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가해 11월9일 목요일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수도회] 사랑이 숨쉬는 성전으로 살아감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에제 47,1-2.8-9.12
† 복음 요한 2,13-22
◈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전 뜰에서 하느님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오염된
신앙심을 꾸짖으십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이어 당신께서 성전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이 말씀에
유다인들은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은 성전을 어떻게 사흘 안에 다시
세우느냐고 반박하지요.
유다인들이 말한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을 뜻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전을 크게 짓고, 화려하게 꾸며도, 그 안에 하느님의 마음이 없으면
참된 성전이 아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몸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실현되었지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참된 중개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사에 참례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십니다. 다양한 신심 행사보다 미사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1코린 6,19-20). 내 몸이 성령의 성전이기에 내가 얼마나 귀하고
거룩한 존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귀한 존재가 된 내 몸을 가꾸도록
맑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를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늘 찬미를 드리며,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평범한 일상 안에 늘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2017년 가해 11월9일 목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제1독서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네(따름 노래 “성전 오른쪽에서”)."
○ 에제 47,1-2.8-9.12<또는 1코린 3,9ㄷ-11.16-17>
복음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요한 2,13-22
한때 남들보다 신제품을 빨리 구입해서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소비자
군을 일컫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라는 소리를 들었던 저였습니다.
특히 컴퓨터, 카메라, 스마트폰 등에 관심이 컸고 또 이를 누구보다도
먼저 사용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앞서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새 것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그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합니다. 새로운 기능을 익히고 능숙하게 사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비되기 때문에 그럴 바에는 지금 익숙한 것을 더 잘
활용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이지요. 새 것이 좋아
보이지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특별한 기능이 많은 것이 좋아
보이고 필요할 것 같지만, 익숙한 기능을 더욱 더 잘 활용한다면 효과가
더 크게 될 것입니다.
문득 우리의 신앙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새 영세자로부터
세례를 받았음에도 뭐 특별한 것이 없다는 불평 비슷한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는 새 영세자만이 하는 말이 아니라, 많은 신앙인들이
간직하고 있는 갈등이기도 합니다. 깜짝 놀랄만한 특별한 일, 그리고
지금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들이 신앙 안에서 이루어지길
원하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 끊임없이 특별하고 새로운 표징을
청했던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현재의 우리 모습인
것입니다.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얻고 싶어 하지만, 자신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없느니만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면
주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금의 삶
안에서 주님을 느끼고 주님과 함께 할 때 큰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러자
유다인들은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라면서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청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저 특별하고 새로운 것만을 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당신 자신이 성전임을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떠나서는 어떤 특별함도
또 새로움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 삶 안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어떨까요? 늘 특별함과 새로움을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 안에 늘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평가되는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지금을 더 잘 살아가도록 노력한다면 분명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것은 실수할 가능성과 맞서는 것을 말한다
(이윤기).
라테라노 대성전 내부.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가?
어느 시골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입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강아지를
보고서 말이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나는 크고 힘이 세서 무거운 짐을 도맡아 나르고 있지. 그래서 주인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옆에 있던 암소도 말합니다.
“아마 내가 더 사랑을 많이 받을 걸? 내 젖으로 버터와 치즈를 만들어
먹지. 먹는 것이 최고지. 그래서 날 가장 사랑한다고.”
이번에는 양이 말합니다.
“다들 잘 모르는 모양인데, 주인님이 매일 밤 덮고 자는 이불은 모두
내 털로 만든 거라고. 나를 매일 덮고 자는 걸 보면 주인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지.”
암탉은 매일 알을 낳기 때문에, 고양이는 비위생적인 쥐를 잡기 때문에
주인이 자기를 제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이 집에 함께
살게 된 강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도 주인의 사랑을 받고 싶은데 도무지 잘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바로 그때 늙은 개 한 마리가 다가와 말합니다.
“강아지야. 저 친구들의 말이 다 맞지만,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서 울고 앉아 있어봐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사실 너는 꼬리를
쳐서 주인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단다.”
주인이 일을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강아지는 쪼르르 주인
앞으로 달려가서 꼬리를 치면서 맞이했지요. 그러자 주인은 강아지를
품에 안고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너를 보니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리는구나. 네가 어떤 동물보다도
최고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방법을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능력이 많아서? 내가
재주가 많아서? 그보다 더 쉬운 방법은 바로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강아지가 꼬리를 치면서 주인을 맞이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 역시 이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 깨어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낙엽이 엄청 떨어졌습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사랑이 숨쉬는 성전으로 살아감 - 기 경호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11월9일 목요일.
에제 47,1-2.8-9.12; 1코린 3,9ㄷ-11.16-17; 요한 2,13-22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 2,16)
사랑이 숨쉬는 성전으로 살아감
오늘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대성전은 로마의 주교좌 성당으로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머리”로 불립니다. 이 대성전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천여 년 동안 교황청 역할을 했으며, 다섯 차례의 세계 공의회가
개최되고, 성 프란치스코가 수도규칙을 승인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 축일에 우리는 사도 베드로로부터 이어지는 모든 교회가 성령 안에서
일치되어 있음을 깨닫고, 각자의 성화 소명에 충실하여야 함을
상기해야겠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성전’인 형제자매들을 거룩하게
대해야 함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하느님의 집이요,
기도하는 집’인 성전에서의 태도도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하느님을 드러내고 증거하는 표지가 되기보다는 세속
가치를 좇아가는 현상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지 않는 교회는 이미 죽은 교회입니다. 인간의
삶과 인간의 문제를 배제시키거나 무관심한 교회는 성전이 아닌
공동묘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전은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거룩한
곳이며, 하늘나라가 실현되는 곳으로서 사랑과 생명이 숨쉬는
곳이어야겠지요.
성전은 하느님께서 몸소 축성하시어 당신의 거처로 삼으신 곳으로서
그리스도의 삶을 회상하고 보존하며 살아내는 교회의 세포입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 억눌린
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친교와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 차별 없이 존중받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먼저 사랑으로
선택하여 함께 하며,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울어주고,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웃어주는 ‘공감과 연민’이 현저히 드러나는 곳이 참 성전입니다.
참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전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온마음으로 따름으로써 오늘의 성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주님 보시기에 좋은 참 성전이라 할 수 있을까요? 부유한
이들과 힘있는 이들 중심으로 흘러가는 교회,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관심한 교회는 주님을 분노케 하는 장사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성전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거처하시는 우리 인격을 거짓과 무관심, 차별과 불평등으로
채우지 말아야겠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성전’인 형제 자매들을 소중하게 대해야겠습니다.
서로를 사랑으로 존중하며 소중히 대하는 마음과 삶의 태도야말로
성전을 참 성전이게 할 것입니다. 사실 성전을 성전답게 하는 것은
웅장함이나 아름다움이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들의 거룩함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아가 세계의 지역교회와 보편교회가 일치를 이루는
길은 각자가 애덕 실천을 통하여 살아있는 성전이 될 때 가능한 일임을
기억해야겠지요.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 19)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11월9일 목.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 19)
하느님께 가는 길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머리숙여 기도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모든 곳을 봉헌하는 곳입니다.
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을 선택하는 곳입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들을 내려놓는 곳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정화시키기 위해 예수님의 몸인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성전과 우리또한 하나의 몸입니다.
함께 순례의 여정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목숨바쳐 사랑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성전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또한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랑하고 기도하는
주님의 작은 성전이길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2017년 가해 11월9일 목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요한 2,13-22
대체로 건강한 편이지만 2번 정도 크게 아팠습니다. 한번은 1991년
9월 9일입니다. 나중에 유행성 출혈 열이라고 알았지만 열이 40도 정도
되었고, 중환자실에서 지냈습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과 의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하는데 20일 정도 걸렸습니다. 그
뒤로는 저의 삶을 하느님께서 주신 ‘덤’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한번은 2012년 11월 17일입니다. 다리가
골절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동안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하면서
지내야 했습니다. 다시 걷기까지 3달 정도 걸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한쪽 다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신앙은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새로 세울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서울교구에는 232개 본당이 있습니다. 어떤
본당은 시설이 노후하여서 리모델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본당은
새로 신설되어서 많은 조직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떤 본당은 재개발
지역이어서 부득이하게 이사를 가야 할 것입니다. 어떤 본당은 많은
본당을 새로이 분가시키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본당은 지역의 환경문제를 함께 연대하면서 해결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혜를 모으면서 해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이란 건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바로 신앙인들이 모인 공동체를 의미 할 것입니다. 지나친 음주 때문에
공동체에 어려움을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로 단체에
어려움을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일의 진행을 어렵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공동체에 부임하는
사제들입니다. 신자 분들은 새로이 오신 사제와 전임 사제를 비교하게
됩니다. 강론을 성실하게 준비하는 사제, 강론을 길게 하는 사제가
있습니다. 신자 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늘 웃는 모습으로
대하는 사제, 신자 분들의 의견을 잘 듣지 않고, 화난 모습을 보여 주는
사제가 있습니다. 본당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사제, 재정의
흐름을 불투명하게 하는 사제가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에 충실한
강론을 하는 사제,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강론을 하는 사제가 있습니다.
한 교우 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교구는 본당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교님께서 암행어사와 같은 분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 하듯이 인격적인 문제가 있다면,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치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신앙인으로 충실하게 살지 않는다면,
사제들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것들을 충실하게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전은 예술적, 건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기본적으로
4가지의 기능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성전은 복음을 전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하고,
그 말씀을 이웃에게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조용히 기도하는 분들이 있는
성당은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곳, 기쁘고 행복한 사람들이 감사의
기도를 하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셋째, 성전은 친교를 나누는 곳입니다. 미사는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이기도 하지만, 미사는 형제들이 함께 모여 빵을 나누는 축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단체들이 성당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친교를
나누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넷째, 성전은 섬기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늘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섬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성전에 오는 사람들은 늘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성전, 기도하는 성전, 친교를 나누는 성전, 서로 섬기는
성전은 어느 곳이라 할지라도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성전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성전도 바로 그런 성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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