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시
장원 서보람 세명고 2학년
차상 장효광 대동고 1학년
차상 김효진 영일고 1학년
차하 신현경 영일고 1학년
차하 김환일 포항제철공업고 1학년
가작 김동우 대동고 1학년
가작 김토현 대동고 1학년
가작 이동은 대동고 1학년
가작 이재혁 대동고 2학년
가작 김아람 동지여자상업고 1학년
가작 박미진 동지여자상업고 1학년
가작 윤정환 세명고 3학년
가작 강다은 영일고 1학년
가작 권유진 영일고 1학년
가작 백현정 영일고 1학년
가작 우연숙 영일고 1학년
가작 전은경 유성여자고 1학년
가작 김동욱 포항중앙고 3학년
가작 정영우 포항중앙고 2학년
가작 이미경 포항중앙여자고 2학년
고등부 산문
장원 전민영 영일고 2학년
차상 양종철 포항제철공업고 1학년
차하 이은지 영일고 2학년
가작 서연우 영일고 1학년
가작 이두환 포항제철공업고 1학년
가작 이정민 포항제철공업고 1학년
가작 박상일 포항중앙고 1학년
가작 윤지훈 포항중앙고 2학년
중등부 시
장원 이해룡 대도중 1학년
차상 김태우 대흥중 2학년
차하 허현진 흥해중 2학년
가작 권오석 대도중 2학년
가작 김현진 대도중 3학년
가작 박현제 대도중 3학년
가작 오효진 대도중 1학년
가작 이도윤 대도중 2학년
가작 이상열 대도중 3학년
가작 이재석 대도중 3학년
가작 이창원 대도중 3학년
가작 이미경 동지여자중 2학년
가작 서혜림 신흥중 1학년
가작 배유리 영일중 3학년
가작 서혜준 영일중 3학년
가작 안보미랑 영일중 2학년
가작 이다인 영일중 1학년
가작 조은아 영일중 3학년
가작 권은지 오천중 2학년
가작 김도경 오천중 1학년
가작 정다운 오천중 2학년
가작 이지현 청하중 1학년
가작 권선례 포항제철중 1학년
가작 윤주호 포항제철중 1학년
가작 장민지 포항제철중 3학년
가작 정수정 포항제철중 2학년
가작 최윤정 포항제철중 3학년
가작 박희선 항도중 3학년
가작 신지혜 항도중 3학년
가작 손나래 환호여중 3학년
가작 정유정 흥해중 1학년
중등부 산문
장원 정은영 포항제철중 3학년
차상 전소현 영일중 2학년
차하 신혜성 포항제철중 3학년
가작 김병철 대도중 1학년
가작 장문규 대도중 3학년
가작 하예함 대도중 3학년
가작 권혜인 동지여자중 1학년
가작 김지현 동지여자중 3학년
가작 김하형 동지여자중 1학년
가작 김태웅 영일중 1학년
가작 권영은 청하중 2학년
가작 김은영 포항제철중 3학년
가작 박지현 포항제철중 3학년
가작 이미진 포항제철중 3학년
초등부 시
장원 안동현 연일형산초 2학년
차상 장예소나 동해초 6학년
차상 송수혁 장량초 2학년
차하 이준영 달전초 1학년
차하 권은희 양학초 3학년
차하 이형민 양학초 3학년
가작 나호은 구정초 2학년
가작 박아람 구정초 2학년
가작 이상목 대흥초 5학년
가작 김근희 동해초 4학년
가작 박소희 두호남부초 3학년
가작 이지원 두호남부초 2학년
가작 김민수 두호초 1학년
가작 우성현 두호초 3학년
가작 김보건 송라초 1학년
가작 마재정 양학초 3학년
가작 김나연 용흥초 5학년
가작 김제완 용흥초 3학년
가작 정세엽 용흥초 3학년
가작 권승일 이동초 1학년
가작 하주미 포항제철지곡초 1학년
가작 금륜경 이동초 4학년
가작 이재훈 이동초 2학년
가작 김동건 장량초 4학년
가작 김태형 장량초 4학년
가작 오보라 장량초 5학년
가작 오지원 장량초 2학년
가작 오승탁 죽도초 3학년
가작 오재윤 포항제철동초 6학년
가작 박진영 포항제철서초 6학년
가작 손경환 포항제철서초 2학년
가작 손슬기 포항제철서초 6학년
가작 윤지영 포항제철서초 5학년
가작 전성원 포항제철서초 1학년
가작 오재욱 포항제철지곡초 2학년
가작 이상준 포항제철지곡초 2학년
가작 이현지 포항제철지곡초 1학년
가작 김지윤 흥해남산초 1학년
첩 따라가 돌아오지 않는 애비
식당 주방에 웅크려 담배를
빨던 어머니
타지로 공부 떠난 동생
텅빈 창문 앞
어깨가 기울어진 모습
"야! 김치해야지."
어릴 적 사진을 벽면에 걸어놓고
임대아파트 홀로 계신 어머니
피곤에 찌든 아내와 함께
풀밭에 뒹굴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가족사진 찍자고 졸라 찍은
허전한 칼라사진
사진기로만 찍지 않으렵니다
당신들과 껴안을 수 있을 때
가슴속에 당신들을 담아
내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을 겁니다
고등부 시 장원 서보람 세명고 2학년
태풍 매미
비가 그쳤다
바람이 멎었다
아버지의 근심어린 얼굴엔
밤새 깊은 주름이 하나 더 생겼다
물에 젖은 세간을 내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에
그들을 내 맡긴다
시집올 때 해 오셨다는
청홍 비단 이불서 배어나오는
붉은 흙탕물에
어머니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흥건하다
비가 그쳤고
바람이 멎었다
비에 다친 포도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아버지의 억센 손길을
울부짖으며 어머니가 말린다
아버지는 비에 희망을 다쳤고
어머니는 바람에 보람을 다쳤다
비는 그치고
바람은 멎었다
어머니는 쓰러진 고추를 세우고
아버지는 읍내 농협에 갔다
그래도 늬들 학교는 보내야지 않냐고
어머니는 깜박깜박 형광등 아래서
눈물을 훔쳤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 길은 있다고
입에 풀칠은 못해도
자식 대학은 보내리라
다짐하듯 웃음 짓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앞에
비는 그치고
바람은 벌써 멎었다
중등부 시 장원 이해룡 대도중 1학년
가을
전력질주 다하여
다달은 곳이
우리집 마당이구나
석류알이
쩍소리나게 갈라지고
마당구석 땡칠이는
감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다
에게게!
지난 봄에 새로 심은 은행도
노랗게 물들었네
너까지 왜 그래?
소나무의 푸른빛이
지난 여름과 다르구나
이게 다 가을 너가 저지른 짓이지?
초등부 시 장원 안동현 연일형산초등 2학년
사과
내가 쑥쑥
키가 자라는 건
엄마의 따뜻한 말과
아빠의 웃음 덕분이지요
사과가 쏙쏙
가지에서 자라는 건
손이 따뜻한 농부 아저씨와
햇님의 사랑 덕분이에요
쑥쑥 자란
내 얼굴은
아빠를 닮았구요
쑥쑥 자란 사과는
방긋 웃는 햇님을 닮았어요
사과 한 입 베어 먹으면
햇님 한 입 베어 먹고
나도 이제 햇님을 닮았을까요?
일반부 산문 장원 지성이
가을 산행
탐스럽게 익은 햇살이 내리쬐는 가을 한 낮, 산길에 핀 들국화를 본다. 품위 있는 여인의 미소보다 가슴깊이 번져오는 여운에 나는 발길을 멈추고 꽃무리 앞에 서 있었다.
가파른 산등성이 위에 뿌리를 내린 채, 온몸으로 바람을 막고 선 흰빛 들국화 무리. 어쩌면 지금 병상에 누워 계신 시아버님 또한 비바람의 세월을 한송이 들국화처럼 견뎠을 것이다.
그 날 산행길은 멀고도 힘겨웠다. 갑작스레 위중해진 병으로 생사를 오가고 있는 시아버님의 모습을 끝내 가슴 한 켠에서 지울 수 없었다.
결혼한 지 이제 삼 년 째, 접어드는 풋내기 며느리가 육십 평 생 살아온 시어른의 속내를 다 알 수 있을까. 내게 비춰진 아버님의 모습은 오래된 사진첩 속의 흑백사진처럼 잘린 조각들일 뿐이다.
내 짧은 기억 속에서 그분은 언제나 일개미처럼 부지런했다. 남편이 일찌감치 일을 벌였다 그만 둔 대형마트 일. 시아버님은 쓰러지실 때까지 손에서 그 일을 놓지 못했다. 그리고 삶의 고달픔이 그분의 가슴을 넘던 어느 날, 간암 말기라는 치명적인 선고를 받았다.
나이 차 나는 형님 밑에 늦둥이 동생으로 태어나 일찌감치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시절부터 고학을 하며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아버님.
밥 지을 때, 자칫 흘러내리는 쌀 몇 톨도 아까와 하실 만큼 몸에 밴 그분의 근검절약 정신도 치열했던 삶의 유산이었으리라.
아버님은 냄비에 자작자작하게 눌어붙은 찌개 한 가지도 다음 끼니 때 먹을 테니 버리지 말고 꼭 내오라 이르시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버님, 아끼는 것도 좋지만 평생 그리 옹색하게 사셔서 뭐 하시려구요, 여행도 다니시고 여생, 조금이라도 즐기면서 사세요' 라고 간곡히 여쭙고 싶었다.
자린고비 행색을 하며 매사에 빈틈없이 꼼꼼한 그분을 나는 속으로 좁쌀영감 같으신 분이라 흉보기도 했다. 아버님이 병석에 누우시면서부터 그 좁쌀영감님을 그리워하게 될 날이 올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아픈 기억만이 가슴 깊이 새겨질 줄은 몰랐다.
작년 겨울, 항암 치료를 받을 목적으로 서울로 갈 채비를 하시던 아버님을 도와드리다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짐을 꾸리다보니, 변변한 겨울 내의 한 벌 찾을 수 없고, 그 흔한 양말도 한결같이 헐겁게 목이 늘어나 있었다. 허름한 옷가지들이 큰 병을 얻게 되기까지 나날이 지쳐갔을 그분 고달픈 삶의 흔적 같았다.
아버님은 쉴 새 없이 일로 바쁘신 데다 말수가 적으셨다. 나 역시 살가운 며느리는 못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마음 속에는 시부모님에 대한 넘지 못할 벽이 있었다.
신혼 초부터 철모르는 며느리에게 무거운 짐만 지우시는 시어머니 곁에서 아무 바람막이도 되지 못하는 아버님을 나는 때로 야속하게 느꼈다. 인연이 무엇인지 순탄치 못한 조건 속에서 시작했던 내 결혼 생활은 넘어도 끝이 없는 바위고개였다. 서둘러 일을 벌이다 곧잘 손해를 보는 남편도 내 마음의 언덕이 되질 못했다.
결국, 지칠대로 지쳤던 난 시어른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더 이상 내 삶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고 선전포고 했던 것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아버님께 나는 못난 며느리였다. 내 삶이 힘들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병 수발 한 번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조차 어쩔 도리가 없어 마지막 임종만을 지켜야 하는 현실을 아시기나 하는 걸까. 아버님은 반딧불처럼 깜박이는 세상과의 인연 줄을 놓지 못하고 계신다.
이번이 고비라고, 꼭 나을 거라고 복수 찬 배를 하시고도 힘겹게 미음을 넘기시고 더욱 고통스러워하신다. 지나온 세월만큼 모진 고통으로 어금니를 물면서도 며느리에게 아픈 허리부터 나으라며 몇 번 씩 당부하는 아버님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잊는다.
며칠 전 주사바늘 자국으로 온통 힘줄이 붉고, 피멍이 든 그분의 손을 처음으로 꼭 잡아보았다. 때로는 이처럼 연민스러운 게 삶이고, 사람인 것을 나는 왜 따뜻한 가슴으로 세상을 껴안지 못했던 것일까.
신혼 초 빠듯한 살림에 헐값으로 산 와이셔츠 한 벌을 며느리에게 선물 받고 어린 애처럼 좋아하던 아버님 모습이 떠오른다. 언젠가 변변치도 않은 그 옷을 문득 차려 입으시고 보기 좋으냐며 내 앞에서 천진하게 웃던 아버님. 힘드시냐고 살갑고 손 한 번 잡아드렸어도 좋아하셨을 그 분. 이제는 때늦은 후회와 죄스런 마음이 밀려올 뿐이다. 가을 한 낮 산행길에는 모진 인내 속에서 아름다운 것들만이 덩그러니 웃음 짓고 있다.
아픔조차 안으로 곱게 삭이며 어머니 품처럼 너그러워지는 계절. 나 또한 세상 모든 것들을 연민스러워하며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리라. 때로는 척박한 토양 위에 뿌리를 내린 채, 한송이 들국화처럼 온몸으로 껴안는 것이 우리의 삶일 지라도......
고등부 산문 장원 전민영 영일고 2학년
먼 훗날
"따르릉" 아침부터 날깨우는 소리는 다름아닌 전화 한 통화가 걸려오는 소리이다.매일 아침 부지런히도 전화를 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내 친구. 난 이전화소리가 울리지 않으면 일어날 수 가 없다. "이 녀석아! 아직도 주무시냐?" "아니 아직까지 자고 있으면 그게 인간이냐?" 사실 난 이 전화 덕분에 이제 방금 눈을 떴다. 그리고 전화 통화가 끝나기도 전에 교복을 입고 이불을 갠다. "난 지금이라도 뛰쳐나갈 수 있어." 난 정말 친구 앞에서 연극아닌 연극을 매일 아침 하는 것이다 우린 매일 같이 함께 학교로 향한다. 친구의 집과 우리 집은 불과 3분 거리. 우린 그 3분 거리의 중간 지점인 전봇대가 늘씬하게 서 있는 갈림길에서 만난다. 하늘에 마치 거미줄이라도 쳐놓은 듯 전깃줄이 널려있고 그 위엔 참새들이 조잘조잘 떠들어댄다. '아 시끄러.' " 오 민영이 내 덕에 일찍 나왔군." 친구는 갈림길 중 내가 나온 길과는 다른 쪽에서 모습을 들어내었다 "아침 밥도 못먹고 띄어 나왔어." 우린 쓸데없는 이야기를 잘도 신나게 말하며 학교로 향했다. 0교시가 끝나고 배는 계속 꼬르륵 소리만 반복했다. " 승화 매점 좀 같이가." " 어 미안 나 산악부 모임 가야해."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 매점에서 아침을 때우고 왔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배를 채우고 매점 문을 나서는데 승화가 보였다. 산악부 모임을 간다더니 모임은 가지 않았는지 다른 친구들과 과자를 먹으며 웃고 즐기고 있었다 '저 인간 오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거짓말까지?' 순간 난 친구가 얄밉게 느껴졌다. " 최승화 산악부 모임은 다른 부서 애들이랑 가지냐?" 이런 내 행동에 친구는 전혀 미안한 기색없이 말을 쏘아댔다. "왜 보자마자 화부터 내? 산악부 모임 취소되어서 온건데." 순간 난 내가 생각했던 입장과는 반대로 내가 미안해야 할 입장이 되었다. 그래도 왠지 쏘아대는 친구의 말에 울컥해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더 다투기만 했다. 우린 하루종일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사과할까?'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이내 사라졌다. 같이 부대낄 시간이 많다면 은근슬쩍 미안하다는 말을 해보겠지만 승화는 요즘 산행대회 때문에 교실에 있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난 하루종일 아무말도 건네지 못한 체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민영아?" "응" 친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 산악부에서 말야......" 미안하다는 말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승화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부서 이야기만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늘은 운동장을 스물다섯바퀴나 돌았어" 자기가 운동장을 얼마나 돌았는지 또 산악부 선배들이 자기에게 농담을 했다느니 온 이야기가 산악부서에 관한 말이었다. " 너 혼자 부서 이야기하면 재밌고 즐겁니?" 난 친구에게 막 짜증을 부렸다. 승화는 미안하다며 잘들어 가라는 말을 내게 했지만 난 인사를 무시한 채 집으로 향했다.' 내가 좀 심하게 굴었나?"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었지만 나와 싸운 일에 대해서 태연하고도 태평스런 모습 때문에 짜증이 났다. '에잇 모르겠다.' 난 마지막 인사까지도 씹어 버린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뒤척이다 늦게 잠이 들었다. '내일 아침에 과연 전화가 걸려올까?' "따르릉" 오늘도 변함없이 전화가 울렸다. "전민영 어제 내가 뭐라했다고 시위하는 거냐? 빨리 일어나라구." 전화기 속 친구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리고 웃음소리도 썩여있었다 순간 미안함이 크게 앞섰다 '자식 미안하다. 이소심쟁이 친구 때문에.' 우린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먼 훗날엔 두 갈림길이 하나가 되는 곳에서 만나겠지? 난 오늘도 신나게 뛰어간다. 우리가 만난 갈림길에서 말이다.
중등부 산문 장원 정은영 제철중 3학년
단풍
너덜너덜한 표지. 누런 빛의 속지, 언뜻언뜻 눈에 띄는 눈꼽만한 좀 벌레.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향기까지 그 속에 코팅된 단풍잎 하나 누가 봐도 70년은 넘었을 법한 한켠의 작은 책이있다. 미래의 작가를 꿈꾸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책이다. 이 책이 내 소유가 된지도 어언 1년이 되어 가고있다. 책꽂이의 많은 책들 속에서 세대차이나는 저 책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건 그 책 속의 단풍잎과 함께 묻어있는 내 지난 추억과 은사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3년전, 중학교 1학년이 였던 나는 집안의 불화로 인해 방황하게 되었다 행복한 집에서 넉넉하진 않지만,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나였다 그러나 행복한 만큼 불행이 온다했던가? 뺑소니 차량으로 인해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매일 눈물로 지새우셨다. 그때 당시의 4학년인 동생은 엄마의 눈물을 보며 작은댁으로 보내졌고, 나는 그렇게 갑자기 닥친 불행에 너무 당황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매일을 눈물로 보내며 궁상떠는 엄마가 보기 싫었고 아무런 예고 없이 하늘로 간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왜 내게 이런 불행을 주는 지 세상이 싫어졌다. 그때부터 방황하는 생활을 보내면서 집에서 나왔다. 몇 번이고 엄마와 부딪히면서 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당연히 학교에는 충실하지 않게 되었고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였다. 학교에 결석하는 날도 집에 늦게 들어가는 일도.......날이 가면서 더욱 잦아졌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도 징계를 당하고, 담임 선생님과의 부딪침도 많아졌다. 세상이 싫다는데 도대체 왜 나를 그냥 두지 않는지, 여러 번 목숨 끊을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린 동생이 떠 올랐고 두려워졌다 악순환이 계속 되면서 점점 나쁜길로 빠져들었고, 나쁜 아이들과 사귀니, 나와 비슷한 아픔으로 방황하고 있는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밤거리를 방황하며 갖가지 나쁘다는 짓은 다하고, 세상과 등진 채 그렇게 내 인생의 나쁜 행동은 그때 다 하였을 만큼 허무한 나날을 보내었다. 학교에선 더 이상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날 포기했던 것이다. 그러길 바래었던 것이지만, 막상 그렇게 되고 나니 서운하고 야속해졌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내가 제자리를 찾지 못 하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식으로 나는 2학년이 되었고 3학년이 되었다. 1학년 때와 달리 선생님들은 그냥 우리학교 학생 문제아 그저 지나가는 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 하셨다. 그런 무관심이 더욱 내 모습을 타락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리고 이런 지긋지긋한 학교생활도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어느날. 정규 수없이 끝나고 집에 가려 할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 날 찾아오셨다. 교사 생활을 시작한 26살의 나이에 우리 반을 담당하셨고, 선생님의 기억 속에 최초의 문제아 제자로 기록되는 나였다. 서른도 안 되는 여린 선생님. 그나마 내게 가장 큰 관심을 주신 분이시다. 교문 앞에 모여 나를 기다리던 친구들을 돌려보내고 나를 선생님의 댁으로 데리고 갔다. 무슨 생각인지 엄마께 전화를 걸어 내일까지만 자신이 나를 돌보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선생님은. 우선 내게 자신의 옷을 주며 교복을 벘게 했다. 그리고 비디오를 빌리러 가자 하셨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런 선생님의 말씀을 나는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마트에 들러서 여러 가지 먹거리도 사고 같이 사는 사람인 듯 생활하였다. 선생님 댁에 돌아와서 우리 둘은 뚝 떨어져서는 비디오를 보며 울고 웃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따뜻한 찌게와 밥. 음식을 하는 내내 내게 가지가지 일을 시키시더니, 밥상에 앉아서는 엄마처럼 나를 챙겨 주셨다. 계속 밖으로 나오려는 눈물을 참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시간이 흘러서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고. 선생님은 지난 3년간의 나를 보신 모습을 차분히 이야기해 주셨다. 1학년 처음에 들어온 내가 너무 순수해 보였단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방황을 시작한 나를 바로 잡아 이끌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등을 돌려 말없이 눈물을 삼켰다. 다음날 아침 아직 7시도 안된 시간에 나를 깨우는 선생님 세수도 하지 않은 나를 보고 다짜고짜 나가자고 하셨다 어디로 가는지...세수도 못한 나는 짜증이 났다. 차에서 내린 곳은 10월 가을 하늘 아래에 아름다운 빛깔들로 물든 가을 산이었다. 선생님은 내 손목을 잡더니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한 10분쯤 뛰었을까 그런 선생님이 너무 귀찮았다. 선생님께서는 "수연아. 여기서 제일 예쁜 단풍잎을 하나 뜯어봐"
"네?" "어서! 응?" 나는 벌레 먹은 흔적도 없는 예쁜 단풍잎을 떼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를 집에 데려다 주시고는 가버리셨다. 너무 많은 일이 이틀동안 일어났다 난 너무 황당해서 멍하니 10여분을 나무처럼 서 있었다. 일주일 후, 책상 속에 무언가가 있었다 오래된 책 처음엔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리려 했지만 그것을 펴보았다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 이란 제목, 흥미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장의 다른 책장과 다른 새 종이에 적혀있는 말 '수연아, 가장 안타까운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을 잊고 있는 사람이야. 내일은 모두에게 있어.' 이 한마디가 나를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게 했다. 어떤 까닭인지 3년이란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단 하루 선생님의 사랑이 나를 물들게 했다 높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그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빛으로 물든 단풍처럼 선생님은 나를 그 책 속에 끼워져있는 단풍잎처럼 물들게 하였다.
초등부 산문 장원 이소예 이동초등 6학년
사과
맑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 우리 학교 6학년 학생들은 큰 꿈을 키우기 위해 여행은 떠났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은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그 곳을 견학할 수 있을까, 강화도에는 어떤 볼거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전날은 잠이 오질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강화도로 가는 도중 기대에 차있는 내 눈에 과수원의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사과나무와 배나무인걸로 보아 가지마다 사과와 배들이 주렁주렁 열려있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몇 남지않은 열매들만이 종이에 싸인 채 나무의 팔에 달려있었다. 가는 길에 이와 같은 과수원을 여러군데 볼 수 있었는데 하나같이 10개도 안되어 보이는 열매만으로 몸을 장식하고 있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나는 가는 동안 창 밖을 보며 왜 나무마다 빈 가지가 더 많은 걸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들 이번 태풍 '매미'가 애궂은 열매들을 모조리 낙과 시킨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미'라는 말은 얼핏 들었을 때는 여름철 내 단잠을 깨우는 '맴맴' 소리를 내는 그런 곤충인 것 같지만, 이번에 북한에서 태풍이름으로 탄생한 이 '매미'는 우리에게 재산피해와 인명피해 대형 크레인 11개를 도미노인 마냥 무너뜨린 거대한 힘을 가지고 해만 끼치고 간 무서운 이름이다. 이렇게 큰 피해가 한둘이 아닌데 조그마한 나무들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소냐, 이번에 나무에 열매가 별로 없는 까닭도 이 끔찍한 매미가 다녀간 까닭인 것이다. 1박 2일의 길고도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학교 도서실에서 우연히 요리책을 펼쳤는데 그 책에서 사과, 굴등의 과일로 근사하게 상을 차린 사진을 보았다. 과일이 그렇게 멋진 모습으로 변신다하니 사진이라 새콤달콤한 그 맛을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어쨌든 과일이 그런 놀라운 형태로 변하다니 놀랍다. 하지만 올해는 '매미' 때문에 신선한 과일들이 상에 올라가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매우 안타깝다. 그러면 거대한 자연 재해로 과일농사를 망친 분들의 마음은 오죽하랴. 얼마전, 어머니께서 "올해는 사과값이 많이 오르겠구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그럼 올해 가지마다 빠알갛고 동글동글한 사과가 탐스럽게 열린 나무는 보기 힘들겠다고 걱정했더니, " 물론 작년보다는 사과 수확이 적겠지만 아삭하고 맛있는 사과를 조금은 맛볼 수 있을꺼야."라고 말씀하셨다 '올해는 몰라도 내년에는 절대로 매미같은 태풍이 불지 않아 우리도 더 달콤한 사과를 먹을 수 있게되고 과수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가득했으면.....'
정말이지 내년부터는 항상 가을이 오면 꿀맛 같은 사과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