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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자 이재(李縡) 어머니의 훈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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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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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자 이재(李縡) 어머니의 훈육
조선 영조 때의 이름난 학자 이재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에게서
양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가 12세가 되던 해 어머니(閔維重의 딸)는 그를 데리고 작은 아버지이자 당대의
정치가인 이만성을 찾아갔다.
"아버지 없이 자라는 까닭에 이 아이의 앞날이 잘못될까 걱정이 됩니다.
이 아이를 맡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작은 아버지는 괜히 귀한 집 아들에게 매를 들어 안 좋은 일이 생길까봐
거절했으나, 어머니는 끝까지 맡아줄 것을 부탁하였다.
결국 그날 이후로
이재는 작은 아버지의 집에 기거하며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며칠 뒤 이만성이
형수, 즉 이재의 어머니를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
"형수님, 용서해 주십시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글쎄,
글을 읽으라고 분부하고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마당에서 장난을 치고 있지 뭡니까.
그래서 정신을 차리게
해주려고 매를 들었는데,
그게 잘못되어 그 녀석이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시동생의 말을 듣고 난 이재의 어머니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어찌 제 자식놈이 미워서
매를 드셨겠습니까!
다 잘되라고 한 일인데
제 명이 짧아 그렇게 된 것이겠지요."
이만성은 형수의 태도에
깜짝 놀라 일어서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아 사실을
털어 놓았다.
"형수님,
실은 모두 거짓 입니다.
제가 형수님을 시험한
것 이었습니다.
형수님께서 그렇게까지
저를 믿고 아들을 맡겨
주셨으니 이제부터라도 더욱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이렇게 엄격한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의 훈육을 받고
자란 이재는 20세 되던 해
과거에 급제하고,
문인으로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가 되었다.
******************
어머님 / 법정스님
우리 같은 출가 수행자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불효자다.
낳아 길러준 은혜를
등지고 뛰쳐 나와
출세간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해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날 나는 집을 나와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골목 길을 빠져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뒤돌아
본 집에는 어머니가
홀로 계셨다.
중이 되러 절로 간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시골에 있는 친구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보다도 비쩍 마른
할머니의 품속에서
혈연의 정을
익혔을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내 입산
출가의 소식을 전해 듣고
어머니보다 할머니가 더
가슴 아파 했을 것이다.
내가 해인사에서 지낼 때
할머님이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외동
손자인 나를 한 번 보고 눈을 감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시더란다.
불전에 향을 살라 명복을 빌면서 나는
중이 된 후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어린시절을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덕이다.
내게 문학적인 소양이 있다면
할머니의 팔베개 위에서 소금 장수를
비롯한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란 덕일 것이다.
맨날 똑같은 이야기지만 실컷 듣고
나서도 하나 더 해달라고 조르면
밑천이 다 됐음인지 긴 이야기 해주랴
짧은 이야기 해주랴고 물었다.
긴 이야기라고 하면
"긴긴 간지때"로 끝을 냈다. 간지 때란
바지랑 대의 호남 사투리다.
그러면 짧은 이야기하고 더 졸라대면
"짧은 짧은 담뱃대"로 막을 내렸다.
독자인 나는 할머니를 너무 좋아해
어린시절 할머니가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 나섰다.
그리고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선뜻 나서서
기꺼이 해드렸다.
일제 말엽 담배가 아주 귀할때
초등학생인 나는 혼자서
10리도 넘는 시골길을 걸어가
담배를 구해다 드린 일도 있다.
내가 여덟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할머니를 따라 옷가게에 옷을 사러
갔는데 그 가게에서는 덤으로 경품을
뽑도록 했다.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뽑은 경품은
원고지 한묶음이었다.
운이 좋으면 사발 시계도 탈 수
있었는데 한묶음의 종이를 들고
아쉬워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원고지 칸을 메꾸는
일에 일찍이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성은 김해 김씨이고
이름은 금옥 고향은 부산초량,
부산에 처음가서 초량을 지나갈 때
그곳이 아주 정답게 여겨졌다.
지금 내 기억의 창고에 들어 있는
어머니에 대한 소재는 할머니에
비하면 너무 빈약하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나를 낳아 길러주신 우리 어머니는
내가 그리는 어머니의 상 즉 모성이
수호천사처럼늘 나를 받쳐 주고 있다.
한 사람의 어진 어머니는
백사람의 교사에 견줄만 하다는데
지당한 말씀이다.
한 인간이 형성되기 까지에는
그 그늘에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이나 옮겨 다녔다는 고사도
어머니의 슬기로움을 말해 주고 있다.
나는 절에 들어와 살면서 두 번
어머니를 뵈러 갔다.
내가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온 후
어머니는 사촌동생이 모시었다.
무슨 인연인지 이 동생은
어려서부터 자기 어머니보다
우리 어머니를 더 따랐다.
모교인 대학에 강연이 있어
내려간 김에 어머니를 찾았다.
대학에 재직중인 내 친구의 부인이
이사간 집으로나를 데리고 갔었다.
불쑥 나타난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셨다.
점심을 먹고 떠나 오는데 골목 밖까지
따라 나오며 내 손에 꼬깃꼬깃
접혀진 돈을 쥐어 주었다.
제멋대로 큰 아들이지만 용돈을 주고
싶은 모정에서 였으리라.
나는 그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어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절의 불사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시주를 했다
두 번 째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가는 길에 대전에 들러
만나 뵈었다. 동생의 직장이 대전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 때는 많이 쇠약해 있었다.
나를 보시더니
전에 없이 눈물을 지으셨다.
이 때가 이승에서
모자간의 마지막 상봉이었다.
어머니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내 거처로 불쑥 찾아오신 것은
단 한 번 뿐이었다.
광주에서 사실 때인데
고모네 딸을 앞세우고
불일암까지 올라오신 것이다.
내 손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점심상을 차려드렸다.
혼자 사는 아들의 음식 솜씨를
대견스럽게 여기셨다.
그 날로 산을 내려가셨는데,
마침 비가 내린 뒤라 개울물이 불어
노인이 징검다리를
건너기가 위태로웠다.
나는 바지 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바짝마른
솔잎단처럼 너무나 가벼워 마음이
몹시 아팠었다.
그 가벼움이 어머니의 실체를
두고 두고 생각케 했다.
어느해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아!, 이제는 내 생명의 뿌리가
꺾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이라면 지체없이 달려갔겠지만
그 시절은 혼자서도 결제
(승가의안거제도)를 철저히 지키던
때라 서울에 있는 아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나 대신 장례에
참석하도록 했다.
49재는 결제가 끝난 후라
참석할 수 있었다.
단에 올려진 사진을 보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내렸다.
나는 어머니에게는 자식으로서
효행을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모이는 집회가 있을 때면
어머니를 대하는 심정으로
그 모임에 나간다.
길상회에 나로서는 파격적일 만큼
4년 남짓 꾸준히 나간 것도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보상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나이 이 처지인데도
인자하고 슬기로운 모성 앞에서는
반쯤 기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 생명의 언덕이고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늙어가면서 문득 문득 생각나는
'어머니'라는 단어는 한없이 기대고
한없이 불러보고 싶은 단어입니다.
이제 어디서 불러 볼까요?
***************
💙따뜻한 마음
1998년 5월 멕시코시티 프로 레스링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은 한 늙은 레슬러의 은퇴식을 지켜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975년 프로 레스링에 입문해 항상 황금색 가면을
쓰고 경기해 온 그는 '마법사의 폭풍' 으로 불렸습니다.
화려한 분장뿐 아니라 그의 현란한 개인기는 관중을
열광시켰습니다.
마법사의 폭풍은 위기의 순간마다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23년 동안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준 마법사의
폭풍은 어느 새 53세의 중년이 되어 끝까지 자신을 아껴준 팬들을 위해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마법사의 폭풍이 링 위에 오르자 관중은 모두 기립박수로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관중의 갈채
를 한 몸에 받으며 링 중앙에 섰습니다.
관중의 박수가 잦아들 무렵, 마법사의 폭풍은 황금
가면을 천천히 벗기 시작 했습니다.
그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관중들은 그가 준비한 선물에 놀라 모두 숨을 죽였습니다.
마침내 황금가면을 벗은 그 또한 감격에 차 있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숨을 고른 후 말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작은 가톨릭 교회의 신부인
세르지오 구티에레스입니다.
프로 레스링을 하는 동안저는 고아원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한동안 관중의 정적이 이어지더니
더욱더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세르지오신부는 23년 동안 신부라는신분을 감춘 채,
레스링 경기로 얻은 수익금으로 3천여 명의 고아들을 돌봐 온것이었습니다.
남을 돕는 사람들 중에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상식대로라면 당연히 가진 것이 많은 부자들이 더 많이 베풀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모으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또한 별로 어려운 상황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베푸는 것에 인색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비록 가진 것은 적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압니다.
그리고 물질이 아닌 따뜻한 마음
한 조각으로 남을 돕기 위해 애씁니다.
이들은 남을 돕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물질이 아닌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알기 때문입니다.
음악산책
https://m.youtube.com/watch?v=1QCjbWHLYt8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퍼온글입니다.yk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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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공간을 갖고싶은 사람입니다. 평소의 생각들을 기고하여 친구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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