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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우연이 지배하는, 실수들의 세계
『이보디보』, 『세렝게티 법칙』, 『진화론 산책』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탁월한 이야기꾼이면서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인 션 B. 캐럴 위스콘신 대학 교수가 흥미로운 새책으로 돌아왔다. 캐럴은 신간 『우연이 만든 세계』에서 지질학, 생물학 등의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우리를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 ‘우연’에 대해 놀랍고도 영감을 주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는 우연이, 확률이, 운 따위가 우리 삶에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미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엄밀한 과학을 바탕으로, 그는 우연이 우리의 세계를 지배하는 사실상 ‘유일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캐럴은 최신의 과학이 밝혀낸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행성 수준에서 분자 수준에 이르는 놀라운 발견들을 소개하고, 전 지구적 대격변의 이야기,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의 모든 세포 내에서 작동하는 우연의 기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연에서 비롯한 ‘실수’들이 어떻게 전염병과 가뭄, 기타 문명을 뒤바꾼 격변들을 초래하고, 우리가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모든 생명체들의 바탕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쳐준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발견들은 안락한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몰아내고, 세계와 우리 주변의 생명를 경외감을 갖고 다시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는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우연적 사건들로 인해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우연에 휘둘리는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가능한 모든 세계들 가운데 최고의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 크리스티안 융게르센이 말한 것처럼 “무자비한 무작위성, 극도의 혼란, 계속적인 취약성”의 세계에 산다는 불편한 곤경을 들추어낸다. 이 예측할 수 없고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책은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진지하고도 유쾌한 시도이다.
🏫 저자 소개
션 B. 캐럴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작가, 교육자이다.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 과학교육부 부위원장이며 메릴랜드대학교 생물학부 발러-사이먼 석좌교수이자 위스콘신대학교 분자생물학 및 유전학 명예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이보디보』, 『세렝게티 법칙』,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분 최종 후보에 올랐던 『진화론 산책』 등이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진화생물학자로서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과 스티븐 제이 굴드상 등을 받았으며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미국과학진흥회,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이다. 1994년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주목받는 리더 40인에 선정된 바 있다. 현재 메릴랜드 주 체비 체이스에 살고 있다.
📜 목차
들어가는 말 : 우연의 난감함
1부 어쩌다 벌어진 일
1장 모든 우연의 어머니
2장 성질 고약한 짐승
2부 실수들의 세계
3장 맙소사, 대체 어떤 동물이 그것을 빨아먹겠나?
4장 무작위
5장 아름다운 실수들
3부 23의 비밀
6장 모든 어머니의 우연
7장 불행한 사건들의 연속
후기 : 우연에 관한 대화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과 더 읽어볼 책들
찾아보기
📖 책 속으로
골프 역사상 가장 유망하게 경력을 시작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김정일 장군 동지는 1994년 평양 골프클럽에서 생애 처음으로 라운드에 나서서 다섯 차례 홀인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미래의 북한 최고지도자인 그는 이날 총 38언더파를 기록했으며 어떤 홀에서든 아무리 못해도 버디는 쳤다.
--- p.11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배우면서 전염병과 가뭄, 기타 문명을 뒤바꾼 격변들이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법한 자연의 무작위적 사건들로 인해 촉발되었음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생명 활동에 대해 알아보고 개개인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요인들을 살펴보면서 (간발의 차이일 때가 많은) 삶과 죽음을 갈라놓은 것이 우연임을 본다.
--- p.24
우주에서 날아온 거대한 돌은 마지막 1초 동안 5만 피트의 대기를 가르고 지구에 떨어졌다. 이 충돌로 진도 11이 넘는 지진(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지진보다 100배 이상 강력한)이 일어났고, 유카탄의 대륙붕이 내려앉았으며, 높이 200미터 이상의 초대형 쓰나미가 멕시코만과 카리브해를 휩쓸었다. 충돌지에서 1,000마일 이내의 모든 것이 폭발로 초토화되었다.
--- p.39
희생자 목록은 공룡, 해양 파충류, 암모나이트보다 훨씬 길게 이어진다. 현대의 다람쥐(비록 다람쥐 자체는 아직 없었지만)보다 몸집이 훨씬 큰 육상 동물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런 참사가 일어나게 된 이유는 명백하다. 생명은 뜨겁게 구워지고, 차갑게 얼고, 그런 다음에는 굶주림에 허덕였기 때문이다.
--- p.41
지구는 격동의 세월을 이어가는 동안 자신이 상대한 종의 99.9퍼센트 이상을 때려눕혔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 p.53
그린란드는 지난 10만 년 동안 스물다섯 차례 점차적으로 식었다가 다시 더워졌는데, 불과 10~20년 만에 7도까지 오르내리기도 했다. 비교를 위해 말하자면, 오늘날 과학자들이 근심하는 갈수록 빠르게 녹아가는 그린란드 빙하는 지난 100년간 불과 2~3도 온도가 올라서 벌어진 일이다.
--- p.71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360만 제곱마일) 열대 사막 사하라가 5,000년에서 11,000년 전에는 초록으로 무성했음을 생각하자. … 현재 알제리, 차드, 리비아, 수단, 이집트 곳곳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암벽화에는 불과 몇 세기 만에 기후가 다시 건조하게 바뀌어 오늘날과 같은 사막화가 시작되기 전인 “초록빛 사하라”에 살던 코끼리, 하마, 기린, 영양, 사냥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 p.75
오랜 세월 생명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견해는 그 어떤 것도 우연이나 불의에 내맡겨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복잡하고 아름다운 모든 생명은 신이 현재의 형태 그대로 완벽하게 설계한 것이고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실제로 사실상 모든 진지한 과학자들이 한때 이렇게 믿었다.
--- p.83
비글호는 실제로 남아메리카의 서쪽에 있었다. 그러니 세계를 도는 나머지 항해 일정은 중단될 처지였다. 하지만 다윈은 그 시점에서 자신의 모험을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 만약에 그랬다면 그도 비글호도 갈라파고스나 타이티,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 p.89
다운이라는 마을에 있는 다윈의 대저택을 찾은 사람들은 당연히 위대한 박물학자가 서재에 앉아서 노트와 책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게 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1855년 5월부터는 아마도 정원 뒤쪽에 새장을 지어놓고 자신의 비둘기들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혹은 비둘기 사체를 끓이거나 골격의 치수를 재는 그의 모습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 p.100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의 맨 첫 장은 무려 10페이지나 비둘기에 할애되었다(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상과 달리 이 책 어디에도 핀치새에 관한 언급은 없다!).
--- p.102
어쩌면 다윈과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자연선택이 그토록 터무니없이 기다란 부리, 코, 목, 혀를 만들 수 있다면, 거대한 뇌를 가진 원숭이는 훨씬 더 대단한 위업이 아닐까?
--- p.107
어이없는 실수는 일곱 번째 계명(14행: 간음하라)만이 아니었다. 신명기 5장 24절에 보면 이런 보석 같은 구절이 나온다. “보아라, 우리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위대한 엉덩이?great-asse를 우리에게 보이셨나니.” 영광스럽다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그 뒤 단어의 올바른 철자는 ‘greatnesse’다.
--- p.113
이중나선이 촉발한 두 번째 주요 질문들은 무작위성의 직접적, 물리적 증거와 바로 연결된다. 텍스트는 어떻게 복제되는가? 실수들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그리고 궁극적인 질문으로, 실수는 왜 일어나는가? 생물학자들은 대단한 정밀함과 세심함을 발휘하여 이런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진전을 이루어냈다.
--- p.123
이런 발견은 돌연변이의 근원이 되는 사건, 생물권에 존재하는 온갖 다양성의 원천이 피해갈 수 없는 근본적인 물리학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화학적 결합 상태를 오가는 양자 천이quantum transition, 원자 수준에서 벌어지는 우연의 심실세동이다. 그러므로 돌연변이는 DNA의 오류가 아니라 엄연한 특징이다.
--- p.130
우리는 인간이나 다른 종들이 자연적인 수단을 통해 진화했는지 여부를 묻는 단계는 오래전에 넘어섰다. 오늘날 타당하고 예민한 질문은 종이 어떻게 진화하는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능력과 생활 양식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그리고 새로운 종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 p.134
볏의 기원은 그야말로 명확하다. 어느 시점에 조상 비둘기에게서 돌연변이가 일어남으로써 볏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양한 품종에서 볏이 확인된다는 사실은 육종가들이 이런 품종을 개발하고 번식할 때 볏 형질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면 누가 만든 자인가? 돌연변이인가, 선택인가?
--- p.142
2001년 어느 날 저녁, 생물학자 케빈 캠벨은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매머드를 발굴하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단순한 질문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이런 빙하시대 동물들은 혹독한 추위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 p.145
하나의 돌연변이가 상당한 활동의 이득을 제공한다면,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의 번식과 생존이 늘어나 시간이 흐르면서 개체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이것은 자연선택의 경쟁 과정이다. 예를 들어 돌연변이가 3퍼센트의 이득을 준다고 하면, 그러니까 그 유전자가 없는 후손이 100일 때 그 유전자를 보유한 후손은 103이 나온다면, 그 돌연변이는 1,000세대도 못 가서 대규모 개체군의 모든 개체에 존재할 수 있다.
--- p.155
자연선택은 자체적으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없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만들려면(계단을 한 단 올라가려면) 실효성 있는 돌연변이가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돌연변이는 하나의 개체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돌연변이 혼자서는 개체군을 바꾸거나 다수의 변화를 동시에 일으킬 수 없다. 그러므로 우연은 창조하고, 자연선택은 발명품을 퍼뜨린다.
--- p.156
천연두는 2,000년도 더 전에 설치류가 옮기던 바이러스에서 유래했고, 홍역은 1,000년 전 가축 소의 우역 바이러스가 시발점이다. 2019년 말에 중국에서 처음 출현하여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 COVID-19)도 기원이 비슷하다.
--- p.162
‘우리’라는 말은 집합적인 호명이다. 생물학자들이 ‘인간’이라고 말할 때 그들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우리는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종 내에 존재하는 온갖 다양성은 어디서 올까? 각각의 사람들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 p.166
정자, 난자, 아기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우연이 상당한 정도로 관여하므로 때로는 이런 유일무이한 유전적 조합이 불운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 아기의 대략 5퍼센트가 유전성 장애를 갖게 되며, 이 가운데 20퍼센트는 부모 양쪽에 없는 새로운 돌연변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 p.176
인간이 마주칠 수도 있는 항원의 범위는 엄청나게 넓으므로 면역계는 이 모두를 식별하기 위해 온갖 다양한 항체들, 어쩌면 수천만 종 이상의 항체들을 생산해야 할 수도 있다. 생물학의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면역계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실상 모든 것을 어떻게 식별하고 방어하는 것일까?
--- p.183
번개에 맞은 사람 가운데 10퍼센트는 죽는다. 1억 볼트 이상의 전기가 몸에 내리꽂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리번을 훨씬 더 운 좋은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번이 그의 첫 번째, 두 번째, 심지어 세 번째 번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공원에서 근무하면서 네 번째로 맞은 번개였고, 지난 4년간 총 세 번의 벼락이 그에게 떨어졌으며, 모두 공원 안에서 일어났다.
--- p.193
선구적인 몇몇 유행병학자들은 암이라는 것이 나이가 들면서 하나의 세포 내에서 연이은 여러 돌연변이들이 축적되어 일어나는 것이라고 대담하게 주장했다. 그들은 많은 암들이 연령의 여섯제곱의 함수라는 발견에 힘입어 한층 더 대담하게도, 이런 암이 발생하려면 예닐곱 차례 연이은 돌연변이가 필요했을 거라고 주장했다.
--- p.198
우리는 보니것이 언젠가 대학 졸업생들에게 한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시오! 담배를 피우지 마시오!”
--- p.208
우리가 신의 뜻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여기 있는 것이라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와 같은 지식에 직면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 p.213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후에도 삶이 이어진다고 생각하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딱 한 명만이라도 돌아와서 모든 게 사실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이제까지 죽은 수십 억 명의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도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나야, 지니, 여긴 정말 멋져, 근사한 온천도 있다고” 하고 말하는 겁니다.
--- p.225
진실을 말하세요, 다른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세요, 창조하세요, 그리고 제발 웃으세요.
--- p.231
🖋 출판사 서평
우연이 지배하는, 실수들의 세계
‘우연’을 주제로 한 독특한 관점의 과학책이 나왔다. 『이보디보』, 『세렝게티 법칙』, 『진화론 산책』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탁월한 이야기꾼이면서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인 션 B. 캐럴 위스콘신 대학 교수의 신간 『우연이 만든 세계』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 캐럴은 지질학, 생물학 등의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우리를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 ‘우연’에 대해 놀랍고도 영감을 주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는 우연이, 확률이, 운 따위가 우리 삶에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미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엄밀한 과학을 바탕으로, 그는 우연이 우리의 세계를 지배하는 사실상 ‘유일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캐럴은 최신의 과학이 밝혀낸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행성 수준에서 분자 수준에 이르는 놀라운 발견들을 소개하고, 전 지구적 대격변의 이야기,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의 모든 세포 내에서 작동하는 우연의 기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연에서 비롯한 ‘실수’들이 어떻게 전염병과 가뭄, 기타 문명을 뒤바꾼 격변들을 초래하고, 우리가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모든 생명체들의 바탕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쳐준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발견들은 안락한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몰아내고, 세계와 우리 주변의 생명를 경외감을 갖고 다시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는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우연적 사건들로 인해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우연에 휘둘리는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가능한 모든 세계들 가운데 최고의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 크리스티안 융게르센이 말한 것처럼 “무자비한 무작위성, 극도의 혼란, 계속적인 취약성”의 세계에 산다는 불편한 곤경을 들추어낸다. 이 예측할 수 없고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책은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진지하고도 유쾌한 시도이다.
우리를 쓰러트리지 못한 것이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6600만 년 전, ‘멸종의 날’로부터 시작된다. 공룡 시대를 끝장낸 것이 외계에서 온 우연, 소행성이었다는 사실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캐럴은 지금까지 알려진 지질학적, 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멸종의 날을 생생히 재구성한다. 그것은 얼마나 거대한 참사였을까? 우리는 단순히 공룡이 멸종했다고 알고 있지만, 실상은 훨씬 참혹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던 모든 생명체의 4분의 3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꽃과 나무가 사라지고, 벌과 새가 자취를 감췄다. 바다에서는 프랑크톤이 사라졌다. 먹이사슬의 기초가 무너지면서 사슬에 얽혀 있던 생물들도 함께 무너져내렸다. 그러나 모두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공룡이 무려 1억년 동안 지구를 지배하는 동안, 우리의 조상이 되는 포유류 역시 그들과 공존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았고, 공룡이 차지하지 못한 생태적 틈새를 채웠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에 따르면 그런 포유류가 공룡이 사라지고 불과 몇십만 년 만에 그 어느 때보다 몸집이 커져서 생태계의 지배적 개체가 된다. 이는 공룡이 포유류의 크기를 제한하는 주요 요인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니까 소행성 충돌이 없었다면 1억년 넘게 지구를 지배해온 공룡들이 여전히 지금 여기 있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여기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고 해서 소행성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다고 말하는 것도 터무니없다. 이야기는 그리 간단치 않다. 캐럴은 소행성 충돌이 지구의 환경과 생명의 경로를 바꾼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소행성은 외계에서 왔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건들은 지구 내부에서 왔다. 지구는 우리가 상상하듯 아름답고 평온하기만 한 행성이 아니다. 오히려 캐럴이 표현한 것처럼 ‘성질 고약한 짐승’이다. 지각판을 움직여 대륙을 충돌시키고, 화산을 분출하고, 온실과 냉실을 급격히 오가는 기온 변화를 상시적으로 일으키는 지극히 변덕스러운 행성이다. 이 책이 보이는 것은 이 모든 변덕이 또한 우연에서 비롯되었는 사실이다.
지구는 자신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생명들을 자주 극한까지 몰아붙였다. 그로 인해 많은 종들이 멸종하고 세(世)가 바뀌었다. 한편으로 많은 생명들이 그러한 극한의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살아남았다. 이것은 결국 지구가 날린 크고 작은 펀치들을 인류가 어떻게 피하고 견뎌서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실수는 우리의 운명
생명이 환경에 적응해서 진화했다고 할 때,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는 말일까? 생명체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캐럴은 이어서 생명의 진화를 추동하는 내적 우연의 기제를 소개한다.
공교롭게도, 진화론 정립의 계기가 된 비글호 탐사에 다윈이 합류한 것 자체가 우연이었다. 비글호가 갈라파고스 제도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도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관찰을 통해 다윈도 일찌감치 간파한 것처럼 진화는, 그러니까 생명체의 유전적 텍스트의 변화는 순전히 ‘우발적’인 사건이다.
‘돌연변이’는 사전적으로 “생물체에서 부모 계통에 없던 새로운 형질이 나타나 유전하는 현상”을 뜻하며 “유전자나 염색체의 구조에 변화가 생겨 일어난다.” 신문이나 책에서 오타가 발생하듯, DNA도 복제 과정에서 오타(실수)가 나타날 수 있다. 이 실수가 바로 돌연변이이며 진화의 원천이 된다. 최신의 과학은 다양한 종을 대상으로 유전체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의 양상을 조사해서 그것이 무작위적 분포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실수는 정말로 ‘우연히’ 발생한다는 뜻이다. 또 DNA 복제 과정에서의 실수가 10억분의 1 확률로 나타나는 것도 확인되었다. 대단히 낮은 확율이기는 하지만, 배양접시 위에서 박테리아를 배양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돌연변이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큰 확율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수들은 대체 왜 일어날까? 1953년 왓슨과 크릭은 DNA를 구성하는 네 가지 염기(A, C, G, T)가 각각 G-C, A-T의 형태로 결합하면서 이중나선 구조를 만든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런데 생화학자들이 최근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주 가끔 G와 T가, 또 A와 C가 실수로 결합하기도 한다. 이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양자천이’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구아닌(G)의 결합 부위에 있는 수소 원자의 위치가 양자천이로 인해 틀어지면 사이토신(C) 대신 타이민(T)과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양자천이는 찰나의 순간(1,000분의 1초)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피할 수 없는 물리적 현상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원천적으로 실수를 피할 수 없다. 실수는 오류가 아니라 생명의 엄연한 특징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실수가 우리의 운명이라면, 생명은 이 실수들로 무엇을 할까? 인류가 진화를 통해 두뇌의 크기를 키워서 혹독한 빙하시대를 견뎌냈다면, 매머드와 영하의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혈액의 결빙을 방지하는 유전자를 만들어내서 혹독한 환경을 견뎌냈다. 오늘날 지구 구석구석 어떤 환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경이로운 생명의 다양성은 바로 이 실수들 덕분인 것이다.
삶과 죽음
2부에서 우리는 생명의 진화에서 우연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삶과 죽음에 우연이 어떻게 개입하는지 살펴볼 차례다.
우리가 대략 억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세상에 나온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익숙할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시작부터 우연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진짜 우연은 부모의 정자와 난자 단계에서부터 개입한다.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정자와 난자 세포는 각각 25~36개의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 따라서 아이는 평균적으로 40~70개 정도의 새로운 돌연변이를 갖게 되는 것이다. 캐럴이 지적한 것처럼,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좋지도 나쁘지 않고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엄청난 불운을(다운 증후군 같은 유전병), 때로는 엄청난 행운을 낳기도 한다. 캐럴이 예시로 든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에이즈)에 내성을 갖는 CCR5 델타32 돌연변이는 그런 믿기지 않는 행운 중 하나다.
우리의 삶을 유지시키는 우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바로 면역계다. 캐럴은 우리의 면역계가 고작 163개의 유전자 분절로 100억 개 이상의 서로 다른 항체를 만드는 메커니즘을 상세히 기술한다. 물론 이 또한 우연과 실수 덕분이다. COVID-19처럼 동물에서 유래해서 인간의 면역계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이러스일지라도 우리가 대체로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영원히 살 수 없을까? 캐럴은 간결하게 이것 역시 우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앞서 우리는 우연이 어떻게 진화와 생명 활동의 원천인지를 배웠다. 그런데 우리를 유한한 존재로 만드는 것 또한 바로 우연(돌연변이)이다. 캐럴은 최대 사망 원인 질병 중 하나인 암을 예로 든다. 통계에 따르면 일흔다섯 살의 암 발병률은 서른 살의 10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다섯 명 가운데 두 명은 언젠가는 암의 공격을 받는다는 통계도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암은 세포에 돌연변이가 여러 차례 축적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다. 생명 활동을 하다보면 우리 세포에는 ‘우연히’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생명 활동이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즉 오래 살 수록 돌연변이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암에 걸릴 확률도 따라서 높아지는 것이다. 그것도 기하급수적으로. 남들보다 오래 산다는 것은 행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행운에는 암이라는 불운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25년 전, 우리는 암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찾기 위해 어디를 들여다봐야 할지 몰랐고, 설사 찾았다 해도 넋 놓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8년 초부터 이른바 운전자 돌연변이가 생산하는 특정 분자를 표적으로 삼는 새로운 부류의 약물이 개발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암의 성장과 확산에 관여하는 30개 이상의 분자들을 표적으로 삼는 수십 가지 약물이 있으며, 더 많은 것들이 개발 중이다. 우리는 생에 언젠가는 암을 만나게 된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제 암에 걸리고도 생존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미 있는 삶은 가능한가?
우연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개념은 심오한 깨달음이다. 이 모든 맹목적인 우연이 생물권에서 일어나는 모든 새로움, 다양성, 아름다움의 원천이라는 진실은 참으로 놀랍다. 소행성 충돌이, 지각판의 이동이, 그저 네 개 염기의 심실세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켰는지 알게 되면 누구든 틀림없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지고의 존재인 신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한낱 우연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심란하게 한다. 이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후기에서 캐럴은 우연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과학자, 철학자, 코미디언들과 대화를 가짐으로써 답을 구하고자 한다. 알베르 카뮈, 자크 모노, 커트 보니것 같은 명사들이 포함된 가상의 대화다.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 그들의 조언은 간결하지만 핵심을 꿰뚫는다. 이를테면 보니것의 “우리가 여기 지구에 있는 이유는 빈둥거리기 위함이에요.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신경 쓸 것 없어요” 같은 조언이 그렇다.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길을 잃은 독자라면, 이 조언들을 분명 고맙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우연 가득한 세계를 한결 낙관적으로 볼 힘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