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일요일(6일째)
고비사막 5박 6일 트래킹(홍고린 엘스)
추워서 눈을 떴다.
여섯시가 넘은 시간이다.
더 누워 있을까하다가 세수를 하고 잠을 깼다.
추운 것 같아 내 담요를 미경샘 담요 위에 덮어드렸다.
짐정리를 하는데 비송샘이 일출이 시작된다 해서 나가보니 동쪽하늘에서 막 해가 뜬다.
카메라로 일출을 담았다.
언덕에 올라가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이 평화, 이 고요, 새벽의 추위까지도 녹여주는 이 따스함.
혼자만의 이 시간이 참 좋다.
게르가 있는 초원을 둘러싼 기묘한 형태의 산들.
높지 않아 위협적이지 않고 평온한 느낌을 주는 엄마 같은 산들.
언덕에 서서 순애샘, 영순샘, 말순샘, 득음님, 변순남님 등과 함께 해의 기운을 받으며 요가를 했다.
여덢시에 아침 식사를 맛있게 하고 아홉시에 바얀작을 향해 출발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버러가 겨울집이라며 가리키는 방향에 집이 한 채 있다.
요동치며 달리는 차 안에서 또 머리 쿵 쿵.
바얀작(bayanzak)은 '바얀'(많다) + '작'(나무)가 합쳐진 뜻이나 지금은 사막화가 진행됨에 따라 한 가지 종류의 키 작은 나무만 볼 수 있었고 모래와 바위만이 덮여 있는 절벽만 있을 뿐이었다. 세계 최대의 공룡 화석 발굴지로,1920년대에 공룡 화석을 찾아 바얀작을 처음 탐험한 미국의 동물학자이자 고고학자인 roy chapman andrews가 이곳을 보고 불타는 절벽이 연상된다 하여 flaming cliff라고 명명 하였고 때문에 바얀작이란 이름과 더불어 ‘불타는 절벽’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세계 최대의 공룡 화석 발굴지 때문에 이름 난 곳인 듯 이미 바가 가즈린 출루의 장관을 보고 온 내 눈에는 그리 대단한 풍경은 아니었다.
바얀작을 한시간 넘게 트래킹 한 후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고 허름한 마을에 들러 햇살을 가릴 수 있는 그늘에 자리를 깔고 앉아 준비해간 점심을 먹고 가게에서 물을 샀다.
다른 분들은 식당에 가셨는데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춤을 추었다.
라인댄스, 재즈댄스, 스포츠댄스, 디스코까지...
다시 차를 탔는데 온 관절이 요동을 칠 정도로 흔들려 졸수도 없었다.
가족을 데리고 휴가 가는 듯한 차 한 대가 우리 기사에게 길을 묻더니 우리 차를 계속 따라온다.
그러다가 그 차가 잠시 우리 차를 앞서 갔는데 다시 돌아왔다.
이유는?
우리 차바퀴가 움푹 땅이 페인 곳에 빠져 그곳에서 탈출해 나온다고 시간을 지체했는데 우리차가 안 보이니 되돌아 온 것이다.
이 곳은 차에 사고가 생기면 꼼짝 할 수 없이 고립되기에 최소한 차 두 대 이상이 움직이며 서로를 돌봐야 한다.
마치 사막카레이스를 하는 느낌이다.
이곳이 오지 중의 오지라는 걸 새삼 느낀다.
인가 뿐 아니라 움직이는 생명체 하나 볼 수가 없다.
온 몸이 뒤틀리고 지쳐갈 무렵 저 멀리 모래언덕이 보인다.
홍고린엘스다.
도착하자 마자 탠트를 치고 모래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명사산은 쉽게 올라갔는데 여긴 무지 힘이 든다.
발이 푹 푹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뒤로 미끄러져 도대체 전진하기가 어렵다.
땀이 흐르고 숨이 차다.
두발로 올라가다 나중엔 네발로 기어 올라갔다.
해운대 백사장을 뛰었던 몇 달 전의 미친 밤을 생각하며 있는 힘을 다해 전진한다.
드디어 정상이다.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좀 있다 힘들어 포기할 줄 알았던 선생님들이 다 올라오신다.
대단한 분들이다.
홍고린엘스 모레 언덕 정상에서의 투어 인 케이씨 즉석 광고 동영상 촬영.
배우, 감독, 촬영기사 누구도 시킨 적 없으나 자발적으로, 그것도 무료로 기꺼이 적극 참여함.
특별한 곳이니 만큼 득음님에게 우리가락을 부탁 드렸더니 흥쾌히 그 좋은 목청으로 아리랑을 불러주신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이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모두 흥에 겨워 떼창을 했다.
이때 남자 서양인 한분, 우리의 흥겨운 떼창에 동참한다.
프랑스 어르신인데 아들과 왔다 한다.
일본인이냐고 물어서 한국인이라고, 우리가 부른 노래는 한국전통음악이라 말해주었다.
일몰을 기대했었다.
사진으로 본 홍고린엘스의 장관에 매혹되었기에.
그러나 흐린 날씨 때문에 기대한 장관은 볼 수 없었다..
일행들은 먼저 내려가고 고요한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어 득음님, 비송님과 모래에 드러누워 스팩타클하게 펼쳐진 언덕의 모습을 오래 오래 지켜보았다.
별이 뜰 때까지 그렇게 계속 있고 싶었지만 저녁밥 시간 때문에 내려올 수 밖에 없었는데, 시간 안에 내려가려고 일행들은 완만한 코스로 둘러 내려갔지만 직선코스인 올라온 가파른 길로 내려갔다.
내려갈 때는 오히려 푹 푹 빠지던 이 길이 편해서 나는 모래산을 달려 순식간에 먼저 간 분들보다 빨리 내려올 수 있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케이씨표 요리인 김치찌게와 밥, 그리고 캡틴박님이 제공한 천사의섬 출신 맛김으로 우리는 사막에서 맛있는 한식을 즐길 수 있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우리는 캠파이어 할 나무를 주우러 갔는데 그것도 일이라고 땀이 났다.
점화식을 하고 우리는 타오르는 장작불 옆에서 이날을 위해 준비해 간 와인을 나누어 마셨다.
흥을 돋우기 위해 미경샘과 내가 안간힘을 썼지만 풍악이 없어 하나둘씩 사라지는 관객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유재명님의 선창으로 가곡 메들리가 이어졌고 득음님이 동요로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다.
어느 순간 장작불이 크게 타 올랐고 순간 케이씨가 불쑈를 했다.
화상을 입을까봐 우리 모두 말렸지만 케이씨는 불쑈를 다시 한번 더 해서 우리 가슴을 쓸어 내리게 했다.(케이씨님! 불장난하면 안되요!!)
그러다가 몽골기사님들이 차를 가지고 왔고 차에서 울려 퍼지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남아 있던 사람 모두가 춤을 추었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추는 춤.
별을 애타게 부르는 춤.
그에 대한 답인 듯 하나씩 둘씩 나타나는 별들.
대지의 딸, 우주의 여자가 되어 달과 별과 대지와 교감하듯 불 옆을 빙빙 돌며 혼신을 다해 춤을 추었다.
케이씨님도 10여년간 여행을 인솔하며 신명난 춤을 추기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러고 보니 케이씨가 저렇게 신나게 노는 모습은 나도 처음 본다.
신이 오른 기사들.
아름다운 몽골 노래.
비송샘은 끝장이란 별명답게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남자분들은 거의 들어 가셨는데 변순남님, 이숙님, 애란님, 득음님, 정의주님 등이 오랫동안 흥겨운 자리를 같이 해 주셨다.
이숙님은 태어나 춤을 춘건 이번이 처음이라시는데 분위기 맞춰 주시려고 애 쓰는 모습이 고마웠다.
늦은 시간이라 잠든 분들에게 미안해서 한시쯤 마무리.
나를 고비로 이끈 건 고비의 별밤 사진이었는데 흐린 날씨 때문에 기대했던 별은 못 보았다.
그러나...
나에게 오늘밤의 별은 함께 한 아름다운 이 사람들이었다.
첫댓글 별과 달의 조명아래.. 붉은 장작불과 활활타오르는 정열의 춤사위... 무엇을 추었던 그건 그날의 정열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날의 케이씨는 아름다운 자유인이었답니다.^^
ㅎㅎ 그날 무척 신났음. 케이씨뿐만 아니라 나도 자유인이고 싶었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