀쩡한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스토리에 많은 독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내 얘기를 들어줄 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닐까.
나도 지금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아닐까.
'독고'씨보다 못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도 불편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불편함을 들어줄 1인이 될 수 있다!
독고씨를 살린 편의점 사장님의 삶도 잊지 못할 장면이다. 염 할머님도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퇴직자에 불과하지만 그녀에게도 말 못 할 아픔이 가득하다. 자녀 문제 앞에서는 고장 난 저울이라고 표현했듯이 부모에게 기쁨이자 슬픔의 존재가 자녀인 것이 분명하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소통의 단절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자녀의 얘기를 들어주어야 하는데 내 얘기, 내 생각부터 주입하려고 하니 단절이 생길 수밖에. 자녀 잘 되라고 하는 잔소리지만 자녀들 귀에는 성가신 소리에 불과하다. 독고씨의 처방처럼 삼각김밥에 편지라도 써서 책상에 올려놓아야 할 판이다.
오래간만에 마음의 온도가 따듯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