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크(1882-1963)
주택 도장업자(인테리어)를 아버지로 아르장튀유에서 태어나서 1900년에 미술공부를 하러 파리에 갔다.
1906년에 레스타크의 집을 그렸다.
야수파의 전시회인 ‘살롱 도톤느’전에 참여하였으나 그는 야수파 그림을 좋지 않게 보았다.
1907년에 피카소를 만난 후로는 입체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
살롱 도톤느 전에 출품한 그림을 두고 기이한 정육면체를 그려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평을 들었다. 이 평에서 입체주의라는 말이 유래하였다고 하였다.
1911-12년에 피카소와 같이 작업하면서 꼴라쥬를 시도하였다. 파피에 꼴레는 브라크가 제일 먼저 시도한 기법이라고 하였다.
1915년에 심한 머리 부상을 하여 제대를 한 후에 1917년에야 다시 붓을 잡았다. 그후로 많은 작품을 그렸다.
1948-55년 사이에 그린 8점의 연작 ‘아틀리에’를 그의 가장 뻬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1948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최고상을 수상ㅇ하였다.
후안 그리스(1887-1927)
스페인 출신으로 1906년에 파리로 와서 피카소와 친하여졌다.(에콜 드 파리의 일원이 되었다.) 1911년에 그린 ‘파이프를 문 남자’가의 그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정물화를 많이 그렸다. 술잔, 병, 접시를 자세히 관찰한 후에 강렬한 광선을 이용하여 중량감을 상실한 체 투명한 수정의 표면과 같이 표현하였다.
1912년에 앙데팡당전에 ‘피카소에 바침’이라는 그림을 출품하므로 화가로 데뷔하는 동시에 입체파 화가가 되었다. 피카소, 브라크, 그리스를 입체파 3총사라고 말한다.
1914년부터는 파피에 콜레 기법을 이용하여 강한 색채와. 장식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는 너무 추상으로 흘러가지 않고 구상을 지키는 그림을 그렸다.
후안 그리(1887-1927)
스페인 마드리드 추신으로 조형예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06년에 파리로 가서 피카소가 있는 건물에 살면서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몇 년 간은 잡지에 삽화를 그리면 생계을 꾸렸으나 1910년 경부터 정식으로 화가의 길로 뛰어 들었다. 칸바일러(화상으로 입체파 화가(특히 피키소)를 많이 후원하였다.)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1912년에는 파피에 꼴레 기법을 응용하여 종합적 입체주의 작업을 하였으나. 건강이 나빠서 40세에 요절하였다. 1912년의 ‘피카소에 받침’이라는 작품이 정식 데뷔작이다. 피카소를 무척 존경하였으나 자신의 특징을 표현하교자 노력하였다. 작품을 좀 더 이론적으로 구성하였다.
페르낭 레제(1881-1955)
프랑스 노르망디의 아르장티 출신으로 건축가의 도제의 수업을 받았다. 제도가로 활동하였다. 파리에 와서 장식학교를 다녔다.
1909년부터 입체파 화가들과 교류하였다. 1913년에 칸바일러와 전속 계약을 하였다.
레제의 작품은 관모양의 곡선이 피카소보다 브라크의 직선 형태와 대조된다.
1차 대전에 참가한 후에 제대하여 장식미술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또 기계 부품을 즐겨 그리면서 기계 미학을 잘 보여 주었다. 정밀하고, 매끄럽게 기계를 그린 그의 그림에는 정적인 분위기가 특성으로 나타난다.
2차 대전 때는 미국에 체류하였다.
1차 대전 전에는 주로 입체 미술에 빠져 있었으나 이후에는 기계 문명과 관련된 주제, 또 프로레탈리아적인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로베르 들로네(1885-1841)
파리 태생으로 장식미술을 공부하였다. 1904년에 본격적인 미술활동을 하였다. 1906년에는 신인상파의 점묘법에 관심을 가지면서 색채 이론을 깊이 공부하였다. 그는 대조되는 인접한 색채들 간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그의 그림은 색채 대립, 배열이다) 입체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전시회에도 참가하였다.
이폴리네느는 들로네, 레제, 피카비아, 뒤샹을 오르피스트((Orphist)라고 불렀다. 색채에 관심이 많았다는 뜻이다. 미술계에서는 이들의 미술을 오르피즘( Orohism) 이라고 말한다. (오르피즘은 다음에 한 번 더 소개하겠습니다.) 들로네는 세잔느의 미술에서 입체주의로 전환하였다고 말하였다.
에펠탑의 연작에는 대상물형태가 남아있는 입체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창문의 연작(1912)에서는 형태를 무시하고 색채를 대조하고, 병렬시키서 부르덟게 연결하였다.
그의 그림은 리듬과 역동성, 움직임을 표현함으로 미래주의와도 맥이 닿는다.
1913년 이후의 작품은 더 이상 입체주의라고 할 수 없을 독자적인 길을 걸으면서 추상으로 흘러간다.
입체주의를 추종하여 시각 세계를 조형적으로 단순화시키는 방법을 배웠다. 1913년에 잠시 비대상 작품을 시도하였으나, 그후에는 자연세계와 연결하여 그리기를 주장하였다.
로베르 들로네
들로네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화가는 아니다. 쇠라의 영향으로 색채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1909년에 ‘셍 세브랭’ 교회의 연작 그림에서 자신의 방법을 찾아 나셨다. 여기서 빛의 효과와 색채를 상호 연결시키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입체파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1913년에 열린 살롱 데쟁테팡당의 전시회에 참여하였다. 고딕 건물인 이 성당 그림에는 아직도 원근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후 에펠탑 연작을 그리면서 대상과 공간이 완전히 통합하고, 전통적인 원근법은 없어진다. 탑의 전체 구조는 주위 공간과 광선의 움직임에 따라 파편으로 해체된다. 이것을 다시 역동적인 리듬으로 재구성하였다. 형태를 보면 다시점의 사용에 의해서 연결이 끊기고, 부숴진다.(입체주의 양식이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광선이다. 광선에 의해서 견고하게 보이던 요소들은 해체되어지고,,변형된다.
‘파리시’는 세 누드와 창밖으로 본 파리시가 복합된 살롱 출품 작품이다. 전체적인 파편화와 기하학적인 형태에서 입체주의 양식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아직도 색채를 점묘로 사용하고 있다.
곧 이어 나온 창문 연작은 순수색면으로 광선과 공간을 창조하려는 시도였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동요하는 광선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표현하려 하였다. 이 세계는 외적인 세계와는 상관없이 순수한 회화 요소, 특히 색채를 병렬시키고, 대조시키므로 브드럽게 해주었다. 한편 그의 그림에는 강렬한 역동성과 움직임이 나타나므로 미래주의 그림과도 통한다.
이렇게 색채를 이용한 그림은 칸딘스키와도 상통하였다.
1913년 이후로는 더 이상 입체파라고 할 수 없는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오르피즘(Orphisme)
1912년에 몇 몇 입체주의 화가들에 의해서 일어난 미술운동이다. 엄격하고, 지적인 입체주의에 대해서 서정적 요소를 도입하려는 시도로 펼친 미술운동을 지칭한다. 들로네, 뒤샹, 피카비아. 레제, 쿠루카 등이 여기에 속하며, 아폴리네르가 한 말이다.
자율적인 색채 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순수 색면들이 서로 침투하고, 회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원판’을 그리므로(들로네가) 자연에서 독립한 순수 색면의 작용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