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따뜻한 날입니다. 겨울답지 않게요. 추위라는게 첨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그런 기분마저 듭니다. 불경기라고 하지만 아직 시장경기는 엉망이 아닌가 봅니다. 흥정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생명>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거든요. 누군가 그랬지요. 평화는 생명과 같다고. 사람을 죽일 수는 있어도 생명은 죽일 수 없다고... 참, (평화)로운 하루입니다.
새로 생긴 극장엔 빠짐없이 커플석이라는 게 있습니다. 연인끼리 와서 보기 좋게 의자와 의자 사이의 손걸이를 없앤 좌석이지요. 표를 살 땐 원하는 좌석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혼자와서 웬 커플석이냐구요? 글쎄요. 어쨌든 표를 두장 샀거든요. 가끔 이상하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혼자 보는 영화가 더 재밌기도 해서요. 널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편안히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과소비(?)를 한 셈이지요. 가만, 앞의 앞 커플석에도 고교생 하나가 혼자와서 커플석을 차지하고 있네요. 세상엔 비슷한 사람들도 있긴 한가 봅니다. 녀석, 귀여운데요. 호호. 얘기가 넘 딴데로 흘렀네요. 이제 영화를 볼까요?
오시이 마모루의 <<아키라>>를 첨 접한 건 대학을 졸업하고 한창 백수생활을 할 때였죠. 무슨 동호회에서 여의도에 한 장소를 빌어 제패니메이션 페스티벌 같은 걸 할 때였는데, 운이 좋았어요. 담날 바로 당국에 걸려서 행사가 취소 되었거든요. 쩝.
정서에 안 맞는 몇몇 장면-내장이 막 쏟아지는 장면-때문에 불쾌하기도 했지만, 그때도 생각했습니다. 참 견고하구나, 저 사람의 세계는... 희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끝간데 까지 사람을 밀구 가는구나. 저런 걸 염세적이라구 하는 걸까? 역설인가?
<인랑>에서 역시 별로 달라진 건 없더군요. 난 애니메이션 기법이나 모 그런 건 잘 모릅니다. 그냥 줄거리를 따라가며 영화를 보지요. 그는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공각기동대>>에서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무엇이 그를 이렇게 긴 정체성의 여정으로 끌어들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작품에선 좀 다른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왜 하필 늑대였을까? 왜 빨간모자소녀의 이야기를 사용했을까? 그의 여정에 갑자기 동화가 끼어든 이유는 뭘까?
흔히 알고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형제의 빨간모자소녀 이야기는 많이 윤색된 것이긴 하지요. 늑대에게 모두 잡혀 먹은 것으로 끝나야 하는데. 그게 작가의 세계관과 더 가깝기도 하고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조건이 뭐라구 생각해? 이런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부피의 질문이 화면 가득 밀려 오더군요. 주인공 후세는 제목처럼 인간늑대지요. 늑대에 가까운 그가 초반에 갑작스레 인간성을 보이지요. 그렇지만 결국 그의 본성은 늑대입니다. 빨간모자소녀에 나오는 늑대가 아무리 사람으로 변장했다 해도 늑대인 것처럼. 후세는 스스로를 늑대로 받아들여요. 자신의 인간성에 의문을 갖지만 그뿐이지요. 선택해버렸거든요. 인간과 늑대 사이에서의 정체성을.
그렇게 끝났습니다. 영화는. 애니메이션은 라이언 킹이나 타잔같은 게 짱이라고 뒤에서 그러네요. 나도 <인어공주>는 무지 재밌게 봤습니다. 아주 여러번...
너무 퍼져서 영화를 봤나봅니다. 일어서기 벅찬 걸 보면. 흐음. 딴죽을 한번 걸어봐야겠네요. 거세당한 희망이 절망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면 철없는 치기일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희망에 눈돌리고 싶어집니다. 유치한 해피엔딩을 미소로 받아들 일 수도 있구요.
아직 밤공기가 따뜻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