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해안
겨울방학에 든 첫날이었다. 그간 포근하고 비가 잦던 날씨가 이제 겨울답게 추워졌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권이었다. 나는 평소 출근 시각보다 늦추어 배낭에 도시락을 챙겨 길을 나섰다. 집에서 멀지 않은 반송시장으로 가 우체국에서 택배를 한 건 보냈다. 이후 창원실내체육관 앞으로 가 진해로 가는 155번 버스를 탔다. 진해 갯가를 걸어보고 싶어 155번 종점 장천동으로 갔다.
시내를 빠져 남산동 환승장을 거치니 금세 안민터널이었다. 평일 아침 늦은 시간대라 시내버스는 한산했다. 나이 지긋한 기사 양반은 타고 내리는 손님마다 일일이 안녕하시냐고 안녕히 가십시고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다 그 중 한 사람에겐 가르침을 받을 스승이 있다는 논어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시내버스 기사한테서 친절이 뭔지를 배우는 입장이었다.
예전 진해 시청이고 통합 창원시가 되고 구청 청사를 지난 155번 장천동 종점까지 간 승객은 내 혼자였다. 나는 그곳 일대 지형지물을 아슴푸레 아는 정도였다. 산천은 어디나 상전이 벽해가 되고 있었다. 진해 구청 앞 예전 진해화학 비료공장 터는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다. 나는 행암으로 가는 군수기지 철길을 건너 진해항 산업부두 뒤안길을 걸었다. 저만치 행암 갯가가 눈앞이었다.
장천동에서 행암을 거쳐 수치로 가는 버스가 있었으나 나는 외면하고 보도를 따라 걸었다. 이름 하여 진해 해안 합포승전 길 구간이었다. 행암 갯가 선창에는 낚시꾼을 만나지 못한 배들이 몇 척 묶여 있었다. 행암에서 되돌아서서 속천항과 진해를 에워싼 장복산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검푸르고 산지는 갈색으로 대비되었다. 그 중간에 콘크리트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선 시가지였다.
철길은 행암마을에서 군사시설지역으로 더 이어졌다. 아마도 항만으로 수송할 물자들이 들어오는 곳인 모양이었다. 군사시설 곁 예비군 관리대를 지난 산마루에 오르니 수치 해안이 드러났다. stx조선소와 멀리 섬과 섬을 잇는 거가대교 연륙교 부분이 드러났다. 바다는 아침 햇살에 윤슬로 반짝였다. 고개에서 합계마을로 가는 조선소 길을 따라 걸었다. 차량도 사람도 다니질 않았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합계마을이었다. 합계는 ‘학개’하고도 불리는 모양이었다. 마을 뒤엔 ‘합포해전’ 승전을 기리는 비가 세워져 있었다. 여기 합포는 합계마을 앞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과 왜군 사이 치른 두 번째 해전인데 승리로 이끈 전쟁이라고 소개 되어 있었다. 마을 가까이 내려가 해안가 외딴 횟집을 지나 곰솔 숲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낚시꾼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벤치가 놓인 쉼터에서 배낭을 풀어 도시락을 꺼냈다. 뚜껑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아침나절 소진된 열량을 충전해 다시 합계마을 앞으로 나갔다. 예닐곱 집이 사는 작은 어촌으로 횟집이 세 곳이었다. 산모롱이를 돌아 수치로 가는 해안선 따라 포장된 길이 이어졌다. 수치는 stx조선소와 인접한 어항으로 식당과 모텔이 들어선 마을이 제법 컸지만 조선업 불황으로 조용했다.
조선소의 우뚝한 크레인은 멈추었고 드넓은 도크는 텅 비어 있었다. 마을 근처 길가에서 서성이는 산불감시원에게 저기 조선소 사정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아직 전면 휴무는 아니고 부분 가동은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용접 불꽃도 튀지 않고 해머로 두드리는 쇳소리도 들려오질 않았다. 예전엔 불을 훤히 밝히고 야간조업까지 해야 할 정도도 일감이 밀린 조선소였다.
진해 stx조선소는 거제의 조선소들과 함께 지역 경제를 받치는 산업 기둥인데 불황의 그늘이 어서 걷히길 바랐다. 수치에서 명동포구로 더 가보려다가 아까 돌아왔던 행암으로 향했다. 산마루에 올라 벚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선 비탈길을 내려섰다. 행암에 이르러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서 장천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아침에 창원에서 타고 왔던 155번 버스를 탔더니 안민터널을 지났다. 16.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