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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ṃyutta Nikāya, khandhavaggo n, 1. khandhasaṃyuttaṃ, 1. nakulapituvaggo,
2. devadahasuttaṃ n (SN 22.2)
22:2(1-2) 데바다하의 경 [Devadahasutta]2984)
2984) SN. III. 5 : 잡아함 5권 6(大正 2. 33b, 잡108), 증일아함 35권(大正 2. 754b) 참조
♦ 2. evaṃ me sutaṃ —
ekaṃ samayaṃ bhagavā sakkesu viharati devadahaṃ nāma sakyānaṃ nigamo.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끼야 족이 사는 데바다하2985)라는 싸끼야 족의 마을에 계셨다.
2985) Devadaha : 부처님의 생모의 고향으로
그녀는 그곳으로 가다가 룸비니(Lumbinī) 숲에서 이들을 출산했다.
Sm II 56은 '길상호수(吉祥湖水 : Maṅgaladaha)'라고 표현했는데 바로 왕립호수를 뜻한다.
그 이유는 왕들은 신, 곧 데바(deva)라고 불렸고
호수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신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atha kho sambahulā pacchābhūmagamikā bhikkhū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ekamantaṃ nisinnā kho te bhikkhū bhagavantaṃ etadavocuṃ —
2. 그때 많은 수행승들이 서쪽 지방으로 여행하다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3.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icchāma mayaṃ, bhante, pacchābhūmaṃ janapadaṃ gantuṃ,
pacchābhūme janapade nivāsaṃ kappetun”ti.
♦ “apalokito pana vo, bhikkhave, sāriputto”ti? “na kho no, bhante, apalokito āyasmā sāriputto”ti.
“apaloketha, bhikkhave, sāriputtaṃ.
sāriputto, bhikkhave, paṇḍito, bhikkhūnaṃ anuggāhako sabrahmacārīnan”ti.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우리는 서쪽 지방으로 가서 서쪽 지방에서 지내고자2986) 합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싸리뿟따에게 들러 인사를 하였는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존자 싸리뿟따에게 들르지 못했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싸리뿟따에게 들러 인사를 해라.
수행승들이여, 싸리뿟따는 현자로서 청정한 삶을 닦는 수행승들의 수호자2987)이다."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2986) nivasaṁ kappetun : Srp. II. 256에 따르면,
'삼개월간의 우안거(temāsaṁ vassāvāsaṁ)'를 위해서 가는 것이다.
2987) apaloketha bhikkhave, sāriputtaṁ paṇḍito bhikkhū anuggāhako sabrahmacārīnanti :
이 책의 경 47 : 13에 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지혜제일(智慧第一)이기도 했지만, Srp. II. 256에 따르면, 싸리뿟따는 두 가지 방식의 도움,
즉 물질적 도움(āmisānuggaha)과 정신적 도움(dhammānuggaha)을 통해서 수행승들을 도왔다.
그는 다른 수행승들이 아침 일찍 탁발을 간 사이에 모든 승원을 돌며
더러운 곳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흐트러진 침대, 의자, 가구, 도기를 정돈했다.
그리고 나서 병실을 찾아가 환자 들을 돌보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는
그들이 원하는 약을 사미를 데리고 탁발시에 구하거나 공공장소에서 구해서 환자들에게 주었다.
그는 사미를 데리고 탁발하러 가면서 '환자를 돌보는 것은 부처님과 연각불이 칭찬하는 것이다.
참사람들이여,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라고 말하고 그를 보내고,
스스로 탁발하면서 자신을 후원하는 가정에서 식사를 마친 후에 승원으로 향했다.
이러한 것이 그가 머무는 주처에서의 습관이었다.
만약에 세존께서 유행 떠나시면 '나는 최상의 제자'라고 생각하여
신을 신고 우산을 들고 맨 앞에 서서 가지 않았다.
오히려 거기서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거나 아주 어리거나 한 사람들을 보살펴
아픈 곳에 연고를 발라주고 이러한 사람들을 데리고
자신의 발우와 가사는 어린 사미에게 맡기고 그 날 출발하거나 다음 날 출발했다.
이와 같이 그는 물질적 도움을 행했다.
그리고 그가 가르칠 때에는 백번 천번 자꾸 가르쳐서
자신의 제자가 흐름에 듦의 길에 들어서도록 가르쳤다.
그가 해탈하면, 그가 목표에 도달하면 다른 제자를 가르쳤다.
이러한 식으로 제자를 가르쳤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거룩한 경지에 도달한 자들이 헤아릴 수 없다.
이와 같이 그는 정신적 도움을 행했다.
♦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sāriputto
bhagavato avidūre aññatarasmiṃ eḷagalāgumbe nisinno hoti.
4. 그런데 그때 존자 싸리뿟따는 세존께서 계신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엘라갈라 나무가 우거진 숲에2988) 앉아 있었다.
2988) eḷagalâgumbe : Srp. II. 257에 따르면, 엘라갈라(eḷagala)는
'언제나 넘치는 물속에 자라는(dhuvasalilaṭṭhāne jāto)' 나무를 말한다.
엘라갈라의 우거진 숲(eḷagalâgumba)은
'그 관목으로 이주 막 안에서'란 뜻이며, 낮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물로 시원해진 바람이 분다.
atha kho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yenāyasmā sāriputto tenupasaṅkamiṃsu;
upasaṅkamitvā āyasmatā sāriputtena saddhiṃ sammodiṃsu.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ekamantaṃ nisinnā kho te bhikkhū āyasmantaṃ sāriputtaṃ etadavocuṃ —
5. 그래서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세 존의 오른쪽을 돌아 존자 싸리뿟따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 싸리뿟따와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6.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 수행승들은 존자 싸리뿟따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icchāma mayaṃ, āvuso sāriputta, pacchābhūmaṃ janapadaṃ gantuṃ,
pacchābhūme janapade nivāsaṃ kappetuṃ. apalokito no satthā”ti.
[수행승들] “벗이여 싸리뿟따여, 우리는 서쪽 지방으로 가서 서쪽 지방에서 살고자 합니다.
우리는 스승께 들러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 “santi hāvuso, nānāverajjagataṃ bhikkhuṃ pañhaṃ pucchitāro —
khattiyapaṇḍitāpi brāhmaṇapaṇḍitāpi gahapatipaṇḍitāpi samaṇapaṇḍitāpi.
paṇḍitā hāvuso, manussā vīmaṃsakā —
[싸리뿟따] “벗들이여, 여러 다른 지방을 돌아다니며 수행승들에게 질문하는 자들이2989) 있습니다.
왕족의 현자나2990) 바라문의 현자나2991) 장자의 현자나2992) 수행자의 현자로서2993)
‘kiṃvādī panāyasmantānaṃ satthā kimakkhāyīti,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은 무엇을 설하고 무엇을 가르치는가?'라고
질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2989) santi hāvuso, nānāverajjagataṁ bhikkhuṁ pañhaṁ pucchitāro :
Stn. 140에 유사한 경우가 있다.
여기서 '여러 다른 지방(nānāverajja)'은 원래 '여러 다른 나라'로 되어 있으나
Srp. II. 257에는, 다른 나라가 아니라 자기 지역과는 다른 지역을 말한다.
2990) khattiyapaṇḍitāpi : Srp. II. 257에 따르면,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이나 마가다 국의 빔비싸라 왕을 예로 들고 있다.
2991) brāhmaṇapaṇḍitāpi : Srp. II. 257에 따르면, 짱낀(Caṅkin)과 따루카(Tārukkha) 등과 같다.
Stn, 115에서는 다른 바라문의 현자 바쎗타(Vaseṭṭha)와 바라드와자가 나온다.
2992) gahapatipaṇḍitāpi : Srp. II. 257에 따르면, 찟따(Citta)와 쑤닷따와 같은 교단의 후원자를 말한다.
2993) samaṇapaṇḍitāpi : Srp. II. 257에 따르면,
싸비야(Sabhiya)나 삘로띠까(Pilotika) 등의 현명한 출가자를 말한다.
kacci vo āyasmantānaṃ dhammā
sussutā suggahitā sumanasikatā sūpadhāritā suppaṭividdhā paññāya,
벗들이여, 나는 존자들이 가르침을
잘 배웠고, 잘 이해했고, 잘 경청했고, 숙고했고, 지혜로 잘 통찰했기를 바랍니다.
yathā byākaramānā āyasmanto vuttavādino ceva bhagavato assatha,
na ca bhagavantaṃ abhūtena abbhācikkheyyātha, dhammassa cānudhammaṃ byākareyyātha,
na ca koci sahadhammiko vādānuvādo gārayhaṃ ṭhānaṃ āgaccheyyā’”ti?
그래서 그대들이 대답할 때 세존께서 말씀하신대로 말해야지
진실이 아닌 것으로 잘못 대변하지 말고, 가르침에 일치하도록 설명하여,
그대들의 주장의 결론이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 “dūratopi kho mayaṃ, āvuso, āgaccheyyāma āyasmato sāriputtassa
santike etassa bhāsitassa atthamaññātuṃ.
sādhu vatāyasmantaṃyeva sāriputtaṃ paṭibhātu etassa bhāsitassa attho”ti.
8. [수행승들] “벗이여, 우리는 존자 싸리뿟따를 뵙고 말씀하신 그 뜻을 배우기 위해 멀리서 왔습니다.
존자 싸리뿟따께서 말씀하신 바의 뜻을 분명하게 밝혀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tena hāvuso,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bhāsissāmī”ti.
“evam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paccassosuṃ.
āyasmā sāriputto etadavoca —
9. [싸리뿟따] “그렇다면 벗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듣고 숙고하십시오.”
[수행승들] “벗이여,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그 수행승들은 존자 싸리뿟따에게 대답했다.
존자 싸리뿟따는 이와 같이 말했다.
♦ “santi hāvuso, nānāverajjagataṃ bhikkhuṃ pañhaṃ pucchitāro —
khattiyapaṇḍitāpi ... pe ... samaṇapaṇḍitāpi.
paṇḍitā hāvuso, manussā vīmaṃsakā —
‘kiṃvādī panāyasmantānaṃ satthā kimakkhāyī’ti?
10. [싸리뿟따] “벗들이여, 다른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는 수행승들에게 질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왕족의 현자나 바라문의 현자나 장자의 현자나 수행자의 현자로서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은 무엇을 설하고 무엇을 가르치는가?'라고
질문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evaṃ puṭṭhā tumhe, āvuso, evaṃ byākareyyātha —
‘chandarāgavinayakkhāyī kho no, āvuso, satthā’”ti.
벗들이여, 이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 “evaṃ byākatepi kho, āvuso, assuyeva uttariṃ pañhaṃ pucchitāro —
khattiyapaṇḍitāpi ... pe ... samaṇapaṇḍitāpi.
paṇḍitā hāvuso, manussā vīmaṃsakā —
‘kismiṃ panāyasmantānaṃ chandarāgavinayakkhāyī satthā’ti?
11. 벗들이여, 이와 같이 설하더라도 더 질문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왕족의 현자나 바라문의 현 자나 장자의 현자나 수행자의 현자로서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무엇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라고
질문하는 호기심 많은 현자들이 있습니다.
evaṃ puṭṭhā tumhe, āvuso, evaṃ byākareyyātha —
‘rūpe kho, āvuso, chandarāgavinayakkhāyī satthā,
vedanāya... saññāya... saṅkhāresu... viññāṇe chandarāgavinayakkhāyī satthā’”ti.
벗들이여, 이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물질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느낌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지각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형성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의식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 “evaṃ byākatepi kho, āvuso, assuyeva uttariṃ pañhaṃ pucchitāro —
khattiyapaṇḍitāpi ... pe ... samaṇapaṇḍitāpi. paṇḍitā hāvuso, manussā vīmaṃsakā —
‘kiṃ panāyasmantānaṃ ādīnavaṃ disvā
rūpe chandarāgavinayakkhāyī satthā, vedanāya... saññāya... saṅkhāresu...
viññāṇe chandarāgavinayakkhāyī satthā’ti?
12. 벗들이여, 이와 같이 설하더라도 더 질문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왕족의 현자나 바라문의 현자나 장자의 현자나 수행자의 현자로서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위험을 보는 까닭에
물질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위험을 보는 까닭에
느낌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위험을 보는 까닭에
지각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위험을 보는 까닭에
형성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 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위험을 보는 까닭에
의식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라고
질문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evaṃ puṭṭhā tumhe, āvuso, evaṃ byākareyyātha —
‘rūpe kho, āvuso, avigatarāgassa avigatachandassa avigatapemassa
avigatapipāsassa avigatapariḷāhassa avigatataṇhassa
tassa rūpassa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uppajj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13. 벗들이여, 이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합니다.
1) '벗들이여, 만약 물질에 관해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고 애정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고 열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는다면,2994)
그에게는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2994) avigatarāgassa avigatachandassa avigatapemassa avigatapipāsassa
avigatapariḷāhassa avigatataṇhassa : Srp. II. 258에 따르면,
여기서 탐욕, 욕망, 애정, 갈증, 열뇌, 갈애는 모두 갈애의 동의어이다.
* 貪喜愛
vedanāya... saññāya... saṅkhāresu avigatarāgassa ... pe ... avigatataṇhassa
tesaṃ saṅkhārānaṃ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uppajj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2) 벗들이여, 만약 느낌에 관해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고 애정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고 열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3) 벗들이여, 만약 지각에 관해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고 애정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고 열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지각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4) 벗들이여, 만약 형성에 관해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고 애정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고 열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형성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viññāṇe avigatarāgassa avigatachandassa avigatapemassa
avigatapipāsassa avigatapariḷāhassa avigatataṇhassa
tassa viññāṇassa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uppajj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5) 벗들이여, 만약 의식에 관해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고 애정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고 열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의식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idaṃ kho no, āvuso, ādīnavaṃ disvā rūpe chandarāgavinayakkhāyī satthā,
vedanāya... saññāya... saṅkhāresu...
viññāṇe chandarāgavinayakkhāyī satthā’”ti.
14.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위험을 보는 까닭에
물질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위험을 보는 까닭에
느낌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위험을 보는 까닭에
지각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위험을 보는 까닭에
형성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위험을 보는 까닭에
의식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 “evaṃ byākatepi kho, āvuso, assuyeva uttariṃ pañhaṃ pucchitāro —
khattiyapaṇḍitāpi brāhmaṇapaṇḍitāpi gahapatipaṇḍitāpi samaṇapaṇḍitāpi.
paṇḍitā hāvuso, manussā vīmaṃsakā —
‘kiṃ panāyasmantānaṃ ānisaṃsaṃ disvā rūpe chandarāgavinayakkhāyī satthā,
vedanāya... saññāya... saṅkhāresu... viññāṇe chandarāgavinayakkhāyī satthā’ti?
15. 벗들이여, 이와 같이 설하더라도 더 질문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왕족의 현자나 바라문의 현자나 장자의 현자나 수행자의 현자로서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공덕을 보는 까닭에
물질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공덕을 보는 까닭에
느낌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공덕을 보는 까닭에
지각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공덕을 보는 까닭에
형성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공덕을 보고
의식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라고
질문하는 호기심 많은 현자들이 있습니다.
evaṃ puṭṭhā tumhe, āvuso, evaṃ byākareyyātha —
‘rūpe kho, āvuso, vigatarāgassa vigatachandassa vigatapemassa
vigatapipāsassa vigatapariḷāhassa vigatataṇhassa
tassa rūpassa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nuppajj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vedanāya... saññāya...
saṅkhāresu vigatarāgassa vigatachandassa vigatapemassa
vigatapipāsassa vigatapariḷāhassa vigatataṇhassa
tesaṃ saṅkhārānaṃ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nuppajj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viññāṇe vigatarāgassa vigatachandassa vigatapemassa
vigatapipāsassa vigatapariḷāhassa vigatataṇhassa
tassa viññāṇassa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nuppajj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16. 벗들이여, 이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합니다.
1) '벗들이여, 만약 물질에 관해 욕망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열뇌를 떠나고 갈애를 떠나면,
그에게는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2) 벗들이여, 만약 느낌에 관해 욕망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열뇌를 떠나고 갈애를 떠나면,
그에게는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3) 벗들이여, 만약 지각에 관해 욕망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열뇌를 떠나고 갈애를 떠나면,
그에게는 지각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4) 벗들이여, 만약 형성에 관해 욕망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열뇌를 - 떠나고 갈애를 떠나면, 그에게는 형성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5) 벗들이여, 만약 의식에 관해 욕망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열뇌를 떠나고 갈애를 떠나면,
그에게는 의식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idaṃ kho no, āvuso, ānisaṃsaṃ disvā rūpe chandarāgavinayakkhāyī satthā,
vedanāya... saññāya... saṅkhāresu... viññāṇe chandarāgavinayakkhāyī satthā’”ti.
17.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공덕을 보는 까닭에
물질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공덕을 보는 까닭에
느낌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보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공덕을 보는 까닭에
지각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공덕을 보는 까닭에
형성에 관한 요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공덕을 보는 까닭에
의식 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 “akusale cāvuso, dhamme upasampajja viharato
diṭṭhe ceva dhamme sukho vihāro abhavissa avi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kāyassa c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 pāṭikaṅkhā,
nayidaṃ bhagavā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aṃ vaṇṇeyya.
18. 벗들이여, 만약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실천하며 지내더라도,
바로 현세에서 즐겁게 살고 장애 없이 고뇌 없이 번뇌 없이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도 훌륭한 존재가 되는 것이 자명하다면,
세존께서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끊는 것을 찬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yasmā ca kho, āvuso, akusale dhamme upasampajja viharato
diṭṭhe ceva dhamme dukkho vihāro savi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kāyassa ca bhedā paraṃ maraṇā duggati pāṭikaṅkhā,
tasmā bhagavā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aṃ vaṇṇeti.
19. 벗들이여, 만약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실천하며 지내면,
바로 현세에서 괴롭게 살고 장애가 많고 고뇌가 많고 번뇌가 많아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불행한 존재가 되는 것이 자명하므로,
세존께서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끊는 것을 찬탄하신 것입니다.
♦ “kusale cāvuso, dhamme upasampajja viharato
diṭṭhe ceva dhamme dukkho vihāro abhavissa savi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kāyassa ca bhedā paraṃ maraṇā duggati pāṭikaṅkhā,
nayidaṃ bhagavā kusalānaṃ dhammānaṃ upasampadaṃ vaṇṇeyya.
20. 벗들이여, 만약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실천하며 지내더라도,
바로 현세에서 장애가 많고 고뇌가 많고 번뇌가 많아
괴롭게 살고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불행한 존재가 되는 것이 자명하다면,
세존께서는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성취하는 것을 찬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yasmā ca kho, āvuso, kusale dhamme upasampajja viharato
diṭṭhe ceva dhamme sukho vihāro avi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kāyassa c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 pāṭikaṅkhā,
tasmā bhagavā kusalānaṃ dhammānaṃ upasampadaṃ vaṇṇetī”ti.
21. 벗들이여, 만약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2995) 실천하며 지내면
바로 현세에서 장애가 없고 고뇌가 없고 번뇌가 없이 즐겁게 살고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훌륭한 존재가 되는 것이 자명하므로,
세존께서는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성취하는 것을 찬탄하신 것입니다.”
2995) akusale dhamme: PTS본은 kusale dhamme의 오기이다.
♦ idamavocāyasmā sāriputto. attamanā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bhāsitaṃ abhinandunti.
22. 이와 같이 존자 싸리뿟따는 설했다.
그 수행승들은 거기서 존자 싸리뿟따가 설한 바에 대해 환희하고 기뻐했다.
dutiyaṃ. ∴
첫댓글 [.... viññāṇe chandarāgavinayakkhāyī ]
5蘊(界)에 대한 欲貪(chandarāga)은
이른바 66법에 대한 욕탐의 흐름에서
마지막에 나타나는 내용입니다.
즉
眼에 대한 욕탐은 심의 오염원이다. ~
意.................................................... = 내입처에 대한 욕탐에서 시작하여 즉 意에 대한 心의 욕탐.
이어서
色성향미촉法................................... = 외입처에 대한 욕탐, 그 중에서도 法에 대한 心의 욕탐.
이어서
...........
6식신, 6촉신, 6수신, ...........
그리고
6尋 ,
6伺 <慾愛: 慾界 중생들의 渴愛는 여기에서 일어나면서 생겨나고 여기에서 머물면서 안주한다.>
혹은
6界(지수화풍 공식)
5蘊 ..............에 대한 心의 욕탐.
그 결과는 5온 取
그 결과는 有(욕계에 걸맞은 명색으로 變成 = 5온의 명색화: 업유)
그리고서 죽으면 살아 있을 때와 유사하게
有(=再有)가 생겨남
그것이 이른바
무명에 덥히고 갈애<여기서는 욕애>에 매여서
이 身(알음알이를 지닌 이 몸<심행: 명身>)
[그 결과는 5온 取
그 결과는 有(욕계에 걸맞은 명색으로 變成 = 5온의 명색화: 업유)]
.......에서
이 명색에 識住(= 5蘊[界]에 識住)를
[名色 緣 識]이라고 말합니다.
식 - 명색 互緣의 의미는 이러한 의미입니다.
이 명색에 의지하여 식이 생겨나고
이 식을 연하여 명색이 생겨나고
그리고......
이러한 업유 혹은 생유를 연하여
육입(욕계에 태어남)이......
달리 표현하면 (5온)취를 연하여 명색(有)
有(명색)을 연하여 生(6입).........
@봄봄 //(오온)취를 연하여 명색(유)//??? 뭔말씀하는건지요?
오온이 당근 명색이지요.
근데, 명색이 유(욕, 색, 무색)가 된다고요 12지가 앞뒤로 뒤죽박죽...?
12지의 연기를 집성제와 멸성제(사성제)에 대한 안목, 지혜,명, 광으로 밝힌거라고 경문을 근거로 수차례 이 카페에 말들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봄봄님은 12지를 삼세중양과 같이 오해를 일으킬 문구
//육입(욕계에 태어남)이//
육입(욕계에 태어남)이라는 경문 출처는요?
@mindsati
명색이 유라 했을 때는
일단 욕계(넓게 잡아서 색계)라고 여러 차례 말했고요.
이러한 흐름은 욕계에 대한 교설이라고 누차 말했고요.
.....
육입은 구업이라는 경문은 여러 차례 말했고요.
신업이란 태어나서 행하는 신업 구업 의업이라고 누차 말했고요.
위 내용에 대해서 이해되지 않으시면
서로 공부 계속하면서
그리고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맞지 싶습니다.
@봄봄
육입 = 욕계에 태어남
이 부분이 이해되시지 않으시면.....
........갈애-취-유-생....
무명-행-식-명색-육입-
무명에 덥히고 갈애에 매여
이 몸은 이와 같이 생겨났다.
이러한 이 몸과 밖으로 명색
이 한 쌍이......................
@mindsati
[모태에 듦이 있으면 명색이 있고
명색(有)을 연하여 육입(生)이라고 읽으셔도 됩니다.]
<모태에 듦이 있으면 명색이 있고>
모태에 듦이 있고나서 일어나는 사건은?
당근^^
경문에 의하면 명색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육입.
경문에 의지하지 않고 말하면
[모태에 듦이 있고나서 일어나는 사건은?]
^^
태어남(生) = 명색을 연하여 육입!
육입이 생입니다.
경문에 직접 언급되어도 엉뚱한 해석이 나오는데
경문에 직접 나오지 않는 것을 설명하라면......
무리이기는 하네요. ㅋㅋ
@봄봄 그러하겠지요. 봄봄님은 12지에서의 정형구를 맘대로 맹글어 사용하시니까요.
일테면 "육입이 생" 이라든지, "명색(유)"라든지, "태어남(생)= 명색" 등등...
욕계 중생들의 5온(취)를 6入이라고 읽으셔도 큰 대차는 없습니다.
물론 5蘊(취)와 6入사이에 [유=명색]이 생략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혹은 6界(지수화풍 공식)을 취하여 모태에 듦이 있으면 명색이 있고
명색(有)을 연하여 육입(生)이라고 읽으셔도 됩니다.
같은 소리 반복.... 반복 ^^... 하는 이유는
명색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ㅎㅎ
Yato ca kho, āvuso, ajjhattiko ceva mano aparibhinno hoti,
bāhirā ca dhammā āpāthaṃ āgacchanti,
tajjo ca samannāhāro hoti,
evaṃ tajjassa viññāṇabhāgassa pātubhāvo hoti.
도반들이여, 안의 意가 흩어지지 않고
밖의 法들이 초점이 되고
그에 해당하는 수집收集이 있으므로,
이와 같이 그에 해당하는 識의 몫이 나타납니다.
그러한 것들 중에서 色인 것은 色取蘊으로 취합되며, ----
*안의 意가, 밖의 法들, 해당하는 識의 몫 ->色取蘊
그러한 것들 중에서 受인 것은 受取蘊으로 취합되며,
그러한 것들 중에서 想인 것은 想取蘊으로 취합되며,
그러한 것들 중에서 行인 것은 行取蘊으로 취합되며,
그러한 것들 중에서 識인 것은 識取蘊으로 취합됩니다.
Vuttaṃ kho panetaṃ bhagavatā –
한편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yo paṭiccasamuppādaṃ passati so dhammaṃ passati;
yo dhammaṃ passati so paṭiccasamuppādaṃ passatī’’ti.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는 자이며,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보는 자이다’라고.
Paṭiccasamuppannā kho panime
yadidaṃ pañcupādānakkhandhā.
연기된 것(緣而生)들은 다름아닌
바로 이 오취온들인 것입니다.
*paṭiccasamuppāda (緣起)
Paṭiccasamuppannā(緣而生)
= pañcupādānakkhandhā
욕계 중생들에게 5온이 생겨나는 과정은?
5온이 取 되어질 법이 되어서
5온 취가 되면
그 결과는?
그러한 상태(명색에 식주)에서 살다가 죽으면
그 결과는?
과거 누겁의 업의 결과
舊業 = 6입(生) = 다시 태어남 = 윤회.
취 되어질 법(대표적인 법이 5온)들에 달콤함을 수관하며 살면
명색이 현현한다. 혹은
식이 현현한다.
이러한 식-명색을 연하여 육입이......
육입(생)을 연하여(이른바 12처: 66법의 진행)
내입-외입-6식신...... 또한 5온 :
반복되는 현상. = 윤회.
viññāṇaṃ aniccaṃ saṅkhataṃ paṭiccasamuppannaṃ
khayadhammaṃ vayadhammaṃ virāgadhammaṃ nirodhadhammaṃ.
tassa nirodho ‘nirodho’ti vuccati.
의식[*5蘊]은 무상하고 조건지어지고 연기된 것으로
부서지고야 마는 것, 무너지고야 마는 것, 사라지고야 마는 것,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것이 소멸하면 소멸이라고 한다.
kāmānametaṃ nissaraṇaṃ yadidaṃ nekkhammaṃ,
rūpānametaṃ nissaraṇaṃ yadidaṃ arūpaṃ,
yaṃ kho pana kiñci
bhūtaṃ saṅkhataṃ paṭiccasamuppannaṃ, <cf. viññāṇaṃ aniccaṃ saṅkhataṃ paṭiccasamuppannaṃ>
nirodho tassa nissaraṇaṃ.
12지는 무명- 형성들[육내외입처, 밖으로 육경을 취함]-식-명색-육입(indriy)- (육육)- 취 유 생노사 등의 집성제!
반면에 안으로 형성들이 소멸하고 식 명색 육육...노사 등의 소멸은 멸성제!
또한, 12지 역순에 태어남 을 조건으로 발생하는 노사를 연기에 관찰하고 노사에 대한 citta의 집멸을 연기의 요소에 관찰하고 수관하며
다음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을 연기에 관찰하고 태어남에 대한 citta의 집멸을 연기의 요소에 관찰하고 법수관을 계속하는 등 첫단계 무명의 소멸[루진제]에 이르게 되지요.
12지를 사성제에 무지하거나,
연기를 벗어나서 법을 윤회에 따른다면
내외입처에 세운 일체를 벗어나 새로운 일체를 세운다는 희론이.
사두사두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