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7:19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개역개정판)
어딜 가나 거울(또는 휴대폰 카메라 화면)을 볼 수 있는 지금과 달리
옛날엔 거울이 귀했을 것이고
물에 비친 자신의 어른거리는 얼굴을 겨우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잘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흰머리나 주름 같은 건 지금보다는 덜 보였겠지만 말이다.
(나이 먹을수록 더 안보였겠지..)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다고 했다 (잠 27:19)
동일한 상황을 겪은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라도
각자의 입장과 처지가 달라도
대개 각자가 어떠한 마음일지 파악이 되기는 할 것이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일상에서도
일생동안에...
비행기가 기류 이상으로 덜컹거리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한 마음이 된다.
처절했던 6.25. 당시
미칠 듯이 추웠던 1950년 함경북도 부령군(중국 국경 근처 회령군 남부...)에서의 진백골 전투
백골부대라 불리는 육군 3사단은 북진에 북진을 거듭했는데,
팔로군 출신 중공군과 처절하게 싸웠던 6중대 대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최수용 어르신은
혼자 살아남은 미안함에
자비로 추모사당을 짓고 매일 위령제를 드렸다는데 (그 가족들까지 동원되었다...)
그 사연이 2008년 6월 6일
어머니 소천 3달 전인 현충일 밤에
현충일 특집 다큐멘터리 '영혼을 기억하는 세 가지 시선'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되었다.
소위 백골부대 육군 3사단은 6.25. 당시 치열하게 싸웠던 부대 가운데 하나다.
6.25. 발발 직후 속절없이 소련제 탱크에 우리 군이 맥없이 밀려내려갔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2차 대전 당시 가장 처절했던 독소전쟁
세계 최강의 독일 전차를 맞서기 위해 싸웠던 소련제 T-34전차
그 전차 부대를 맞서기 위해 만든 소련 전차는 미친듯한 소비에트의 생산력과 엔지니어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결정체였다.
독일의 티거(타이거) 전차에도 밀리지 않았던 그 전차를 상대해야 했던 용사들(그리고 심지어 학도병들...)
독립한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분단)국 한국은
종전한지 5년이나 되어 이제는 전후 복구 시스템이 정착된 미국이 유럽에 신경을 쏟은터라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소련제 탱크와 북한군에 맞서 최선을 다해 싸웠다.
전술 운용, 경험, 물자와 장비 부족은 기본값이었고
그 처참한 기본값에도 불구하고 용맹스럽게 싸웠던 것은 세계 전쟁사에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물론 광활한 평지에서 싸웠던 T-34는 한반도 험난한 지형과 무리한 남침 스케쥴을 견뎌내지 못했고, 남한 못지않게 북한 저놈들의 보급 수준도 형편없었다.)
특히 3사단은 반공 의식이 투철했던 서북 지역 출신들이 많았고
이들은 북진에 북진을 거듭하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용맹스러운 기질이었다고 전해진다.
6.25. 발발 직전
모내기 때문에 병사들의 외출, 외박을 장려했던 다른 부대와 달리
3사단은 병사들의 외출, 외박을 엄격히 통제했는데,
이들의 헌신과 노력은 대부분은 슬픈 희생으로 이어졌으나
미친듯한 남침을 조금이라도 막아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고,
그 희생은
후일 인천상륙작전을 포함한 우리군과 미군, 유엔군의 모든 군사작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같이 싸웠던 전우들이 모두 전사했을 때
생존자가 느끼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남은 세월은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을까?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남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물론 어떤 경우는, 고난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남들에게 날카롭게 대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 빈번하다.)
그렇기에
오늘 내가 겪는 고난은
남들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일종의 거울 같은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깨진 거울처럼 남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남들의 허물, 또는 눈에 티가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건 내 눈에 들보가 이미 들어있다는 뜻이 될지도 모르겠다.
남의 눈의 티가, 상대방의 아픔과 기도 제목으로 느껴진다면
내가 겪어왔던 고난과 아픔, 상처는
나를 성장하게 만든 귀한 자양분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서로 알 듯
나의 성숙함, 또는 나의 미숙함을
성숙한 상대방이라면
매우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유물론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