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권에 맴도는 방학 이틀째였다. 들녘과 강둑을 걸어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어제는 도시락을 싸 배낭에 챙겼으나 그냥 산책 차림 맨 몸이었다. 집 앞에서 105번 시내버스를 타서 도계동 만남의 광장 정류소로 나갔다. 그곳은 진영 김해로 가는 시외버스가 거쳐 가고 동읍과 대산으로 가는 농어촌버스가 정차하는 곳이었다. 1번과 7번 마을버스도 손님을 태워간다.
1번 마을버스는 창원역에서 주남저수지와 가술을 거쳐 종점이 낙동강 강변 신전마을이다. 1번보다 운행 횟수가 많은 7번은 창원역에서 자여마을까지 운행 구간은 짧은 편이다. 나는 그곳 현지 주민이 아니면서 마을버스를 가끔 이용하는 편이다. 1번은 주남저수지나 낙동강 강둑과 들녘을 걸을 때 탄다. 7번은 용추계곡을 들어 용추고개 너머 우곡사에서 단계저수지로 빠져나갈 때 탄다.
마을버스와 일반 시내버스의 차이는 차량의 크기에 있다. 마을버스는 일반 시내버스보다 작은 미니버스로 탑승 인원이 적다. 요금도 일반 시내버스보다 백 원 싸다. 들녘 들길을 싶어 1번 마을버스를 기다렸더니 42번 농어촌버스가 먼저 왔다. 그 버스는 월영동 남마산터미널에서 출발해 마산 시내를 거쳐 창원역을 지나 만남의 광장으로 왔다. 그곳에서도 더 나아갈 운행 구간이 있었다.
42번 녹색버스를 타서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동읍사무소 방향으로 들었다. 주남저수지를 앞두고 조류인플루엔자로 탐조 활동이 전면 금지 되었다는 플랜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가월마을을 지난 주남저수지 입구엔 우주복 같은 방제복을 입은 관계자들이 바리게이트를 쳐 놓고 길을 막았다. 내가 탄 버스는 신등초등학교에서 들판으로 들어 용산마을과 합산마을을 지났다.
저만치 주남저수지 둑이었고 그 뒤로는 백월산 산등선이 에워쌌다. 버스는 들판을 더 달려 죽동마을을 지난 종점인 송정마을에 닿았다. 한 할머니가 아침 일찍 시내로 볼 일을 보고 들어가면서 사탕을 산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기사 양반과 안면을 터놓고 지내는지 사탕봉지를 한 개 안겨주었다. 기사 양반은 할머니를 대접해 드려야할 형편인데 오히려 사탕을 건네받아 황송해하였다.
송정마을엔 이름에 걸맞은 소나무는 없고 마을회관 곁 고목 당산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낙엽이 진 겨울나무는 둥치에 큰 구멍이 난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였다. 송정마을은 반나절 도보여행의 출발지였다. 차량도 사람도 다니질 않은 들판 길을 걸었다. 평리를 지나니 상리였다. 이어 갈전마을이 나타났다. 가까운 곳에 일동초등학교가 있는 들판의 중심지로 다방과 치킨집도 있었다.
주민 체육시설을 지니 강변여과수대산정수장으로 갔다. 들판 길을 더 걸어 낙동강 강둑으로 올라섰다. 강둑은 4대강 사업 때 자전거 길을 닦아 놓았다. 강변 여과수취수정이 있는 둔치 물억새 군락은 시들어 갈색이었다. 그 곁으로는 창녕함안보를 빠져나온 낙동강 물줄기가 유장하게 흘러갔다. 동읍 본포에서 부곡 학포로 건너는 본포교가 걸쳐져 있었다. 나는 수산 방향으로 걸었다.
미끈하게 뻗은 자전거 길에는 라이딩을 나선 자전거 마니아가 드물게 지나갔다. 나처럼 걸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둑과 나란히 북면에서 한림으로 통하는 지방도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신성마을을 지나 수산다리 부근에서 둑에서 내려 들녘으로 들어섰다. 들판 들머리는 청양고추를 키우는 비닐하우스단지였다. 중년 부부가 비닐하우스 난방에 쓸 연탄을 부려 놓고 있었다.
청양고추 재배단지를 지나니 넓디넓은 들판은 수박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였다. 고추는 연중 철거하지 않은 고정된 비닐하우스였고 수박은 벼농사를 지은 논에 겨울부터 봄까지 설치된 비닐하우스였다. 아까 지나친 마을에선 사람이라곤 구경 못했는데 들판의 비닐하우스에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귀로에 1번 마을버스를 탔더니 우즈베키스탄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노동자가 다수였다. 16.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