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리스(2)-브레임(11)
글쓴이 그라테우스
“쿠르륵. 취힉!”
“췩! 잡아라, 인간!”
온 숲을 헤집으며 달려가는 녹색 피부에 돼지코를 가진 생명체들이 콧소리를 내며, 뒤뚱거리며, 각자의 무기를 들고 뭔가를 찾고 있다. 그리고 그 ‘뭔가’인 나로서는 나무에 숨어서 밑으로 지나가는 오크들을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속으론 저것들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나의 소박한 바람은 나를 찾아 움직이던 오크들이 멈추자 바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좀 지나가라, 응? 제발 좀 가.
“크륵, 취힉. 인간 냄새가 진하다. 취힉. 여기 인간 있다! 크륵, 인간 찾자!”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는 그럴듯한 브레스트 플레이트를 몸에 걸친 오크가 소리친 순간 내 작은 소망은 우르르 무너졌다. 이 무리의 리더인 듯 보이는 저 오크의 말을 들은 오크들은 즉시 멈추더니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저 망할 놈이…….
등에 걸고 있던 컴퍼짓숏보우를 꺼내들었다. 검정색 작은 강철 활을 들고 리더인 놈을 향해 겨냥했다. 배운지 삼년밖에 안된 활쏘기로 얼마나 정확하겠냐만 이정도 거리라면 해볼만 할걸. 화살을 꺼내 시휘를 재고 오크를 겨냥했다. 그리고 집중.
시야가 좁아진다. 어둠으로 주변이 물들고 갑옷을 입은 오크만이 뚜렷이 보인다. 너무나도 뚜렷하게. 놈의 못생긴 머리통이 점점 커졌고 뒤룩뒤룩 움직이는 눈알이 포착되었다. 순간 시위를 놨다.
쒸이익
바람의 벽을 관통하며 한줄기 선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오크의 들창코를 여지없이 관통했다.
“께에에에에!!”
단말마 비명치곤 상당히 큰 비명을 지르곤 놈이 쓰러졌다. 그러자 주위에 퍼져있던 오크들의 시선이 놈에게 집중됐다. 원래 눈알을 노렸는데……. 속으로 투덜거리며 시위를 매겨 쐈다. 젠장, 빗나갔나……맞췄군. 목표로 했던 오크가 움직이는 바람에 얼굴을 스쳐 빗나간 듯 했던 화살은 그 오크의 뒤에 있던 재수도 없는 녀석의 눈알을 꿰뚫었다.
“……목표 완료.”
애써 목표를 수정해 만족감을 느낀 후,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휘익 거리는 운 좋게 살아난 놈의 목구멍에 나무로 만들어진 장신구를 하나 박아주었다. 이번엔 정확한걸. 목장신구가 마음에 드는 듯 꽉 잡고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오크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나무 밑으로 뛰어내렸다. 생각 같아선 나무를 타고 뛰어다니고 싶지만 내겐 아직 불가능한 요구다. 아마 뛰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질걸.
여기저기 오크들의 소리로 복잡한 가운데 바닥에 안전히 착지했다. 그리곤 갑자기 나타난 나 때문에 놀란 것으로 보이는 오크에게 친절히 인사했다.
“안녕?”
“취힉?”
그와 동시에 숏소드가 검집을 뛰쳐나오며 멍청한 표정의 머리를 바닥에 떨궈 버렸다. 하늘을 향해 역류하는 피의 분수를 피하기 위해 바로 몸을 날렸다. 몸에 피가 묻으면 저것들을 떨구기가 힘들어지거든. 그리곤 바로 내게 달려드는 녹슨 못이 박힌 클럽을 피해냈다. 녹슨 못에 상처 입으면 파상풍 걸린단 말이다!
“으랏!”
약간의 분노를 담아 기합을 내지르며 그런 흉기를 내지른 오크의 턱을 팔꿈치로 올려쳤다.
우드득
턱뼈가 부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돼지 잡는 소리를 지르며 오크가 나가떨어졌다.
“취힉! 쏴, 쏴라 화살!”
이번엔 또 언놈이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뭔지 모를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은 덩치 큰 오크가 소리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리더가 죽자 바로 권력을 승계한 것으로 보인다. 네놈을 그 자리에 올려준 게 난데 감히 날 죽이려고 해?
저놈도 쏴버릴까 생각하던 중 화살을 메기는 오크들을 봤다. 명중률은 보나마나 낮을 테지만 혹시라도 모르니까 계속 뛰면서 오크들이 화살 쏘길 기다렸다. 그리고 놈들이 시위를 놓아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앞으로 몸을 날리며 굴렀다.
후, 역시 한발도 맞지않……. 그 순간 얼굴 바로 앞에 쑤셔 박히는 화살을 보며 잠깐이지만 완전 굳어버렸다.
“아하하. 설마 예측사격은 아니겠지?”
혼자 실없는 소릴 지껄일 동안 오크들이 어느새 인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자 퍼뜩 정신이 들었고 벌떡 일어나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당연하게도 오크들은 5년간 죽어라 달린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체력은 몰라도 그 짧은 다리론 속력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오크들을 이번엔 쉽게 따돌렸다. 새로 리더가 된 놈은 아까 그놈보다 지휘력이 떨어지는지 날 포위하지도 제대로 추적하지도 못했다. 그것들을 완전히 따돌린 뒤 브레스트 플레이트를 입고 죽은 오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이런 쓸만한 것을 오크들에게 돌려줄 수야 없지.
오크들의 시체에서 멀쩡한 화살 세 개를 회수한 다음 브레스트 플레이트를 걸친 오크를 짊어졌다. 생각 같아선 갑옷만 가져가고 싶었지만 어차피 몬스터의 시체 하나는 증거삼아 가져가야 했으니까. 100킬로그램은 될 것 같은 오크를 들고 최대한 빨리 오두막으로 향했다. 따돌렸던 놈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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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아직도 수련중인건가? 고개를 갸웃하곤 오크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등에 짊어지고 있던 화살통과 컴퍼짓숏보우를 바닥에 내려놓고 오두막 내부로 들어섰다.
어두운 내부. 벽면에 위협적으로 걸려있는 거대한 늑대의 가죽이 나를 반긴다. 죽어버린 그에게 살짝 고개를 까닥인 후, 오두막의 구석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그림자’가 있었다.
예전. 5년 전 이곳에 처음 온 날. 그날 이후로 저것은 계속 저 자리에 있었다. 분명 아무나 발견할 수도 없을 테고, 발견해도 절대 가져갈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아무나 저것을 만진다면 내가 그랬었듯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림자에게 서서히 먹혀갈 테니까.
예전에는 주의를 기울여야만 보였지만 작년에 심장을 취한 이후론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했고, 저것을 잡아도 움직일 수 있어졌다. 내 의지대로. 하지만 저것을 들고 걷기만 하는데 거의 모든 기력을 사용해야했다. 게다가 저것을 쥐고 있노라면 무언가가 내게서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힘의 효율도 형편없고, 그 꺼림칙한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물론 그림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방법조차 실전되었기에 그 뒤로는 그림자를 잡지 않았다. 브레임 역시 그림자 잡는 것을 꺼려했다. 그리고 그것은 저것이 오두막의 구석에서 움직이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확실히 상대가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그림자를 이용해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매력적이긴 했지만 안전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위한 ‘지배력’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거지? 이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런 놈쯤은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이 죽일 수 있을 텐데! 당장이라도 놈을 찢어 죽일 수 있을 텐데!!
나도 모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그림자를 향해 서서히 손을 뻗었다.
“갑옷 입은 오크? 별걸 다 잡아왔군.”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돌아왔다. 젠장! 저 빌어먹을 그림자가 날!! 죽일 듯 그림자를 노려보았지만 그것은 날 놀리는 것처럼 기이하게 일렁일 뿐이었다. 난 그것에게서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저 기분 나쁜 것은 틈만 나면 내가 자신을 잡도록 유도한다. 내게서 무언가를 끌어가기 위해.
흡혈괴물을 보는 것 같은 불쾌함과 공포를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뭐하고 있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 주인에게 엄청난 반가움을 느꼈다.
“정말 딱 맞춰서 왔군요.”
“또냐.”
그는 한숨처럼 말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번 달 들어서만 벌써 다섯 번째로군. 뭔가 심상치 않은걸.”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찬성을 표했다. 아직 한번도 홀려서 저것을 잡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상태였다.
“아, 그건 그렇고 밖에 저 오크 말이다.”
“예.”
갑자기 말을 돌리는 브레임이 이상했지만 모르는 척 답했다.
“저 한 마리 말고도 몇 마리나 더 죽였지?”
“저놈까지 합해서 네 마리 반.”
“반?”
“한 놈은 급해서 턱만 치고 도망쳐서 살긴 했는데, 아마 턱뼈가 부서졌으니 죽을 겁니다.”
오크들의 치료법은 미신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놈들은 음식물을 씹어 삼키지 못하는 동료를 보살펴줄 만큼 자애롭지 않다. 쓸모없어졌다고 잡아먹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혹 잡아먹히지 않아도 반드시 굶어죽을 것이다.
“몇 마리나 쫓아왔었지?”
“한 스무 마리 정도?”
“흠.”
내 말을 다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가 뭘 고민하는지 모르겠지만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조용히 그가 말하길 기다렸고 이내 그가 눈을 빛내며 내게 물었다.
“몇 년이나 됐지?”
“5년.”
“몇 년이나 남았지?”
“이년 반 약간 넘게.”
처음 질문은 내가 그를 따라 온지 얼마나 되었는지 물은 것이었고, 두 번째는 내 심장에 각인된 첫 번째 적대자에 대한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인지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물어보는 거지?
“슬슬 시간이 된 것 같구나.”
그의 말을 난 바로 알아들었다.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오늘인가요, 내일인가요?”
그러자 그는 이젠 익숙해진 얼굴로 웃었다.
“언제면 좋겠나?”
“내일”
이것저것 준비를 해야 할 테니까 오늘 급하게 나가는 것보단 내일이 좋겠지. 최대한 빨리 나가고 싶지만 말야.
“좋다.”
드디어, 드디어 나가는 것인가? 5년 만에. 15살 꼬마가 20살 성인이 되어서?
일요일~ 아아아, 이제 머리카락을 깎으러.
안 깎는다면 내일은 필히 학교에서
[초 스포츠]머리로 바꿔버릴 테니까 깎긴 해야 하는데…….
귀찮다. 으음. 문제군.
더불어서 드디어 초탈해졌다.
조회수라는 넷 상에 게시물을 올리는 인간이라면
대부분이 집착하는 것에서.
아무도 안 보더라도 이젠 그냥 올리는 것으로 결정.
으음. 아니, 아직은 초탈하지 못했으려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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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녀 봐요. ;ㅁ; 음음. 뭐랄까, 그라테우스 님은 '오크'라는 생물을 좋아하시는 건지, 아님 싫어하시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