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운영 시스템과 노하우를 배우자!
“종교간 평화 없이 국가 간 평화 없고, 종교간 대화 없이 종교간 평화 없으며, 종교들의 근본 탐구 없이 종교간 대화 없다.” 독일 출신 천주교 사제 ·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2021)이 남긴 명언이다.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의장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그는 《그리스도교》 · 《가톨릭교회》 · 《교회란 무엇인가》 등 기독교 관련 저서뿐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 등을 통해 기독교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두 종교에 대한 깊은 연구 성과를 보여주어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해주었다.
1962년 개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자문위원을 맡아 큰 변화를 유도해 천주교의 방향 전환에 기여했지만, 바티칸의 공식 교리 해석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979년 신학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바티칸과 관계’를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아는 일반인들은 드물 것이다. 사제직까지 박탈당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교회 내에서 모든 활동을 할 수 없었으니 파문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스 큉을 이렇게 몰고 간 인물은, 한때 독일 튀빙겐대학에서 함께 신학을 가르치는 동료교수였다가 바티칸의 악명 높은 종교재판소가 이름을 바꾼 신앙교리성 장관이 된 라칭거 추기경[직전 교왕 베네딕토 16세]이었다.
왜 이 이야기를 길게 했을까. 한스 큉의 책을 읽다 보면 라칭거에 대한 분노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지만 라칭거 때문에 자신이 당하게 된 바티칸의 판결에 대해 세속 법원에 제소하는 일은 없었고, ‘동의할 수 없는 조치이지만 교회 안의 일을 세속 법원으로 끌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이 천주교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1945년 이후 80여 년 한국 불교 역사에 ‘비구와 취처(娶妻)’ 사이에 뒤엉켜 싸우던 일은 얼마나 많았으며, 종단 사이에 절 소유권 문제를 두고 세속 법원에서 길게 이어진 소송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각 종단이 이런 데에 쓴 소송비용을 합하면 서울을 비롯한 각 광역자치단체마다 번듯한 불교회관을 짓고도 남을 것이다. 불교 집안 문제를 세속 법원의 판결에 기대는 것이 습관이 되고 마치 전통처럼 되어 같은 종단 안에서, 같은 문도 · 사형사제들 사이에서 숱한 소송이 이어질 뿐 아니라, 이제는 출가자와 재가 신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이어지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이 책임을 일제와 미군정, 이승만과 박정희 등 권력의 탓으로만 돌리면 마음 편할 것이다. 물론 권력의 불교 차별 · 탄압이 그 원인과 배경이었던 사실은 분명하지만 더 큰 책임은 외부에 끌려가는 정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그에 기대려고 했던 우리 내부의 흐름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부성찰 없이 아직도 타성에서 벗어날 의지가 별로 없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하지 않나.
내부 문제 해결을 외부 권력이나 세속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않는 천주교의 관습 또는 전통은 본받아야 한다. 그리고 저들에게서 배워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전 세계 천주교에는 일반인들에게도 이름이 잘 알려진 예수회 · 베네딕트회 · 작은형제회 · 도미니코수도회 · 살레시오수도회 등과 성심수녀회 · 순교복자수녀회 등 숱하게 많은 수도회와 수녀회가 있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 수도회와 수녀회들의 활동이 겹치는 곳에서는 때로 갈등이 심각해져서 서로 바티칸에 상대편을 고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바티칸이 그어놓은 ‘세계 천주교회라는 선(線)’ 밖으로 벗어나는 일은 없다. 조계종을 비롯한 주요 종단은 서로 다른 설립 성격과 구성원들의 차이 때문에 원심력이 작용해 그 선을 넘어가는 일을 철저하게 막아내는 저들의 교단 운영 시스템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각 수도회 · 수녀회 운영에 자율권을 주면서도 ‘선’을 넘어 교회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는 그들의 노하우를 원용(援用)해 조계종 전국비구니회 법룡사를 특별 교구로 인정하여 비구니 스님들이 애써서 창건한 사설사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고민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