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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최제우의 '용담검무' 복원-재현 장효선씨 - 칼춤복원은 웅대한 민족정기 되살리는 작업 | ||
-동학의 검무는 수운 최제우의 특이한 종교체험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용담검무를 복원-재현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 주십시오. △동경대전을 보면 수운선생은 특이한 종교체험을 통해 무극대도를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우주의 기운이 내 몸안으로 들어와 내 마음과 일치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일치됐을 때 몸이 떨리는 강신(降神)현상을 경험했지요. 강신을 하게 되면 강하게 기운이 솟구치게 됩니다. 수운선생은 하늘로부터 21자 주문(시천주)을 받았는데 그 글이 녹아들어서 에너지로 바뀌게 되고, 그 에너지가 손이나 검을 통해 표출되는 것을 용담검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검을 다뤄왔는데 저의 검과 수운선생의 철학이 만나 용담검무를 복원하게 됐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용담검무를 복원하는 데는 동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될 것 같은데 동학은 언제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요. △10여년전 동학혁명때 죽은 사람들을 천도하는 형식의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동학을 알게 됐고 수운선생의 칼춤에 대해서도 접하게 됐습니다. 이후 인내천사상 등 동학사상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수운선생의 칼춤이 복원돼 빛을 발하게 되면 민족정기가 살아나고 민족종교가 부흥하는데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저의 목표는 수운선생의 검무를 문화예술로 승화시켜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게 하는데 있습니다. -용담검무는 무예와 예술의 만남을 통해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검무를 하게 됐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저의 부친은 고향에서 이름 깨나 알려진 소리꾼이었습니다. 이런 가정적 배경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흥과 풍류에 쉽게 젖어들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막대를 가지고 칼싸움 하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그 놀이가 발전해 이렇게 검무까지 발전해 온 셈입니다. 저는 칼춤을 먼저 익히고 나중에 무예를 익혔습니다. 검이나 검무는 풍류가 배어 있습니다. 또한 검무는 지극히 선비적이면서 사람의 마음을 순화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심신수양에 이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몸 안에 사악한 기운이 일어났을 때 칼춤을 추게 되면 그 기운이 차분하게 가라앉게 됩니다. -용담검무와 기존 검무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자주 공연되는 진주검무는 8인이 1조가 돼 짧은 칼로 추는 춤인데 반해 용담검무는 목검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용담검무는 무예적 기교가 있는 장엄한 칼춤이라면 진주검무는 무예적 기교가 없이 연희적 형태만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용담검무가 복원된 데는 어떤 의의가 있다고 보십니까. △우리 나라는 일제에 짓밟힌 이후 민족정기에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따라서 수운선생의 용담검무가 복원된 것은 민족정기가 되살아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고, 앞으로 우리 것을 찾는 노력이 더욱 확산되리라 봅니다. 또한 그동안 흔적을 찾기 어려웠던 한국의 검무를 복원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저는 검무에 한국인의 흐트러진 마음을 응집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외래문화에 젖어 있는 한국사회에 용담검무의 복원은 한국적인 문화예술을 찾는데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용담검무는 신명과 강신의 검무로 불리고 있습니다. 어떤 뜻을 담고 있습니까. △저는 스승이 없이 검무를 터득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늘을 스승 삼고 우주로부터 오는 기운을 받아 용담검무를 복원했습니다. 수운선생의 21자 글을 간직하고 오는 에너지를 받아서 움직여 봅니다. 그러면 같은 동작이 반복되면서 일정한 틀을 갖게 됩니다. 이 때문에 용담검무는 21개의 기본동작에 6개의 응용동작으로 되어 있습니다. 21개 기본동작은 21자 주문을 에너지로 녹여낸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응용동작은 수운선생이 즐겨쓰던 글을 녹여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용담검무는 27개 카테고리를 가지면서 49흐름에 105연결동작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를 말씀해 주십시오. △용담검무를 문화예술로 승화시켜 다양한 장르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용계에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아 각 대학 무용과나 문화예술관련 전공자들에게 전수해 다양한 창작기능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종국적으로는 한국적 사상과 철학이 있는 칼춤으로 문화재로까지 발전시켜 보존해야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장효선씨 약력 △1957년 전남 담양 출생 △ 한국검 비단검무 연구, 비단검무 창시(1981∼1985년) △검예도 기본훈련도감 완성, 장효선의 비단검무 구성원리 완성(1986∼1990년) △한국검예도와 전통무예 90회 공연, 한국연극배우협회 비단검무 강사(1991∼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 안무지도(1997년) △'월광무' 미주순회 공연(2000년) △세계민속축제 비단검무 공연, 용담검무 북원재현 시연(2002년) △현재 한빛무예단 대표, 한국검예도협회 회장
<용담검무와 수운 최제우> 장효선씨에 의해 복원된 용담검무는 상고시대부터 전해오는 한민족 고유의 검무를 바탕으로 1860년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비전되어 내려오던 용담검무는 도중에 단절되어 원형은 고사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수운이 검무를 추면서 불렀다는 검노래(劍歌)만이 천도교 경전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수운은 일찍부터 무(武)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운은 병자호란때 큰 공을 세운 무장이었던 6대조 할아버지 최진립장군을 늘 자랑스럽게 여겨왔다고 한다. 아울러 동학을 창도한 오늘의 자신은 선조의 음덕(陰德)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수운의 생각이 그로 하여금 무장의 표상인 '칼'이라는 무기를 통해 상징적으로 종교적 의식의 충일을 노래하게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수운 최제우는 1960년 4월 5일 동학을 창도한다. 이때 수운에게 동학을 내려 준 존재는 '한울님'으로 이 한울님이 동학의 주문-영부와 검무를 내려준다. 수운은 용담에서 무극대도를 받은 후 또한 검무도 받아 추게 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하루는 한울님이 가르침을 내려 말씀하기를 "근래에 바다를 왕래하는 배는 모두 서양인의 배이니 검무가 아니고서는 제압할 수가 없나니 그러므로 칼노래 1편을 주며 글로 짓게 하고 부(賦)로 부르게 한다"고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수운은 "서양 오랑캐가 출몰하면 주문과 칼춤으로써 적을 막고자 하며, 서양인이 용만(龍灣=신의주 부근의 해안)으로부터 출몰하면 나의 통문(通文)을 기다려 일제히 따라가 이 칼춤을 익힌 자는 장차 나라를 보전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으로써 공훈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 수운은 왜 칼노래를 부르고 칼춤을 추었을까. 이에대해 이돈화는 "무엇보다도 인간을 우주 본체인 일원적 지기(地氣)를 체득하여 정신의 건전과 육체의 발육을 도모함에 있는 것이요, 둘째는 조선 민족의 타패(惰敗=게으르고 패배적인)한 원기를 회복케 하여 민족적 원기를 건전케 함에 있다 할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용담검무 연구가 박길수씨는 "'검가'와 '검무'의식은 동학의 종교의식의 하나로 수운 최제우가 살아있을 때 널리 행해진 의례"라며 "검무가 지니고 있는 흥과 가락, 그리고 춤사위를 수운선생이 다분히 종교적인 의식으로 살려냈다"고 풀이했다. 검무는 춤사위가 지니고 있는 율동적 효과와 칼이 지니고 있는 상징이 한데 어울려 동학이 지향하는 후천개벽 시대를 향한 변혁의 의지를 고취시켜 주면서 동시에 정신의 고양도 극도로 높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용담검무 공연안내> 오는 11월 9일 오후 3시, 6시 서울 정동문화예술회관에서는 장효선씨가 복원-재현한 용담검무 공연이 펼쳐진다. 수운 최제우가 지은 검가(劍歌)에서 뽑은 공연명은 '무수장삼 떨쳐입고 이칼 저칼 넌즛 들어'. 용담검무 복원자인 장효선씨를 비롯, 한빛예무단 20여명이 출연한다. 용담검무는 세마당 아홉거리로 구성됐는데 각각의 내용은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하고 포덕(布德)하며 이를 이은 동학 후예들이 검무를 계승하여 때로는 혁명으로, 때로는 은도자중하며 비전을 거듭하던 역사적 과정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공연내용은 △수운의 구도과정을 그린 강신(떨림) △수운의 동학창도와 검무를 내용으로 한 검무(열림) △동학의 계승과 동학혁명을 그린 군무(열림)로 짜여졌다. 용담검무는 동학의 핵심사상을 수운의 구도부터 시작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후천개벽까지 한민족의 비전을 담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동학을 이해하는데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정리=김형수취재부장 kakim@segye.com
<사진>장효선씨가 천도교 궁을기 앞에서 용단검무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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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11/06 13: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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