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여행] 언덕위 오소포연대 쉼팡(쉼터)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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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여행] 언덕위 오소포연대 쉼팡(쉼터)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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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던 “카페 더씨” 무엇인가 찜찜한 마음을 안고 나오는 길목에 유랑자는 생각에
잠긴다. 언제 또 와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용궁 가는길로 들어섰던 외길 도로를 빠져나와 달려 간곳은
吾召浦煙臺(오소포연대) 쉼팡(쉼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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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도로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오소포연대로 오른다. 작은 언덕길이라 대략 40여m만 오르면 되는 곳
인지라 힘들 것은 하나도 없다. 먼저 유랑자를 반기는 것은 요즘 한창 피는 아름다운 문주란 꽃이다. 본시 문주
란은 7~9월에 피는 꽃으로 북아메리카와 제주도를 원산지로 하며, 따뜻한 바닷가의 모래언덕에서 흔히 자라는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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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문주란은 7~9월에 피는 꽃으로 북아메리카와 제주도를 원산지로 하며, 따뜻한 바닷가의 모래언덕에서
흔히 자라는 식물이다. 제주 토끼 섬은 국내에서 유일한 문주란의 자생지로서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해 보
호하고 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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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가 지나쳐 왔던 제주도의 토끼 섬은 국내에서 유일한 문주란의 자생지로서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기도 한다. 문주란은 한방에서 민간요법으로 쓰기도 하는데 적용증상 및 효능을 살펴보면 객혈, 거
담, 관절통, 기관지염, 백일해, 산어소종, 옹종, 적리, 종통, 진통, 창종, 청화해독, 타박상, 토혈, 폐결핵, 해독, 해수,
해열, 후통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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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란 꽃을 보고 난 유랑자는 잠시 돌에 앉아 주변을 천천히 살펴본다. 화려하지도 않으면서도 제주다운 모습
의 풍경, 갯내음이 살짝 밀려드는 해안 도로변 언덕위에 자리 잡은 오소포연대는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392
번지, 제주 올레길 1코스(휠채어구간) 선상에 있으며 1996년 7월 18일 제주특별자치도 제23-23호로 지정되었
으며, 2002년 복원하였던 군사용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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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란은 한방에서 민간요법으로 쓰기도 하는데 적용증상 및 효능을 살펴보면 객혈, 거담, 관절통, 기관지염,
백일해, 산어소종, 옹종, 적리, 종통, 진통, 창종, 청화해독, 타박상, 토혈, 폐결핵, 해독, 해수, 해열, 후통에 효험
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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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내용상으로는 당시 수산진에 소속으로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어 교대로 근무를 하였으며, 동쪽으
로 성산 봉수대를 거쳐 협자연대, 서쪽으로 종달 연대와 연결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설명을 하자면 이곳
‘연락의 언덕 오소연대 쉼팡’은 옛 군사적 통신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옛 터에 올레길 을 접목해 스토리텔링화 하
기 위하여 성산읍 주민자치위원들이 가꾼 곳이라는 사실도 이곳 방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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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지만 육지의 봉수대와 같은 역할을 하던 곳으로 연대라 함은 옛날 적이 침입하거나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방호소나 수전소 등 군대가 주둔한 곳에 연락을 취했던 통신망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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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통신 수단을 살펴보면 평상시에는 하나, 황당선이 보이면 둘, 가까이 오면 셋, 범경이면 넷, 싸움이 붙은
상황이면 다섯 개의 연기 또는 불빛을 피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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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는 바닷가의 높은 지대에 석축으로 사면으로 쌓았고 상단 중앙에 대(봉덕)를 만들어 사용했었다.
당시 통신 수단을 살펴보면 평상시에는 하나, 황당선이 보이면 둘, 가까이 오면 셋, 범경이면 넷, 싸움이 붙은
상황이면 다섯 개의 연기 또는 불빛을 피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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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제주도의 방어시설은 크게 3성·9진·10수전소 등으로 구분 되었으며, 제주도 일원에는 해안 가까운 오름
을 이용한 봉수대 25개소와 해안선 고지대에 설치한 연대 38개소가 있어 성·진·수전소와 연락을 취했고, 해안
300리에는 방어 목적으로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環海長城(환해장성)이란 석성을 쌓아 外侵(외침)을 막았
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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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를 밑에서 올려다보면 연대의 규모는 높이 4m, 가로 8m, 세로 10m로 쌓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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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煙臺) :제주도에는 38개 연대가 있는데, 대부분 해안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연대는 가까이서 적선의
출몰과 어떤 곳에 와서 정박하는 가를 자세히 관찰하는 동시에 해안 변경인 최전방에 위치한 연변봉수의 기능
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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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구릉에 위치한 연대는 급한 소식을 서로 상응하는 연대에 전하는 한편, 동시에 가까운 봉수에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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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주엔 왜놈들의 출몰이 잦았고 이 해적들 퇴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대를 이용한 봉화를 사용하였던 것
으로 보인다. 연대를 밑에서 올려다보면 연대의 규모는 높이 4m, 가로 8m, 세로 10m로 쌓아 올렸다. 당시 오소
포연대의 위치를 보면 남쪽으로는 협자연대, 북쪽으로는 종달리 두원포연대와 교신하였다는 기록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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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연대 후면에 있는 계단을 타고 연대 위에 올라본다. 오소포연대에 올라서 주변을 살펴보면 연대는 현
성산고등학교 뒤편 소나무밭과 경작지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밭을 경작 하지는
않고 잡풀만 무성하게 자라있는 모습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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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피웠던 봉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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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상단에서 바라보면 성산일출봉이 손을 내밀면 손에 잡힐듯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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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상단에서 바라보면 가까이 우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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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배고픈 시절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다시 말해서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
라는 뜻으로 열심히 논밭을 일구며 살았던 우리 조상님들은 오롯이 농사를 제일로 꼽고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현대에 와서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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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의 말씀 물론 과학이 발달한 오늘에 와서도 식량은 삶에 있어서 근본이 된다. 제아무리 현대 문명이 발달
한다 해서 먹지 않고 굶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제는 세계 식량 강대국들이 식량을 무기화하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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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봉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동사강목』에 탐라에 봉수를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되어 있다. 1439년
(세종 21)에는 22개가 설치되었고,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탐라방영총람』에 비로소 봉수와 연대가 구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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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된 연대의 규모는 높이와 너비를 각 10자로 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제주도 내 연대중 제주목에 소속된
연대는 18개소, 정의현에 소속된 연대 11개소, 대정현에 소속된 연대 9개소로 모두 38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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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젊은이들은 농사를 하찮게 여긴다. 그래서 조금 더 편한 도시로 모두 떠나버린다. 그러
다 보니 농어촌엔 일할 사람들이 없다. 제주역시 농어촌 공동화 현상을 피해 갈수는 없었나 보다. 참으로 안타
깝고도 애석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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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풀들만 무성한 들판을 바라보면서 유랑자는 많은 생각을 해본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흐르긴 했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연대는 세월의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져 방치 되어 있었던 것을 2002년 말
복원하였다. 계단이 외부로 돌출된 모양이고 상부에는 방호벽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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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곳 해안 도로를 지나는 길에 한번쯤 들러 보는것 또한 좋을 듯 싶어 유랑자가 소개해 보았다. 올레길
쉼팡에서 잠시 쉬어가면서 선조들의 통신 문화유산을 체험도 해 보면서, 과거 연대가 소중한 사람들을 지켰듯
이 여러분들도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풍진 세파 속에 시달리며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랑하는 소중한 분
들에게 발달된 현대의 통신수단으로 한통의 안부전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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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모르는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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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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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랑자도 연대위에 잠시 앉아 전화로 가족들에게 몇통의 안부 전화를 하면서 건강하고 살아 있음에 대한 고
마움과 사랑이 가득 담긴 소중한 대화 시간을 보냈다,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손 전화기의 위력을 실감 하면서 세상 참 많이 변한것에대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유랑자
는 다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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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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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기
▶제주관광 홈페이지: https://www.visitjeju.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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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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