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6:23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개역개정판)
잠언 26:23 찌꺼기 은을 입힌 진흙그릇이지, 입술은 불타오르지만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새한글성경)
Proverbs 26:23 Smooth words may hide a wicked heart, just as a pretty glaze covers a clay pot. (NLT)
고린도전서 16: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개역개정판)
고린도전서 16:9 문이 나에게 활짝 열려 있으니까요. 크고 가능성 있는 문입니다. 그러나 맞서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새한글성경)
1 Corinthians 16:9 There is a wide-open door for a great work here, although many oppose me. (NLT)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는
사도 바울의 그 유명한 고백이 나온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예전에는,
아니 방금 전까지도
이 말씀을 추상적으로만 이해했다.
그런데
혹시 이거
진짜로 죽을 지경이라는 표현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개역개정판)
단언컨대 나는 날마다 죽는다...
사망에 대해서 담대하게 선포(고전 15:55)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을 생각하면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 같고
그래, 어제 바로 묵상했는데...
부활이구나...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가 두려움 없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며
죽음은 부활로 이어지는 것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날마다 부활한다는 의미...
그러니까
부활이 없다(고 헛소리하)던 사람들에 대한 그의 분노가 느껴질 정도인가보다.
부활이 없으면 사도 바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무익한 손해만 입었던 바보 신세일 것이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복음을 위한 고난과 죽음은
그를 신약 시대 이후 최고 사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 매김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던 바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외부의 위협으로 인한 실제적인 죽음 말고도
자아의 죽음을 말한다.
오랜 관습
강한 자존심
남모를 교만
탐욕과 정욕
관성이 된 고집
이것들은 자살로 죽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잠 27:17)
타살로 인한 죽음(...)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뭐, 그리고 그것이 날마다 죽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죽는 것도 그렇게 쉽지가 않다.
특히
교묘하게 말하는 사람들...
(나 자신이 제일 그런 것을...)
잠언 26:23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온유하거나
불타거나
뭐, 번역 문제라는데
뭐가 되었든지 간에
이런 사람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악한 마음이 있는데
입술은 온유하다?
명철한 사람이 아니면 사람의 마음에 있는, 깊은 물 같은 모략을 길어 내기 어렵다 (잠 20:5)
악한 마음을 분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슨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사람들이 치는 뒤통수는
대개는 가장 큰 타격을 가하며
오랜 상처와 상흔을 남긴다.
낮은 은을 입힌 토기를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보기에만 좋을 뿐
결정적인 순간에,
그러니까 쓰임 받는 그 순간에
그 낮은 품질이 드러나고 만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절망시키기까지 할 수도 있다.
고린도전서 16장 9절에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았다고 했다.
목소리 큰 대적도 있었을 것이고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을 지닌 대적들도 있었을 것이다.
성전 재건으로 마음이 몹시 분주했을 느헤미야에게 선한 말로 이야기하는 척했지만
결국 최고 대적 도비야와 결탁해서 느헤미야를 협박, 심지어 암살까지 하려고 했던
스마야(느 6:10) 같은 자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적하는 자들 중에 위험한 사람들은 어느 쪽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어디에 가까운가?
아니지, 아니지...
온유한 입술...
그것도 아니면서
악한 입술에
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