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는 망종(芒種), 순국선열의 넋을 추모하는 현충일을 하루 앞둔 날이다.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아 불멸의 영웅들이 남긴 고귀한 희생과 충정을 기리자.
■ 시간과 공간의 집중
클라우제비츠는 물리적 요소를 수의 우세와 기습에 이어 전투력의 공간적·시간적 집중을 말한다. 11장 공간적 집중(Concentration of Fores in Space)은 불과 한 페이지 절반에 불과한데, ‘최선의 전략은 언제나 충분한 전투력을 갖추는 것이며, 결정적인 지점에 전투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다’가 핵심이다. 이어 12장에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전투력의 시간적 통합(Unification of Fores in Time)을 서술했다. 여기에서 전술적·전략적 예비대 운용 개념을 구분했다. 전술적 예비대의 분산 운용으로 승리를 거두는 데 필요한 만큼 전투력을 사용하고, 나머지 병력은 총격전이나 백병전 등으로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부터 이격시켜 놓아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적의 새로운 전투력에 맞서기 위해 아군도 새로운 전투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략적 예비대의 운용은 동시에 집중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병력을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남겨 두고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병력을 확보해 결정적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준비된 모든 병력을 그 목적을 위해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이 1812년 모스크바를 점령하고도 승리하지 못한 요인으로 전투력을 집중해 러시아군 주력을 격멸하지 못한 것을 예로 들었다. 따라서 시간의 통합과 공간의 집중을 달성해야 승리할 수 있다. 전략적 승리는 부분적 전투의 승리가 모여 이뤄진다. 통합과 집중은 컴파운드 양궁 과녁의 표적으로 모아진다.
미국·유럽 등 실전 사냥용으로 쓰여
■ 컴파운드 양궁
컴파운드 양궁은 도르래를 이용한 개량 활이다. 양궁은 활의 형태에 따라 리커브(recurve)와 컴파운드(compound)로 분류되는데, 일반적으로 양궁으로 불리는 올림픽 정식 종목은 리커브다. 기존의 기계적 요소가 없는 양궁인 리커브에 비해 약 30∼40% 정도 더 빠른 280㎞/h 스피드다. 이것은 활의 윗부분 끝에 달린 도르래 장치인 캠(cam)이 활시위를 당길 때 필요한 힘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활을 당길 때는 줄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편하지만, 화살이 발사될 때는 다시 원상 복귀하려는 힘에 가속도까지 붙어 파괴력은 더해진다.
화살은 1m 내외로 날아가는 움직임도 리커브는 물고기가 헤엄치듯 좌우로 꿈틀대지만, 컴파운드는 발사기(releaser)를 이용하므로 시위의 떨림 현상이 없어 화살이 총알처럼 직선 궤도로 날아간다. 또한, 망원경(scope)이 있어 정확히 표적을 제압할 수 있지만 손으로 발사기를 눌러 화살을 쏘므로 제어하기 어려워 실수가 잦다. 경기는 50m 거리에 15발씩 발사한다.
컴파운드 양궁은 1995년 자카르타 세계양궁선수권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아직 올림픽 종목은 아니다. 레저 문화가 발달한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실전 사냥용으로 사용되면서 생활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공간 제약과 위험 요소가 있어 대중화되지 않았다. 활을 쏠 때 무엇보다도 집중이 요구된다.
컨테이너가 베트남전쟁서 결정적 역할
■ 강철박스와 전쟁
공간 집중으로 군수 양상을 바꾼 컨테이너의 첫 모습은 1956년 4월 26일, 유조선 아이디얼호에 실려 뉴어크 항을 떠나 휴스턴으로 옮겨졌던 알루미늄 박스다. 그로부터 10년 뒤 1966년 컨테이너 규격의 표준화가 이뤄졌다. 종류는 길이 40피트(12.192m), 폭 8피트(2.438m), 높이 8.6피트(2.62m) 등 4가지 종류다. 엄청난 물량을 수송하는 데 강철 박스, 즉 컨테이너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바로 베트남전쟁을 통해서다. 1968년 초 최대 60만 명에 달하는 미군의 장비와 보급품은 컨테이너를 통해 수송됐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컨테이너 서비스를 시작한 곳은 한진그룹의 대진해운이다. 한진은 수도사단이 파병됐던 베트남 중부 뀌년 항에서 미군 물자 수송 용역을 담당했다. 특히 인근 롱탄 탄약고에서 내륙인 플레이쿠까지 19번 도로를 따라 매일 수백 대씩 탄약을 수송했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현충일이 내일이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선열뿐만 아니라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당시 서독에 파견된 광부 7936명, 간호사 1만1000여 명, 그리고 중동 열사의 땅에서 근로자로 일했던 수십만 명의 산업 역군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연구관·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