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때 4년간 봉사하던 교회의 목사님이 오늘 별세했다는 부고를 접하면서 놀라게 된다. 목사님 자신은 87세이니 연세로는 적당히 사셨다고 생각이 된다. 문제는 1녀2남인데 부고에 등재된 자녀명단에 작은아들이 빠져있어서이다. 부친과 동향분이신지라 사촌형님에게 문의해보니 청년때 오토바이사고로 사망했다는 것. 목사의 아들이 오토바이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 부모의 가슴이 얼마나 메어졌을지가 짐작이 간다.
그런데 묘하게도 작은아들을 오래전 교통사고로 잃었다는 대목에서 동정심보다는 또 다른 감정이 찾아왔다. 내가 그 교회에서 봉사할 때 4년을 교제하던 자매가 있었는데, 나의 결혼의 마지막 관문을 가로막는데 주역을 맡은분이 바로 오늘 별세하신 목사님의 사모였다.
나의 부친은 허물이 많은 분이다. 결혼을 세번하셨으니 말이다. 나의 생모는 두번째 결혼상대였다. 첫번째 결혼에서 아들 하나와 딸 둘을 얻었지만 큰아들은 돌이 지나자마자 사망했다고 하였다. 큰아들을 잃은 슬픔이 컫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연이어 딸을 낳게된 큰어머니는 둘째딸을 낳은 후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게 되고 딸을 거들떠도 보지않자 할머님이 섬에 사시는 큰댁에 보내 양육을 하셨다. 어떻든 둘째 누님 출생후 발병한 정신질환으로 별세를 한 후 부친은 나의 생모와 재혼을 하셨다.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사업체를 친척 조카들에게만 맡기고 교회에만 빠져 결국은 거액의 채무를 지게되고 모친은 부친과 별거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천에서 부산으로 큰누님을 데리고 이주하신 부친은 이웃에 사는 여성과 세번째 결혼을 하셨던 것. 부끄럽기 짝이없는 나의 가정사이다.
내가 신학교 졸업을 앞둔 시기에 목사님의 조카 둘이 교회를 방문하였다가 나를 발견한 후 우리 집안에 얽힌 뒷이야기를 폭로하였고 조카들에게 들은 나의집 이야기를 사모가 교인들에게 발설해 온 교회에 나에대한 부끄러운 소문이 퍼졌고 그렇잖아도 나를 못마땅히 여기던 자매의 부모는 결사반대에 또 하나의 큰 동력을 얻게돼 결국은 나 스스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시골교회에 담임전도사로 나가있던 나로서는 서울에 사는 자매와 자주 만날 수 없었고 뜸하게 만날 때마다 엄청난 거리가 형성됨을 인지해야 했고 결국은 내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는 명목으로 결별을 선택하고 말아야 했다. 총각전도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여신도는 출석이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
남편을 잃은 사모님의 심정보다 작은 아들을 잃은 사모님의 심정이 어떠 셨을까를 생각하면서 자신 때문에 상처받은 힘없는 전도사의 아픔에 대해서 어떤 느낌이라도 느꼈을까를 생각했으니 참으로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