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강론>
(2024. 11. 2. 토)(마태 5,1-12ㄴ)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곧 나를 위한 기도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12ㄴ).”
1) ‘위령의 날’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인데, 이 말은, 이 세상 너머에 ‘내세’가 있음을
믿는 믿음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만일에 내세가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허무할 것입니다.
종교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 내세를 믿는 믿음은,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믿음과
하나인데, 우리는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내세로 건너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기 때문에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내세로 건너가면, 현세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천국과 연옥과 지옥으로 갈라져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우리 교회의 교리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는 영혼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없고, 우리가 그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지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영혼들이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지금 연옥에서
보속을 하고 있는 영혼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연옥은 벌을 받는 곳이 아니라 보속을 하는 곳입니다.
그곳에 있는 영혼들을 위한 기도는 그들의 보속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줄여주기 위한 기도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만 믿고,
연옥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부 종파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천국으로 직행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고, 반대로 지옥으로 직행할 정도로
악한 것도 아니어서,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곳, 부족했던
보속을 채워서 천국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연옥은 완벽한 성인도 아니고, 완전한 악인도 아닌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자비의 장소’이고,
‘사랑의 장소’이고, ‘은총의 장소’입니다.
<‘희망’으로 표현하면, 천국은 희망이 다 이루어진 곳,
‘더 바랄 것이 없는 곳’, 완벽하게 행복한 곳입니다.
반대로 지옥은, 희망은 하나도 없고 절망만 있는 곳입니다.
연옥은 희망이 남아 있는 곳이고, 틀림없이 이루어질
그 희망의 실현을 향해서 나아가는 곳입니다.
따라서 연옥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2) 우리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들, 부모, 형제,
가족, 친지,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아직
연옥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영혼들 가운데에는 이미 천국에 들어간 이도 있을 텐데,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고, 또 누가 알려 주지도 않기
때문에, 일단 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옳습니다.
<분명히 천국에 들어갔다고 객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경우는, 교회가 공적으로 성인이라고 선포한 경우입니다.>
또 반대로, 우리가 기도하는 영혼들 가운데 어떤 영혼은
이미 지옥으로 떨어진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것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또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기도 대상에서
누군가를 제외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지옥으로 갔다고, 즉 멸망하게 되었다고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말씀하신 사람이 성경에 딱 한 명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배반자 유다입니다.
배반자 유다 외에는 누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릅니다.
큰 죄를 지었더라도 죽기 전에 회개한 경우가 있을 것이고,
그 회개 때문에 지옥행을 피했을 수도 있습니다.
많이 미흡하고 부족한 회개라고 하더라도.
3) 연옥에서 보속하는 일은, 지옥에서 벌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라고 전해집니다.
그 고통은 바로 ‘내 안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자신의 잘못과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와 자책, 그리고 자신의
잘못 때문에 고통을 겪은 이들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에서
오는 고통, 특히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주님께 죄송한 마음... 그런 고통들이 상상보다
훨씬 더 영혼들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합니다.
사실 현세에서 이미 그런 고통을 경험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 경우에는 사는 것이 곧 연옥이고, 보속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또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지금의 삶’이
천국인 경우도 있을 것이고, 지옥인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든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고통을 겪는
이들을 도와주는 사랑이고,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연옥 영혼들이 언젠가는 천국에 들어가게 될 텐데,
천국에 가면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 기도해 주는 것이 곧 ‘성인의 통공’입니다.
‘성인의 통공’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출처] 위령의 날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