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원로회 서신 239호 ☆
- 西方見聞錄 -
■ 1년짜리 단기 연수에 딸 둘까지 뒷바라지하려니 혼자 몸으로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며 우선 한 달 만이라도 도와달라는 큰딸의 요청을 받고 선거 전까지 귀국할 요량으로 미국에 왔다. 탑승 48시간 전에 코로나 음성 검사를 받는 증명서부터 시작해, 다른 나라와 달리 언제나 입국장에서 심리적 범법자가 되어 긴장되던 그놈의 미국행이 결코 내키지는 않았으나 어린 것들이 눈에 밟혀 비행기를 타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만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코로나로 경기가 죽었기로서니 얼마 전까지 세계 10연패를 했다던 굴지의 인천국제공항이 텅텅 비어 유령도시 촬영 세트장인가 싶어서 놀랐고, 장거리를 의자 몇 개 펼치고 편히 가는 맛은 있었지만 400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좌석에 겨우 100명 정도밖에 탑승하지 않아 항공사를 걱정해 줘야 할 지경이었다. 17시간 시차가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순간 이동이 끝나 공항에 도착했을 때, 역시 미국인의 줄은 짧았고 외국인의 행렬은 꼬리가 길었다.
무슨 꼬투리를 잡으려나, 말은 버벅거리지 않고 아내 앞에서 제대로 알아들어 망신스럽지 않게 입국장을 빠져나가려나, 속도는 의외로 빨랐지만 길게 늘어선 줄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니 잔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윽고 아내를 앞세우고 심사대 앞에 섰다. 심사 기준이 변했나, 이 친구가 특별한가, 말 한마디 물어보지 않고 손가락 끝으로 카메라를 가리킴에 저 뒤에서부터 먼저 심사받는 사람을 보았던 터라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고, 엄지 지문, 검지 지문 누르라는 시늉 따라 그대로 했더니 쾅쾅.
원 세상에, 입 한 번 떼지 않고 미국 땅 밟아보기는 처음이다. 세관신고서를 그대로 쥔 채 공항을 빠져나오는 것도 처음이었다. 랜덤식 검사라나. 여덟 살짜리 손녀가 품 안으로 달려든다. 이번 여행은 미국 만세다.
■ 그런 여유 속에서 그동안 주마간산 격으로 출장길에 보아왔던 미국을 이번에는 느긋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사는 스티브 잡스 집에도 가보고 스텐퍼드에서 만나 뇌가 큰 공룡의 시대를 만든 브린과 레리의 구글도 가보았는데 그 심벌이 된 상징물이 코로나로 철거되어 유감이었다.
코로나는 그뿐만 아니었다. 몇 년 중단되었다가 구정이 한참 지난, 이번에 처음 거행된 샌프란시스코의 중국 춘절 기념 퍼레이드에서 성조기는 차이나타운에서 휘날렸지만, 오성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 이 땅의 안중에서 시진핑의 존재는 철저히 무시된 거다. 서울은 지금도 태극기가 사라진 채 시진핑의 오성기가 구로동에 날리는데.
규제의 표상이 되는 그 흔한 교통순경 코빼기도 일상의 생활 속엔 보기가 어려웠다. 자율을 전제로 차량의 흐름은 드문드문 신호등이 설치되어 알아서들 서로의 권리를 이해하고 존중해서 막힘없이 흘렀다. 하지만 사이드카가 딱지 떼는 모습은 엄중했다. 최소한의 규제 속에 자유와 권리를 마음껏 누리되 거기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물결 속에 풍요롭게 흐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늘은 미세먼지 하나 없이 왜 그리도 푸르고 대지는 단단한 오크트리와 함께 왜 그리도 광활한지. 62세 이상이면 신분증도 보지 않고, 딸의 말만 믿고서 한 달에 205불만 내면 18홀을 하든지 100홀을 하든지 맘대로 즐기시라는 15분 거리에 즐비한 골프장도 가보았다.
우리와 달리 선물 받은 땅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로 패권국이 된 지 한두 해가 아님에도 성취에 경거망동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44년 전 사우디를 거쳐 텍사스의 댈러스에 웅지를 튼 시골 친구에게서도 보았을 때 문화연필 좋다고 애국심을 꺼내는 건 되려 이상할 터였다.
여기에 와서 보니 죽었다던 힐러리 클린턴 부부와 빌 게이츠가 살아있는 것도 알았고 비행기 사고로 죽은 주니어 케네디가 살아난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음모론은 여기에서 발붙일 틈도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확실한 미국의 저력은 바로 교육이었다.
■ "I pledge allegiance to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o the republic for which it stands: one nation, under God, indivisible, with liberty and justice for all." (나는 미합중국의 국기와, 국기가 상징하는, 분리될 수 없고, 모두를 위해 자유와 정의를 주는 신 아래 단일국가인 공화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올해 1월 10일에 학교를 배정받아 겨우 한 달밖에 되지 않는, 1학년 손녀딸이 미국 학교에서 아침 첫 시간에 합송(合誦) 한다는, 그럭저럭한 한국어로도 전혀 이해가 어려울 '충성 맹세' 내용이다. 실제로 물어봤더니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도 아이는 씩씩하게 즐겼다.
총 31자로 구성된 단어 중 손녀가 알아먹는 것이라고는 '아이' 와 '어메리카', '갓', '오올' 네 마디뿐인데 뜻도 모르면서 외워야 하는 심적인 부담을 져가며 충성을 맹세하고, 그게 끝나면 '뷰티풀 어메리카'까지 유명한 여가수의 동영상에 맞추어 노래한다니 21세기 광명천지 세계 1위 강국에서 무엇이 꿀려 후진국에서나 있을법한 교육시스템을 운영해야 하는지 처음엔 의아스러웠다. 1960년대 우리네가 경험했던 '혁명공약' 외우기와 세계 최고의 교육 지표라던 '국민교육헌장'을 쫓아낸 지가 언제인데 말이다.
한 달여간 아이를 학교 데려다주고 데려오면서 알게 된 건 또 있다. 초등학교의 운동장이 축구장 두 개 크기로 천연잔디인데 어린 것들이 맨 마지막 시간에 매일 한 바퀴씩 돌고 금요일엔 네 바퀴 돈다는 것도. 그러니 트럼프가 어쩌고, 바이든이 저쩌고 해도 이런 아이들이 이리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데 무슨 상관이랴.
■ 관심 있는 아메리칸에게 지금의 코리아는 꼴불견이다.
거짓말하였대서 닉슨을 쫓아낸 미국에서, 이재명이 대통령 후보이고 박근혜를 죽인 윤석열과 함께 각축을 벌인다느니, 허경영까지 알고 있다면 영락없는 컨트리 보이 정치꾼들일 게다. 이제 우리도 이들과 함께 싸잡히는가?
나사렛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고 신통방통 하였어도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동족인 유대인들은 안 믿는다. 그러나 우리에겐 실물이 있다. 겨우 반세기 만에 반도체와 조선, 전자제품을 장악한 삼성과 현대, LG가 있고, '엄지 척'도 아끼지 않을 '미나리'와 '오징어게임'을 시작으로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는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하늘의 뜻이어서 서구의 학부모들을 매료시킨다. 비틀즈 이후 그들의 자녀들을 위함이다.
'正法강의'가 이르는 후천 세계 골자는 홍익사상이다. 박정희의 당부로 노산 이은상과 당시 야당 몫의 국회부의장이었던 윤재술 등 석학들이 심혈을 기울인 '국민교육헌장'은 바르게 살아서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홍익사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천하의 잡놈 이재명의 꼴뚜기 망신도, 문재인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윤석열도 다 하늘의 뜻이다. 대통령은 정해져 있다. 가룟 유다가 있었기에 예수가 가능했다. 천지공사는 바야흐로 시작되었다. 홍익사상의 세계화가 드디어 펼쳐지는 것이다. 단일화는 그 제 1보다. 미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022년 삼월삼짇날
천손들이여, 앞으로 나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