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7.1 전국에서 3991명의 지방관이 부임했다.
지난달 2일 지방선거에서 하늘의 소명을 받은 이들이다.
개인의 영예요 가문의 영광이며 모교의 광영이 아닐 수 없다.
최소한 오늘까진 그렇다.
그러나 내일부터 나으리들이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다.
부임 첫날 취임사를 위해 서 있었던 그 자리가 바로 교도소 담장 위란 사실이다.
오늘부터 나으리들은 그 담장을 걸어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야 한다.
영광의 대가이며 소명의 굴레다.
걷다 보면 알 것이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큰 집(교도소)으로 떨어진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 영광은 치욕이 되고 소명은 형량이 된다는 걸.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다 근거가 있어서 하는 얘기다.
행정안전부 통계를 보면 6월 30 일 임기를 마친 민선 4기 기초단체장 230명 중 97명이 기소됐다.
무려 42%다.
1, 2, 3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취임한 나으리들도 몇 분이나 살아남을지 걱정이 되는 이유다.
이미 몇 분은 지방수령으로 폼(?) 한번 못 잡아 보고
영어(囹圄)의 몸이 됐거나 곧 될 처지다.
그래서 부임 첫날 나으리들께 부탁하려 한다.
4년 후 지역민들이 원류(願留), 즉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도록 하기 위한 부탁이다.
딱 하나다.
오늘 당장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을 만나보라는 거다.
많이 만날 필요도 없다.
그가 쓴 500여 권의 저서 중 『목민심서(牧民心書)』 한 권이면 족하다.
핵심 몇 가지만 전하고자 한다.
우선 청심(淸心)이다.
다산은 단언한다.
“청렴은 온갖 선정의 원천이 되고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관 노릇 제대로 한 사람은 아직 없다.”
그제 중앙일보에 보도된 엑스포 도시 여수를 보시라.
뇌물 스캔들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장과 간부 그리고 의회의원들까지.
얼마나 추한가.
송나라 학자 육구연은 그의 『상산록(象山錄)』에서 청렴의 등급을 세 가지로 나눴다.
1등급은 자기 봉록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2등급은 봉록 외에 정당한 것은 먹으며,
3등급은 정당하지 않더라도 관례라면 먹는 거다.
대신 매관매직(賣官賣職)과 가렴주구(苛斂誅求)는 하지 않는다.
오늘 취임하는 나으리들이 이 중 어느 등급에 속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절용(節用)의 가치도 알 수 있다.
국민의 세금 함부로 쓰지 말라는 것이다.
다산은 말한다.
“절용은 제한을 지키는 일이다. 그 제한을 지키려면 반드시 법식이 있어야 한다.”
무분별한 재정지출, 법식(감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실례는 너무도 많다.
신청사 건립하느라 직원 월급 줄 돈이 없어 300억원이 넘는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 대전 동구청,
세금이 바닥나 은행에서 20억원을 빌린 부산 남구청,
무려 25조원의 부채에 허덕이는 16개 광역자치단체가
모두 ‘제한’과 ‘법식’의 이탈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겠다.
사업 추진에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계고다.
다산은 또 병객(屛客)하라고 충고한다.
관아에 외부 손님을 불러들이지 말라는 거다.
그가 호통치길 “무릇 본 고을 사람과 이웃 고을 사람들을 맞아들여 접견해서는 안 된다.
관부는 마땅히 숙숙청청(肅肅淸淸)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군수·의원 됐다고 동창회, 향우회, 친구 모임에 끼지 말라는 질타다.
청탁 하나 둘 들어주기 시작하면 뇌물 받고 ‘쪽 팔려’ 열흘 넘게 잠수 탄 전 여수시장 꼴 난다.
10억원이 넘는 아파트와 빌라 뇌물도 모자라
내연녀에게 돈 듬뿍 줘서 중국으로 도피시킨 혐의로 두달 전 쇠고랑을 찬 당진군수.
그의 비리 파노라마 역시 군청에 드나든 건설업자를 만나고 술자리 같이 하면서 시작됐다는 걸 다산은 말하고 있다.
이 밖에 덤도 있다.
신임 교육감들이 새겨 들어야 할 ‘흥학(興學)의 길’이다.
다산이 일침하길 “학문에는 독서와 함께 반드시 예(禮)와 악(樂)이 있어야 한다.
과거를 위한 학문은 사람의 심술(心術)을 파괴한다”고 했다.
요즘 일부 젊은이의 비도덕적 세태가
입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네 교육 풍토에서 기인한다는 걸 다산은 170여 년 전에 간파했다.
마지막으로 어중(馭衆), 즉 부하 통솔기법을 전하며 글을 마쳐야겠다.
다산 왈, “어중은 위엄과 믿음뿐이다.
위엄은 청렴에서 나오고 믿음은 성실에서 나온다.”
다산의 혜안에 경탄할 따름이다.
[서소문 포럼] 최형규 내셔널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